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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 겹쳤던 민주당 한 달, ‘영혼없는 사과’가 문제 키웠다

등록 2020-02-18 15:15수정 2020-02-18 16:34

정치BAR_황금비의 골드바
장애인 비하 발언·원종건 미투 의혹·칼럼 고발
조건부·뒤늦은 사과가 ‘오만한 여당’ 프레임 더 키워

사과에도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뒤늦게 등 떠밀리듯 나오는 사과에는 진정성을 느끼기 힘듭니다. 재빠르게 사과하더라도 무엇이 미안한지, 어떤 책임을 느끼는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반쪽짜리 사과가 되고 맙니다. ‘뭐가 미안한데?’라는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됐고, 아무튼 미안해’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사과’를 키워드로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한 달을 돌아봤습니다. 실패와 잘못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사과하고 쇄신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악재가 호재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이는 곧 당의 위기관리 능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죠. 민주당은 어땠을까요? 최근 한 달간 있었던 민주당의 3가지 장면을 꼽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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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처를 줬다고 하면(?) 미안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5일 민주당 유튜브 채널 ‘씀’에 출연해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나와서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 하지만 사고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정상적’으로 살던 것에 대한 꿈이 있어 의지가 강하다고 들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습니다. 선천적 장애인이 의지가 약하다고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후천적 장애인을 설명하던 도중 ‘비장애’를 ‘정상’으로 표현한 것 역시 문제적이었죠. 특히 이날 방송은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발언이 편집되지 않고 공개돼, 당 차원에서 차별적 발언을 거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튿날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는 관련 질문에 이같이 답했습니다.

“어느 쪽을 낮게 보고 한 말은 아니다. 그런 분석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가 전해 들어서 한 말인데,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조금 상처를 줬다고 하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겠다.”
-이해찬 민주당 당대표. 1월16일 신년 기자간담회

사과에는 가정법이 필요없습니다. “상처를 줬다고 하면 죄송하다”는 조건부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불쾌함과 사과 요구에 따른 ‘반응’입니다. 게다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관련 이슈를 대하는 이해찬 대표의 태도가 더 논란이 됐습니다.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당차원의 재발방지대책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해찬 대표는 불쾌한 내색을 비치며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장애인 문제는 거듭 사과를 드렸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불식간에 한 것이기에 더 말씀드릴 것은 아니다. 자꾸 말씀하시는데 더이상 말씀을 안 드리겠다.”

미투 논란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2번째 영입인재인 원종건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자격 반납'' 입장을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미투 논란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2번째 영입인재인 원종건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자격 반납'' 입장을 밝힌 뒤 퇴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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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이 있다면(?) 사과드린다”

지난달 28일, 민주당 ‘2호 인재’로 영입되었던 원종건씨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전날인 27일 오후 ‘과거 여자친구가 원씨에게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내용의 미투 의혹이 처음으로 보도된 뒤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가, 이튿날 급작스럽게 열린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원씨는 아침 9시30분 국회 정론관에 등장해 “올라온 글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남들 이상의 엄중한 책임과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게 합당할 것 같다”며 영입인재 자격을 반납했습니다.

같은 시각, 국회 정론관 위층에 자리한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는 이인영 원내대표와 조정식 정책위의장을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의 원내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관련 논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비공개 회의가 끝난 뒤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원씨와 관련된 질문에 “오늘 (회의에서는) 특별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자체를 논의하지 않았다”고만 밝혔습니다.

그러나 원씨에 대한 ‘미투 의혹’이 민주당의 인재영입 검증 시스템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자,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튿날인 29일 아침이 되어서야 라디오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인재영입을 하면서 좀 더 세심하게 면밀하게 살피지 못해 국민께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이 있다면 사과드린다.”
-이인영 원내대표, 29일 아침 <기독방송>(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어김없이 조건부 사과인데다, 타이밍도 놓쳤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특히 원종건씨에 대한 미투 의혹 첫 기사는 27일 오후에 보도되었으나, 이튿날 원씨의 기자회견이 끝날때까지 당 차원의 공식 사과를 머뭇거리다 결국 관련 이슈를 하루 더 늘어지게 한 꼴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왔습니다.

