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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촛불 “이제는 울지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등록 2019-10-06 12:10수정 2019-10-07 09:34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89
가족-친구들 손잡고 어린 자녀 이끌고
사람들은 서초동에 왜 모이는 것일까
10년 전 노무현 못 지켰다는 ‘죄책감’
“조국 수호 검찰 개혁” 구호로 ‘분출’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시민연대)가 개최한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서울 서초구 서초역 네거리에서 5일 오후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검찰개혁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시민연대)가 개최한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서울 서초구 서초역 네거리에서 5일 오후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검찰개혁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궁금했습니다. 서초동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모여드는 것일까? 검찰개혁이 중요하기는 해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올 명분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한 사람 지켜내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든다는 것도 별로 합리적인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궁금하면 가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토요일인 10월 5일 저녁 6시가 조금 넘어서 전철 2호선 서초역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쪽으로 올라가는 7번 출구와 8번 출구를 경찰이 막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했습니다. 집회 안내원 몇 사람이 “촛불 시민들은 아무 통로나 위로 올라가시면 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4번 출구로 올라갔습니다. 차도와 인도가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대형 스크린으로 문화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문화제 중간중간에 서초역 사거리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영상이 스크린에 올라왔습니다.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 사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소설가 이외수 씨가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어눌한 말투로 “여러분이 들고 있는 촛불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밝히는 촛불이다.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빛 속으로 끌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환호와 박수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도에 서서 한참 동안 문화제를 지켜보다가 “아차, 내가 여기 뭔가를 찾으러 왔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인파를 헤치고 ‘사랑의교회’ 뒤쪽으로 돌아서 예술의 전당 방향 차도와 인도를 가로 질렀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진지하면서도 밝았습니다. 개천절 광화문 집회보다는 참가자들의 나이가 확실히 젊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날씨가 추웠습니다. 손을 꼭 잡은 중년 부부, 춥다고 보채는 자식들을 꼭 안아주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종이로 만든 손팻말을 한두 개씩 들고 있었습니다.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조국 수호 검찰 개혁’

촛불 집회의 대표 구호였습니다. 문화제 중간중간에 사회자의 선창으로 모두 “검찰 개혁 조국 수호”를 외쳤습니다.

‘우리가 조국이다’

‘나도 조국이다’

집회 참가자 중에는 조국 장관을 지키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 옆을 지나던 중년 여성이 자녀에게 “조국 부모님이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은 것 같다”고 말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조국 수호 윤석열 체포’

‘정치검찰 물러나라’

‘검찰개혁 조국수호 언론개혁’

‘검찰개혁 정치검찰 아웃 언론개혁 기레기 아웃’

‘검찰개 언론 개혁’

검찰과 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구호들입니다. 검찰을 ‘검찰개’라고 표현한 것이 이채롭게 보였습니다.

‘공수처 설치 자한당 아웃’

‘토착왜구 박멸하자 자한당을 해체하라’

‘정치검찰 물러나라 자한당을 수사하라’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자유한국당에 대한 반감을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제가 거리를 지나며 가장 많이 들은 구호도 바로 “자한당을 해체하라”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검찰과 언론, 자유한국당을 묶어서 기득권 세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서초역 남쪽 8차선을 건넌 뒤 이면도로를 이용해 교대역 쪽으로 서서히 이동했습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손팻말 가운데 글자가 많이 쓰인 것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읽어 보았습니다.

‘이제는 울지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자세히 보니 꽤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손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글자가 아니라 세 사람의 초상을 그린 손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초상의 주인공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조국 장관 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찾고 있던 해답을 발견했다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서거한 것이 꼭 10년 전입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검찰은 전 정권 비리를 수사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밀어붙였습니다. ‘논두렁 시계’를 언론에 흘렸습니다.

비주류 출신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멸, 정권을 타고 넘어 검찰 권력을 강화하려는 계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검찰에 의해 ‘타살’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울부짖었던 이유가 뭘까요? 저는 일종의 죄책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패하고 파렴치한 정치인으로 몰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이 “정치인이 다 그렇지 뭐”라는 태도로 방관했습니다.

방관자는 결국 가해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닫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눈물의 참회를 했습니다. 당시 ‘지못미’ 열풍의 배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시민연대)가 개최한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서울 서초구 서초역 네거리에서 5일 오후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검찰개혁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시민연대)가 개최한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린 서울 서초구 서초역 네거리에서 5일 오후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검찰개혁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도는 약하지만 2011년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 후유증으로 타계했을 때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의 대중성 부족과 정치적 무능함에 대해 방관하거나 김근태 전 의원 탓으로 돌리던 사람들은 그가 타계한 뒤에야 비로소 그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조국 장관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초기에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압수수색에 들어가고 정경심 교수를 기소하고 수사 인력을 대거 투입하자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살아난 것 같습니다. 지금 주말마다 서초동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파는 전철 교대역 출입구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문화제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발적인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공수처를 설치하라”고 외치면 사람들이 “공수처를 설치하라”고 따라서 외쳤습니다. 누군가 “자한당을 해체하자”고 선창하면 사람들이 “자한당을 해체하자”고 외쳤습니다.

기온이 점점 떨어지는데도 사람들은 뭔가 아쉬운 듯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소음으로 그렇게 시끄러운데도 자리 위에서는 어린이가 엄마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빠의 겉옷과 담요로 추위를 막을 수 있을지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교대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려는데 승강장에서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등산복 차림의 남성이 “문재인 퇴진 문재인 퇴진”이라고 외쳤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얼굴에 불쾌감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문재인 최고 문재인 최고”라고 외쳤습니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승강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박수를 쳤습니다.

60대 후반의 남성은 기가 질린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떴습니다.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습니다. 저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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