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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잇단 악재의 숨은 코드는 ‘세대 격차’

등록 2020-07-19 10:35수정 2020-12-25 19:51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33
이낙연 의원 자학 개그에 젊은 세대 거부감
박원순 시장 사건 파장 세대별 시각차 뚜렷
부동산·비정규직·남북관계 배경도 세대 문제
문재인 대통령 긍정-부정 평가 20대서 역전
자영업·전업주부·학생은 ‘부정 평가’ 더 높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7월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동안 김태년 원내대표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7월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동안 김태년 원내대표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7월 1일 오전 국회 지구촌 보건복지 포럼 주최로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 19 사태 이후 대한민국 재도약의 길’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는, 이것도 이낙연의 학설입니다. 소녀가 엄마로 변하는 그 순간이며 남자들은 그런 걸 경험 못 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듭니다.”

발언의 맥락은 여성은 출산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남자들은 그런 경험을 못 하기 때문에 철이 안 든다’는 부분은 모성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한 부수적 장치였습니다. 사실 이 말은 출산과 육아를 온전히 여성이 담당하던 시대에 여성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가진 남자들이 흔히 하던 일종의 ‘자학 개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이낙연 의원의 발언이 맞는다고 생각하시거나 슬며시 미소를 지으셨다면 틀림없이 나이가 좀 드신 남자분일 것입니다. 하긴 과거에는 분만실에 남자들은 얼씬도 못 했습니다. 출산과 육아는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남자들도 출산에 참여합니다. 분만실에 들어가 산모의 손을 잡거나 탯줄을 자르는 아빠들이 많습니다. 육아를 위해 일찍 퇴근하는 아빠들, 육아를 위해 휴직하는 아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낙연 의원의 발언은 선의에서 나온 것이지만 시대의 변화를 헤아리지 못한 실언이었습니다. 이낙연 의원은 그날 저녁 사과의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강연 중 했던 일부 발언이 많은 분들께 고통을 드렸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통감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는, 소녀가 엄마로 변하는 그 순간이다. 남자들은 그런 걸 경험 못 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든다.”

1982년 어느 날, 한 생명을 낳고 탈진해 누워 있던 아내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강연에서 저는 삼십 대 초반에 제가 아버지가 됐던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이 말을 꺼냈습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려는 뜻이 있을 리 없습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놀랍고 위대합니다. 저를 낳은 어머니가 그러셨고, 아내 또한 그랬습니다. 모성의 소중함에 대해 말씀드리며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를 비롯해 세상의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희생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여성만의 몫일 수 없습니다. 부모가 함께해야 하고, 직장, 마을, 국가가 해야 합니다. 이제 제가 아버지가 되었던 4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은 변했습니다. 아버지들이 육아를 함께하시고, 직장에도 출산 육아 휴직제도가 생겼고, 국가의 지원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또 제가 30대이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삶의 모습과 선택은 다양해졌습니다. 성숙한 사회란 다양해진 선택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라 생각합니다. 정치의 역할은 모든 국민이 자신이 선택한 삶에 자부심을 갖고,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제게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잘 듣고, 더 가깝게 소통하겠습니다. 저만의 경험으로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지 경계하며 더 넓게 우리 사회를 보겠습니다. 시대의 변화와 국민 한 분 한 분의 삶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챙기겠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깔끔한 내용으로 신속하게 사과하고 정리한 셈입니다. 이낙연 의원은 매우 학구적이고 치밀한 정치인입니다. 평소 말 한마디, 글 한 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가 실수하는 모습을 거의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대 격차는 이런 ‘천하의’ 이낙연 의원도 실수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였던가 봅니다.

차원이 많이 다르지만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상당한 세대 격차가 나타났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중장년 남성은 성범죄에 둔감한 편입니다. 남녀 차별의 시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던 시대를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중장년 여성도 청년 세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둔감한 편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은 젠더 간 격차 못지않게 세대 간 격차가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에 박원순이라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대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장년 세대는 기본적으로 박원순 시장에 대해 일종의 부채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 인권 운동, 시민운동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세 차례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을 찍은 중장년들은 아마도 그의 이런 헌신과 성실성을 높이 평가했을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 준 고맙고, 용감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청년 세대는 박원순 시장에 대해 그런 부채 의식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중장년 세대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 박원순을 직접 겪었지만, 청년 세대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청년 세대에게 박원순 시장은 ‘최장수 서울시장을 하고 차기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큰 권력자’라는 인상이 더 강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 대응에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난 이유도 세대 격차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중장년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이해찬 대표로서는 박원순 시장 상가에서 성범죄에 대해 질문하는 젊은 기자들이 몰상식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자들로서는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죽음이고 그 원인이 된 성범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기자는 국민의 궁금증을 대신 물어보는 사람입니다.

