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1월 27일 오후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김관영 최고위원(왼쪽부터),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민주평화당 조배숙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회동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겨레신문 정치팀 이세영 데스크가 11월 30일 치 신문 2면에 ‘우리가 황교안이다 구호가 당혹스러운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확실한 건 권력을 비판하는 언어유희 (우리가 인민이다 )도 , 중산층의 자기풍자적 고백 (우리가 조국이다 )도 , 약자에 대한 공감과 보편성에 대한 자각 (우리가 김용균이다 )도 ‘우리가 황교안이다 ’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황교안이다 ’라는 구호에 고개를 끄덕일 유권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 나는 황교안인가 ? 당신은 황교안인가 ? 대체 누가 황교안인가 ?”
이세영 데스크의 칼럼은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이른바 보수 정당의 대표입니다. 분단 기득권 세력, 자본 기득권 세력, 지역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의 대표 정치인입니다. 그런 권력자가 삭발을 하고 단식을 했습니다.
삭발과 단식은 다른 투쟁 수단을 갖지 못한 우리 사회 약자들의 마지막 투쟁 수단입니다. 기득권 세력의 대표가 ‘약자 코스프레’ ‘피해자 코스프레’로 약자들의 마지막 투쟁 수단까지 빼앗아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불편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유한국당이 정치 개혁과 검찰 개혁을 가로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라는 약자들의 무기를 또다시 들고 나섰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것입니다. 국회법은 106조의 2(무제한 토론의 실시 등)에 ‘무제한 토론’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유신 시절인 1973년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 개정 때 다시 도입됐습니다.
2016년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한 일이 있습니다. 모두 38명의 의원이 9일 동안, 정확히는 192시간 25분 동안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마지막 발언자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12시간 31분으로 최장 발언 기록을 세웠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이번 필리버스터 요구는 정당한 것일까요? 자신들이 국회에서 소수파이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요구한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얼핏 보면 정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유한국당은 11월 29일 오후 본회의에 부의되어 있던 민생 법안 199개 전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습니다. 여야 간 합의로 상임위원회와 법사위까지 통과한 이른바 ‘무쟁점 법안’들입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법안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199개 법안 모두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은 여야 합의는 물론이고 상임위원회와 법사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의결을 몽땅 다 부인하는 심각한 ‘자기 부정’입니다.
필리버스터 제도의 도입 취지를 고려하면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선거법 개정안이나 검찰개혁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찬성했던 다른 법안에 대해서까지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것은 국회법의 허점을 악용한 일종의 ‘입법 테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막가파 행동은 의회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11월 29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은 민생 법안 발목잡기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뒤늦게 5개 법안만 제외하고 나머지 법안은 필리버스터 신청을 철회하겠다고 물러섰지만, 그 5개 법안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해서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을 막기 위해서는 199개나 5개나 별 차이가 없다고 계산한 뒤에 제안한 ‘꼼수’에 불과합니다.
필리버스터의 정당성 여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법안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일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법안이 ‘좌파 독재’를 위한 법안이기 때문에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건 명분에 불과합니다.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은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입니다. 황교안 대표의 말마따나 해방 이후 20차례의 총선에서 대부분 이른바 보수나 자유 우파를 자처하는 기득권 세력이 승리했습니다. 첫째, 승자독식 선거제도 덕분입니다. 둘째, 검찰이 이른바 보수의 기득권을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고쳐서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야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보수 세력은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 제도를 고치지 못하도록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을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보다 더 힘이 셌습니다. 이른바 보수 정당도 검찰 개혁을 죽기 살기로 반대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검찰을 개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선거법 개정 반대, 검찰 개혁 반대는 본질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입니다.
자 이제 국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여야의 전략과 전술, 국회법 해석을 둘러싼 치열한 수 싸움이 예상됩니다. 일요일인 12월 1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인영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모두 기자 회견이나 간담회를 했습니다. 당분간 모든 가능성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확률로만 존재하는 ‘양자역학의 세계’에 들어섰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정치 협상에 의한 선거법 개정과 검찰 개혁 법안 처리는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황교안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면서 가능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는데,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요청으로 가능성이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모든 법안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 들며 그렇게 계산했을 것입니다.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자유한국당 규탄대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민생 법안을 볼모로 잡고 20대 국회 전체를 식물국회로 만들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 상식적인 정치를 하라 .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 머리 깎고 단식하고 국회 마비시키고 이게 정상적인 정당인가 ?
