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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투표, 21대 총선 또 하나의 승부처

등록 2020-03-01 13:46수정 2020-03-01 13:58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10
지역구 후보-비례대표 다른 정당 선택 투표 방식
‘1인 2표’ 17대 총선부터 시작···민주노동당 바람
국민의당 돌풍 20대 총선서 분할투표 현상 ‘폭발’
민주당 지지자 절반 가까이 비례대표 ‘다른 선택’

준연동형 21대 총선 여야 모두 분할투표 많을 것
보수정당 지역구 투표자 미래한국당 다 몰아줄까
안철수, “비례대표는 국민의당에”···‘어게인 2016’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투표자 비례대표 선택 고민
정의당·민생당,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 읍소 예상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21대 국선 장애인유권자 참정권 보장 정책간담회에서 한 장애인 참석자가 점자로 표기된 투표용지를 이용해 모의투표체험을 하고 있다. 후보자의 이름과 기호가 적힌 커버 안에 투표용지를 넣어 투표하는 방식이지만 참석자는 커버에 기표하고 말았다. 백소아 기자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21대 국선 장애인유권자 참정권 보장 정책간담회에서 한 장애인 참석자가 점자로 표기된 투표용지를 이용해 모의투표체험을 하고 있다. 후보자의 이름과 기호가 적힌 커버 안에 투표용지를 넣어 투표하는 방식이지만 참석자는 커버에 기표하고 말았다. 백소아 기자

분할투표(split-ticket voting)라는 말이 있습니다. 1인 2표 선거를 하면서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다른 정당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는 2004년 17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1인 2표 선거를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분할투표도 17대 총선부터 시작됐습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정당 투표에서 13.03%를 득표했습니다. 민주노동당 득표율은 지역구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받은 득표율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지역구 투표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를 선택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진 것입니다. 열린우리당 득표율은 38.26%, 한나라당 득표율은 35.76%였습니다.

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무려 8명의 비례대표 당선자를 냈습니다. 비례대표 8번 후보자가 바로 노회찬 전 의원이었습니다.

분할투표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지역구는 ‘사람’을 보고 찍고 비례대표는 ‘정당’을 보고 찍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할투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셋째,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서 지역구 후보를 냈어도 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입니다. 사표 방지 심리 때문에 지역구 투표에서 당선 가능성이 큰 다른 정당 후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넷째,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두 개 이상일 경우입니다. 의도적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투표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지역구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우입니다. 비례대표는 반드시 정당에 투표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분할투표가 이뤄집니다.

분할투표와는 반대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투표에서 같은 정당을 선택하는 것을 ‘일괄투표’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은 분할투표보다는 일괄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한국선거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2년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일괄투표 비율은 새누리당 89.9%, 민주통합당 78%였습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정당 충성도가 민주통합당 지지자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어디로 빠져나갔을까요? 17대 총선 이후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은 유권자 가운데 상당수는 비례대표 선거에서 진보정당을 찍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7대 총선의 경우는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5.68%, 진보신당은 2.94%를 득표했습니다. 두 진보정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율보다는 높은 수치지만 17대 13.03%에 비해 많이 떨어졌습니다. 민주노동당은 3명의 비례대표 당선자를 냈고 진보신당은 아예 당선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진보정당의 분열 때문이었습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0.30%를 득표해서 비례대표 6명을 당선시켰습니다. 진보정당 통합 및 민주통합당과 선거 연대에 성공하면서 득표율이 다시 올라간 것입니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 이후 다시 분열했고 2014년에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됐습니다. 정의당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7.23%의 득표율로 비례대표 4석을 차지했습니다. 과거 17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받았던 13.03%의 득표율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20대 총선에서 나타났던 가장 특이한 현상이 바로 분할투표였습니다. 진보정당 때문이 아니라 안철수 의원이 만든 국민의당 돌풍 때문이었습니다.

20대 총선 분할투표에 대해서는 선거 직후 <내일신문>과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가 분석해서 <내일신문>에 자세히 연재한 일이 있습니다.