위기관리 컨설턴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쓴 책 <쿨하게 사과하라>를 보면, ‘사과의 타이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결국 ‘얼마나 빨리 사과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대중들이 얼마나 그 사건을 관심있게 지켜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즉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을수록, 추가 의혹이 생길 가능성이 높을수록, 부정적인 여론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을수록, 더 빨리 대처해야 한다.
-책 <쿨하게 사과하라>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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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감이다, 그러나 고발에는 이유가 있었다”

민주당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과 <경향신문> 편집자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실은 지난 13일 오후에 알려졌습니다. ‘당이 나서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이튿날인 14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도 당의 고발 조처가 잘못됐다는 의견이 모아집니다. 이후 민주당 공보국은 오전 10시13분 당 출입기자들에게 이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냅니다.

“임미리 교수는 안철수의 씽크탱크 ‘내일’의 실행위원 출신으로서 경향신문에 게재한 칼럼이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고발을 진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고발조치가 과도했음을 인정하고, 이에 유감을 표한다.”
-더불어민주당 공보국

공보국은 13분 뒤 ‘안철수’를 ‘특정 정치인’으로 고쳐서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유감 표명’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임미리 교수가 안철수 캠프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한 문구가 오히려 논란을 더 부추긴 꼴이 됐습니다. 당 차원의 공식 사과 없이 17일 이낙연 전 총리·남인순 최고위원의 ‘개인적’ 사과 발언만 나오다, 결국 사건이 불거진지 닷새만인 18일 이인영 원내대표가 원내 교섭단체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검찰개혁, 집값 안정, 그리고 최근 임미리 교수를 둘러싼 논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주당을 향했던 국민의 비판적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로서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며 더욱 낮고 겸손한 자세로 민생에 집중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18일 원내 교섭단체 연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미리 교수’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결국 ‘뒷북 사과’에 그쳤습니다.

나열한 세 가지 사건은 지난 1월 중순부터 불과 한달여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당대표가 소수자에 대해 차별적 발언을 하고, 당의 영입인재를 향한 미투 의혹이 보도되고, 당에서 언론사의 칼럼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악재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오만한 여당’ 프레임을 더욱 자초했다고 지적합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첫째로 잘못이 아니라고 ‘잘못’ 판단했을 수 있고, 둘째로는 ‘사과를 안해도 견딜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물론 사과를 하면 그 자체로 당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우려를 할 순 있지만,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오만함’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가게 된다. 이를 고려해 제때 제대로 사과하는 유연함이 부족하다”고 짚었습니다.

민주당이 지속해서 위기관리에 실패하는 것은 결국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당내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박성민 정치평론가는 “조국 사태때도 그렇고, 민주당은 당 내에서 계속 이견을 허용해오지 않고 있다”며 “특히 최근은 경선 국면이라 권리당원의 여론이 중요한데, 권리당원들에게 잘못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해 입을 다물고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윤태곤 실장 역시 “이해찬 당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한 채 선대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이끌고 있는데, 이때문에 오히려 위기를 관리해야하는 당 대표가 오히려 부정적인 여론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총선은 아직 두달이나 남았습니다. 그 사이 민주당에게 어떤 호재와 악재가 생길지 모르는 일입니다. 앞서 소개한 책 <쿨하게 사과하라>를 보면, 상대방에게 마음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한 여섯 가지 사과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1. 사과의 앞뒤로 변명은 붙이지 않는다.

2.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3. 유감 표명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명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4. 사과를 할 때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개선의 의지나 보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5. 사과를 할 때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한다.

6. 상대방에게 용서를 청해야 한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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