선거법은 우리가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다 . 선거법만 통과시키지 않으면 필리버스터를 안 하겠다고 ? 바꿀 것을 바꿔라 . 선거법 , 검찰개혁법 반드시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켜 나라를 바로 잡겠다 .
참을 만큼 참았다 . 더이상 우리가 참지 않는다 . 해내겠다 .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반드시 정치 개혁 , 사법개혁 , 선거개혁을 반드시 해내겠다 .”
그동안 여권 내부에서 ‘자유한국당과 협상에 의한 선거법 타결’은 소수 의견이었습니다. 이해찬 대표가 바로 그 소수 의견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랬던 이해찬 대표가 “선거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뿌리치고 정치 개혁과 검찰 개혁을 해낼 수 있을까요?
‘4+1’이 해답입니다. ‘4+1’은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과 창당준비위원회 상태인 대안신당(가칭)의 회의체입니다.
지난 4월 22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등 4당 원내대표들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뒤 민주평화당에서 의원들이 탈당해서 대안신당 창당에 나서면서 당시 ‘4당 체제’가 지금의 ‘4+1 체제’로 바뀐 것입니다.
‘4+1’은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 개혁 법안 본회의 통과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확보하고 있을까요? 국회 전체 의석은 현재 295석입니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하려면 과반 투표에 과반 찬성이 필요합니다. 295명 전원이 투표한다면 148명이 찬성해야 합니다.
정당별 의석은 더불어민주당 129, 자유한국당 108, 바른미래당 28, 정의당 6, 민주평화당 4, 우리공화당 2, 민중당 1, 무소속 17입니다.
이 가운데 패스트트랙 법안에 찬성하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민중당입니다. 확실히 반대하는 정당은 자유한국당, 우리공화당입니다.
바른미래당과 무소속은 좀 복잡합니다. 바른미래당 28명 가운데 유승민 의원이 대표를 맡은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소속 의원이 15명입니다. 이들은 패스트트랙 법안에 반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28명에서 15명을 뺀 13명(김관영 김동철 김성식 박선숙 박주선 박주현 이상돈 이찬열 임재훈 장정숙 주승용 채이배 최도자)은 최종 법안 내용을 보고 판단하겠지만 반대보다는 찬성할 가능성이 좀 더 더 큰 것 같습니다.
무소속 17명 중에는 대안신당 소속 지역구 의원 7명(김종회 박지원 유성엽 윤영일 장병완 천정배 최경환)이 있습니다. 대안신당은 호남 지역구를 확보할 수 있다면 선거법 개정안에 찬성할 것입니다. 대안신당 이외에도 무소속 중에서 김경진 문희상 손혜원 이용주 정인화 등 5명 정도는 찬성할 것 같습니다. 무소속 17명 가운데 12명이 찬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계산을 해 볼까요? 더불어민주당 129, 바른미래당 13, 정의당 6, 민주평화당 4, 민중당 1, 무소속 12를 더하면 165입니다. 과반 의석인 148석을 상회하는 숫자입니다.
문제는 과연 이들 모두의 찬성을 끌어낼 수 있는 단일안을 만들 수 있느냐입니다. 지역구 225석과 비례대표 75석인 패스트트랙 선거법 개정안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숫자를 둘러싸고 이해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불어민주당이 각 정당을 설득해서 어떻게든 조정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법 개정과 검찰 개혁이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4+1’ 회의가 긴박하게 열릴 것 같습니다. 공식 창구 이외에 막후 채널도 가동될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4+1’ 체제는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을 뺀 패스트트랙 4당 체제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매우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017년 5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일부 인사들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연립정부 구성 방안을 검토한 일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모든 정파가 손잡고 대통령 선거를 통해 ‘촛불 정부’를 출범시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도 더불어민주당 의석만으로는 개혁입법 의결이 불가능하니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이 개혁입법 연대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권 안에서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방식의 연립정부 제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만 하면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행정 명령 등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해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수 있고, 그러면 국회 입법 못지않은 개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부터 연립정부나 입법연대에 부정적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6월에 펴낸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에는 ‘길을 돌아보다’라는 장이 있습니다. 참여 정부가 실패한 원인을 복기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미리 내다본 듯한 대목이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 조국 교수가 펴낸 ‘진보집권플랜 ’이 화제다 .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를 향해 가야 하는지 국민들이 알기 쉽게 잘 정리해줬다 . 인기 있는 서울법대 교수가 진보를 말하고 복지를 말하니 , ‘진보 ’와 ‘복지 ’를 계몽하는 데도 효과 만점이다 . 그러나 나는 그 책을 보면서 다른 차원의 걱정을 떨칠 수 없다 .