분할투표를 많이 한 유권자들은 역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었습니다.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들 가운데 54%만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을 찍었습니다. 19.6%는 국민의당을 찍었고, 17.9%는 정의당을 찍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비례대표 선거에서 국민의당으로 대거 빠져나간 이유는 20대 총선 당시 호남에서 불었던 ‘반문재인 바람’, 그리고 지역구 선거에 출마한 국민의당 후보들의 약세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과거보다 분할투표를 많이 했습니다. 20대 총선 지역구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찍은 유권자 가운데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을 찍은 사람은 74.8%에 불과했습니다. 15.3%는 비례대표 선거에서 국민의당을 찍었습니다.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 때문에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가 ‘다른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안철수 의원이 만든 국민의당은 양당 지지자들의 분할투표 덕택에 비례대표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 26.74%로 13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새누리당은 33.50%, 더불어민주당은 25.54%였습니다.

자 이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어떻게 될까요? 비례대표 의석이 47석으로 묶였지만, 선거제도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뀌면서 분할투표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드는 꼼수를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둘째, 범여권 지지층 유권자들이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의 꼼수에 맞서 투표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역구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무조건 분할투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로서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 분할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래통합당 지지자들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어느 정당을 찍을까요? 대부분은 한선교 대표의 미래한국당에 투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한선교 대표의 미래한국당은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 ‘자매정당’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일입니다.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는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황교안 대표의 미래통합당과 별도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공병호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도 미래통합당과는 ‘별도로’ 비례대표 후보들을 공천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여성 법조인 7명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여성 법조인 7명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영입한 인사들이 많습니다. 탈북 인권 운동가 지성호씨, 테니스 선수 출신 김은희씨, 이미지 전략가 허은아씨, 그리고 전주혜·유정화·홍지혜·정선미·김복단·오승연·박소예 등 여성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비례대표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당장 난감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고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 신청을 해야 할까요? 미래한국당에서는 이들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자 이 문제를 유권자 시각에서 한번 바라보겠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이 ‘젊은 태극기 부대’로 가득 찰 경우 이른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비례대표 투표에서 선뜻 미래한국당을 찍을 수 있을까요?

안철수 전 의원이 파고든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안철수 전 의원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겠다”며 “지역구 선거에서는 야권 후보를 선택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정당 투표에서는 가장 깨끗하고 혁신 미래 지향적인 정당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쉽게 말해 지역구는 미래통합당을 찍고, 비례대표는 미래한국당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국민의당을 찍어달라는 주문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월 28일 국회에서 4·15 총선에서 지역 선거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 공천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월 28일 국회에서 4·15 총선에서 지역 선거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 공천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안철수 전 의원은 4년 전 20대 총선 당시 대구에 내려가서 “이제 지역구는 몰라도 정당 투표는 3번 찍겠다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고 계신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분할투표를 유도한 것입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20대 총선 분할투표의 최대 수혜자였던 안철수 전 의원이 4년 뒤 “어게인 2016”을 외치고 있는 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반대하는 이른바 보수 지지층 유권자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결국 미래한국당과 국민의당이 비례대표 후보로 어떤 사람들을 공천하는지 지켜본 뒤에야 결정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른바 보수 지지층보다 범여권 지지층 유권자들은 훨씬 더 골치가 아픕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을 자처하거나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는 정당은 많이 있지만, 득표력이 얼마나 될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3%의 벽을 넘지 못하면 비례대표 의석을 한 석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정의당에 표를 몰아주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는 정의당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병립형 의석(17석)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정의당과 민생당 등에서는 지역구 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찍는 유권자들을 상대로 치열한 ‘비례대표 마케팅’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찍는 것보다 자신들을 찍는 것이 ‘가성비’가 더 높다는 논리를 펼 것입니다. 정의당은 ‘진보’에 투자해 달라고 호소할 것이고, 민생당은 ‘호남’과 ‘민생’에 투자해 달라고 호소할 것입니다.

범여권 지지층 유권자들로서는 정의당, 민생당, 그리고 또 다른 진보 성향 군소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면면, 그리고 정당 득표율이 3%를 확실히 넘어설 수 있는지 등을 지켜보고 신중히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선거 직전에 유권자 두세 사람이 미리 의논해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에 표를 나누어 주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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