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노트르담(Notre Dame)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당의 이름으로 사용합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파리 대성당)는 파리의 랜드 마크입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쓴 소설의 제목이 ‘노트르담 드 파리’였습니다. 소설 내용을 토대로 1998년 같은 제목의 뮤지컬이 만들어졌습니다.
소설의 시대 배경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15세기였고, 뮤지컬이 제작된 시기도 공교롭게 새로운 천 년을 앞둔 20세기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존 질서의 붕괴를 바라보는 불안과 새 시대를 맞는 설렘이 뮤지컬 가사 곳곳에 잘 녹아 있습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2막은 신부 프롤로와 시인 그랭구아르가 함께 ‘피렌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곡조도 좋지만 가사 내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직접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피렌체와 르네상스 이야기를 들려다오
브라만스와 단테의 지옥 편을 들려다오
피렌체에서는 지구가 둥글 거라 하고
지구상에는 또 다른 대륙이 있을 거라 하네
배들은 벌써 인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대서양을 향해 떠났네
루터는 신약을 다시 쓸 것이고
우리는 분열의 시대 문턱에 서 있네
구텐베르크는 세상을 변화시켰고
뉘른베르크 인쇄소에서는 쉴새 없이 인쇄물이 쏟아지네
인쇄된 시들과 연설문과 팜플렛
새로운 생각들이 모든 것을 바꾸리라
작은 일은 항상 큰일들의 일부에서 오는 법
그리고 문학은 건축을 파괴할 것이다
교과서는 대성전을 파괴하고
성경은 종교를, 인간은 신을 파괴할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괴할 것이다
탐험선은 인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대서양을 향해 떠났네
루터는 신약을 다시 쓸 것이고
우리는 분열의 시대의 문턱에 서 있네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괴할 것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괴할 것이다
갑자기 ‘노트르담 드 파리’ 소설과 뮤지컬 얘기를 하는 것은 지금이 바로 그때와 마찬가지로 혼란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정보화 혁명의 충격으로 겪는 이 시대 우리의 불안과 설렘이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것과 많이 닮았습니다.
지구구형설, 신대륙 발견, 종교 개혁, 인쇄 혁명은 중세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렸고 르네상스로 이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21세기 정보화 기술, 인터넷, 빅 데이터, 인공지능은 20세기까지 세계를 지탱해 온 인본주의, 합리주의, 권위주의, 국가주의 등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형이상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우리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교수, 법조인, 의사 등 전문가들, 그리고 각 분야 지도자들의 권위와 신뢰가 급속히 무너지는 장면을 매일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언론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20세기는 언론의 시대였습니다. 3·1 운동 이듬해인 1920년 일제는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두 신문의 창간을 허용했습니다. 올해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입니다.
언론은 우리나라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동아일보>의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부산일보> 김주열 열사 사진 보도,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보도, <한겨레> <제이티비시> <티브이 조선>의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 등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역사가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은 날이 갈수록 공정성을 잃고 정파성을 심하게 드러내며 권위와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언론뿐만이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언론이 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겨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권위와 신뢰의 추락으로 인한 언론의 위기는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제청을 받아 검찰 인사를 한 것은 1월 8일이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빼고 대검찰청 고위 간부를 거의 다 교체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동안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 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월 9일 치]
1면/文정권 수사하는 ‘윤석열 사단’ 대학살
2면/尹총장에 인사 귀띔조차 않고, 대검 간부 8명 전원 해체한 폭거
3면/워터게이트 검사 자르고 탄핵 몰린 닉슨···그에 비견될 보복인사
35면/사설/‘靑 수사’ 막겠다고 검사들 모조리 좌천, 지금 독재시대인가
[1월 10일 치]
1면/이젠 윤석열 찍어내려 ‘抗命으로 몰아가기’
민주화 외쳤던 文정권의 ‘민주주의 파괴’
3면/靑, 총리 내세워 사실상 감찰 지시···尹총장 알아서 나가란 메시지
“도둑이 수사하는 검찰 목친 격 독재국가도 이렇게는 안한다”
4면/검찰 빅4 모두 호남 출신···秋법무 “가장 균형있는 인사”
진중권, “이번 인사, 친문 양아치 개그, 촛불 사기 민주당에 투표하지 말아야”
35면/사설/꿈도 꾸면 안 될 일 해치우는 정권, 눈에 보이는 게 없나
검찰 수사라인 날린다고 ‘靑 비위’가 사라지지 않는다
[1월 11일 치]
1면/‘정권수사 4중 봉쇄망’ 치는 文정권
3면/윤석열 허수아비 만들기 작전···장수 날리고 칼까지 뺏는다
27면/사설/“감히 命을 거역”, 王朝로 돌아간 민주화 정권의 진노
<중앙일보>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1월 9일 치]
1면/검찰 대학살···정권 수사 윤석열 손발 다 잘랐다
2면/친문 중앙지검장·검찰국장···윤석열은 대검에 갇혔다
3면/법조계 “정권 수사하는 검사 치는 게 검찰 개혁이냐”
30면/사설/폭압적 검찰 인사 참사···정의가 학살됐다
[1월 10일 치]
1면/대학살 다음 날···이낙연까지 윤석열 협공
3면/추미애 “윤 총장이 내 명 거역” 검찰 “지금이 왕조시대냐”
진중권 “추미애, 권력 사유화한 당신들이 도둑···대통령은 PK 친문 보스”
30면/사설/청와대 권력 수사, 잔인한 ‘학살 인사’에 흔들려선 안 된다
[1월 11일 치]
1면/영장 들고 청와대 간 검찰, 8시간 20분 뒤 빈손 철수
3면/법무부, 윤석열 감찰 가능성···윤 총장 “수사 연속성 지켜라”
