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우리는 정치인이 권력 투쟁에는 뛰어나지만 정책에 대해서는 무지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정책은 관료나 교수들이 전문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관료는 기계적이고 교수는 사변적이기 쉽습니다. 창조적이고 실천적인 정책 역량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오히려 정치인입니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이념, 철학, 가치관, 정책 노선입니다. 이념, 철학, 가치관, 정책 노선이 선명해야 유권자가 그 정치인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신군부 쿠데타의 일원이었지만 흐름을 중시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국민이 요구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습니다. 국제 사회의 흐름을 수용해 북방 정책을 전개했습니다. 소련과 수교하고 중국과 수교했습니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에 기초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을 이루어 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개혁을 강조하던 정치인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공직자 재산 공개와 금융실명제를 추진하고 하나회를 숙청했습니다. 전광석화였습니다. 5·18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법처리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찌감치 한반도 평화 통일을 강조하던 선구자였습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중·소·일 4대국의 한반도 전쟁 억제 보장(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한 화해와 교류 및 평화통일론,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과 교역 추진을 공약했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본래부터 매우 실용적인 정치인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돼서 이라크 파병을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것은 그의 실용 노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지방분권이라는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지방분권 철학은 문재인 정부로 이어져 여전히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인 출신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는 우리나라에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화 스와프 확대 및 균형 재정 정책으로 대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2년 사상 최고의 국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미루겠습니다.
이처럼 대선주자나 당대표급 정치인들이 가진 이념, 철학, 가치관, 정책 노선은 그가 대통령이 됐을 때 국정 이념, 국정 철학, 대통령의 가치관, 정부의 정책 노선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정치인들의 이념, 철학, 가치관, 정책 노선을 끊임없이 검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가 넘는 지지를 받는 사람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 이재명 경기지사, 윤석열 검찰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준표 전 대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도입니다. 여러분은 이들의 이념, 철학, 가치관, 정책 노선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안철수 대표와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따라서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국민 다수가 대략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낙연 전 총리, 이재명 경기지사, 윤석열 검찰총장, 김부겸 전 장관의 정치 철학과 정책 노선에 대해서는 국민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검증대에 올라온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네 사람 가운데 이낙연 전 총리와 김부겸 전 장관이 8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언론의 관심은 두 사람의 정치적 대립 구도에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호남이냐 영남이냐, 친문재인 성향 대의원과 권리당원들이 누구를 선호할 것이냐를 중심으로 경마식 보도가 이뤄질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대표 경선이 두 사람의 정치 철학과 정책 노선을 검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7월 7일 이낙연 전 총리와 7월 9일 김부겸 전 장관의 출마 선언문을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맞닥뜨린 여러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처방’은 이렇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낙연 전 총리>
첫째, 경제를 회생시키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신산업을 육성해 고용을 창출하며 청년층 등 국민께 희망을 드리기 위한 ‘경제 입법’을 서둘러야 합니다.
둘째, 양극화를 개선하고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 약자를 더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사회 입법’이 절박합니다.
셋째, 정치 혁신과 권력기관 쇄신 등 지체된 개혁을 촉진할 ‘개혁 입법’을 더는 늦출 수 없습니다.
넷째, 한반도 평화 진전에 힘을 모으며 여러 방법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다섯째, 정쟁을 멈추고 국민 통합을 솔선하며 ‘일하는 국회’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김부겸 전 장관>
첫째, 코로나 19 사태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걸 극복할 뿐 아니라 그 이후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발상의 전환과 준비와 변혁이 필요한 때입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코로나 19 사태 때 가장 취약한 부분은 국가가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 등 튼튼한 사회 안전망을 시급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권 및 사회 일각에서 제기한 기본소득 도입 문제에 대한 토론에 들어가서 중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을 도출해 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코로나 19 이후 다시 거의 아픔 속에서 가장 상처가 큰 국민을 보듬고 감싸 안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지금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만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습니다.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 박상기 법무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검경수사권 조정과 함께 정부안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핵심은 국민의 인권을 잘 보장하기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에 있습니다.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져온 비대한 검찰 권력은 국민의 통제를 받는 그런 방식으로 제도 개혁돼야 합니다. 최근 검찰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행동에 대해 국민은 바로 당신들의 그런 행동이 더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걸 잊지 않고 있다는 경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셋째, 남북 관계의 교착 상태를 해결하는 역할을 민주당이 함께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인도적 지원을 즉각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정치적 제재라는 국제 사회의 룰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 생명과 관계된 인도주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그 역할을 당당하게 국민과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일부 남북 대결주의자 혹은 반공주의자들께 요구합니다. 여러분의 그런 행위가 이 민족사의 모처럼 이뤄진 평화를 깰 권리가 없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미래통합당도 그런 세력과 손잡지 말아줄 것을 거듭 경고합니다.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미래를 훼손하는 세력과는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당당히 맞서 싸울 것입니다.
