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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의 꿈, ‘공존의 정치’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등록 2019-06-23 14:10수정 2019-06-23 14:29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71> 공존의 정치

‘전대협 1기 의장’ 운동권 출신 여당 원내대표
관훈클럽 토론회서 ‘공존의 정치’ 이례적 호소
양극화·빈부격차 해소 상생경제-동반성장 강조
“이념·빈부·노사·세대·젠더 분열 치유하고 공존”
“유연한 진보-합리적 보수, 대결정치 넘어서야”
정치 입문 뒤 오랫동안 고민하며 진화한 흔적
나경원, 여권에 책임 미뤄 ‘공존의 정치’ 반격
이인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입니다. 1964년생이니까 55세입니다. 충주고 출신으로 재수해서 1984년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습니다. 그 뒤에도 전민련 정책실 간사, 전국연합 조직국장, 한국청년연합회 지도위원 등 재야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이인영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의 ‘젊은 피’로 발탁돼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떨어졌습니다. 2004년 17대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됐습니다. 2008년 18대에 다시 떨어졌다가, 2012년 19대와 2016년 20대에 잇따라 당선됐습니다. 지난 5월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마지막 원내대표에 선출됐습니다. 3선 국회의원이자 집권 여당 원내대표라는 중견 정치인이 된 것입니다.

이인영 의원에게는 늘 ‘운동권 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닙니다. 전대협 1기 의장이라는 상징성 때문일까요? ’이른바 보수’에는 아직도 이인영 의원을 ‘빨갱이’나 ‘종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던 1987년 겨울 이인영이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 집회에 나가 연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던 1987년 겨울 이인영이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 집회에 나가 연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방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저에게 “이인영은 지금도 북한의 지령을 받고 있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하도 기가 막혀서 강하게 반박했다가 그 사람과 심한 언쟁을 한 일이 있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프레스센터에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를 했습니다. 언론인 4명이 패널로 나와 질문했고 이인영 원내대표가 답변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국회 정상화를 위해 경제 토론회를 검토할 수 있다”거나, “인사에 대해 청와대에 의사 전달을 하고 있다”는 등 현안에 대한 그의 발언을 중심으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저는 이인영 원내대표의 모두 발언을 매우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모두 발언의 핵심에 해당하는 중간 부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국회는 미래 정치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은 공존의 정치입니다. 지금의 정치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밀어내기에만 급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치로는 결코 국민들께서 염원하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여야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생각을 포용하며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모색하는 정치가 돼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커다란 위기와 도전의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미-중 무역갈등의 심화는 경제 냉전 시대의 개막을 우려하게 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도 우리나라가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과제입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자율주행, 공유경제, 로봇, 드론, 3D 프린터 등 지금 세계는 혁신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면한 위기와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변화와 통합의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사회 양극화와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상생 경제와 동반성장의 좋은 성장(Good Growth)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단초를 공존의 정치에서 찾고, 국회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은 갈등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념, 빈부, 노사, 세대, 젠더 등 사회 곳곳의 분열을 치유할 길은 공존에 있습니다.

서둘러 우리 사회 공존의 해법을 찾고 과감하게 혁신 경쟁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 공존이 시작되어야 할 곳도, 우리 사회 공존의 기틀을 만들어야 할 곳도 국회입니다. 공존의 정치를 위해서는 진보는 보다 유연해져야 하고, 보수는 보다 합리적이 되어야 합니다.

저부터 경청의 협치 정신으로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지금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야당을 설득하고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정부에도 여당에 앞서 야당부터 소통해달라고 말씀드렸고, 야당에도 정부와 소통해 나갈 수 있도록 주선할 것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협치를 제도화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지긋지긋한 국회 파행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찾고 싶습니다. 공존의 정치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과제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입니다.

이 짧은 발언에서 ‘공존’이라는 단어를 무려 아홉번이나 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정, 존중, 포용, 상생, 유연, 합리, 경청, 소통, 협치, 타협, 빅딜, 합의 등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존의 정치’ 선언을 방불케합니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투사 이인영’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이인영 의원의 이런 변화는 이상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1987년 6월 항쟁은 벌써 32년 전 일입니다. 32년 전의 이미지로 한 사람을 재단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인영 의원은 이제 20년 경력의 중견 정치인입니다. 정치의 본질은 투쟁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입니다.

운동권 투사에서 정치인으로 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떻게 진화해갔는지 그가 쓴 몇 권의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2007년 11월에 낸 ‘나의 꿈 나의 노래’가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초선 국회의원 시기입니다. 이 책 뒤 부분에 2007년 1월 안나푸르나에서 쓴 편지 형식의 글이 몇 편 실려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86년 여름을 거치면서 학생운동 내에 이른바 ‘품성론’이라는 게 퍼졌습니다. 논의의 핵심은 운동 이전에 사람이 제대로 되었느냐를 따져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운동하는 사이에, 공동의 적을 놓고 투쟁하면서 서로에 대한 모독과 불신, 격하를 서슴없이 자행하며 상처를 주던 우리 스스로의 자화상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삼기에 충분했습니다.

