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선거법 패스트 트랙과 자유한국당 장외 투쟁으로 멈췄던 국회가 정상화 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국회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금요일인 6월28일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기한을 8월 말까지 2개월 연장하고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을 교체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원 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특위 연장안을 의결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주부터 모든 상임위원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지난 24일 합의했다가 자유한국당이 걷어찬 경제 원탁토론회와 추가경정예산안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여야의 이런 합의에 대한 29일 치 조간신문의 평가는 다양했습니다. 기사의 큰 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난 여론에 두 손 든 한국당 ‘특위 위원장 ’ 약속받고 등원 (경향신문 )
84일만에 국회 사실상 정상화 (동아일보 )
84일만에 돌아온 한국당 ···국회 정상화 첫발 (세계일보 )
심상정 아웃시키고 , 두 달 만에 돌아온 한국당 (조선일보 )
‘치킨 게임 ’ 멈춘 여야 , 정개 ·사개특위 시한 두 달 연장 (중앙일보 )
‘국회 정상화 ’ 입구 열었지만 ···선거제 개혁 꼬일 여지 키웠다 (한겨레 )
정개 ·사개특위 연장 합의 ···국회 84일만에 정상화 (한국일보 )
<경향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는 자유한국당의 국회 복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한겨레>는 패스트 트랙에 올라가 있는 선거제 개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았습니다.
실제로 28일 교섭단체 3당 합의는 여러 면에서 불안정한 것입니다. 패스트 트랙에 올라가 있는 선거법과 공수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두 개의 특별위원회 가운데 어느 쪽 위원장을 맡을지, 8월말 특별위원회 시한이 끝나기 전에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과연 법안 의결을 강행할지, 패스트 트랙 관련 국회법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수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내년도 예산안 의결, 각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일정 등과 맞물려 더욱 복잡해질 것입니다.
자칫하면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평화당과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반대에 가세해 선거법 개정안이 부결되고,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까지 모두 부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거대 양당에 유리한 현행 선거법으로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물 건너갑니다. 자유한국당이 기대하는 결말입니다.
그러나 패스트 트랙에 올라간 법안의 운명은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선거법 개정안이 정말로 패스트 트랙에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 의원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패스트 트랙에 올라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입니다. 특히 정치의 역동성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입니다. 다당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선거법을 연동형으로 개정하고 검찰 개혁의 초석을 놓는 일은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원, 그리고 이를 염원하는 국민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일입니다.
패스트 트랙에 올라간 법안의 운명을 집단 지성의 영역으로 미뤄놓고 나면, 당장 두 가지 궁금증이 남습니다.
첫째, 당장 국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자유한국당 몫인 예결위원장 선출과 추경 심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본회의는 언제 열리는 것일까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의원들에게 29일 이런 내용의 문자 공지를 했습니다.
[원내대표단 보고 ]
존경하는 의원님 ,
국회 정상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노력해 주신 의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추후 국회 일정 등과 관련 몇 가지 보고드립니다 .
(1) 정개특위 , 사개특위 위원장 중 어떤 것을 민주당이 맡나 ?
=> 민주당이 1당으로 우선 선택권 있습니다 .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의원님들의 견해가 팽팽하게 나뉘어 다음 주 초부터 의총을 열어 의견을 모아 결정하려 합니다 . 의총 한 번에 안되면 두세번이라도 하면서 합의를 도출하겠습니다 .
(2) 사개특위는 왜 위원 정수를 19명으로 증원하지 않았나 ?
=> 원내대표 간 합의 시 정개특위 , 사개특위 공히 18명에서 19명으로 증원 , 정개특위는 한국당 1명 사개특위는 비교섭단체 1명을 증원하기로 합의했지만 , 합의문 초안을 만들고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로 사개특위 증원 부분이 빠졌습니다 .
이후 다른 특위 구성할 때 사개특위 정수 조정도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입니다 .
(3) 국회는 완전히 정상화된 것인가 ?
=>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 예결특위 및 한국당 몫 상임위원장 교체는 한국당 당내 사정으로 대상자를 다 확정하지 못해 미뤄진 것으로 다음 주 위원장 선임과 함께 추경 심사 등 모든 의사일정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 한국당이 제기한 다른 쟁점 사항들은 많이 해소된 상태입니다 .
