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자택에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느 한쪽 정파가 전국 선거에서 4연패를 당한 적은 없습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은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졌습니다. 이대로 가면 2022년 대통령 선거도 패배할 것 같습니다. 깊은 연패의 늪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면 정당을 재건축 수준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선거에서 자꾸 지는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말 그대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합니다. 미래통합당이 당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종인 전 의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긴 것이 바로 그런 목적일 것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메시지는 간명합니다. 미래통합당을 이념 정당이 아니라 정책 정당으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국민은 일찌감치 ‘탈이념’을 했는데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은 ‘보수’와 ’자유 우파’를 앞세운 이념 정당이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진단입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진 정책 정당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처방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최근 메시지 중에서는 지난 6월 4일 비상대책위원회 모두 발언을 다시 읽어볼 만합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데이터청 설치 제안을 앞세워 간단히 보도했지만 제가 보기에 김종인 위원장이 하고 싶었던 말은 데이터청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먼저 현 상황과 관련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사실상의 공황상태가 진행되고 있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는 지금 아무도 예측을 할 수가 없고,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전에 없는 대변혁기에 우리가 들어가고 있다. 전에 없이 일어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전에 없던 비상한 각오로다가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래야 국민의 안전·사회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사태가 종료되면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신흥강자가 될 수가 있다.
지속적인 포용성장을 위한 각종 제도를 확립하고, 보건 체제를 재정립하며,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여건 조성, 아울러서 이로 인해서 파생되는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큰 차원에서 국가혁신·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정책 및 예산은 적극 협력을 할 것이다. 지금 시간이 별로 없다. 코로나 사태로 앞으로 10년간 일어날 사회 변화가 몇 달 새에 일어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국가의 발전을 위한 일, 국민의 안녕을 위한 일이라면 적극 여당과 협력하겠다는 말씀도 드린다.
결국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법과 제도를 고치는 일이다. 지금까지 개인·개별 제품 위주였던 케이팝(k-pop)·케이뷰티에서 국가 브랜드로 케이헬스케어를 정립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이를 수출하여 어려운 시기를 넘겨야 한다. 우선 지금 대통령도 이야기한 비대면 진료를 포함한 디지털 뉴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입법 활동에 적극 협력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 방역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일단은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방역 성공만을 자랑하고 있을 수는 없다. 방역 성공의 대가로 자영업 및 소상공인들은 아주 초비상사태에 놓여있다. 이제는 경제가 돌아가야 한다. 경제는 심리이다. 국민들의 심리 방역이 필요한 때이다. 국민들에게 너무 과도한 코로나 공포감을 조성해서 경제활동 자체가 위축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확진자 1명이 다녀갔다고 업장이 폐쇄되면서 자영업자를 결국 폐업으로 몰고 가는 것, 국민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감염이 확산되었다. 원인은 ‘아파도 안 쉬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적에 국민들은 “쉬면 월급은 누가 주느냐. 우리가 공무원이냐”고 호소한다. 이것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에게 지원 방안이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해외에 있는 제조시설을 국내로 리쇼어링 하는 기업에 대해서 파격적인 재정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결국 플랫폼 노동자들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므로 이들의 처우개선 및 4대 보험 문제를 의제화하겠다. 지금 국가는 미사일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 지킨다. 우리나라를 플랫폼 선도국가로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플랫폼이 데이터가 넘치게 해야 하겠다.
지금 시대는 데이터가 원유보다 비싸다. 데이터가 곧 돈이다. 국가혁신의 속도는 데이터 활용에 비례한다고 한다. 지금 분절화·사일로화로 되어있는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서 데이터 기반 정책, 민간이 데이터에 자유롭게 접근해서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여 ‘데이터청’을 만들 것을 제의한다.
이 탈원전 문제도 어느 것이 국가를 위한 일인지, 제조 기업들이 유턴하고 4차 산업혁명 진행 과정에서 데이터 센터들이 속속 건립되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경우 과연 원전 없이도 전력이 충분한지를 자세히 따져봐야 되겠다.
어떻습니까? 발언의 핵심은 코로나 사태 대변혁기를 기회로 삼아 대한민국을 혁신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신흥강자로 도약해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문재인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경세가(經世家)의 안목과 자신감이 잘 녹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종인 위원장,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이 협력해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나라가 신흥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탈이념, 정책 지향’ 노선에 대해 당 안팎에서 발목을 잡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급적 보수나 진보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김종인 위원장의 발언을 ‘반보수’라고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6월 9일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6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 21대 국회 개원 기념 특별강연에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의 아류가 되어선 영원한 2등이고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 보수는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유전자다. 실력을 인정할 수 없는 상대한테 3연속 참패를 당하고, 변화를 주도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잃어버리고, 외부의 히딩크 감독에 의해 변화를 강요받는 현실이 초현실인지 헷갈린다.”
