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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한국판 뉴딜 선언’ 문재인 대통령에게

등록 2020-05-10 11:57수정 2020-05-10 17:11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21
루스벨트 자서전 ‘온 아워 웨이’ 머리말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 방불
‘한국판 뉴딜’ 아직은 일자리 정책 수준
저소득 취약 계층 관점서 제도 만들어야
노동과 복지 제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대한민국” 기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로 다산 정약용을 꼽은 일이 있습니다. 현실 정치인 중에서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 모델로 꼽았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롤 모델로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미국에서 복지 시스템과 기준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진보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면서도 극렬한 대결 방식이 아니라 국가를 통합하면서 자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경제인들과의 간담회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했듯 우리도 규제와 복지의 제도화를 통한 ‘한국형 뉴딜’이 필요하다”며 경제 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일도 있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패배하면서 그가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롤 모델로 생각했고 규제와 복지의 제도화라는 ‘한국형 뉴딜’을 구상했다는 사실도 잊혔습니다.

역사의 시계는 때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도 합니다. 2020년의 코로나 19 사태가 문재인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정치적 리더십을 역사의 무대 위로 불러내고 있습니다. 1930년대 세계 경제를 무너뜨린 대공황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불러낸 것처럼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며 정부에 ‘한국판 뉴딜’ 기획단 설치를 지시했습니다.

“정부는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대규모 국가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단지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관계 부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해 주기 바랍니다. 정부가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나서 주기 바랍니다.”

이에 따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7일 ‘한국판 뉴딜’의 세 방향과 10대 중점 추진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도 ‘한국판 뉴딜’을 언급했습니다. 코로나 19로 닥친 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에 견주어 설명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위기를 겪을 때 복지를 확대하고 안전망을 강화해 왔습니다. 미국은 대공황을 거치며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고,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를 건너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앞당겨 도입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 위기는 여전히 취약한 우리의 고용 안전망을 더욱 튼튼히 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하겠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미래 선점 투자입니다. 5G 인프라 조기 구축과 데이터를 수집, 축적, 활용하는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의료, 교육, 유통 등 비대면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도시와 산단, 도로와 교통망, 노후 SOC 등 국가 기반 시설에 인공 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여 스마트화하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 사업도 적극 전개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의료와 교육의 공공성 확보라는 중요한 가치가 충분히 지켜질 수 있도록 조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민간협력을 강화하겠습니다. 위기 극복과 함께 선도형 경제로 전환하는 발판을 마련하겠습니다. 대담하고 창의적인 기획과 신속 과감한 집행으로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를 적극 만들어 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이 아직은 일자리 지키기와 새로운 일자리 만들기 수준을 크게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뉴딜’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대담한 기획과 전략, 법과 제도의 정비로 이어질 수 있을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뉴딜을 언급한 것을 계기로 각 언론사 논객들이 ‘뉴딜’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5월 8일 치에 칼럼이 나란히 실렸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저소득 취약 계층의 관점에서 정책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강명구 교수의 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뉴딜은 저소득 취약 계층의 관점에서 노동과 복지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사회주의라고 비판을 받고, 국가재건청(NRA)이 연방대법원에서 위헌으로 판정되어 2년 만에 폐지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을 보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려 했다. 일례로 뉴딜 시기 최고소득세율은 79%까지 올라서 1980년대 초까지 7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신용호 논설위원이 칼럼에서 언급한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는 지난해 출판됐을 때 저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책입니다. 5월 5일 치 ‘사회경제적 약자 다수연합 구축해야’라는 칼럼을 쓰면서 인용한 일도 있습니다. 크리스티 앤더슨이 쓴 책의 원제는 ‘The Creation of a Democratic Majority, 1928~1936’입니다. 한국어 제목과 좀 차이가 있지요?

미국과 한국의 역사와 정치가 달라서 그런지 크리스티 앤더슨이 쓴 내용보다 번역자인 이철희 의원의 해제가 더 재미있습니다. 다른 책에서 인용한 부분은 빼고 해제에서 눈길이 가는 몇 대목을 소개하겠습니다.

“민주당에게 1932년 대선 승리는 우연이었다. 대공황을 초래한 공화당, 대공황의 폐해를 방치하는 공화당에 대한 응징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우연의 승리를 다수파 형성의 계기로 잘 활용했다. 다시 말해, 공화당에 대한 혐오감에 편승해 윌슨 시기처럼 잠깐 집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사회경제적 노선으로 정치 질서를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갈등을 노동·복지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경제적 갈등으로 대체한 덕분이다.”

“뉴딜 연합은 대공황의 폐해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 ‘잊힌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는 정책들을 통해 이들의 안정적 지지를 얻음으로써 만들어졌다. 정치 기획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뉴딜에 대한 책은 국내에 여러 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논문도 많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직접 쓴 책도 있습니다. ‘온 아워 웨이’(On Our Way)는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1년 동안 추진한 뉴딜 정책을 소개한 책입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저서 ‘루킹 포워드’(Looking Forward)와 ‘온 아워 웨이’(On Our Way) 초판 두 권을 선물해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백악관은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와 함께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그린 뉴딜’ 정책이 대공황 시대 미국 경제를 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과 맥이 닿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바마는 ‘그린 뉴딜’의 주창자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광복 60주년을 맞아 ‘그린 뉴딜’(녹색 성장)을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조원영 씨의 ‘온 아워 웨이’ 번역본이 국내에 출판된 시기도 절묘하게 2009년이었습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쓴 해제의 내용이 꽤 재미있습니다.