(4) 의사일정은 지난번 합의안 그대로 진행되는 것인가 ?
=> 일부 일정에 일시 등의 조정이 있을 수 있으나 큰 틀에서는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예를 들어 7. 1(월 )부터로 예정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세부 일정에 대한 여야 협상 및 각 당 대표들 준비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순연 , 빠르면 2일 , 늦으면 3일 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주말을 포함 , 원내대표와 수석 간 긴밀한 협상을 통해 구체적 의사일정이 확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다시 한 번 국회 정상화 과정을 인내와 신뢰로 함께해 주신 모든 의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 제 4기 민생원내대표단 올림 -
반드시 더불어민주당 생각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7월 초에는 국회가 정상화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예결위 구성을 미뤄 추경 심의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궁금증은 자유한국당의 태도 변화입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24일 경제 원탁토론회를 조건으로 추경안을 심사하겠다는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의 합의를 걷어찼습니다. 그런데 나흘 뒤 특별위원회 위원장 하나를 받기로 하고 원내대표들의 합의를 추인했습니다. 특별위원회 위원장 한 자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 총회 직후 대구·경북 지역의 한 의원이 기자들을 만나서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통 크게 결단했다 . 자유한국당이 얻을 것 다 얻었다 . 9월 말까지면 더 좋았겠지만 60일이라도 벌었다 . 이제 선거법 통과는 물 건너갔다 . 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연동되어 있다 . 우리가 하나는 위원장을 맡게 됐으니까 어떻게 계산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 이제 선거법은 끝난 것이다 .”
“원내대표가 더 받아낼 것이 있어서 본회의와 예결위는 안 들어간 것이다 . 상임위는 들어가야지 . 상임위는 여당한테 불리하고 야당한테 유리한 것이다 . 본회의와 예결위는 들어가 봐야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 그러니까 급할 것이 없다 . 꽃놀이패는 이제 우리가 쥔 것이다 .”
“국회선진화법 위반 고소 고발 압박이 있다 . 우리로서는 일단 고소 고발 취하를 받으면 좋다 . 하지만 어떻게든 내년 총선 전까지 기소만 미루면 된다 . 그 이후에는 무조건 끝이다 . 경찰은 우리가 안 나가면 2~3개월 끌 것이고 , 검찰로 가면 끌다 끌다 안 나가면 구인장이나 체포영장으로 갈 것이다 . 하지만 총선 전에는 검찰도 부담이다 . 선거에서 우리가 승리하면 끝이다 . 우리가 져도 압승한 쪽에서 어떻게 하자고 하겠나 . 그래서 선거 이후로 어떻게 미루느냐 그게 관건이다 . 민주당이 취하라도 해주면 하는 마음도 있다 . 사실 내부적으로는 수사받는 사람이 공천에 유리하다 . 그걸 이용하는 의원들도 있다 .”
“나중에 좀 잠잠해지면 국회선진화법을 친고죄나 이런 것으로 하자는 쪽으로 법 개정 얘기가 나올 것이다 .”
어떻습니까? 참 편리한 발상이지요? 세상만사를 자기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고방식이 중국 루쉰의 <아큐정전>에 나오는 아큐를 닮지 않았습니까? 모욕을 당해도 ‘정신 승리’로 극복해 나가는 그 인물 말입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국회 정상화 쪽으로 갑자기 돌아선 배경에는 원내대표들의 협상이나 더불어민주당의 양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요인이 있었습니다. 황교안 대표의 실수와 이로 인한 보수층 여론의 급속한 악화입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평소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이었던 이른바 보수 신문이 며칠 전부터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을 잇따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일보> 원선우 정치부 기자가 6월 27일 치 ‘기자의 시각’ 칼럼을 썼습니다. ‘이해찬 본받겠다는 황교안’이라는 제목입니다. 황교안 대표가 ‘아들 저 스펙 취업’,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별화’ 발언을 이유로 엉뚱하게 기자들과 질문-답변을 회피한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일반 국민과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도 했습니다.
