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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서훈-이인영-임종석, 한반도 평화 ‘어벤저스’ 될까

등록 2020-07-05 11:52수정 2020-07-05 14:20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30
7·3 인사 메시지는 남북관계 개선한다는 확고한 의지
한반도 라인 개편···박지원 국정원장 발탁이 화룡점정
옛 ‘정적’도 필요하면 발탁하는 문재인 대통령 용인술
박지원 의원이 5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오피스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박지원 의원이 5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오피스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은 가끔 파격 인사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비문재인’ 성향 정치인들을 대거 기용했을 때 그랬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행정부에 발탁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도 이른바 ‘친문재인 그룹’이 아니었습니다.

7월 3일 안보 라인 개편의 ‘화룡점정’은 박지원 전 의원을 국정원장 후보자로 발탁한 것이었습니다. 박지원 후보자는 ‘비문재인’ 정도가 아니라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대표 경선,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그리고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반문재인’을 했던 사람입니다.

옛날 표현으로 ‘정적’이었던 셈입니다. 민주당 사람 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뒤끝이 너무 길다” “정치인으로서 호불호가 지나치게 분명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번 인사를 보면 좀 잘못된 평가인 것 같습니다.

7월 3일 인사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한반도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박지원 국정원장, 서훈 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임종석 외교·안보특보로 구성된 ‘원팀’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도 당시의 긴박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내용을 잘 알고 계신 분들은 건너뛰셔도 좋습니다.

북이 남과 정상 회담을 원했다. 그런 징후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포착되었다. 임동원 국정원장과 박지원 문광부 장관은 북의 움직임을 수시로 보고했다. 그러던 2월 어느 날, 임 원장이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했다.

“북측이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을 대표로 정해 놓고 싱가포르에서 접촉을 하자고 제의해 왔습니다.”

2월 27일 임 원장과 박 장관을 청와대 관저로 불렀다. 유럽 4개국 순방을 앞둔 시점이었다.

“북이 싱가포르에서 비밀 접촉을 갖자고 했습니다. 박 장관을 특사로 임명할 것입니다. 북에서도 박 장관을 원한답니다. 국정원에서는 대북 협상 전문가를 뽑아서 지원해 주십시오. 앞으로는 임 원장께서 남북 회담과 관련해 특별히 나를 보좌해 줘야 할 것입니다.”

박 장관이 특사로는 대북 담당 부서인 통일부 장관이 더 적임일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다시 말했다.

“통일부 장관은 노출이 되어 어렵습니다. 이번 접촉은 보안이 생명입니다. 박 장관이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일은 임 원장과 상의해서 처리하십시오.”

임 원장이 김보현과 서훈 두 대북 전문가를 발탁했다고 보고했다. 나는 박 장관에게 내가 평양을 갈 용의가 있다는 것과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되면 남북 경협이 훨씬 용이하게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리라고 했다. 그리고 북쪽 사람들을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되 당당하라고 일렀다.

2000년 3월 8일, 싱가포르에서 박지원 장관이 송호경 아태위 부위원장과 비밀 접촉을 가졌다. 그 다음 날 나는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박 장관에게 후일 들었지만 북측은 남측 최고 당국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박 장관은 나의 민주화 투쟁과 그로 인한 박해 등을 얘기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주장했던 4대국 평화 보장론, 3단계 통일론 등을 설명하고 팩스로 미리 받은 ‘베를린 선언’도 보여 주었다. 물론 ‘베를린 선언’은 결코 비밀 접촉을 염두에 두고 작성하지 않았다. 박 장관은 5월 또는 6월에 정상 회담 개최를 희망하고, 내가 평양에 갈 수 있다는 것 등을 전했다.

송호경 부위원장은 이번 예비 접촉은 일체 비밀로 하자고 했고, 그로써 남과 북의 탐색이 끝났다. 비밀 접촉에서 남과 북은 서로 정상 회담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다시 만나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었다. 박 장관이 돌아와 보고했다.

“송호경 부위원장이 제 설명을 듣고는 ‘마치 김대중 대통령의 음성을 듣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어쩌면 정상 회담이 성사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나는 계속 두고 보자며 박 장관을 격려했다.

싱가포르 예비 접촉에 이어 1차 특사 접촉이 3월 17일 상하이에서 있었다. 이번에도 박지원, 송호경 두 사람이 만났다. 나는 박 장관에게 회담에서 유념할 것들을 적시했다.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결정하지 마시오. 북측에 설명할 때는 손익 개념으로 명확하게 얘기하십시오. 이를테면 전쟁을 하면 북에 어떤 손해가 오고, 전쟁을 안 하면 어떤 이익이 오는지 말하시오. 경제 협력하면, 또 평화 교류하면 어떤 이익이 오는지 손에 딱 쥐여 주시오.”