“담대한 보수 발전의 동력이 어느 때부터 희미해지기 시작한 결과다. 왜 이렇게 소심해졌고 쪼잔해졌는가. 진정한 대한민국 세계 속에 위기를 정면돌파했던 보수의 유전자를 회복해서 그 이름으로 이겨내야 된다고 본다. 누구와 함께? 용병과 외국 감독에 의해서? 아니다.”
“저 원희룡은 바로 이 대한민국 현대사 압축성장의 산증인이자 대표상품이다. 남은 생애 해야 할 일은 받은 걸 돌려주는 것이다. 먹튀하면 안되지 않냐. 보수의 이름으로 패배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후반전 승리의 역전 드라마를 쓰자. 그걸 위해서 내 인생 중 가장 치열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저는 원희룡 지사의 발언 내용보다도 이런 발언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원희룡 지사가 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원희룡 지사는 한나라당 시절 개혁 소장파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일원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탈이념적이고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노선을 지향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정치인이 갑자기 “보수의 유전자를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가 뭘까요?
장제원 의원이 다음날 페이스북에 원희룡 지사의 강연을 극찬했습니다.
장제원 의원이 지난해 9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지사는 강연을 통해 총선 참패 이후, 기댈 곳이 없어 쓸쓸히 돌아 누워있던 보수 세력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타들어 가는 무더위에 폭포수 같은 시원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의 확신에 찬 긍정의 메시지는 보수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더 이상 원희룡은 우리가 알던 소장파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정치 노선에 대한 애정과 확신, 우리를 지지해 주신 국민들에 대한 감사함,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에 대한 겸손한 구애까지 우리 보수 세력의 대선 후보감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사실은 장제원 의원도 평소 매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정치인입니다. 장제원 의원은 국회 원 구성 협상에서 미래통합당이 총선 참패의 현실을 인정하고 인제 그만 법사위를 포기해야 한다고 21일 주장했습니다. 그런 장제원 의원까지 자꾸 ‘보수’ ‘보수’를 강조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저는 원희룡 지사와 장제원 의원이 김종인 위원장에게 반대하는 것이 ‘노선 투쟁’이 아니라 사실은 ‘반김종인 권력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총선 패배 이후 미래통합당에는 김종인 전 의원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길 것인지 아닌지를 놓고 ‘영입파’와 ‘자강파’가 대립한 일이 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당권을 잡은 지금도 ’외부 사람’인 김종인 위원장이 미래통합당 혁신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당내에 꽤 있습니다. 원희룡 지사와 장제원 의원의 주장에는 그런 당내 ‘자강파’의 정서와 이해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미래통합당 ‘자강파’가 김종인 위원장을 몰아내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미래통합당 사람들이 갖지 못한 두 가지 특출한 리더십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의제 설정 역량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기본소득제, 전일 보육제, 디지털청 설치 등 정책 의제를 잇달아 던지고 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제기하는 정책 의제는 만만치 않은 깊이를 가진 것이어서 언론과 정부 여당까지 끌어들이며 상당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당장의 실현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김무성-이정현-홍준표-황교안 대표는 이런 의제 설정 자체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미래통합당 의원들도 김종인 위원장과 과거 지도부의 현격한 실력 차를 수긍하는 분위기입니다.
둘째, 속도입니다.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개나 부싯돌의 불처럼 극히 짧은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정무적 판단과 실행력은 ‘전광석화’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4·15 총선 당시 치명적 실언을 한 김대호 후보와 차명진 후보 공천을 주저 없이 취소했습니다. 최근 여의도연구원장에 내정했던 이경전 교수가 차명진 후보를 옹호한 것으로 드러나자 내정을 철회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낙 빨리 정리하는 바람에 잘못된 인선을 해놓고도 타격을 별로 입지 않았습니다. 역시 과거 지도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리더십입니다.
지난 6월 10일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중진의원 연석회의가 열렸습니다. 비공개회의에서 중진의원들이 김종인 위원장의 탈이념 노선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던 것 같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기자들이 바짝 취재했습니다. 중진의원들은 말을 이리저리 돌렸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수의 가치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들이 있었다. 누가 보수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이 없잖아? 특별히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이지.”
중진의원들의 문제 제기를 가볍게 제압한 것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말을 아주 짧게 하지만 핵심을 좀처럼 놓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김종인 위원장이 미래통합당을 장악해서 2022년 대선까지 치러낼 수 있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적’은 미래통합당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습니다.