<문화일보>는 27일 치에 ‘한국당 패스트 악법 저지 결기 다지고 국회 복귀해야’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더는 국회 밖에 머물 명분이 없으니 국회로 복귀하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 신문의 본격적인 충돌은 6월 26일 자유한국당 여성당원 행사 ‘엉덩이춤’ 사건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날 저녁 방송과 27일 치 조간신문에도 당연히 ‘엉덩이춤’ 뉴스가 실렸습니다.
<조선일보>는 8면에 ‘한국당 여성당원 행사 중 엉덩이춤 물의’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2단 기사를 실었습니다. <동아일보>도 8면에 ‘한국당 여성당원 행사서 바지 내리고 엉덩이춤’이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기사를 실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다음 날 벌어졌습니다. 황교안 대표가 27일 아침 대외협력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언론이 좌파에 장악되어 있다”고 엉뚱하게 언론을 공격한 것입니다.
“우리 당이 하고 있는 것 , 가는 방향들이 국민들 , 시민사회에 잘 안 알려지는 부분이 있다 . 매우 많다 . 그 원인들이 몇 가지 있겠지만 , 중요한 하나는 언론이 좌파에 장악되어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우리가 좋은 메시지를 내놓으면 하나도 보도가 안 된다 . 실수하면 크게 보도가 된다 .
그래서 우리 당이 하는 일은 다 잘못하는 것이고 , 국민들에게 좋지 못하게 비칠 수 있는 이런 모습들이 많이 노출되고 , 우리 잘하고 있는 것들은 보도가 전혀 안 되고 , 이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 우리가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 하는 점을 말씀드린다 .”
황교안 대표 말대로라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좌파에 장악되어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황교안 대표의 발언에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들도 화가 났는지 28일 치 신문에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을 더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8면에 ‘좌파에 장악돼서···한국당의 언론 탓’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2단으로 실었습니다.
<동아일보>는 ‘공감 능력도 시대 감각도 뒤처지는 한국당’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동아일보> 사설 내용을 일부 소개하겠습니다.
최근 황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차별화된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 스펙이 없이도 대기업에 취업한 사례로 자신의 아들을 들어 구설에 올랐다 . 정치인으로는 신인에 가까운 황 대표에게 모든 현안을 두루 잘 파악해 늘 적절한 발언을 하는 능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하더라도 정치 지도자의 필수 자질인 공감 능력에 의문이 들게 한다 .
앞서 한국당은 일부 의원을 비롯해 원내대표와 대변인까지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 물론 막말은 상대 당과 서로 주고받은 측면이 있고 상대 당이 신랄할 비판까지 막말로 매도한 것도 없지 않다 . 그러나 보수 정당은 지지자들이 대체로 안정 지향적이고 , 이념 이전에 교양과 품격을 보여줄 수 있어야 지지 기반을 넓힐 수 있다 . 감정만 앞세워 막말을 퍼부으면 점점 더 극우 정당화하는 것이다 .
<중앙일보>도 ‘자유한국당 지금 바지 내리고 엉덩이춤이나 출 때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습니다. <중앙일보> 사설에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내년 총선이 보수 재건 마지막 기회···민주당 싫지만 한국당 더 싫다면···어떻게 선거 이기고 수권정당 되나”라는 내용입니다.
신문과 방송의 영향력이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연령층인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은 아직도 신문과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마저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린다면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평소에도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사설과 기사에서 논리와 팩트를 제공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자유한국당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은 그날 아침 <조선일보>를 보면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신문들이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으니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꽤나 놀랐던 것 같습니다.
28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의 두 번째 합의는 이런 분위기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합의 사항 추인을 위한 의원 총회가 열리기 전부터 의원들 사이에서는 “무조건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황교안 대표의 잇따른 실언, 그리고 경남도당 여성당원들의 엉덩이춤이 자유한국당을 국회로 불어들인 셈입니다.
어쨌든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잘된 일입니다. 야당과 야당 국회의원의 무대는 국회입니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로서 독재 및 권위주의 정권과 싸울 때도 절대로 국회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바로 그런 이유였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다시는 어설픈 장외 투쟁으로 정국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