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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BAR

분열의 시대엔 통합의 정치인이 필요하다

등록 2020-04-19 10:14수정 2020-04-19 14:12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18
김부겸, 대구 수성갑에서 지역의 벽 못 넘어
서울대 학생 운동 시절 아크로폴리스 사자후
학생 운동 강경파에서 정치권 온건파로 변화

정치 스승 제정구 의원 98년 암 투병 중 교훈
“모순과 대립을 통한 세계의 발전은 불가능”
“화해·상생·통합 정치만이 결과 낼 수 있어”
확증편향의 시대 그에게 장벽일까 기회일까
4월 13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3동 일대에서 21대 총선 수성구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4월 13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3동 일대에서 21대 총선 수성구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자영업자들이 죽겠다고 난리야. 코로나도 중국인들 들어오게 해서 대구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미래통합당 놈들도 문제지만 민주당은 더 싫어.”

공원 근처에서 만난 주민 박아무개(68)씨는 전날 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다짜고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욕을 늘어놨다. 이어 낮은 목소리로 세상을 한탄했다.

“김부겸이는 좀 안됐지. 세상이 어찌 되려고….”

4·15 총선 뒤 <한겨레> 대구 김일우 기자가 쓴 기사의 한 대목입니다. 대구 수성갑에서 김부겸 의원이 낙선한 것을 두고 많은 사람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지역구 선거에서 그를 찍지 않은 다른 유권자들도 김부겸 의원에 대해서는 아마 주민 박아무개씨와 비슷한 심정일 것입니다.

김부겸 의원의 대구 출마는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2012년 총선 당시 저는 대구에 출장을 가서 김부겸 의원이 대구 유권자들을 만나는 장면을 따라 다니며 취재한 일이 있습니다. 기자라고 하면 유권자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정책 보좌관으로 가장했습니다. 후보보다 제가 나이가 더 들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후보는 좋은데 당이 좀 그렇다”거나 “민주당만 아니면 참 좋겠는데”였습니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한 대구 사람들의 증오는 ‘전라도’에 대한 반감과 부산·경남에 대한 우월감, 그리고 서울에 대한 열등감이 뒤섞인 복합적인 것이라고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김부겸 의원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저의 ‘예상대로’ 김부겸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낙선했습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대구시장에 출마했지만 또 낙선했습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꺾고 당선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했습니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 의원을 했던 김부겸 의원이 험지인 대구로 지역구를 옮겨,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하루하루를 안일과 타성에 젖어 그렇고 그런 정치꾼으로 계속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1년 9월 김부겸 의원은 <나는 민주당이다-티케이 출신 김부겸의 인생과 정치>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자술서를 쓰는 심정으로 썼다는 이 책에 바로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 책 제목이 왜 하필 <나는 민주당>이었을까요?

‘나는 민주당이다’라는 자못 파격적인 제목을 붙인 이유는 나의 정치 이력에서 비롯된다. 정치인이 돼서 연고지인 대구에 내려가면 평소 알던 이들조차 나더러 ‘김대중 앞잡이’ ‘민주당 빨갱이’라며 대놓고 야유를 했다. 티케이 출신으로 민주당 정치를 한다는 게 무슨 파문을 당할 각오를 해야 했던 시대였다.

1987년 양 김 분열과 1990년 3당 합당 이후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라는 늪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근원적 균열이자 망국적인 병폐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나 같은 경계인에게는 정말 엄청난 고통이자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지역주의라는 악연과 두고두고 싸워온 투쟁사가 바로 나의 개인사이기도 하거니와 대한민국 야당 민주당의 역사이기도 했다. 참으로 외람된 제목이지만 민주당의 동료, 선후배 제위께서는 티케이 출신이 민주당에 와서 제 딴엔 얼마나 힘들어서 저럴까 하고 접어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다.

김부겸 의원이 사용한 ‘경계인’이라는 단어에는 그는 물론이고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부겸 의원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김부겸 의원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늦깎이’, ‘운동권’, ‘경계인’ 등입니다.

그는 출생부터 늦깎이였습니다. 그는 호적상 1958년생입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의 부친이 출생 신고도 하지 않고 입대하는 바람에 그의 모친이 돌이 지난 그를 업고 읍사무소에 가서 출생 신고를 했습니다.

호적상 만 4세였던 1962년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중학교 시험에 떨어져 후기 중학교에 진학했고, 3년 뒤 경북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져 후기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재수 끝에 1972년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 시험을 봤지만 실패하고 후기였던 성균관대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로 대학이 휴교하는 바람에 재수해서 1976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 의식이 있고 피가 끓는 대학생들은 평범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운동권’이었습니다.

2학년 때인 1977년 11월 도서관 점거 시위에 가담했다가 구속돼 영등포구치소, 서울구치소, 안양교도소에서 1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징병검사에서 수형으로 인한 소집면제 처분을 받은 그는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학생 운동 지도부로 활동했습니다. 복학생 그룹의 막내였습니다. 1980년 5월 1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투쟁을 독려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로 두 번째로 구속돼 제적됐습니다.

