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6월 5일 국회 의장실에서 첫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가 국회의장과 여당 몫 부의장만 선출한 채 ‘불완전 개원’했습니다. 개원은 전반기 원 구성과 같은 의미입니다.
국회 원 구성은 국회의장단 선출, 상임위원 선임, 상임위원장 선출 3단계로 구성되는 절차입니다.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 상임위원장의 임기는 2년입니다.
우리나라 국회법은 모든 의안을 위원회에 회부해 심의하도록 ‘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상임위원을 선임하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하지 않으면 국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위원회 중심주의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에서 1963년 국회법을 새로 만들면서 도입했습니다. 그 이전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 시절 국회에도 상임위원회가 있었지만, 국회는 본회의 중심이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 국회가 상임위 중심이고, 영국 국회는 본회의 중심입니다.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은 언제 마무리될까요? 여당과 야당은 체계·자구 심사권을 가진 법사위원회 위원장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타협의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이른 시일 안에 타결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결단하겠다”고 했습니다. 국회의장의 ‘결단’은 무슨 의미일까요? 국회법에 상임위원 선임과 상임위원장 선출 조항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41조(상임위원장)
① 상임위원회에 위원장 1명을 둔다.
② 상임위원장은 제48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따라 선임된 해당 상임위원 중에서 임시의장 선거의 예에 준하여 본회의에서 선거한다.
③ 제2항의 선거는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집회일부터 3일 이내에 실시하며, 처음 선출된 상임위원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에는 그 임기만료일까지 실시한다.
제48조(위원의 선임 및 개선)
① 상임위원은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따라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요청으로 의장이 선임하거나 개선한다. 이 경우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임시회의 집회일부터 2일 이내에 의장에게 상임위원 선임을 요청하여야 하고, 처음 선임된 상임위원의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에는 그 임기만료일 3일 전까지 의장에게 상임위원 선임을 요청하여야 하며, 이 기한까지 요청이 없을 때에는 의장이 상임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
②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의원의 상임위원 선임은 의장이 한다.
21대 국회 첫 집회는 6월 5일에 했습니다. 따라서 각 교섭단체 대표는 6월 6일까지 국회의장에게 상임위원 선임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6월 7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상임위원장을 선거로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6월 7일은 공휴일입니다. 따라서 6월 8일에 상임위원장 선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상임위원 선임을 요청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8일부터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미래통합당 의원들을 일방적으로 상임위원으로 선임한 뒤 국회 본회의를 열어 상임위원장 선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말한 ‘결단’은 국회법이 정한 국회의장의 권한을 ‘법대로’ 행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박병석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 6월 5일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능할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법적으로는 가능해도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과 관행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기 위해 소집된 제헌국회는 1948년 10월 2일 국회법을 공식 제정하기 훨씬 전부터 상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먼저 전형위원을 뽑고 전형위원들에게 9개 상임위원회 구성을 맡겼습니다. 의원들이 각자 희망하는 상임위원회를 1희망, 2희망으로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1948년 6월 12일 국회 본회의 속기록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5월 30일에 총선거를 하고 5월 31일에 첫 본회를 했으니 국회가 소집된 지 2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기입니다.
◯ 부의장 신익희 / 시방 동의 재청이 있기를 시간을 약간 연장하면서 우리의 상임위원회의 제1 희망, 제2 희망의 표시를 이 자리에서 처리하자는 것입니다. 이의 없에요?
◯ 서상일 의원 / 이것은 가부 물을 성질이 아닙니다. 휴회하는 동시에 분과가 9 분과가 있는데 9 분과에 대해서 나는 어느 분과를 희망한다는, 제1분과, 가량 제1 희망, 제2 희망을 적어서 사무당국에 제출하시고 가시면 우리 전형하는 전형위원이 모여가지고 소집 책임자를 내서 시킬 것입니다. 가부가 필요 없에요.
◯ 부의장 신익희 / 그러니 의장으로 먼저 선포했는데 우리 의원의 의사가 이 자리에서 그 일까지를 처리하고 산회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그게 성립이 되였다 말이어요. 그러니까 가부 물어요.
(거수 표결)
출석원수 165, 가의 98, 부의 4, 가결되였읍니다. 그러면 곧 쓰십시요.
◯ 조봉암 의원 / 의장, 그것은 어느 부문 부문은 어떠어떠한 성질이 있고, 어느 부문 어느 부문 어떠한 성질이 있다는 것을 대체 한 번 선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던 말은 지금과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시방’은 ‘지금’이라는 뜻인데,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 당시 국회 속기록을 보면 시방이라는 단어가 무척 자주 등장합니다.
