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은 지역구 26명, 비례대표 25명 등 모두 51명이 당선됐다. 2018년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12월 7일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주미대사로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이수혁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은혜 의원이 뒤를 이었습니다. 국회의원 평균 연령이 조금 떨어졌습니다. 이수혁 의원은 70세이고 정은혜 의원은 36세입니다.
성별 변화도 있었습니다. 남성이 한 명 줄고 여성이 한 명 늘었습니다. 20대 국회 여성 당선자는 51명이었습니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15명(지역 6, 비례 9), 더불어민주당 24명(지역 17, 비례 7), 국민의당 9(지역 2, 비례 7), 정의당 3(지역 1, 비례 2)이었습니다.
2017년 6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문미옥 의원이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으로 가면서 이수혁 의원이 의원직을 승계해 여성이 50명으로 줄었다가 이번에 다시 51명으로 회복됐습니다.
여성 의원들의 당적 변동도 있었습니다. 이언주 손혜원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고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이 바른정당을 거쳐 바른미래당으로 갔습니다. 그 결과 현재 정당별 여성 국회의원 숫자와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나다순서입니다.
더불어민주당/22
지역구(15) 김상희 김영주 김현미 남인순 박영선 백혜련 서영교 유승희 유은혜 인재근 전현희 전혜숙 진선미 추미애 한정애
비례대표(7) 권미혁 박경미 송옥주 이재정 정은혜 정춘숙 제윤경
자유한국당/14
지역구(5) 김정재 나경원 박순자 박인숙 이은재
비례대표(9) 김순례 김승희 김현아 송희경 신보라 윤종필 임이자 전희경 최연혜
바른미래당/9
지역구(2) 권은희 이혜훈
비례대표(7) 김삼화 김수민 박선숙 박주현 신용현 장정숙 최도자
정의당/3
지역구(1) 심상정
비례대표(2) 이정미 추혜선
민주평화당/1
지역구(1) 조배숙
무소속/2
지역구(2) 손혜원 이언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은 1950년 2대 국회 임영신 의원이었습니다. 1948년 제헌의회에는 여성이 아예 없었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여성 국회의원은 51명입니다. 여성 의원들의 푸념대로 1년에 1명씩도 늘지 않은 것입니다.
여성 국회의원은 13대부터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13대 6명(지역 0, 비례 6), 14대 8명(지역 1, 비례 7), 15대 9명(지역 2, 비례 7), 16대 16명(지역 5, 비례 11), 17대 39명(지역 10, 비례 29), 18대 41명(지역 14, 비례 27), 19대 47명(지역 19, 비례 28), 20대 51명(지역 26, 비례 25)입니다.
15대까지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여성 의원 숫자는 2000년 16대 총선부터 두 자리 숫자로 늘었습니다. 비례대표 여성 30% 할당제를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여성 할당을 50%로 늘리고 교호 순번제를 도입하자 39명으로 늘었습니다.
그 뒤 지역구 당선자가 많아지면서 여성 의원 숫자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20대 국회에서는 지역구 당선자가 비례대표 당선자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여성 국회의원 숫자는 앞으로 지속해서 증가할 것입니다. 문제는 증가의 ‘속도’입니다.
자, 여러분은 현재 여성 국회의원 51명이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적다고 생각하십니까? 많다고 대답하신 분은 ‘땡’입니다. 틀렸습니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민의의 전당이라고 합니다. 가급적 모든 계층, 모든 세대의 이해를 대표하도록 구성해야 합니다. 성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국민의 절반은 여성입니다. 당연히 국회도 절반은 여성이어야 합니다.
후진국일수록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낮고, 선진국일수록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높습니다. 전 세계 평균은 24.3%입니다. 우리나라는 17%입니다. 전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정치 후진국이라는 의미입니다.
여성 국회의원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50%를 여성으로 하도록 한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리는 방안입니다. 둘째, 지역구에서 여성 당선자를 늘리는 방안입니다.
그런데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리는 방안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역구 여성 당선자를 늘려야 합니다. 각 정당에서 지역구에 여성을 많이 공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구는 유권자들이 뽑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공직선거법 47조 4항은 각 정당이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강제력이 없는 권고 조항입니다. 각 정당이 지역구에 여성을 공천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지역구에서 여성의 당선 가능성이 작다는 것입니다. 공천하지 않으니 당선이 안 되고, 당선이 안 될 것 같으니 공천을 하지 않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9월 25일 국회에서 ‘한국여성의정’ 주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여성의정 전문위원 박진경 이화여대 초빙교수가 매우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현재 여성계에서는 지역구 30% 공천을 ‘권고 조항’에서 ‘의무 조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상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강제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두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첫째, 등록 무효입니다. 지역구 30%를 여성으로 공천하지 않으면 등록을 무효로 하는 것입니다. 급진적입니다. 효과는 확실하겠지만 각 정당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또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지역에 여성을 공천하는 등 악용 가능성도 있습니다.