그리고 만일 합의문을 작성하게 되면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을 얘기해 주었다.

“합의문에는 세 가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첫째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해야 하고, 둘째 정상 회담은 김정일 위원장과 해야 하고, 셋째 반드시 우리 초청에도 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하이 접촉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박 장관이 돌아와 보고했다.

“정상 회담에 대해서는 공감하는데 구체적인 것은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초청 주최, 정상 회담 시기와 일정, 정상 회담 후 합의문 등은 진전이 없었습니다.”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아직 ‘뒤편’에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주문했다.

“모든 것을 명확히 하시오.”

3월 23일 베이징에서 2차 특사 접촉이 있었다. 때는 봄날, 나는 제비가 박씨를 물고 돌아오듯 박 장관이 좋은 소식을 물고 오기를 기다렸다. 남과 북은 정상 회담을 향해 조금씩 다가앉았다. 우리 측은 정상 회담을 6월 12~14일에 개최하고 초청자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명확히 할 것을 다시 제의했다. 이에 북은 시기는 6월 중순으로 합의하되 준비 회담에서 최종 결정하자고 했다. 하지만 초청자 명기 문제는 진전이 없었다. 정상 회담은 김정일 위원장이 하겠지만 북측의 외교 관례상 합의서에 위원장을 명기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시 2차 회담이 끝났다. 나는 회담 결과를 보고받고 박 장관에게 지시했다.

“그간의 협상 태도를 보니 북이 변하는 것 같은데 합의문에 반드시 초청자를 명기토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도 포함시키도록 하시오.”

3차 접촉은 4월 8일 베이징에서 있었다. 북에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을 통해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미 베이징에서 북과 접촉하고 있는 실무진들은 큰 틀의 타협안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떠나기 전 박 장관이 보고했다.

“이번에는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집니다.”

내가 다시 한 번 당부했다.

“합의문을 명확하게 만드시오. 기대가 큽니다.”

박 장관이 마침내 박씨를 물고 나타났다. 이른바 남과 북의 ‘4·8 합의문’이 그것이었다.

남과 북은 역사적인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금년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평양 방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역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남북 정상 회담이 개최된다. 쌍방은 가까운 4월 중에 절차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준비 접촉을 갖기로 하였다.

북한은 합의문을 4월 10일에 발표하자고 했다. 우리는 보안 유지가 어려우니 9일 베이징 현지에서 발표하자고 했다. 그러나 북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 4월 15일인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제’가 10일 시작하니 이때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북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남북 정상 회담이 합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복받쳤다. 2년 동안 지속해 온 햇볕 정책이 북의 의심을 마침내 녹였다. 그것은 누가 뭐라 해도 햇볕 정책을 흔들림 없이 지지해 준 국민들 성원의 힘이었다.

‘필생의 통일 철학을 마침내 실현하는 기회를 맞는구나.’

통일은 당장 이루지 못해도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은 벗겨 내야겠다고, 또 이산가족 문제는 꼭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지난 1개월 동안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된 남북 접촉 상황을 미국과 일본에 알렸다. 임동원 원장을 보내 미·일 대사에 설명하도록 했다. 보스워스 미국 대사는 박지원 장관에게 추가 설명을 듣고 싶어 했다. 박 장관에게 특별히 일렀다.

“자세히, 숨소리 하나 빠뜨리지 말고 알려 주시오.”

4월 10일 오전 10시, 박재규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문광부 장관이 남북 정상 회담 합의를 발표했다. 북한도 같은 시간에 발표했다.

어떻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박지원 후보자에 대한 강한 신뢰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하지만 박지원 후보자는 이 일 때문에 뒷날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송금 특검에 의해 구속되는 등 큰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이 부분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특검은 사정없이 진행되었다. 은행, 기업, 정부의 관련자들을 모두 불러 샅샅이 조사했다. 민감한 문제들이 돌출되어 당사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끝내 국민의 정부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 이기호 경제수석,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구속되었다. 그들은 죄인이 아니라 통일의 일꾼들이었다. 사건은 ‘현대 비자금 의혹’으로 번졌다. 박지원 전 실장이 현대로부터 150억 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훗날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로 드러났다. 또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정몽헌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투신자살하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 대북송금 특검은 이렇듯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나는 이를 지켜보며 아프고 또 아팠다.

현대로부터 150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혐의는 무죄였지만, 에스케이그룹 7천만원, 금호그룹 3천만원을 받은 혐의는 유죄였습니다. 박지원 후보자는 최종적으로 징역 3년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받고 1년 5개월을 복역했습니다.

