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막전막후 280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국립현충원에서 추도식
문희상·이낙연·이해찬·황교안·손학규·정동영·심상정 참석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국립현충원에서 추도식
문희상·이낙연·이해찬·황교안·손학규·정동영·심상정 참석
문희상 국회의장(추모위원장)이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 사진
문희상 국회의장 : 당신께선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를 정치인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최악을 피하려는 차악’을 선택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었습니다. 민족 대도약의 기회를 맞아 국론을 모아야 할 정치권은 서로를 탓하며 반목과 갈등의 골만 깊어가고 있습니다. 10주기를 추모하는 오늘, 더더욱 대통령님의 빈자리가 그립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 대통령님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를 스스로 실천하시고 후대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대외정책에서도 한미동맹을 중심에 놓고, 이웃 나라들과의 우호와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조화’와 ‘비례’가 대통령님의 철학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과거의 우리가 아니고, 이웃 나라들도 과거의 그들이 아닙니다. 저희는 더 깊은 지혜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조화’와 ‘비례’의 지혜는 더욱 소중해졌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해찬 대표 : 저에게 김대중 대통령님은 정치적 스승이셨습니다. 지금도 80년 군사반란군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도 침착하게 최후진술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시던 모습, 그리고 2000년 남북 최초의 6·15 정상회담을 위해 순안공항에 내리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세상에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그리움 쌓이고, 시대가 흘러갈수록 존경이 더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을 일컬어 백세지사(百世之師)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 단어에 적합한 한 분을 고르라면 아무런 주저 없이 故 김대중 대통령이라 말씀드리겠습니다.
황교안 대표 : 김대중 대통령님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화해·용서·화합·통합의 정치로 우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재임 시절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과 찍은 한장의 사진이 기억납니다. 그 장면은 우리 국민들이 갈망하는 통합과 화합의 역사적 상징이었습니다. 정치보복은 없었습니다.
손학규 대표 : 그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반대세력의 요구에 따라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진정한 ‘협치의 달인’이셨습니다. 자기 사람을 마다하고, 비서실장을 ‘TK 인사’로, 전 정부의 국무총리를 ‘주미대사’로, 연립정부 상대방 인사를 ‘재경부 장관’에 임명해서 정치를 안정시키고, 외교와 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의회주의와 정당정치의 달인’ 김대중 대통령이 오늘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이유입니다.
정동영 대표 : 한반도가 어지럽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한반도 상공에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의 비극 앞에 새삼 김대중 대통령님의 웅대한 구상과 지도력이 그립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는 4강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변 4강을 아우르고 이끌어가셨습니다. 국제사회 지도자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존중을 받았습니다.
심상정 대표 : 대통령님께서 일찍이 제안해주셨던 승자독식 선거제도 개혁, 온몸 던져 완수하겠습니다. 국민을 섬기며 정의의 역사를 신뢰하면서 정의롭지 못한 정치, 평화롭지 않은 정치,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를 반드시 바꿔내겠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님께서 길을 여신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와 인권의 새 시대를 앞당길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요. 박정희 정권 때 해직된 기자들이 한겨레신문 만들었지요? 한겨레신문이 디제이피 연합한다고 나를 자꾸 비판하는데, 해직 기자들 유신 때 참 고생 많았다는 것 잘 압니다. 그런데 나만큼 박정희 유신 정권에 당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난들 김종필 총재가 좋아서 그 사람하고 손을 잡겠습니까? 나도 싫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정권교체를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디제이피 연합을 하는 거지요. 이해를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 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 진입으로 5인이 죽고 10여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 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5월 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 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 시 박 정권의 살해 음모로 트럭에 치여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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