운동의 미명 하에 노선투쟁, 사상투쟁의 치열성이 운동 발전의 기관차이고 동력이라며 얼마나 많은 총과 대포를 서로의 가슴을 향해 쏘았던가! 어쨌든 그 품성론 덕에 자세의 수정이 있었고, 더 나아가 운동의 큰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내가 제일 옳다는 선민의식, 전위의식은 대중이 더 옳고 현명하다는 대중 주체 의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요즈음 정치 현실, 대통령과 참여정부, 그리고 우리 당의 상태를 반추해 보면서 지난 20년 전 6월 항쟁이 있기까지의 과정과 연관해 몇 가지 되짚어 봅니다. 우리는 우리만이 옳다는 정치적 선민의식에 빠져 있지 않은지 우선 반문해봅니다. 한나라당에 비해 우리가 옳다는 것은 맞지만, 국민대중보다 우리가 더 옳다는 것은 오만이고 독선일 것입니다. 대중 개개인은 모자라고 느릴 수 있지만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여전히 진리입니다.”

“기존의 사회구성체 논쟁의 연장선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단계를 규명하는 것은 더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매판성, 독점성을 핵심으로 그 내면에 착취와 수탈의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이에 복무하는 권력의 파괴와 새로운 건설이라는 논리적 메커니즘은 지금 이론적 무기로서의 효용성을 잃었습니다.”

“사회투자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중도평화국가의 건설을 위해, 때로는 개혁을 위해 시장을 압박하고 때로는 시장과 과감히 타협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용모순 같지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새로운 성찰을 통해 열심히 걷는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시장경제, 아름다운 시장경제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 당시 이른바 민주대연합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재야와 학생 그리고 사회운동세력의 입장에서 제도정치권 야당이 다소 불철저하지만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의 가치를 위한 연합이 개량주의가 판을 치는 계기가 되었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지금도 그때 손을 잡은 것이 시대의 당위적 요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저는 여전히 손을 잡는 문제, 안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에 와서 반군사독재는 반수구냉전, 반보수우경화, 비신자유주의가 아닐까요? 민주대연합은 중도대연합이 아닐까요? 또 민주정부수립은 정권재창출이 아닐까요?”

2011년 11월에 낸 ‘산티아고 일기-사람의 길’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2008년 선거에서 낙선하고 민주당 최고위원을 하던 시절입니다.

“경제란 무엇인가? 통일과 평화를 경제와 연관 지어 생각하다가 문득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왔다. 나는 사실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공존을 위해 사민주의를 검토하다가 이를 버린지도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모순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회주의가 답이 아닌 것처럼 내친김에 실현 가능한 경제체제가 사민주의는 아닌 것 같아서다.

사민주의는 이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타협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10년 전 보았던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자유주의) 체제나 흔히 북유럽 사회협약 모델에 대해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 단지 복지국가, 복지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국한되고 있는, 즉 정치사회적 이념으로서 사민주의가 아닌 사회경제적 이념으로서의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성장 분배 조화경제, 사회통합 동반성장, 인적자원사회투자, 선순환식 복지성장 등을 가능하게 할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는 이런 문제의식의 발로이다. 독일보다도 더 오른쪽일 수도 있지만 양극화가 심화되어 호전적 약육강식적 경제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대안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따뜻한 시장경제의 연장선에 있어야 한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할 때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쟁이 많았다. 이른바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이었다.

어떤 이들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식민지반자본주의라고도 했으며 관료독점자본주의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사회 성격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주요모순, 계급, 공격 방향에 대한 전략 전술이 명료해지고 그래야 과학적 사회운동, 변혁운동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 꽤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노선이 분화되고 그룹으로 나누어지면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문제의식이 둔감해져 있다. 분명 한국 자본주의의 어떤 특징이 오늘 한국의 시장경제에 새로운 양극화 양상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신자유주의라는 세간의 진단에 그저 공감할 뿐이다.”

“사회주의는 평등을 내걸었지만 소수가 특권을 향유하고, 대다수는 소외시키고 방치한 결과 멸망하고 말았다. 아주 많은 민주주의의 절차와 과정이 배제된 채 다수독재라는, 사실은 위임받지 않은 위임의 미명 하에 자행된 비판과 감시 기능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였다.

나는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동안 민주주의로 일관했고 지금도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와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모든 걸 다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내 생활도 사람들의 요구도 좀 더 새로운 것을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득 자유주의가 생각의 눈에 들어와 박힌다. 솔직히 자유주의를 너무 멀리 놓아둔 것 같다. 확 안아 들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다. 뭔가 개인주의와 연결되고 자본주의 시장질서로 귀결되는 듯한 그 느낌이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하게 했다.

그러나 솔직히 내 자신의 모습도 이중적이다. 공동체를 매우 지향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생활의 절대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한다. 굉장히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우리 사회에 양산되었고 이들을 모두 공동체의 이상으로 한순간에 동원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들은 개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자유가 억압받는다고 생각하면 다양한 행위로 저항할 것이다. 어떠한 독선적 권위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디엔에이 같은 것이 내재하고 있다. 그게 사회적 정의로서, 정의로운 행동으로 지금의 촛불은 아닐까?”