2007년 2월 사면된 박지원 후보자는 2008년 총선에서 목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재기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 이후 민주당에서 원내대표,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격돌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패배했습니다. 2016년 1월에는 민주당을 탈당해 안철수 대표가 만든 국민의당으로 갔습니다.

박지원 후보자가 민주당을 탈당할 때 저는 의원회관에서 그를 따로 만난 일이 있습니다. 박지원 후보자는 “호남의 반문재인 바람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탈당이 불가피하다”고 기자인 저에게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첫째, 자신이 민주당을 탈당하지만,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방해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끝까지 수호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에게 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박지원 후보자는 2017년 대선 도중 햇볕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그 때문에 안철수 대표와 결별했습니다.

대선이 끝난 뒤 2017년 10월 박지원 후보자는 제가 진행하는 ‘한겨레 텔레비전 더정치 인터뷰’에 출연한 일이 있습니다.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통합의 조건으로 햇볕정책과 호남 지역주의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박지원 의원, 호남 중진과 당을 같이 못 하겠다는 얘긴데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당을 같이 못 할 사이가 됐는지 이유는?

“상당히 유능하고 좋은 분이다. 저는 정치하면서 저하고 똑같은 사람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분은 강한 보수, 여러 가지 장점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이 어떤 분이냐. 박근혜 비서실장이다. 척을 졌지만, 용기 있게 싸웠나, 그건 아니지 않나. 그분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강한 투쟁을 했다고 하면 차라리 최순실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을까. 그 책임이 있다. 그런데 대구에 가서, 대구에서 못 벗어나는 분이다. 그런 분이 자기의 대북정책, 강경 보수 입장 지키면서 남에게는 햇볕정책 내려놔라. 자기는 대구 지키면서 호남을 버리라고 한다. 이건 준비 안 된 분의 이야기지 지나친 욕심이라고 본다. 저는 민주세력 반드시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위해서 분단국가에서 통일 지향하는데 남북 교류 협력 포용, 햇볕정책이 계승 발전돼야 한다. 저는 호남이 낙후돼있기에 호남 발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세 가지 정치적 목적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라도 일탈한다고 하면 저는 (같이) 할 수 없다”

-북한이 핵폭탄을 가지고 있으니까 햇볕정책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지?

”그러니까 햇볕정책이 더 필요한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미사일을 쏴대는데 그럼 전쟁을 해야 하나? 다 죽자는 것이냐? 이럴 때일수록 한미동맹 속에서 튼튼한 안보 다지고 북한과 대화해서 해결해야지, 선제공격한다고 되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햇볕정책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디제이(DJ)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하고, 북한에 대화 제의하는 건 아주 잘하는 정책이다.”

-안철수 대표가 대선 때 햇볕정책에도 공과가 있다고 양비론을 폈는데 동의하나?

“그때 저는 동의한다고 했다. 햇볕정책이라고 지고 지선 한 건 아니다. 대선 때니까 넘어갔다. 그런데 제가 기분 나쁜 것은 이것이다. 제가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초대 평양 대사를 하고 싶다. 입에 달고 살았는데. (대선 때 토론회에서) 그 질문이 나오니까 (안 대표가) ‘농담으로 했다’고 답변했다. 어떻게 당 대표가 한 말을 농담으로 몰아버리는가 섭섭했지만, 그때야 대선 후보 중심이니…”

김대중 자서전 “박 장관이 마침내 박씨를 물고 나타났다”

2000년 세 차례 사전 접촉으로 남북 정상회담 성사시켜

한나라당이 비판했던 박지원 국정원장 20년만에 현실로

서훈 ‘아베도 신뢰’, 이인영 ‘위기 돌파’, 임종석 ‘소방수’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 후보자를 국정원장에 발탁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지원 후보자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수호, 즉 한반도 평화 지킴이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북 제재 강화에 대한 북한의 반발, 반북단체의 전단 살포, 볼턴 자서전 파동 등으로 배배 꼬여가는 한반도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적임자는 바로 박지원 후보자가 아닐까요?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협조가 절대적입니다. 박지원 후보자는 앤드루 김 전 시아이에이 코리아미션센터장과 친분이 깊습니다. 또 지난해 8월 한-일 관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일본을 방문해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과 5시간 30분 동안 비공개 회동을 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박지원 후보자가 국정원장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세력이나 사람도 물론 많습니다. <조선일보>가 7월 4일 치 사설에서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지명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제목이 “'불법 대북송금' 국정원장, 안보는 누가 지키나”입니다.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밀사로 북한 측과 첫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고, 그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정일에게 뒷돈 4억5000만 달러를 건네는 역할을 맡았다. 그 지원으로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 위기를 넘기고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해 6년 뒤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 박 내정자는 노무현 정권 시절 특검 수사를 받고 수감됐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실패한 대북정책 답습 우려 키우는 외교안보라인 인사’였습니다.