어떻습니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이 정도로 심하게 비판할 정도면 정권이 흔들거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치부 기자로서 국회와 정당 관계자들, 그리고 동료 언론인들에게서 체감하는 기류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이번 검찰 인사를 너무 심하게 비판한다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론조사 결과였습니다. 한국갤럽의 2020년 첫 정례조사 결과가 1월 10일 발표됐습니다. 1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검찰 인사 결과도 어느 정도 반영된 여론이라고 봐야 합니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 47%, ‘잘못하고 있다’ 43%였습니다. 지난해 12월 셋째 주에는 ‘잘하고 있다’ 44%, ‘잘못하고 있다’ 46%였습니다. 긍정 평가가 늘고, 부정 평가는 줄어든 것입니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셋째 주 37%에서 이번에는 40%로 올랐고, 자유한국당은 23%에서 20%로 내려갔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자, 이런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보도한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의 정권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대학살’을 저질렀다고 국민이 생각한다면 여론조사가 결과가 이렇게 나타날 리가 없습니다.
물론 여론조사는 한 번으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정확한 흐름은 이번 주 금요일에 나오는 한국갤럽 정례조사 결과를 봐야 알 수 있겠지요.
어쨌든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의 최근 보도가 우리나라 국민 다수 민심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를 너무 지나치게 비상식적으로 비판하는 바람에 상식적인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영향력이 줄어들고, 또 줄어든 영향력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향해 더 크게 악을 쓰는 식의 악순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반문재인주의’에 몰입해서 갈수록 극우화하는 자유한국당 및 태극기 부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때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유력한 신문들이 이처럼 권위와 신뢰를 잃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언론의 위기가 ‘조중동’으로 일컫는 이른바 보수 신문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제이티비시> 손석희 사장의 앵커 퇴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석희 사장은 19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 30여년간 우리나라 언론의 역사를 농축한 인물입니다.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나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순위에서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을 밀어내고 오랫동안 1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손석희 사장이 왜 앵커에서 물러나는 것인지 그 진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제이티비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부터 회사 앞에 태극기 부대가 몰려들어 ‘빨갱이 방송’이라고 난리를 쳤다. 그런데 막상 방송을 시작하면 이번에는 실시간 댓글 창에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욕설로 댓글 창을 도배했다. 다른 의견을 달 수 없을 정도였다. 손석희 앵커가 견딜 수 없는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손석희 앵커가 조국 장관에 대한 보도와 논평을 잘못했을 수 있습니다.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시청자들이 손석희 앵커를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앵커가 물러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요? 방송 시청률은 오를 때도 있고 떨어질 때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손석희 사장이 대표와 앵커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면 대표를 포기하고 앵커를 선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사 대표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만, 앵커를 손석희 사장만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제이티비시>의 처사와 손석희 사장의 선택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태극기 부대나 이른바 보수의 압력으로부터 손석희 앵커를 지켜주기에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너무 허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요? 방송 시청자나 청취자들이 이제는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앵커’가 아니라, ‘나쁜 놈들을 물리쳐 줄 수 있는 확실한 우리 편’을 선호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물러난 자리를 누가 메울 수 있을까요? 메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앵커 퇴진은 한국 언론의 큰 손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권위와 신뢰의 추락이 언론사와 언론인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언론인은 아니지만 웬만한 언론인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진 논객들이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해 10월부터 벌어진 ‘조국 사태’에서 그야말로 고군분투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의혹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 그는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리한 언행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방송 토론에서 2004년 열린우리당 4대 개혁 입법이 안 된 원인을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상임위 회의장 및 본회의장 육탄 저지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부영 전 의장이 유시민 의원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 당내 강경파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입니다. 유시민 작가와 이부영 전 의장의 주장이 배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시민 작가로서는 타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진중권 전 교수는 ‘조국 사태’로 유시민 작가를 비롯한 친문 세력과 싸우고 정의당을 탈당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인사를 극단적 용어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이른바 보수 언론이 진중권 전 교수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판에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유시민 작가와 진중권 전 교수 같은 유력 논객들도 시간이 갈수록 과거에 가지고 있던 권위와 신뢰, 인기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거의 모든 언론과 논객이 권위와 신뢰, 영향력을 잃고 특정 정치 세력의 앞잡이로 전락하거나 매도당하는 이런 현상은 도대체 왜 벌어지는 것일까요?
