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당직자들과 당원들이 지난해 4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4·15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3주 남짓 앞으로 바짝 다가왔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과 금요일, 3월 26일과 27일은 후보 등록일입니다. 그런데도 총선 판세는 안갯속입니다.
소선거구제 지역구 중심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 총선 결과를 예측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선거 막판 민심의 미세한 변화가 지역구마다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선거 판세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흐름으로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당 더불어민주당과 2당 미래통합당은 지금 ‘비례 위성정당’ 만들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비례대표 후보 명단도 아직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투표할 정당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범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비례 위성정당을 찍어야 한다는 사람들과 정의당, 녹색당 등을 찍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은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높은 지대로 올라가서 주위를 살피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의미를 새기고 결과를 예측해 보기 위해 몇 가지 숫자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역대 전적’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는 기본적으로 이른바 보수에 유리한 선거입니다. 황교안 대표가 지난해 광화문 집회에서 여러 차례 했던 말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스무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1대와 2대는 무소속이 많았고, 나머지 열여덟 차례 선거에서 우리 ‘자유 우파’가 열다섯 차례 이겼습니다. 우리가 진 것은 1960년, 2004년, 그리고 지난번 2016년 세 차례뿐입니다. 돌아오는 21대 총선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황교안 대표의 말은 사실입니다. 역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개혁-진보’ 세력인 현 여권이 이긴 적이 별로 없습니다. 현 여권의 총선 성적표는 ‘20전 3승 2무 15패’로 매우 저조합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첫째, 분단 체제 때문일 것입니다. 분단 체제에서는 이른바 보수를 표방하는 분단 기득권 세력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료, 재벌, 언론이 모두 분단 기득권 세력 편입니다.
둘째, 영남 패권주의 때문일 것입니다. 분단 기득권 세력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이른바 보수와 영남 권역을 결합한 거대한 카르텔을 완성했습니다. 지역 기반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현재의 여권은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 여권의 총선 승리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4년 전인 2016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일종의 기적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자 문재인 대표를 지지하는 열성 지지층이 대거 입당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뒤로 물러서고 김종인 대표가 전면에 나서 ‘경제 민주화’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꿨습니다. 이해찬 정청래 등 이른바 ‘친노’ 인사들이 공천에서 탈락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총선 참패의 절박감 때문에 대거 투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반면에 새누리당 지지층은 이완됐습니다. 야권 분열과 새누리당 공천 파동, 새누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습니다.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가 투표를 포기하거나 정당 투표에서 국민의당을 찍었습니다. 선거 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려고 했는데 몽둥이로 때리는 바람에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온갖 변수와 역설이 결합해 딱 한석 차이로 1당이 뒤바뀌는 정치적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뒤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및 탄핵,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를 거치며 이른바 보수의 체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어떻게 될까요? 이른바 보수가 아무리 쇠약해졌다고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현재의 여권이 총선에서 승리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분단 체제와 영남 패권주의라는 구조, 이른바 보수의 정치적 기반이 온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2017년 대통령 선거 후보별 득표율입니다.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전혀 다른 선거인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은 현직 대통령이나 각 정당의 대선주자들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992년(김영삼-김대중), 1996년(김영삼-김대중), 2000년(김대중-이회창), 2004년(노무현-박근혜), 2008년(이명박-손학규), 2012년(박근혜-한명숙), 2016년(박근혜-문재인)에 계속 그랬습니다.
지난 대선 후보별 득표율은 문재인 41.08%, 홍준표 24.03%, 안철수 21.41%, 유승민 6.76%, 심상정 6.17%였습니다.
2017년 4월 19일 밤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사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 텔레비전 토론에 앞서 정의당 심상정(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대선 토론은 사상 첫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됐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75%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이 수치는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의 득표율 합계와 비슷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대통령 선거 때는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지지로 흩어졌다가, 대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 지지로 모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촛불연대는 흩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3년 중간평가로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홍준표-안철수-유승민 세 사람이 손을 잡았습니다. 세 사람의 득표율 합계는 52.2%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 41.08%보다 훨씬 높습니다. 문재인-심상정 합계인 47.25%보다도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범여권에 유리하지 않은 구도입니다.
참고로 2018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서울특별시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92%, 자유한국당 25.24%, 바른미래당 11.48%, 정의당 9.69%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인 데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별로 참고할만한 수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은 여론조사 수치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갤럽이 3월 20일 발표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한국갤럽이 3월 20일 발표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 49%, ‘잘못하고 있다’ 42%였습니다. 긍정률은 1주일 전과 같고, 부정률은 3%포인트 줄었습니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8%, 미래통합당 23%, 정의당 4%, 국민의당 3%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코로나 19 사태 대응을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전국 단위 정당 지지도를 근거로 선거 결과를 예측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2016년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 이틀 동안 한국갤럽이 조사해서 선거 이후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정당 지지도가 새누리당 37%, 더불어민주당 20%, 국민의당 17%, 정의당 7%였습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이었습니다.
2016년 4월 총선 직전 한국갤럽 여론조사 정당 지지도
지금 전국 단위 정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 38%, 미래통합당 23%라고 해서 더불어민주당이 선거에서 크게 이길 것이라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예측입니다.
마지막으로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총선 결과 예측에 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해찬 대표를 에워싸고 있는 당 지도부의 핵심 참모들은 대체로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예측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정례적으로 매우 정밀한 여론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핵심 참모들은 “우리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를 믿는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보입니다.
3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가 비례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근거로 의원총회에 보고한 시뮬레이션 자료가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 130석, 미래통합당이 지역구 119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례 정당을 만들지 않을 경우 비례대표 의석 7석만 추가할 수 있고 미래한국당은 26석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례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3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130석’의 근거에 대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지역구 130석의 근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4년 전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110석을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국민의당에 빼앗겼던 호남 의석을 되찾는다면 130석 이상이 될 수는 있습니다. 호남 의석이 30석 가까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도권과 충청권 등 접전 지역에서 현재의 의석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수도권과 충청권 등 접전 지역을 뛰는 의원들은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 및 참모들의 낙관적 전망과 달리 선거 결과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비관론자들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9대에 127석, 20대에 123석을 했다. 질 때는 80석대로 주저앉았다. 그게 우리 실력이다. 137석은 기본이고 비례 정당을 만들면 그 이상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당 지도부와 참모들의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현장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코로나 19로 투표율도 떨어질 것 같다. 잘못하면 아주 크게 질 수 있다. 100석 미만으로 내려앉을 위험도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
‘137석 이상’이라는 당 지도부 및 참모들의 판단과 ‘100석 미만’이라는 일부 의원들의 판단은 차이가 커도 너무 크게 납니다.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을까요? 선거 전망 참 어렵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