청년시민단체 ‘청년전태일’ 회원들이 지난해 9월1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의 대담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 대담 이후로 장관이 청년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해서, 앞으로 청년들이 딛고 올라갈 공정한 사다리를 만드는 데 절박한 심정으로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낙연 의원이 지난 7월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는, 이것도 이낙연의 학설입니다, 소녀가 엄마로 변하는 그 순간이며, 남자들은 그런 걸 경험 못 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듭니다.”
발언의 맥락은 여성은 출산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남자들은 그런 경험을 못 하기 때문에 철이 안 든다’는 부분은 모성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한 부수적 장치였습니다.
사실 이 말은 출산과 육아를 온전히 여성이 담당하던 시대에 여성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가진 남자들이 흔히 하던 일종의 ‘자학 개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이낙연 의원의 발언이 맞는다고 생각하시거나 슬며시 미소를 지으셨다면 틀림없이 나이가 좀 드신 남자분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분만실에 남자들이 얼씬도 못 했습니다. 출산과 육아는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이제는 남자들도 출산에 참여합니다. 분만실에 들어가 산모의 손을 잡거나 탯줄을 자르는 아빠들이 많습니다. 육아에서 아빠의 몫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낙연 의원의 발언은 선의에서 나온 것이지만 시대의 변화를 헤아리지 못한 실언이었습니다. 사과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상당한 세대 격차가 나타났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중장년 남성은 성범죄에 둔감한 편입니다. 남녀 차별의 시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던 시대를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박원순이라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장년 세대는 박원순 시장에 대해 일종의 부채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부터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시민운동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년 세대는 박원순 시장에 대해 그런 부채 의식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청년 세대에게 박원순 시장은 ‘최장수 서울시장을 하고 차기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큰 권력자’라는 인상이 더 강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에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난 이유도 세대 격차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중장년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한겨레 자료사진
이해찬 대표로서는 박원순 시장 상가에서 성범죄에 대해 질문하는 젊은 기자들이 몰상식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들로서는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죽음이고 그 원인이 된 성범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이해찬 대표는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비공개회의에서 “세상이 변했다”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정의당 내부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청년층, 심상정 대표는 중장년층입니다.
박원순 시장 사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직무 평가와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여러 악재의 배경에는 ‘세대 격차’라는 코드가 숨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첫째, 부동산 문제입니다.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은 계층 갈등, 서울과 지방의 갈등 문제지만, 동시에 세대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아파트값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젊은 세대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비정규직 갈등입니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중장년층과 청년층의 시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장년층은 이 문제를 1997년 외환위기 이전, 그러니까 비정규직이 없던 시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살아온 청년 세대에게는 ‘공정’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들에게 1997년 외환위기는 너무나 오래전의 일입니다.
셋째, 남북관계입니다.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청년층이 훨씬 더 비판적입니다. 중장년층은 “북한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청년층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생각합니다.
중장년 세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청년 세대에게 북한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남이었던 존재에 불과합니다.
한국갤럽 정례 조사 결과를 보면 4·15 총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는 5월 첫째 주에 71%로 최고점을 찍은 뒤 7월 셋째 주 46%까지 떨어졌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모든 연령층에서 5월과 비교하면 7월에는 긍정 평가가 크게 떨어지고 부정 평가는 크게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20대와 60대 이상은 아예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뒤집혔습니다. 60대 이상이야 총선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보면 그만이지만, 20대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높아진 것은 심상치 않은 일입니다. 최근 여러 사건이 20대를 ‘친문재인’에서 ‘반문재인’으로 돌려세웠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으로 보면 젊은 유권자들은 “요즘 철없는 아이들”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세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철없는 아이들’과 ‘물정 모르는 세대’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구성원입니다. 그들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미래가 어둡다고 봐야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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