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18
김부겸, 대구 수성갑에서 지역의 벽 못 넘어
서울대 학생 운동 시절 아크로폴리스 사자후
학생 운동 강경파에서 정치권 온건파로 변화
정치 스승 제정구 의원 98년 암 투병 중 교훈
“모순과 대립을 통한 세계의 발전은 불가능”
“화해·상생·통합 정치만이 결과 낼 수 있어”
확증편향의 시대 그에게 장벽일까 기회일까
김부겸, 대구 수성갑에서 지역의 벽 못 넘어
서울대 학생 운동 시절 아크로폴리스 사자후
학생 운동 강경파에서 정치권 온건파로 변화
정치 스승 제정구 의원 98년 암 투병 중 교훈
“모순과 대립을 통한 세계의 발전은 불가능”
“화해·상생·통합 정치만이 결과 낼 수 있어”
확증편향의 시대 그에게 장벽일까 기회일까
4월 13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3동 일대에서 21대 총선 수성구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자영업자들이 죽겠다고 난리야. 코로나도 중국인들 들어오게 해서 대구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미래통합당 놈들도 문제지만 민주당은 더 싫어.”
공원 근처에서 만난 주민 박아무개(68)씨는 전날 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다짜고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욕을 늘어놨다. 이어 낮은 목소리로 세상을 한탄했다.
“김부겸이는 좀 안됐지. 세상이 어찌 되려고….”
‘나는 민주당이다’라는 자못 파격적인 제목을 붙인 이유는 나의 정치 이력에서 비롯된다. 정치인이 돼서 연고지인 대구에 내려가면 평소 알던 이들조차 나더러 ‘김대중 앞잡이’ ‘민주당 빨갱이’라며 대놓고 야유를 했다. 티케이 출신으로 민주당 정치를 한다는 게 무슨 파문을 당할 각오를 해야 했던 시대였다.
1987년 양 김 분열과 1990년 3당 합당 이후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라는 늪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근원적 균열이자 망국적인 병폐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나 같은 경계인에게는 정말 엄청난 고통이자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지역주의라는 악연과 두고두고 싸워온 투쟁사가 바로 나의 개인사이기도 하거니와 대한민국 야당 민주당의 역사이기도 했다. 참으로 외람된 제목이지만 민주당의 동료, 선후배 제위께서는 티케이 출신이 민주당에 와서 제 딴엔 얼마나 힘들어서 저럴까 하고 접어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다.
[김부겸 의원 선거 이력]
1988년 한겨레민주당 서울 동작갑 낙선
1992년 민주당 서울 동작갑 낙천
1996년 통합민주당 경기 과천·의왕 낙선
1997년 한나라당 입당···2000년 경기 군포 당선(초선)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합류···2004년 경기 군포 당선(재선)
2008년 통합민주당 경기 군포 당선(3선)
2012년 민주통합당 대구 수성갑 낙선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낙선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갑 당선(4선)
2020년 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갑 낙선
강경파였던 나는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정치는 통합과 상생을 목표로 해야만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정치 스승이었던 제정구 의원에게서 배운 것이다.
죽음을 얼마 앞둔 1998년 가을, 암 투병 중에도 서면 질의로 국정을 살피는 모습은 몹시도 눈물겨웠다. 제정구 선배는 귀중한 말을 남겼다. 아직도 그의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모순과 대립을 통한 세계의 발전이라는 명제는 이제 불가능하다.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정치 행태도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는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시대가 될 것이다. 화해와 상생, 통합의 정치만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모든 사물, 모든 인간과의 관계를 늘 새롭게 깨닫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야 한다.”
적을 만들고 대립각을 세워야 지도적 인물이 되고 확실한 지지층이 생기는 오늘날의 정치 풍토에서 나 같은 온건파들은 늘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른바 존재감이 없다고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 우리 사회의 거대한 균열-계층, 세대, 지역 간의-을 보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공존과 화해, 상생의 길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1987년 제도적 민주화, 절차적 민주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이후,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모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가! 이는 제도적, 절차적 민주화는 성공했지만 실질적 민주화, 민주주의의 생활화가 부족한 탓이다.
단선적 투쟁과 대립에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나 비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지역 패권만 찾아 몰려다니는 지역주의 정치 구도에서는 희망이 없다. 영호남 대립에서 이젠 충청지역까지 가세하고, 각 지역별로 소지역주의 대결 구도까지 창궐하는 이런 정치 현실에서 언제 어떻게 공존, 상생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증오하는 가운데 무슨 사회적 에너지와 활력이 살아나겠는가!
나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올바른 정치 풍토가 만들어질 때까지 혼자 싸울 용의가 있다. 모두가 싸우다가 지쳐서 물러선다면 나 혼자만이라도 끝까지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 내가 무대에 있는 동안 그런 역할이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목소리가 사라지고 내 시대가 지나가더라도 이런 과제는 언젠가 해결될 것이다. 그때는 제정구의 ‘상생의 정치’도 제 빛을 발할 것이다. 꽁꽁 언 대지를 뚫고 힘차게 솟아나는 4월의 생명력처럼.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의 경험을 담아서 출판한 <정치야 일하자>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대구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의 패배를 제 정치 인생의 큰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대구에 바쳤던 제 마음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통합의 정치를 향한 제 발걸음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오늘은 비록 실패한 농부이지만, 한국 정치의 밭을 더 깊이 갈겠습니다.
영남이 문전옥답이 되도록 더 많은 땀을 쏟겠습니다.
대구 민주당을 지켜 온 당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함께 출마해 목이 쉬도록 경쟁과 다양성을 외치신 후보 여러분, 존경합니다.
대구는 물론 전국에서 저를 위해 간절한 기도와 성원을 보내주셨던 시민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일어나 여러분 곁에 서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의연히 나아가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집권 여당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한 길로 달려갑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