둘째, 국고보조금 삭감입니다. 지난 3월 3당 원내대표였던 홍영표 나경원 김관영 의원이 지역구 여성 공천 30%를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고보조금을 삭감하기로 의견을 모은 적이 있습니다.
2019년 4월 15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회담에 앞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이후 몇몇 의원이 정당 국고보조금 삭감 법률안을 제출했습니다. 여성 30% 공천을 하지 않으면 해당연도 경상보조금을 15% 감액하자는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 안, 해당연도 선거보조금 20%를 감액하자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안, 매해 경상보조금 20%를 감액하자는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 안입니다.
박진경 교수는 ‘차등 안’을 제시했습니다. “지역구 후보자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4년 동안 20%에서 40%까지 경상보조금을 차등적으로 삭감”하자는 것입니다. 여성 공천 비율이 20% 이상 30% 미만이면 경상보조금 20% 삭감, 10% 이상 20% 미만이면 30% 삭감, 10% 미만이면 40%를 삭감하자는 제안입니다.
정당이 받는 경상보조금은 더불어민주당을 기준으로 대략 1년에 135억원 정도입니다. 만약 더불어민주당의 지역구 후보자 여성 공천 비율이 30%에 미치지 못하면 매년 27억원, 20%에 미치지 못하면 매년 40억원, 10%에 미치지 못하면 매년 54억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각 정당이 여성 공천 비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을까요?
이처럼 여성 후보를 가급적 많이 공천하도록 각 정당을 ‘몰아붙이는’ 방안은 사실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국가에서 정당에 지급하는 국고보조금에는 경상보조금, 선거보조금뿐만 아니라 여성추천보조금, 장애인보조금이 있습니다.
여성추천보조금은 한 정당이 여성 30% 공천을 지킬 경우 그 정당에 최대 42억원을 몰아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회와 광역의회에 각각 21억원씩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여성 30%를 공천한 정당이 없으면 보조금 일부를 여성 공천 비율에 따라 차등 지급합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의 경우 기초의회는 여성 공천 비율 38%를 달성한 더불어민주당이 21억원을 몽땅 다 가져갔습니다. 광역의회는 여성 공천 5% 이상 15% 미만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에 21억원의 30%에 해당하는 액수를 차등 지급했습니다.
여성추천보조금 제도는 내년 총선에서도 유효합니다. 따라서 만약 박진경 교수 제안대로 국고보조금 차등 삭감 제도까지 도입한다면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공천 비율을 달성하는 정당과 그렇지 않은 정당은 국고보조금 액수가 큰 차이가 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년 선거에서 여성 공천 비율 30% 이상을 달성한 정당은 경상보조금 135억원과 여성추천보조금 42억원을 합쳐서 177억원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여성 공천 비율이 10% 미만인 정당은 경상보조금 135억원에서 40%(54억원)를 깎은 81억원만 받을 수 있습니다. 차이가 크게 나지요?
여성 공천 국고보조금 차등 삭감 제도를 도입하려면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동시에 개정해야 합니다.
선거법 개정안은 정치개혁특위 신속처리대상 안건 지정 절차를 거쳐 지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가 있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으면 올 11월 말에 국회 본회의에 부의됩니다. 국회의원 과반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면 수정안 의결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치자금법은 개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내년 4월 15일에 합니다. 따라서 21대 국회에 여성 공천 국고보조금 차등 삭감 제도를 도입하려면 자유한국당의 동의가 필수적입니다.
다행히 여성 정치인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이 제도 도입에 적극적입니다. 여야 정치협상을 통해서 합의를 이룰 수만 있다면 당장 21대 국회에서 각 정당이 지역구에 여성 후보들을 대거 공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그렇고 여성 국회의원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면 대한민국 정치가 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후진성은 대부분 중년 남성 중심의 연고주의 때문입니다. 남성 정치인들은 여전히 학연과 지연에 많이 의존합니다. 부패와 비리 가능성도 큽니다.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는 사람들은 다 남성들입니다.
따라서 지금보다 여성이 많아질수록, 젊은 세대가 많아질수록 대한민국 국회의 수준이 올라가고 대한민국 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각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도 여성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정치부 기자는 남성들의 세상이었습니다. 정치와 언론의 유착 관계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이제는 정치부 기자도 여성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정치팀에서 국회 출입 기자로 등록된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8명입니다. 여당은 김원철 서영지 황금비 이지혜 기자입니다. 야당은 정유경 김미나 장나래 기자입니다.
이름으로 대략 짐작하시겠지만, 저와 김원철 기자만 남자입니다. 최근 인사로 김규남 기자가 탐사팀으로 가고 황금비 기자가 정치팀에 오면서 8명 가운에 여성이 6명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선임기자인 저를 빼면 7명 가운에 6명이 여성인 셈입니다. 그래도 취재하고 기사 쓰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어쩌면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직업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디 정치와 언론뿐이겠습니까? 우리 사회 전체가 중년 남성 중심의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성별 및 세대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진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