그는 1983년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 용의자로 몰리자 1984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1985년 민청련, 1986년 민통련, 1987년 국민운동본부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1985년 12대 2·12 총선에서 서울 성북구에 출마한 이철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합법적 대중운동, 즉 정치의 가능성에 일찌감치 눈을 떴습니다. 어쩌면 그는 타고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의 정치 이력을 다 기술하는 것은 너무 복잡한 일입니다. 아래에 그의 공직 선거 경력을 정리해 보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김부겸 의원 선거 이력]

1988년 한겨레민주당 서울 동작갑 낙선

1992년 민주당 서울 동작갑 낙천

1996년 통합민주당 경기 과천·의왕 낙선

1997년 한나라당 입당···2000년 경기 군포 당선(초선)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합류···2004년 경기 군포 당선(재선)

2008년 통합민주당 경기 군포 당선(3선)

2012년 민주통합당 대구 수성갑 낙선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낙선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갑 당선(4선)

2020년 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갑 낙선

김부겸 의원은 보수 성향이 강한 대구 출신으로서 개혁 진보 성향의 민주당에서 정치를 하면서 그의 표현대로 ‘경계인’의 삶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김부겸 의원의 ‘경계인’이라는 단어에는 영남과 비영남이라는 지역 경계, 보수와 개혁 진보라는 이념적 경계보다 훨씬 더 깊고 무거운 철학적 가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부겸 의원은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라는 별칭이 말해주듯이 학생 운동권의 강경한 투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김부겸 의원은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도 온건한 정치인입니다.

저는 1993년에 정치부 기자로서 김부겸 의원을 처음 만났지만 지금까지 그가 누구를 심하게 비난하거나 욕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가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만난 정치인 중에서 김부겸 의원을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하거나 욕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모든 사람과 친하고, 모든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특이한 정치인입니다.

운동권 투사가 온건한 정치인으로 바뀐 이유가 뭘까요? 그의 책에 나오는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좀 길지만, 그의 철학과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경파였던 나는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정치는 통합과 상생을 목표로 해야만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정치 스승이었던 제정구 의원에게서 배운 것이다.

죽음을 얼마 앞둔 1998년 가을, 암 투병 중에도 서면 질의로 국정을 살피는 모습은 몹시도 눈물겨웠다. 제정구 선배는 귀중한 말을 남겼다. 아직도 그의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다.

“모순과 대립을 통한 세계의 발전이라는 명제는 이제 불가능하다.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정치 행태도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는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시대가 될 것이다. 화해와 상생, 통합의 정치만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모든 사물, 모든 인간과의 관계를 늘 새롭게 깨닫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야 한다.”

적을 만들고 대립각을 세워야 지도적 인물이 되고 확실한 지지층이 생기는 오늘날의 정치 풍토에서 나 같은 온건파들은 늘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른바 존재감이 없다고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 우리 사회의 거대한 균열-계층, 세대, 지역 간의-을 보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공존과 화해, 상생의 길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1987년 제도적 민주화, 절차적 민주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이후,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모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가! 이는 제도적, 절차적 민주화는 성공했지만 실질적 민주화, 민주주의의 생활화가 부족한 탓이다.

단선적 투쟁과 대립에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나 비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지역 패권만 찾아 몰려다니는 지역주의 정치 구도에서는 희망이 없다. 영호남 대립에서 이젠 충청지역까지 가세하고, 각 지역별로 소지역주의 대결 구도까지 창궐하는 이런 정치 현실에서 언제 어떻게 공존, 상생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증오하는 가운데 무슨 사회적 에너지와 활력이 살아나겠는가!

나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올바른 정치 풍토가 만들어질 때까지 혼자 싸울 용의가 있다. 모두가 싸우다가 지쳐서 물러선다면 나 혼자만이라도 끝까지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 내가 무대에 있는 동안 그런 역할이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목소리가 사라지고 내 시대가 지나가더라도 이런 과제는 언젠가 해결될 것이다. 그때는 제정구의 ‘상생의 정치’도 제 빛을 발할 것이다. 꽁꽁 언 대지를 뚫고 힘차게 솟아나는 4월의 생명력처럼.

어떻습니까? 정치인의 글이 아니라 철학자의 글 같습니다. 어쩌면 김부겸 의원의 바로 이런 가치관과 철학이 바로 김부겸 의원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인지도 모릅니다.

제정구 의원이나 김부겸 의원의 소망과 달리 21세기는 상생의 시대가 아니라 상극의 시대, 통합의 시대가 아니라 분열의 시대로 치닫고 있습니다. 확증편향이 강화되며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분노와 배제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정치 문화는 연예인 팬덤 문화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유권자는 ‘아이돌’ 같은 정치인을 원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갈등을 조장하고 혐오를 조직화해서 표를 얻습니다.

어쩌면 김부겸 의원은 이런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입니다. 그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김부겸 의원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김부겸 의원은 이런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인입니다. 확증편향의 시대,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통합의 리더십을 갖춘 정치인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김부겸 의원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초대 행정자치부(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발탁됐습니다. 장관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무척 가깝게 지낸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형처럼 따르며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부겸 장관을 무척 좋아했다고 다른 장관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의 경험을 담아서 출판한 &lt;정치야 일하자&gt;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의 경험을 담아서 출판한 <정치야 일하자>

2018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에 출마할 생각이 있었지만 “장관으로 더 일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으로 2019년 4월까지 장관을 했습니다. 김부겸 의원이 대표에 출마하지 않자 이해찬 의원이 뒤늦게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뛰어들어 당선됐습니다. 그때 만약 김부겸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됐더라면 이번 총선 결과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는 총선 패배 뒤 낙선 인사를 이렇게 남겼습니다. 짧지만 무척 인상적입니다. 다시 일어서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다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대구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의 패배를 제 정치 인생의 큰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대구에 바쳤던 제 마음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통합의 정치를 향한 제 발걸음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오늘은 비록 실패한 농부이지만, 한국 정치의 밭을 더 깊이 갈겠습니다.

영남이 문전옥답이 되도록 더 많은 땀을 쏟겠습니다.

대구 민주당을 지켜 온 당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함께 출마해 목이 쉬도록 경쟁과 다양성을 외치신 후보 여러분, 존경합니다.

대구는 물론 전국에서 저를 위해 간절한 기도와 성원을 보내주셨던 시민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일어나 여러분 곁에 서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의연히 나아가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집권 여당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한 길로 달려갑시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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