아무튼 제헌국회는 국회의원 본인들의 희망을 고려해서 전형위원들이 상임위원회를 구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상임위원 선임 방식의 변화는 국회법 규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48년 제정 국회법/
제14조
상임위원은 의원의 임기 초에 국회에서 선거하고 그 임기 중 재임한다.
1949년 개정 국회법/
제14조
상임위원은 의원의 임기 초에 각 상임위원회별로 각 단체의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각 단체에서 호선하고 그 임기 중 재임한다.
1949년에 도입된 ‘각 단체의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각 단체에서 호선’하는 방식은 1공화국 내내 유지됐습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들어선 2공화국은 국회법을 전부 개정했습니다. 상임위원 선임 규정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1960년 9월 전부 개정 국회법/
제38조 (상임위원)
① 상임위원은 매 정기회 초에 선임하고 1년간 재임한다.
제44조 (위원의 선임)
① 각 위원회의 위원은 각 단체의 소속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각 단체에 할당하여 선임한다.
‘호선’을 ‘할당’으로 바꾼 것입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3년 3공화국을 출범시키며 기존 국회법을 폐지하고 새로 제정했습니다. 상임위원 선임 규정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963년 폐지 제정 국회법/
제40조 (상임위원회의 위원)
① 상임위원회의 위원은 회기초에 선임하고 2년간 재임한다.
제46조 (위원회의 선임)
① 각 위원회의 위원은 각 교섭단체의 소속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교섭단체에 할당하여 선임한다.
2공화국의 ‘각 교섭단체의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교섭단체에 할당하여 선임’하는 방식을 3공화국도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어느 의원이 어느 상임위원회 위원을 할 것인지는 각 교섭단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1공화국의 ‘호선’ 방식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3공화국 출범 뒤 1963년 총선으로 구성된 6대 국회와 1967년 총선으로 구성된 7대 국회에서 여당인 공화당은 단독으로 원 구성을 강행했습니다.
6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에서 야당은 국회의장에게 상임위원 명단은 제출했지만, 상임위원장 선거에는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공화당은 12개 상임위원장에 모두 후보를 냈지만 야당인 민정당과 삼민회는 내정자를 지명하지 않고 의원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겼습니다. 선거 결과 야당이 거의 백지투표를 해 공화당 내정자가 전원 당선됐습니다. 1965년 6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도 마찬가지로 공화당이 12개 상임위원장직을 독점했습니다.
큰 문제가 생긴 것은 1967년 7대 국회였습니다. 6·8 부정선거 파동으로 야당 당선자들이 등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공화당 의원들로만 단독 개원을 한 것입니다. 야당인 신민당 의원들이 아예 국회에 등록을 거부하자 이효상 국회의장은 자기 마음대로 신민당 의원들을 상임위에 선임한 뒤 위원장 선거를 했습니다.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의원의 위원 선임은 의장이 이를 행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이용한 것입니다.
1969년 7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도 공화당의 3선 개헌안 변칙 처리로 여야가 대치하면서 상당 기간 지연됐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 등록된 상태였으니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의원’이라고 해석할 수도 없었습니다. 공화당은 1969년 11월 아예 국회법을 개정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1969년 개정 국회법/
제46조 (위원회의 선임)
① 각 위원회의 위원은 각 교섭단체의 소속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교섭단체에 할당하여 선임한다. 그러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위원회의 위원 선임은 국회의 의결로 의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
공화당은 1969년 11월 25일 단독으로 본회의를 개최해 의장 직권으로 야당 의원들을 상임위원으로 선임하고 상임위원장 선거를 했습니다. 법률에 ‘부득이한 사유’라는 애매한 표현을 넣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박정희 유신 정권은 한술 더 떴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 뒤 1973년 전부 개정된 국회법 규정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973년 전부 개정 국회법/
제40조 (상임위원회의 위원)
① 상임위원회의 위원은 회기 초에 선임하고 3년간 재임한다.
제41조 (상임위원회의 위원장)
② 상임위원장은 당해 상임위원 중에서 임시의장 선거의 예에 준하여 국회의 회의에서 선거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본회의의 의결로 상임위원장의 선임을 의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
제46조 (위원의 선임)
① 각 위원회의 위원은 각 교섭단체의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의장이 선임한다.
아예 국회의장이 상임위원과 상임위원장을 다 선임할 수 있도록 전권을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1980년 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81년 전부 개정 국회법/
제47조 (위원의 선임)
① 상임위원은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의장이 선임한다.
교섭단체의 비율만 지키도록 하고, 어느 의원을 어느 상임위에 선임할 것인지는 국회의장의 권한으로 넘긴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은 폭압 정권이었습니다. 11대 국회부터 원 구성도 국회 운영도 전두환 대통령과 민정당 마음대로였습니다. 국민은 야당이었던 민한당을 ‘2중대’, 국민당을 ‘3중대’라고 불렀습니다.