넷째, 집으로 부자 되는 세상이 아니라 집에서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몇 차례 부동산에 관련한 대책을 내놨습니다만 부동산 시장이 여러 가지로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이른바 유동성이 풍부해서 그렇다는 말로 책임을 떠넘기기엔 너무나 국민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주거 안정권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동산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는 긴급 정책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다주택 종부세 강화를 시급히 준비하고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겐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통해서 내 집 마련 꿈 자체가 좌절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섯째, 균형 발전과 자치 분권이라는 노무현 대통령 이래 우리의 오랜 숙원을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가 51% 정도 됩니다. 오이시디 어떤 국가도 인구 밀집된 이런 나라에서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전국을 서너개 광역 경제권으로 묶어서 자생력 갖추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국민의 삶을 나누어 책임지는 그런 국가 운영 틀이 꼭 필요합니다.
여섯째, 노동과 일자리 문제를 풀겠습니다. 용역 노동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몇 안 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두고 을과 을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노사정 간 대타협을 통해서 상생형 노동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는 광주형, 구미형, 울산형 등 일자리 모델을 바탕으로 번영의 길을 찾겠습니다.
이낙연 전 총리보다는 김부겸 전 장관의 정책 공약이 훨씬 더 자세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부겸 전 장관의 ‘디테일’이 궁금했습니다. 과연 얼마나 구체적인 진단과 처방을 갖고 있는지 조금 더 알고 싶었습니다.
김부겸 전 장관은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정치를 시작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들었던 말을 소개했습니다. “정치는 서생적 문제 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가지고 국민보다 딱 한 발 앞서서 국민에게 호소하고 또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는 일”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들에게 “현미경처럼 치밀하게 보고 망원경처럼 멀리 봐야 한다”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저는 김부겸 전 장관이 정책 현안을 얼마나 치밀하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출마 선언 뒤 김부겸 전 장관을 따로 만났습니다. 정식 인터뷰는 아니지만 정책 의제를 중심으로 2시간 30분 동안 대화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2시간 30분이면 별로 긴 시간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는 정책 현안에 대한 식견이 깊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김부겸이라는 정치인이 어떤 정치 철학과 정책 노선을 갖고 있는지 조금 더 드러내는 계기로 삼고 싶었습니다. 평가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대화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서 소개합니다. 가급적 핵심을 곧장 찌르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말을 글로 옮겼기 때문에 표현이 약간 어색할 수 있습니다.
대화는 부동산으로 시작했습니다. 김부겸 전 장관은 7월 8일 페이스북에 ‘솔선수범이 중요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일이 있습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강남의 아파트를 처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김부겸 전 장관 자신의 부동산 정책을 자세히 밝힌 것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이미 읽어보신 분들은 건너 뛰시기 바랍니다.
노영민 실장의 빠른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동서고금 나라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고위공직자의 솔선수범이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 정부를 신뢰하지만 국민의 불신은 높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을 설명드릴 겸 저의 생각을 보태겠습니다.
첫째,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 공급확대를 더 적극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주택에 대한 인식이 ‘소유’에서 ‘사용’으로 전환되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각 나라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싱가포르 85%, 네덜란드 40%, 영국 22%, 스웨덴·독일은 20%입니다만 서울은 불과 8%입니다. 우리 정부 역시 2022년까지 청년 30만호, 신혼부부 20만호 등 매년 17만호를 공급해 9%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20%만 되더라도 부동산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고 투기 차단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확대를 위해 서울 등 수도권에 있는 다양한 국공유 유휴부지를 적극 활용할 것을 건의합니다. 수도권에는 철도역사와 차량기지, 물재생센터 부지, 학교부지, 공공기관 이전부지 등 가용할 수 있는 국공유지들이 많습니다.
둘째,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기존과 같은 민간개발방식이 아닌 공공주도의 직접 개발이어야 합니다. 신도시 건설과 같은 기존의 방식은 막대한 토지보상과 분양가 상승 등으로 부동산 거품과 투기를 조장합니다. 이제는 고분양가의 민간분양 공급확대 방식을 벗어나,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주도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만 합니다.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 특정 계층만 아니라 분양점수를 쌓기 위해 노력해온 40대 50대 가장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해야 합니다.