<조선일보> 6월 5일 치 ‘최보식 칼럼’의 제목은 ‘현 정권보다 지금의 통합당이 더 두렵다’였습니다.
한 노인이 자신의 생각에 맞춰 정당을 개조하려는데도, 보수 정당의 전통과 정체성에 관계된 중대사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공개적으로 그에게 맞선 이는 장제원 의원 한 명뿐이다. 통합당이 아무리 쭈그러들었다 해도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것에 대한 동의 여부는 저마다 밝혀야 한다. 이는 보수 정당 후보를 찍어준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다.
6월 6일 치 ‘강천석 칼럼’의 제목은 ‘김종인 통합당 앞 좋은 정당과 나쁜 정당의 길’이었습니다.
'과거의 가치관과 멀어지는 일이 있어도 너무 시비하지 말아 달라'던 예고(豫告) 방송이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진보·보수·중도라는 말은 쓰지 말라' '배고픈 사람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빵을 보고도 사 먹을 수 없다면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본소득 도입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됐다'. 하나하나가 보수 유권자와 통합당의 본래 마당 사람들이 그냥 넘기기 힘든 발언이다. 당 안팎에서 '수상쩍다. 이러다간 2022년 또 하나의 더불어민주당이 탄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가장 많은 사람이 보는 신문입니다. 특히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미래통합당 정치인들이 이런 주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6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흥미로운 토론회가 열립니다. ‘4·15 총선 이후 자유통일세력의 정치적 선택 : 미래통합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토론회입니다. 행사를 알리는 자료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총선 이후 급속히 좌클릭하고 있는 미래통합당과 자유통일헌법수호세력의 관계 설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특히, ‘미래통합당은 자유통일헌법수호세력을 대변할 수 없으므로 신당 창당이 대안’이라는 주장과 ‘정치 현실을 수용하고 자유통일헌법수호세력이 미래통합당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라는 주장 간의 격렬한 논쟁이 예상된다.
토론회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자유통일 대전략”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하고, 정규재 팬 앤드 마이크 발행인(보수는 이런 국가를 꿈꾼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4·15 총선 이후 대한민국과 보수의 진로)의 발제가 있을 예정이다.
이후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좌장으로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이언주 전 의원, 이동호 前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이옥남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연구소장, 유재일 시사평론가, 차선호 前 여의도연구원 객원연구원 등의 토론이 이어진다.
조갑제 대표, 정규재 발행인, 류석춘 교수 등은 이른바 보수 세력의 유명한 논객들입니다. 여기에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실패한 김대호 소장, 이언주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토론회입니다.
이들이 모여서 무슨 얘기를 할까요? 미래통합당을 버리고 신당 창당을 할 것인지, 미래통합당을 견인해 나갈 것인지 토론한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김종인 위원장의 미래통합당이 ‘좌클릭’하는 것에 대한 성토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정통 보수’, ‘자유 우파’, ‘태극기 보수’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김종인 위원장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것일까요?
이른바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진짜 정체는 기득권 세력입니다. 분단 기득권 세력입니다. 자본 기득권 세력입니다. 지역 기득권 세력입니다.
1945년 광복과 분단,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를 거치며 분단 기득권 세력, 자본 기득권 세력, 지역 기득권 세력이 결합해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기득권 세력임을 감출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깃발이 필요했습니다. 그 명분과 깃발이 바로 ‘보수’와 ‘자유 우파’였습니다. ‘보수’와 ‘자유 우파’라는 명분과 깃발을 내리는 순간 기득권 세력이라는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이들의 시각에서 미래통합당은 기득권 카르텔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명분을 제공해주는 정치적 전위 조직입니다. 그런 미래통합당을 김종인 위원장이 탈이념 정당으로 바꾸겠다고 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미래통합당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김종인 위원장의 뜻에 따라 ’보수’와 ’자유 우파’의 깃발을 내리고 대한민국을 선진강국으로 만들 수 있는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는 길입니다.
둘째, 김종인 위원장을 쫓아낸 뒤 ’보수’와 ’자유 우파’의 깃발을 부여안고 서서히 퇴락해 가는 길입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것은 미래통합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몫입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아직도 미래통합당에 미련을 둔 유권자들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투표자의 41%가 지역구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찍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과연 미래통합당이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로 진화해서 2022년 대선에서 집권하기를 희망할까요, 아니면 미래통합당이 ‘보수’와 ‘자유 우파’의 쇠락한 깃발을 끌어안고 몰락해 가기를 희망할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혹시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을 찍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미래통합당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