전두환 정권 말기였던 1987년 1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은 극한 파행으로 치달았습니다. 민정당은 1987년 5월 13일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과 여당 몫 부의장, 13석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했습니다. 야당 몫 국회부의장은 12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선출되지 못했습니다.
유신정권과 5공화국에서 국회의장에게 넘어갔던 상임위원 선임 권한이 다시 교섭단체 몫으로 돌아온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일입니다.
1988년 13대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국회의장 고유 권한이었던 국회 의사일정을 원내교섭단체 대표 간 협의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상임위원장 배분도 과거 다수결 승자독식 원칙에서 탈피해 원내 정당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비례성의 원칙으로 개선했습니다. 상임위원 선임 방식도 고쳤습니다.
1988년 전부 개정 국회법/
제46조 (위원의 선임)
① 상임위원은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요청으로 의장이 선임한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회의장에게 넘어갔던 상임위원 선임 권한을 교섭단체가 갖도록 정상화한 것입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김종필 총재의 3당 합당으로 거대 민자당이 탄생했습니다. 민자당은 1990년 13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서 상임위원장을 과거처럼 여당이 독식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기는 아무래도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민자당 총재로서 정치 개혁에 관심이 매우 많았습니다. 1994년 6월 국회법이 여야 합의로 이렇게 개정됐습니다.
1994년 개정 국회법/
제48조 (위원의 선임 및 개선)
① 상임위원은 교섭단체소속의원 수의 비율에 의하여 각 교섭단체대표의원의 요청으로 의장이 선임 및 개선한다.
이 경우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최초의 임시회의 집회일부터 2일 이내에 그리고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처음 선임된 상임위원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그 임기만료일 전 3일 이내에 의장에게 위원의 선임을 요청하여야 하며, 이 기한 내에 요청이 없는 때에는 의장이 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
현재의 국회법 조항과 같습니다. 당시 국회법 개정 이유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등 정치 개혁 입법에 이어 정치 개혁을 실질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우리 국회가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선진 의회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하려는 것임.
① 국회의 원 구성이 지연되는 사례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총선 후 최초의 임시회 집회일은 임기개시 후 7일로 하는 등 임시회의 집회일과 의장단의 선거, 상임위원의 선임, 상임위원장의 선거 등의 시기를 법정화함.
1994년 국회 다수 세력이었던 김영삼 대통령과 민자당이 주도해서 만든 국회법 조항이 지금 민자당을 승계한 미래통합당의 목을 조이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1994년 이후 지금까지 국회법이 정한 법정 시일에 원 구성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법정 시일에 원 구성이 이뤄지는 것은 둘 중 하나입니다. 여야가 합의를 이루거나,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원 구성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 문화에서 여야가 원만한 합의를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리고 1994년 이후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 정당이 출현한 것은 2008년 18대 총선, 그리고 이번 2020년 21대 총선이 겨우 두 번째입니다.
2008년 18대 국회는 법정 시일을 준수하기는커녕 오히려 ‘역대 가장 늦은 개원’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때문이었습니다. 야당은 쇠고기 재협상 선언을 등원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5월 30일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됐지만, 김형오 국회의장을 선출하고 개원식을 한 것은 7월 1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해 원 구성을 마친 것은 임기 시작 이후 89일만인 8월 26일이었습니다.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은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원 구성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정치적 부담이 컸기 때문입니다. 특히 야당의 의사를 무시하고 상임위원 선임과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한나라당 원내 지도부는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독식하겠다고 야당을 위협했지만 뜻을 관철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넘겨줘야 했습니다. 17대 국회에서 ‘다수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명분으로 법사위원장을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탓입니다.
제21대 국회 첫 본회의가 열린 6월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본회의 도중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홍준표 의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주호영 의원이었습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에게 2008년에 그가 했던 말을 꺼내면 “그때는 그때고”라는 말로 회피한다고 합니다. 하긴 2008년과 입장을 정반대로 바꾼 것은 지금 더불어민주당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21대 국회는 어떻게 될까요?
박병석 국회의장이 상임위원 선임을 강행하거나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정치가 지켜야 할 금도가 있습니다.
첫째, 교섭단체의 요청이 없는데도 국회의장이 상임위원을 마음대로 선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둘째,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3대 국회 이후 지켜온 상임위원장 여야 배분 원칙을 훼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여야가 타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19 사태로 대한민국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기입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때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럴 때는 대승적으로 양보하는 쪽이 명분을 얻게 됩니다.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은 과연 어느 쪽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했는지 기억할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창발적 아이디어로 타협안을 만들어내는 데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박병석 국회의장, 김태년 원내대표, 주호영 원내대표의 능력을 저는 믿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