저는 정보화 혁명의 역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사람들이 확증편향으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며, 선동에 오히려 취약해지는 ‘탈진실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쉽게 말하면 모든 사람이 모든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되면서 기존의 권위와 신뢰를 몽땅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사람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할 것입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가짜 뉴스를 편식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진실과 믿음을 헷갈리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보의 바다’에 표류하면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추천’이라는 파도를 몇 방 얻어맞으면 미지의 장소로 떠밀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상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월 ‘조국 사태’부터 시작해서 최근 검찰 인사에 이르기까지 과연 ‘상식’이 무엇이었는지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뒷북치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제 생각이 옳다는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상식은 이런 것입니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주의자’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 주요 간부 인사를 윤석열 검찰총장의 뜻대로 한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넷째,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일정을 국회에서 논의하는 도중에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수사를 시작한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다섯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여러 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은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여섯째, 조국 법무부 장관이 스스로 사퇴한 것은 잘한 일이었습니다.
일곱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는 크게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여덟째,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의원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습니다.
아홉째,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장관의 제청을 받아 검찰 주요 간부들을 대거 교체한 것은 별문제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열째, 유재수 전 부시장 감찰 무마와 울산시장 경선 개입을 이유로 검찰이 조국 전 민정수석과 청와대를 겨냥해 수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열째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유재수 전 부시장을 감찰하다가 덮었다는 이유로 검찰이 조국 전 민정수석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상식적으로 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검찰이 내사나 수사를 하다가 덮은 수많은 사건도 같은 혐의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울산시장 경선 개입 의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자 정도면 여당의 경우는 대통령이, 야당의 경우는 당 대표가 결정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치적 관행입니다. 청와대 실무자들의 개입과 조정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청와대가 경찰을 동원해서 선거 직전에 무리하게 야당 후보에 대해 수사를 하도록 시켰다면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인과 관계가 명확하고 증거가 분명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수사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수사기관의 재량입니다. 검찰의 정치인 수사에 대해 정치 개입 의혹을 제기하면 검찰이 뭐라고 해명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상식의 힘을 믿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장관의 검찰 인사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 언론이 ‘대학살’이라며 길길이 뛰어도 다수 민심이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주장이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혼란스럽습니다. 기존 질서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면 세상이 망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의 권위와 신뢰가 붕괴하면 세상이 망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옛것이 가면 새것이 오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1막은 그랭구아르가 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노래로 시작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는 설렘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불안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곡조와 노랫말이 아름답습니다. 찾아서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의 시대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일어난 이야기
때는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조각을 하고 시를 짓는
우리 무명의 예술가들은
당신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네
다가올 시대를 위해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 년을 맞지
인간은 별에 오르기를 원하며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돌 위에 돌을 쌓으며, 하루가 지나
세기가 흘러
사랑으로 세운 탑들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지
시인과 음유시인들은
노래했지, 사랑의 노래를
인류에게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는 노래를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 년을 맞지
인간은 별에 오르기를 원하며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 년을 맞지
인간은 별에 오르기를 원하며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방인들의 무리
이 이교도들, 야만인들을 성안에 들게 하라
이 세상의 끝은
이천년으로 예정되어 있지
그건 이천년이라고
이 세상은 2000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 보여도 머지않아 새로운 질서가 찾아올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