이해찬 대표도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에 대한 여론의 흐름을 살펴본 뒤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비공개회의에서 “세상이 변했다”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해찬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의 뒤늦은 사과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의당 안팎의 갈등도 본질에서는 세대 격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류호정·장혜영 의원의 조문 거부는 정의당 젊은 세대의 정서와 생각을 대변합니다. 반면에 심상정 대표의 사과는 정의당 중장년층의 정서와 생각을 대변합니다.

박원순 시장 사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직무 평가와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여러 악재의 배경에는 ‘세대 격차’라는 코드가 숨어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부동산 문제입니다.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은 계층 갈등, 서울과 지방의 갈등 문제지만, 동시에 세대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아파트값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젊은 세대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비정규직 갈등입니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중장년층과 청년층의 시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장년층은 이 문제를 1997년 외환위기 이전, 그러니까 비정규직이 없던 시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살아온 청년 세대에게는 ‘공정’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들에게 1997년 외환위기는 너무나 오래전의 일입니다.

셋째, 남북관계입니다.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젊은 층이 훨씬 더 비판적입니다. 중장년층은 “북한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청년층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중장년 세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청년 세대는 북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북한은 남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 남쪽 대표 선수 몇 사람을 탈락시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정부·여당에 악재로 꼽히는 사안 중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및 부의장 선출 강행과 상임위원장 및 예결특위원장 독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안은 문재인 대통령 직무 평가나 더불어민주당 지지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제의 본질이 여당과 야당이라는 정파 간 갈등일 뿐이라서 세대 갈등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갤럽 정례 조사 결과를 보면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문재인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는 5월 첫째 주에 71%로 최고점을 찍고 그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7월 셋째 주에는 46%까지 떨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한 번도 반등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설 수도 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항목별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권역별로 대구·경북은 5월에 ‘잘하고 있다’ 53%, ‘잘못하고 있다’ 30%로, 긍정 평가가 더 높았습니다. 7월에는 ‘잘하고 있다’ 25%, ‘잘못하고 있다’ 59%로 뒤집혔습니다. 부산·울산·경남도 5월에는 ‘54% 대 31%’로 긍정 평가가 높았지만, 7월에는 ‘39% 대 45%’로 뒤집혔습니다. 총선 이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모든 연령층에서 5월과 비교하면 7월에는 긍정 평가가 크게 떨어지고 부정 평가는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20대와 60대 이상은 아예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뒤집혔습니다. 20대는 5월에 ‘긍정 대 부정’이 ‘66% 대 21%’였습니다. 7월에는 ‘36% 대 42%’로 뒤바뀌었습니다. 60대 이상도 5월에는 ‘64% 대 26%’에서 7월에는 ‘39% 대 48%’로 뒤바뀌었습니다.

60대 이상이야 총선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보면 그만이지만, 20대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6%포인트나 높아진 것은 심상치 않은 일입니다. 최근 여러 사건이 20대를 ‘친문재인’에서 ‘반문재인’으로 돌려세웠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직업별로는 5월에 자영업 ‘60% 대 34%’, 전업주부 ‘72% 대 19%’, 학생 ‘66% 대 14%’였습니다. 7월에는 자영업 ‘38% 대 57%’, 전업주부 ‘43% 대 47%’, 학생 ‘25% 대 52%’로 긍정과 부정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자영업자들의 변심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업주부가 돌아선 것은 부동산 문제와 박원순 시장 사건이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학생은 젊은층입니다. 20대의 여론과 같이 움직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직무 평가와 더불어민주당 지지도가 지속해서 떨어지는 것은 정부·여당의 정치적 위기를 의미합니다. 4·15 총선 압승으로 인한 방심을 비롯해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실책은 젊은 세대의 마음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젊은 유권자들은 “요즘 철없는 아이들”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세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철없는 아이들’과 ‘물정 모르는 세대’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구성원입니다. 그들의 정서와 이해관계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미래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보수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지금 젊은 세대의 정서와 이해를 잘 살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젊은 세대를 언제까지나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일 수 있습니다.

모름지기 정치인은 유권자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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