2011년 12월에 낸 ‘진보 보수 마주 보기’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인영 의원과 김재원 의원이 1년 동안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원외’였던 시기입니다. 이인영 의원이 머리말에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보수는 편견이 많고 진보는 이념이 과잉이다. 보수의 이기적 욕망 앞에 진보는 공허하게 보인다. 진보의 순수한 이상 앞에 보수는 지루해한다. 국민의 눈에 양자는 늘 대결하고 충돌한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부딪친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정치싸움이 본질을 꿰뚫는 것도 없다. 서민과 중산층이 갈급해 하는 대안과 희망은 없고 그저 자신들의 삶과 동떨어진 멀고 먼 언저리를 빙빙 맴돌고 있을 뿐이다.”

“보수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하고 진보도 혁신해야 한다. 보수는 수구꼴통, 즉 ‘꼴보수’의 비난을 넘어서야 한다. 극우 보수는 보수적 가치로 비추어도 위험한 것 아닌가? 진보는 급진과 과격의 이미지를 뛰어넘어야 한다. 극좌는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존재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적어도 ‘젊은 한국’은 이 정도는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보 성향 정치인의 대표나 다름없는 이인영 의원이 보수와 진보의 문제를 모두 비판했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재원 의원은 에필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그들이 패배한 것은 그들의 맨얼굴을 국민들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험한 전사들 가운데서도 바다보다 넓고 깊은 마음씨를 가진 분을 가까이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유인태, 김부겸, 이인영이 그들이다. 모두 험난한 고난의 시기를 거쳤음에도 삶의 여백이 온전히 남아 있는 아름다운 남자들이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으며, 그들 역시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김재원 의원은 이인영 의원과 같은 1964년생입니다. 17대 한나라당, 19대 새누리당, 20대(2017년 4·12 재보선) 자유한국당 공천으로 당선된 3선 국회의원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습니다. 그런 김재원 의원이 이인영 의원을 높이 평가한 것이 특이합니다.

아무튼 이인영 의원이 쓴 몇 권의 책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그가 ‘공존의 정치’를 강조하는 것이 그리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눈앞에 맞닥뜨린 위기를 해결하고 변화와 통합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가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공존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인영 원내대표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인 셈입니다.

관훈 토론회 모두 발언에서 강조한 ‘공존의 정치’에 대해 이인영 원내대표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추가로 설명을 듣고 싶었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보냈습니다. 첫째, 공존의 정치가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둘째, 공존의 정치를 위해 정부 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1. 미래 한국의 정치는 유연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공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대결 정치의 반복을 반드시 넘어서야 합니다.

촛불 현장에서 차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맞섰지만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해방 직후처럼 극단적 대결이 벌어지지 않은 이유가 뭔지 잠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공존의 정치는 짧은 시간 안에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더 어려울 것입니다. 경쟁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래도 멋진 경쟁, 품격있는 경쟁을 하면 좋겠다는 취지로 가끔 공존의 정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2. 경청의 협치로 출발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정책 협치라고 할까, 부분적 수준이지만 거기까지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생은 야당이 주도해도 좋다는 심정으로 빈자리를 내주고 싶습니다. 정부도 여당에 앞서 야당부터 소통해달라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답변 뒤에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얘기”라는 꼬리를 달았습니다. 답답한 심경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관훈 토론회에 이어 다음날인 20일에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관훈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정치의 복원과 공존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실종된 원인을 현 정권 탓으로 돌렸습니다.

“정치 실종, 그것은 바로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퇴보입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우리 정치에서 타협은 찾아보기 어렵고, 오직 힘의 논리, 적대와 분열의 정치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 질서의 룰인 선거법마저 제1야당의 의견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하겠다는 것만큼 반정치적인 행위는 없습니다. 전임 정권을 부정하기 위한 보복 정치를 자행하고, 사법부, 선관위, 언론 등을 장악해 사실상 생각이 다른 세력을 억누르는 것, 그것은 사실상 공존을 거부하는 신종 권위주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가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상대를 궤멸과 고립의 대상으로 여기는 적대 정치를 넘어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공존의 정치가 필요합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에 입각해 권력 분산을 위한 정치 개혁이 시급합니다.”

점잖은 토론회 자리여서 그랬는지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더불어민주당을 ‘좌파 독재’라고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존을 거부하는 신종 권위주의’라고 했습니다. 표현 수위만 낮았지, 내용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와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교섭단체 여야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자유한국당 나경원와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국회 의장집무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교섭단체 여야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진 23일 아침 직접 성명을 냈습니다. 추경안 심사는 거부하고, 검찰총장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와 운영위원회·국방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 등 일부 상임위원회만 가동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국회 정상화도 아니고 파행도 아닌, 사상 초유의 ‘부분 국회’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했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낸 성명의 제목이 바로 ’공존의 정치 회복만이 국회 정상화의 유일한 해법이다’였습니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제안한 ‘공존의 정치’를 나경원 원내대표가 똑같은 단어로 맞받아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아무래도 이인영 원내대표의 ‘공존’과 나경원 원내대표의 ‘공존’은 전혀 다른 개념인 것 같습니다. 답답합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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