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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공천학살 숨은 코드는 ‘막말 정치인 퇴출’

등록 2020-03-08 10:56수정 2020-03-08 16:30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11

홍준표·김재원·윤상현 등 거물급 줄줄이 낙마
이은재·김순례·김승희 등 여성도 막말 공통점
‘이부망천 정태옥’-‘천렵질 민경욱’ 결국 고배
김형오 공천관리위원회 대체로 점잖은 사람들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집’···민주 정치 핵심
“정치인의 언어는 높은 품격과 설득력 갖춰야”
이른바 보수는 품격을 되찾을 수 있을까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3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3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1월 16일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맡았을 때 좀 의아했습니다. 4년 전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 실망해서 탈당한 뒤 정치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9월 국회도서관 1층 중앙홀에서 열린 김형오 전 국회의장 기증 자료 특별전을 제가 취재해서 정치 막전막후로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후배 정치인들에게 “유한한 정치 인생보다 훨씬 긴 자기 인생이 있다. 오늘 나의 행적이 뒷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무척 인상적인 당부를 했습니다. 그랬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다는 소식에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정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은 쉽게 말해서 잘해도 욕만 먹는 자리입니다. 공천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잘 나서 공천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탈락한 사람은 공천관리위원회가 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당 지도부의 입김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1월 22일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관리위원회 명단을 발표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 황교안 대표나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별로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김형오 위원장은 위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신이 직접 설득했다고 했습니다.

김세연 국회의원

박완수 당 사무총장

엄미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석연 전 법제처장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조희진 전 동부지검장

최대석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최연우 휴먼에이드 이사

공천관리위원회 위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제가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정치적 색깔이 강하지 않고 대체로 합리적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말과 행동이 튀지 않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들이라는 점입니다.

2월 17일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등의 신설 합당으로 김형오 위원장도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됐습니다. 2월 26일 김형오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은 한 가지 매우 특이한 발표를 했습니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는 공천을 받는 후보들에게 향후 국회의원 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공천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첫째, 국회의원직 수행에 따르는 예산 경비 삭감에 앞장서도록 한다.

그 일환으로 세비를 삭감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며 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매월 세비 30%를 성금으로 기부하도록 하겠다. 9명 보좌진 숫자를 줄이겠다. 줄인 숫자만큼 국회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 등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사무처 인원으로 확대해 정책 지원을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다.

둘째, 혐오 발언이나 품위 손상 행동을 할 경우 세비를 전액 반납하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와 당 윤리위원회 기능을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다.

셋째, 대의민주주의와 당내 민주주의 실천에 앞장설 것이며 여야를 불문하고 이에 반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강력히 투쟁해 나갈 것이다.

이 세 가지를 공천장을 받기 전에 서약하도록 하고 서약한 사람에게 공천장을 줄 것이다. 21대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혐오 발언을 하면 세비를 반납하도록 하겠다’는 두 번째 사항에 대해 현장에 있던 기자가 “이번 공천 심사에도 적용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김형오 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 공천 심사에서부터 적용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혐오 발언이라는 것이 어떤 범위인지 질적인 수준이나 이런 것은 우리 내부 공천관리위원회 위원들끼리 토론을 통해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혐오 발언을 했거나 품위를 손상하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공천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확실한 선언이었습니다. 저는 김형오 위원장의 말을 듣고 그동안 막말 한 사람들이 이번 공천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3월 8일 현재까지 진행된 미래통합당 지역구 공천 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윤상현 김재원 민경욱 정태옥 의원 공천 결과를 보고 ‘친박 학살’이라고 합니다. 아닌 것 같습니다. 강석호 의원 등 이른바 ‘비박’도 상당수 탈락했습니다. 곽상도 김태흠 박대출 이장우 추경호 의원, 권영세 전 의원 등 다른 ‘친박’들은 대거 공천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홍준표 전 대표 공천배제를 놓고 ‘과거와의 단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진석 정우택 나경원 전 원내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등이 다 공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막말’로 물의를 빚은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공천관리위원들도 “막말 논란을 상당히 고려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가 공천에서 탈락한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2년 전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 가장 공식적인 설명입니다. 그러나 저는 홍준표 전 대표의 과거 ‘막말’ 전과가 막판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홍준표 전 대표 본인도 자신의 막말 이력에 꽤 신경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2월 15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깡패를 제압하려면 더 깡패처럼 굴어야 합니다.

검사 시절 깡패 수사를 할 때 나는 늘 그렇게 했습니다.

나보고 막말한다고 프레임 씌워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깡패 다루는 법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하는 말은 쎈말이지 절대 막말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패악스런 문 정권을 상대하면서 어찌 고운 말, 점잖은 말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습니까?

앞으로도 나는 문 정권과 쎈말로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좀 더 세련되게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민경욱 의원의 공천 탈락에 대해 3월 4일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민경욱 의원이 막말로 컷오프되었고 재심을 신청했다고 들었습니다.