“루스벨트의 이 책은 그의 경제 리더십에 대한 것이 핵심이 아니다.”

“사실 루스벨트는 경제에 대해 그리 식견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이다. 비록 그는 경제에 대해 세부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핵심 과제가 그저 망가진 경제 시스템에 대한 협소한 경제 전문가의 진단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루스벨트의 1년간의 국정 경험이 담긴 이 책의 핵심은 미국 공화국, 더 나아가 미국 문명의 기초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도덕적·정치적 리더십의 문제의식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이철희 의원과 안병진 교수의 시각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 아워 웨이’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쓴 ‘1년간의 전진’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이 실려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90년에 가까운 시간과 지구 반대편의 공간을 뛰어넘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쓴 것 같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습니다. 책을 선물로 주고받은 ‘오바마-이명박’ 커플이 아니라, 실제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 정책과 정치적 리더십을 나눈 ‘루스벨트-문재인’ 커플의 공감대가 더 깊고 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정책을 혁명적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책 수행을 위해 채택된 수단이나 정책이 지향하는 목적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혁명적이란 이야기이다. 만약 그것을 혁명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일체의 폭력이 배제된 채 기존의 법률이 추구해온 목적의 전복이나 여하한 개인이나 계층에 대한 공정한 대우를 부정하지 않고 이루어낸 혁명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새로운 정책을 두고 ‘파시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인 것이 이러한 정책의 영감은 어느 계층이나 그룹 또는 행진하는 군대로부터 갑자기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 자신으로부터 분출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공화정체의 본질적인 방식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않고 달성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정치 제도에 대하여 한결같은 믿음을 유지해왔다. 우리의 정책을 ‘공산주의’라고 부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것 또한 옳지 않은 지적이다. 우리의 정책 집행은 입법 기능과 사법 절차를 행정 수반의 명령에 종속시킨 채 영속하는 관리 집단의 계획에 기반을 둔, 획일화된 편제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어느 특정 계층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사적인 정당의 존재를 부정한 채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 양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 대중 사이에서 우리의 정책을 ‘뉴딜’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합치된 관행으로 보인다. 이 이름의 배경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공정한 딜(Square Deal)과 우드로 윌슨의 신자유(New Freedom)라는 두 개념이 만족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명칭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명칭은 지난해에 거둔 몇몇 성과들이 시어도어 루스벨트에 의해 주창된 기업과 정부 간의 협력이라는 진보적인 발상과, 기업은 정부의 권력이라는 장치를 통해 자유의 남용으로부터 획기적인 법적 제한이 가해져야만 한다는 우드로 윌슨의 단호한 의지의 연속 선상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고로 우리는 정부가 한편으로 기업과 협력 테이블에 마주 앉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 공정과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경제생활의 다양한 요소들에 우월적인 경찰권을 발동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개선책의 배합은 현대의 생활 환경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면서 야기된 필연적인 현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명칭이나 구호를 떠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우리의 정책 변화는 미국 시민의 사고와 태도의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헌법의 입안자들을 인도했던 기본 원칙들을 충실하게 따랐다는 점이다.

아울러 미 국민 대다수의 전반적인 동의라는 형식을 밟았으며 마지막으로 만약 한순간이라도 그들이 우리가 폐기해버린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고자 원할 경우 무기명 투표라는 단순한 방법을 통해 어느 때고 되돌릴 수 있다는 항구적인 약속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인의 ‘창조란 힘이 아닌 설득의 승리’라는 설파는 시공을 초월해서 옳은 지적이다. 뉴딜이 추구하는 승리는 바로 그런 종류의 승리다.”

어떻습니까? 그러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이상하리만치 공통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첫째,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했거나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점입니다.

셋째, 좁은 의미의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넷째, 국가의 기본 이념과 원칙에 충실한 정치인들이라는 점입니다.

다섯째, 국정의 성과를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아 선거에서 계속 이겼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부분만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1932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압승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 후보 루스벨트가 공화당의 후버 대통령에 맞서 승리했습니다. 의회 선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원과 상원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크게 늘리고 공화당은 의석을 그만큼 잃었습니다.

2년 뒤 193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의석을 더 늘렸고, 공화당은 의석을 더 잃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국민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결과였습니다.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는 역사상 가장 큰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의회 선거에서도 물론 민주당이 이겼습니다. 공화당은 소수 세력으로 전락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연전연승한 것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마무리하겠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머리말에서 우리도 많은 착안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이 코로나 19 사태 극복, 일자리 지키기, 일자리 만들기 차원을 훌쩍 뛰어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에 일찌감치 밝힌 대로 ‘규제와 복지의 제도화’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커다란 발걸음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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