셋째, 무주택자들에 대한 대출규제는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이번 6.17 대책 중 가장 비판받고 있는 사항입니다. 이번 대출규제는 실수요자인 무주택자들의 주택 구입을 막은 반면, 현금을 보유한 현금 부자들은 구입을 쉽게 해줬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말씀처럼 실수요자인 무주택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넷째, 최근 다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습니다. 지나친 세제 혜택으로 다주택자 중과세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전문가들도 “임대사업자등록제도의 기본적 취지(양성화, 투명화, 세입자 보호)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주택공급을 가로막고 주택 투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을 믿고 임대사업등록을 한 선의의 피해자도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선의의 피해자들에게는 일정 기간 주택을 처분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두는 것도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임대사업자등록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님들께도 당부드립니다.
최근 일부 고위공직자들과 국회의원님들의 주택보유 실태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신뢰가 생명입니다.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님들이 솔선수범을 보여야 합니다. 특히 민주당 의원님들은 공천 과정에서 ‘주택처분 서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아울러 국회를 포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적극 노력해 주십시오.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풀기 위해선 밀집된 수도권의 몸집을 줄여야 합니다.
박원순 시장님은 서울시가 앞장서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재명 지사님은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실거주 1주택 외 소유금지, 부동산백지신탁 등 적극적인 부동산 대책을 밝히셨습니다. 그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국민의 목소리를 무겁게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자 우리 민주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7월 8일 페이스북 글을 읽었다. 공공 임대 주택 확대를 앞세운 게 인상적이다. 그런데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방 분권과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한 것은 돈과 권력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아파트 값을 잡겠다고 서울에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면 수도권 집중이 다시 심화되는 것 아닌가?
“그건 반대다. ‘그들’의 먹잇거리가 될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1인 가구, 보유보다는 주거가 절박한 젊은 세대를 위한 공급을 늘려주자는 것이다. 돈을 가진 사람들끼리 하는 머니 게임은 보유세를 강화하고 취득세를 강화하면 된다.
싱가포르 모델은 첫 번째 집에서 취득세를 10% 내면, 두 번째 집은 15%, 세 번째 집은 30%를 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보유세, 취득세, 양도소득세 세 가지가 있는데, 거래세에서 탈출구를 줘야 한다. 싱가포르는 보유 기간, 싱가포르 국민인가 외국인인가 이런 것까지 모두 세분화해서 세금을 짜놓았더라. 그들에게 먹잇거리를 던져 주는 것은 안 된다.
그게 아니라 예를 들어 역세권을 고밀도로 개발해서 젊은이들에게 1인 가구를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정세균 총리도 얘기했지만 이 정권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불퇴전의 자세를 갖고 있다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
지금 우리가 정책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조롱을 당하고 있다. 권력을 희화화하고 있다. 자식들 능력도 없고 의지도 약하다고 조롱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진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주고 있다. “너희들 아직 집 안 샀지? 부동산 불패인 것 아직 몰랐어?”라고 한다. 평당 1500 정도 선에서 집을 사려고 노력했던 사람들까지 대출 규제를 때려 버리니 화가 많이 난 것이다.”
-공급을 어떻게 늘리나? 그린벨트를 풀어야 하나?
“그 부분은 조심스럽다. 두 가지 문제다. 유휴지가 있다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또 하나는 용적률이 낮기 때문에 공간 활용이 제대로 안 이뤄지는 것이다. 주상복합 형태로 돈이 많은 사람만 덤비게 할 것이 아니라 역세권에서 공공 개발을 하라는 것이다. 업자들에게 다 주면 안 된다. 몇 군데 골라서 정부가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다.”
-유휴지가 서울에 있나?
“예를 들면 폐철도부지라든가 조금 더 있다고 본다. 충분하지는 않다는 데 동의한다.”
-그린벨트 해제에 찬성인가 반대인가?
“이명박 정부 때 이미 허물어졌다. 주거 문제의 시급성 때문에 일부 활용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돌아가신 박원순 서울시장이 워낙 가치의 충돌로 봤기 때문에 그동안 말이 조심스러웠다. 이렇게까지 주거가 고통스러운데 뭔가 탈출구를 만들어내야 한다. 공공개발 방식으로 대규모 공공 임대 주택을 지어야 한다.”
-일조권을 포기하더라도 도심 용적률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맨하탄에 그 비싼 월세를 주고 숨도 못쉬면서 다닥다닥 붙어서 산다. 입지가 주는 편익이 있기 때문이다. 주거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치를 계량해야 한다.”
-강남 아파트가 비싼 것은 주거지로서 모든 인프라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용적률을 올려서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적절한 세금을 낸다면 돈 많은 당신들끼리 치고 받는 것까지는 좋다 이거다. 다만 서울에 직장이 있고 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들, 분양 점수 따려면 아직 먼 젊은이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뭔가 좀 획기적 방안이 나와야 한다. 굳이 강남만 생각할 필요 없다. 역세권을 개발해야 한다.”