박 전 의원을 국정원장에 내정한 데 대해 청와대는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북한에 대한 전문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박 전 의원은 대북송금 의혹이 제기됐을 때 “단돈 1달러도 보낸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현대 측에 대북송금을 요청하고 4억5000만 달러 불법 송금에 관여한 것이 드러나 2004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인물이 국가 안보와 기밀정보를 책임지는 자리에 적임인지 논란이 예상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이런 시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혹시 여러분은 20년 전에 ‘박지원 국정원장 임명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박지원 국정원장 설은 김대중 정부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한나라당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2001년에 <디제이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라는 책을 썼을 때 박지원 후보자의 측근이 한 말을 이렇게 인용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른바 메인 스트림들은 박 장관이 청와대 공보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하는 동안 조용히 지켜보았다. 밉기는 하지만 특별히 자기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도 않았고, 정국의 흐름에 별 영향을 줄 수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장관이 밀사로 베이징에 다녀와서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그들이 설정해놓은 ‘마지노선’을 넘어선 것이다. 박 장관이 한빛은행 사건에 연루돼 문광부 장관직을 사퇴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예정된 일이었다. 한나라당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박 장관이 국정원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소문을 논평으로 내면서 김 대통령과 박 장관을 강하게 비판한 일이 있다. 소문을 논평으로 낸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우리는 그들이 박 장관에게 ‘칼’을 쥐여주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어떻습니까? 20년 전 한나라당은 야당이었지만 2000년 총선에서 1당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세력이었습니다. 지금 미래통합당을 과거 한나라당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보수 신문들의 영향력도 2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약해졌습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마이너리티’ 출신인 박지원 후보자가 국정원장이라는 권력기관의 수장이 되는 것에 대한 우리나라 보수 세력의 거부감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지원, 서훈, 이인영, 임종석 네 사람을 언급해 놓고 박지원 후보자에 대한 얘기만 너무 장황하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이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였기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훈 안보실장은 국정원에서 평생 북한 업무를 담당했던 전문가입니다. 그동안 남북 정상 회담이나 통일부 장관들의 방북에 빠지지 않고 배석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장 자주 만났던 남쪽 인사가 바로 서훈 실장입니다. 미국 시아이에이도 그의 전문성과 안정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2018년에는 대통령 특사로 두 차례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나 한반도 상황을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만나 제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아베 총리는 서훈 당시 국정원장을 “한국 관료 중에서는 신뢰할만한 인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인데, 서훈 실장에 대한 아베 총리의 신뢰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훈 전 국정원장 임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 현장. &lt;한겨레&gt; 자료
서훈 전 국정원장 임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 현장. <한겨레> 자료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위기 돌파 능력이 돋보이는 정치인입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개혁법 및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 트랙에 올려 끝내 통과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인영 원내대표의 강한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이인영 후보자는 1987년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 출신 정치인으로, 민주당 남북관계 발전 및 통일위원회 위원장, 국회 남북경협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한반도 정책 전문가입니다. 2017년부터 매년 여름 민통선을 따라 걷는 ‘통일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5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 지형의 변화:한국과 G2' 정책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5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 지형의 변화:한국과 G2' 정책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석 외교·안보특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이었습니다. 2017년 대통령 취임 뒤 한반도 상공에 전운이 감돌던 암담한 시절, 그리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와 북미 회담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사람입니다.

임종석 특보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첫 번째 정상 회담에도 배석했습니다.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북한이나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에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lt;한겨레&gt; 자료
<한겨레> 자료

마무리하겠습니다.

최근 볼턴 회고록 파동의 소득 가운데 하나는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사람들인지 민낯을 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통일에 집착한 적이 없습니다. 전쟁 위기를 넘기고 대화와 협상으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볼턴은 문재인 대통령을 남북통일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를 미국에만 맡겨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된 셈입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7월 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북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이종석 전 장관은 “타자에 의한 평화 분위기 조성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한반도 운명의 당사자로서 교착 상황 타개를 위한 창조적 상상력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한-미 워킹그룹은 북핵 문제 협의에 집중하고 남북관계는 한국의 자율성을 인정하도록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원포인트 남북 정상 회담을 추진해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며, 서울과 평양에 대표부를 설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북한도 희망이 별로 없는 북미 대타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2005년 9·19 공동성명의 6자회담 다자적 해결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했습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7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북전단과 볼턴의 충격, 대북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7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북전단과 볼턴의 충격, 대북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박지원 국정원장, 서훈 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임종석 특보 조합이 바로 이종석 전 장관의 정책 제안을 가장 효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원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 구성된 안보팀이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와 대결 구도를 몰아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한반도 어벤저스’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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