다음에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가 다시 들어섰을 때 , 그 책이 제시한 개혁 과제 가운데 과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 흔히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 한 정부가 애를 써도 5년 임기 동안에 해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그러면 어떻게 될까 ? 보수 진영은 개혁과 복지 한다고 공격하고 , 진보 ·개혁 진영은 제대로 못 한다고 공격하고 , 그렇게 좌우 양쪽에서 협공을 받는 정부 역시 참여 정부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
‘진보집권플랜 ’을 비롯해서 모두들 앞으로 진보 ·개혁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만 논의할 뿐 , 그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 . 지금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 할 것인가이다 .
보수적인 정치 지형 속에서 기득권의 저항과 반대를 어떻게 극복하며 ,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 정부는 어떻게 추진하고 , 시민사회 진영은 어떻게 지원하면서 정부를 견인할 것인가 ? 많은 개혁 과제 가운데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하고 , 시기별로 해야 할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
이런 의제에 대해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 그것을 연대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야 집권 후에도 분열하지 않을 수 있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통합’과 ‘연대’, ‘연립정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정리해 놓았습니다.
진보 ·개혁 진영의 집권을 위한 통합 또는 연대가 논의되고 있다 . 지난 4·27 재보선은 야권 후보 단일화의 위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지금까지 해 온 단일화 방식의 한계도 보여줬다 . 정당 간의 경쟁을 통한 단일화 방식은 , 단일화 자체도 늘 진통을 겪게 마련이거니와 단일화되더라도 자칫하면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된다 .
그런 점을 감안하면 , 나는 통합이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 물론 그 경우 민주당과 다른 정당들 간에 존재하는 현저한 힘의 격차가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 다시 말해 다른 정당의 입장에서 볼 때 통합은 곧 민주당에 의한 흡수 ·소멸이란 의구심을 해소해 줄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
통합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것은 , 집권 후를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 단일화만으로는 집권 후의 분열을 막기 어렵다 . 단일화야 한나라당의 계속 집권을 막기 위한 공동의 목표만으로 , 또는 최소 강령의 합의만으로 가능할 것이다 . 하지만 그것만으로 집권 후의 공동보조를 계속하기는 어렵다 . 집권 후에도 함께 힘을 모아 개혁의 동력을 유지해 나가려면 더 높은 차원의 연대가 필요하다 .
적어도 우리 사회 정치 지형에서 진보의 성향이 다수를 이뤄 진보 ·개혁 진영 안에서 헤게모니 싸움을 벌여도 대세를 그르치지 않게 될 때까지는 통합된 정당의 틀 안에서 정파 간의 연립정부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통합과 연대, 연정에 대한 구상을 밝힌 2011년은 벌써 8년 전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2016~2017년의 촛불로 이른바 보수의 정치적 기반은 무너졌습니다. 2019년 ‘조국 사태’로 진보·개혁 진영 내부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2011년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을 현재의 정치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11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했던 통합과 연대, 연정은 바로 정치의 요체인 ‘어떻게’를 풀어줄 수 있는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엇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으로 구성된 ‘4+1’의 당면 목표는 선거법 개정으로 정치 개혁의 단초를 열고,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으로 검찰 개혁의 실마리를 푸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20대 국회의 임기는 2020년 5월 말까지입니다. 내년도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한 뒤에도 ‘4+1’은 4·15 총선 이전과 이후에 수많은 민생 입법과 개혁입법을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자유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입법 저지가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요? ‘4+1’은 붕괴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 실패할 경우 ‘4+1’은 내년 4·15 총선에서 선거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개혁과 검찰 개혁을 가로막은 자유한국당 기득권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당위가 바로 선거연대의 명분이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4·15 총선으로 구성되는 21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의 개혁입법 연대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명은 달라질 수도 있고 이합집산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4+1’의 정체성은 결국 분단 기득권, 자본 기득권, 지역 기득권에 맞서는 진보·개혁 세력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