-강남 아파트 값이 올라서 격차가 지금보다 더 벌어지는 문제는 어떻게 하나?
“일시적으로 더 벌어질 수 있겠지만 매물이 나오면 장기적으로는 떨어질 것이다. 강남 아파트는 주거 목적이 아니고 전국의 부자들이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겠다고 달려드니까 오르는 것이다. 강남에 비즈니스 센터를 지어서 개발해야 한다. 강남 사무실 공실률은 지금도 높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유동성 과잉과 관련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때려 잡겠다고 달려든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돈 많은 사람들끼리 게임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내 집을 갖겠다는 사람들의 요구까지 죄악시하면 안 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한지 3년이 넘었고 20여 차례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아파트 값을 못 잡고 조롱당하는 이유가 뭔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한국인이 주거에 대해 갖고 있는 독특한 심성을 우리가 간과했던 것 같다. 한국인은 집을 주거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유해서 내 재산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건 건강한 욕망이다. 다 틀어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부동산 가격을 못잡을 것 아닌가?
“서서히 해야지. 내가 이 게임에 참여해 봐야 나에게 돌아올 떡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7·10 보완 대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강력한 대책이다. 시장에 사인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의 후예들이다. 그런데 노영민 실장과 문재인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강남에 집을 갖고 있다.
“노영민 실장은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 고위층이 강남이라는 욕망의 도시에 집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각서까지 쓰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대단히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다.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 듯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된다. 여기서 강한 정책으로 신호를 주지 않으면 또 조롱을 당한다. 우리보다 훨씬 생명력이 긴 자본한테 조롱을 당한다.”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이 계속 버틸 것 같다.
“아니다. 이번엔 다를 것이다.”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공직자 재산 공개로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사퇴했다. 돈과 명예를 함께 가질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됐다. 30년 전에 그랬다. 문재인 정부가 김영삼 정부보다 못한 것인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서서히 기득권화됐다. 와이에스 디제이 시절만 해도 나라를 세우는 네이션 빌딩 과정이었다. 금융실명제를 했고 군인들이 더 이상 정치를 못하게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남북 관계를 정리했다. 국가의 기초를 놓는 과정이었다. 그 때는 국가 기강과 합의가 지켜졌다.”
-30년 동안 후퇴한건가?
“후퇴했거나 우리 모두 다 조금씩 기득권화되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눈을 감아주고 긴장감이 풀어졌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정말로 부동산 값을 잡을 의지가 있기는 있나?
“문재인이라는 리더를 믿는다. 아마도 이 부분을 자신의 명예의 핵심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김부겸 후보가 인정했듯이 부동산은 욕망의 문제다. 시스템으로 한계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순진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는 참모들의 수준을 보면 그건 아닐 것이다. 말이 안 된다. 거시 경제를 어떻게 끌고 갈 수 있겠나.”
-부동산은 국토부 장관이 아니라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경제 부총리의 책임이 더 크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자신은 강남에 살면서 모두 다 강남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얼마나 나이브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딱 맞는 표현인가.”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몇 사람 확 잘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정치적 액션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집값이 절대로 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과의 싸움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한 의지를 믿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내가 왜 대통령을 할까’라는 정도로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국토부 장관을 부른 뒤에 보유세 강화하고 임대 사업자 혜택 되돌리고 하는 것이다. 45만 가구가 150만채를 갖고 있다. 그들이 더 이상 덤비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다주택자는 2급 이상 공무원으로 기용하지 않겠다는 정도로 과감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바로 그런 극약 처방을 해야될만큼 왔다. 아니면 우리가 정말 양치기 소년이 된다. 그래서 출마 선언하면서 국회의원들, 고위 공직자들 3개월 내에 실행에 옮기라고 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매물이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이 요동쳐야 한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조세 저항을 얘기하면서 부동산은 때려 잡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나? 기재부 고위 공무원들이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 아닐까?
“국민의 불신이 있다. 하지만 무모할 정도로 뻔뻔한 공무원은 못봤다. 그런데 결국 경제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은 부동산이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다. 부동산을 함부로 하면 세수도 줄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그걸 담보로 한 신용체계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약간의 부동산 상승은 필요하다고 본다.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먹고 산다,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경제의 원리라는 논리가 있다.”
-그게 선의의 논리일까? 그들이 기득권층이기 때문 아닐까?
“누이 좋고 매부 좋은데 뭘.”