민경욱 의원은 저에 대해 제명까지 하자고 주장한 저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사람이지만 모두가 겁이 나 입 다물고 있을 때 홀로 대여 투쟁을 하면서 쎈말을 한 사람이지 나는 결코 막말을 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재심에서 경선을 할 기회는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대여 투쟁을 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3월 5일 페이스북에서는 “지난 위장평화 지방선거 때 ‘나라를 통째로 바치시겠습니까, 경제를 통째로 망치시겠습니까’ 라는 구호도 당시에는 막말이라고 그렇게 매도당했어도, 지금은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홍준표 전 대표의 막말 논란은 야당 정치인으로서 한 대정부 공세, 대여 공세가 전부가 아닙니다.

홍준표 전 대표는 2017년 11월 서청원 최경환 의원 등 친박세력을 향해 “고름” “암 덩어리” “바퀴벌레” 등의 표현을 사용해 공격한 일이 있습니다. 이즈음에 제가 홍준표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대략 이런 취지의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암 덩어리 같은 거친 표현을 쓰는 데 대해 비판이 많다.

=암 덩어리를 암 덩어리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

-사람을 암 덩어리라고 하면 되나.

=비유법도 모르나.

-그럼 ‘암 덩어리 같으니라’이라고 해야지, 사람을 암 덩어리라고 하면 되나.

=알겠다. 앞으로는 ‘암 덩어리 같은’이라고 하겠다.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홍준표 대표가 참 특이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류여해 최고위원에게 “주막집 주모의 푸념 같은 것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막말도 한 일이 있습니다. 류여해 최고위원은 홍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김재원 의원은 대구·경북 지역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서울 중랑을에서 경선하기로 했습니다. 김재원 의원의 대구·경북 지역 공천 탈락에도 과거의 부적절한 언행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재원 의원은 지난해 8월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도중 한밤중에 술에 취해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했다가 물의를 빚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대구에서 강연을 하면서 택시 기사의 말을 인용해 “이해찬 씨가 2년 이내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또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자 “시다바리라는 말이 있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김재원 의원. 연합뉴스
김재원 의원. 연합뉴스

인천의 윤상현 의원은 4년 전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대표를 겨냥해 퍼부은 욕설이 공개되는 바람에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복당한 일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무소속 당선에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서울의 이은재 의원은 상임위원회 도중 서울시 교육감에게 뜬금없이 “사퇴하세요”라는 폭언을 퍼부어 ‘사퇴 요정’으로 불렸던 사람입니다. 그의 “사퇴하세요” 발언은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 소재로도 등장했습니다. 이은재 의원은 상임위에서 “깽판” “겐세이” 등 거친 표현과 비속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비례대표 김순례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2월 토론회에서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면서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다가 당원권 3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사람입니다. 경기 성남을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했습니다.

비례대표 김승희 의원은 서울 양천갑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떨어졌습니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기억력과 관련해 ‘치매 초기 증상’이라는 표현으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대구의 정태옥 의원은 2년 전 지방선거 때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에 살고 망하면 인천에 산다) 발언을 했다가 탈당까지 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이번 공천 심사에서 ‘이부망천’ 발언 때문에 탈락했습니다. 그를 공천할 경우 부천, 인천 등 수도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공천관리위원들이 걱정한 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인천의 민경욱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천렵질’이라고 표현하는 등 소셜 미디어에 거친 표현을 자주 올려 입길에 올랐습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충남 천안을에 공천 신청을 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은 공관 갑질 행태와 삼청교육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그는 황교안 대표가 영입한 ’귀하신 몸’이었지만, 김형오 공천관리위원회의 그물망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말을 잘해야 합니다. 촌철살인으로 핵심을 찌르면서도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정치인의 언어에 대해 제가 읽은 글 중에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쓴 <대통령의 자격>의 한 대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언행의 자질 네 가지’라는 항목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는 언어구사의 문제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바도 있지만,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체인 것이다. 하물며 국가 지도자 특히 대통령의 경우, 국가의 최고 행위자다운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달변일 필요는 없으며, 특히 현학적인 전문용어나 생경한 관념어를 남발하거나 아니면 감성을 자극하는 현란한 어법으로 대중을 선동하려는 것은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인류가 쌓아온 지혜의 결정체인 인문학에 대한 천착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녹여낸 절제되고 기품있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말 또는 소통은 민주 정치의 핵심이다.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는 점을 부각시켜 상대방을 설복하는 행위다. 말은 논리적이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높은 품격과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고대 아테네 민주 정치와 로마의 공화정에서는 웅변술과 수사학을 중시하였던 것이다.

어떻습니까? 저는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특히 새겨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는 지키는 것입니다. 뭔가를 지키려면 좀 느리고 점잖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용하는 언어부터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 중에는 거친 언어와 욕설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그들이 가짜 보수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무튼 이번에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막말 파문을 일으킨 정치인들을 대거 탈락시킨 것은 무척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정치, 특히 보수 정치의 품격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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