-국토부에서 아이디어를 내도 기재부가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나도 그 회의에 여러차례 참석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세를 갖고 있다. 공시지가 현실화를 얘기하면 경제 부처는 과감하고 대폭적인 보유세 인상을 안 하고 늘 조물거린다. 답답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내성만 심어주고 시장은 요동을 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장기적으로 부동산 값을 잡으려면 뭔가 ‘빅 픽처’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필요하다. 광역 경제권을 만들어야 한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을 1천만 경제중심 권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두뇌에 해당하는 대학, 여러 가지 다양한 재정 노하우, 4차 산업 혁명에 걸맞은 생산 능력 이런 것들을 엮어서 거기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 기능이 있으면 금융도 거기서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유럽에 인구 1천만짜리 도시가 많다.”
-그걸 어떻게 만드나? 정부가 가라고 하면 갈까?
“아니지. 정부가 전략적 투자를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광주 같으면 지금 광주 일자리 플러스 인공지능에 올인하고 있다. 광주 전남에 에너지, 인공지능 같은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산업정책으로 밀어줘야 한다. 전통 제조업 플러스 기계, 로보틱스, 에이아이 이런 부분은 예를 들면 피케이권, 티케이권은 지금까지 잘 할 수 있는 부분에다가 연구 기능을 추가해주고, 충청권은 제법 많은 것이 쌓여 있다. 젊은이들이 굳이 서울로 오지 않더라도 거기서 자기 인생을 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서울에서 월 100만원 더 받아봐야 생활 형편은 좋지 않다. 서울에 못들어오니까 출퇴근에 한시간반씩 걸린다. 그 교통비가 한달에 100만원 더 나가는 것이다. 노동 시장에 뛰어들어서 230~240만원으로 시작할 때 대구나 지방 같으면 230~240만원으로 생활이 된다. 서울은 안 된다.”
-알겠는데 정부가 뭘 어떻게 해야 지방으로 사람이 내려갈까?
“그러니까 에스오시를 죽죽 찢어서 나눠주지 말고 해당 지역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전략적 품목에 집중해달라는 것이다. 국가의 산업 정책일 수도 있고, 중소기업 지원 정책일 수도 있다. 과기부에서 갖고 있는 연 30조 연구·개발 투자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집중해주자는 것이다.”
-내가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출입을 할 때도 정부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20년 전부터 추진한 일이 왜 지금까지 안 되고 있을까?
“디제이는 선한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외환위기 극복 때문에 못한 것 같다. 그 뒤로 어설프지만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수도권에 아이티 등 신산업에 너무 집중돼 버렸다. 제동 장치 없이 수도권에 몰렸다. 공장총량규제 이런 것으로는 수도권 규제 얘기가 안 되는 것이다. 2018년 기준 인천 전체 지알디피(지역내 총생산)가 80조원이 넘는다. 부산시 전체 지알디피가 85조쯤 된다. 판교밸리 3킬로 원내에 들어가는 그 기업들의 총매출액이 60조 가까이 된다. 기업 숫자도 몇천개다. 과거 전통 산업 일자리를 보던 개념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중앙 정부가 뭘 나눠주려고 하지 말고 필요에 따라 행정체제 개편을 포함한 국가 운영의 틀을 바꿔야 한다.”
-문재인 정부 3년이 지났는데 그런 일을 왜 못했나?
“초기 청와대 경제팀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주제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것 같다. 실물경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어떻게 가속화시킬 것이냐에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의 수출규제를 당하고서야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이 아깝다. 소득주도성장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부가가치를 생산해내고 국내경제를 순환시킬 수 있는 뭔가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 모델이다. ”
-청와대 정책실장이 잘못 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 분들이 한국 경제를 너무 쉽게 이지 고잉할 것으로 봤다. 그분들이 우리와는 달리 경제학자들이니까 분명히 고도성장에서 저성장으로 내려오는 과정의 주름살에 대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지 말았어야 한다.”
-지금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재부 공무원들에게 둘러싸여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당에서 많이 하던데 맞다고 보나?
“잘 모르겠다. 공정거래에 관해서는 김상조 실장이 최고인 것은 맞다.”
-대통령이 경제 전문가는 아닌데?
“좋은 참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 경제 참모들이 좀 부실한 것 같다.
“초대 경제 부총리는 잘 발탁한 것 아닌가? 경제 부총리가 자기 방식으로 현장을 지휘할 수 있도록 실력을 발휘했어야 하는데 청와대 참모들이 어깃장을 놓았다고 알고 있다. 국회 예결위에서 답변하는 것을 지켜보면 김동연 부총리는 자기 나름대로 분명히 생각이 있었다.”
▶ [2부]로 이어짐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