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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체제’ 자유한국당 혁신의 세 가지 조건

등록 2019-06-09 11:28수정 2019-06-09 20:12

1996년 신한국당-2000년 한나라당-2012년 새누리당 사례 분석

1. 유력한 대선 주자의 존재
2. ‘학살’-‘발탁’ 물갈이 공천
3. 신당 창당으로 변화 추구

자유한국당 지지도 4개월째 ‘20% 초반’ 박스권 갇혀
황교안 대표, 취임 100일 맞아 ‘변화와 혁신’ 내세워
신상진 신정치혁신특별위원장 막말-친박 공천배제론
막말-친박 정치인에 둘러싸인 황교안 대표의 딜레마
한선교 사무총장-민경욱 대변인 공천 배제 가능할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8일 오전 경기도 이천에서 소설가 이문열 씨와 만나 차를 마셨습니다. 정당 대표가 가끔은 이렇게 원로 문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모양새가 참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문열 씨는 보수 성향의 유명 소설가입니다. 2004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차담 뒤에 황교안 대표는 “진정한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문득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진정한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문열 작가와 황교안 대표는 ‘진정한 보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8일 오전 경기도 이천 소설가 이문열 작가의 문학사숙 부악문원을 방문, 이문열 작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8일 오전 경기도 이천 소설가 이문열 작가의 문학사숙 부악문원을 방문, 이문열 작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는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나타난 시민 계급의 진보주의에 대응해 탄생했습니다. 보수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과격화를 경고하며 독재체제에 반대하고 정당정치를 통해 권력의 남용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의와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이후 사회주의가 출현하자 시민 계급의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가 보수주의로 이행하면서 오늘날 보수주의의 내용을 채웠습니다.

보수주의가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고 독재에 반대하며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게 된 연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은 군대도 잘 안 가고 세금도 잘 안 냈습니다. 독재에 반대하기는커녕 독재에 가담해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마디로 그들은 진짜 보수가 아니라 가짜 보수, 분단 기득권 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수’라는 단어보다 ‘이른바 보수’라는 단어를 더 자주 쓰는 이유입니다.

진정한 보수와 기득권 세력은 무엇이 다를까요?

보수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권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깁니다.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화와 혁신을 받아들이는 집단입니다.

이에 비해 기득권 세력은 공동체와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변화와 혁신을 무조건 반대합니다. 변화와 혁신 여부가 보수와 기득권 세력을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2월 27일 전당대회에서 대표에 당선된 이후 극우 성향 태극기 부대와 과거 새누리당 지지층 일부를 흡수해 자유한국당 지지도를 안정적인 20%대로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 기준으로 보면 2월 27일 전당대회 이후 넉 달째 20% 초반 박스권에 갇혀 등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30% 후반대로 안정적입니다.

정당 지지도가 만약 이대로 간다면 2020년 4·15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내에서는 황교안 대표 체제로는 한계가 있으니 올가을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도 이런 기류를 모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침내 ‘변화와 혁신’이라는 화두를 끄집어냈습니다. 지난 6일 취임 100일을 맞아 쓴 페이스북 글에 이런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자유한국당 대표 취임 100일이 되는 날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책임지고 이끌어온 중심 세력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희생정신과 역동성이 오늘 우리 당의 피와 땀, 눈물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혁신과 변화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개혁이란 바로 국민 속으로 가는 길입니다. 미래로 가는 길입니다. 통합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 스스로 당을 개혁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역사의 주체세력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혁신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와 국민에 무한대의 책임의식을 갖고 미래와 통합을 향해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멋있지 않습니까? 저는 황교안 대표가 앞으로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최근 30대 젊은 작가와 함께 ‘밤이 깊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라는 에세이집을 펴냈습니다. 20~40대 청년 창업가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푸드트럭에 올라타 핫도그를 나눠줬습니다. 청년 정치지망생을 상대로 특강도 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 광화문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물결에 둘러싸여 문재인 정부를 향해 ‘좌파독재’라고 독설을 퍼붓던 것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서 좀 어리둥절합니다. 전형적인 이미지 정치입니다. 갑자기 이런다고 젊은 유권자들이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을 지지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가 지난 5일 오후 국회 의원동산 앞에서 푸드트럭 체험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가 지난 5일 오후 국회 의원동산 앞에서 푸드트럭 체험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변화와 혁신을 도대체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요? 혁신은 가죽을 벗겨 새로 입힌다는 의미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을 감수할 수 있어야 그게 바로 혁신입니다.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변화하고 혁신해야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 탈환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른바 보수 정당이 변화와 혁신을 과감하게 추진해서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전례가 몇 차례 있습니다.

첫째,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자유당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과감한 물갈이 공천으로 원내 1당을 차지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을 찾아보았습니다.

“나는 여당인 신한국당의 총재로서 4·11 총선의 중요성을 감안해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공천의 전 과정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겼다. 당에서 추천한 단일후보까지 바꿀 정도로 내가 직접 최종 인선을 했다.

나는 개혁성과 참신성에 공천의 주요 기준을 두었고, 이에 따라 개혁 지향적인 참신한 젊은 인재들을 대거 영입, 공천 물갈이를 단행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이 공천한 사람들의 명단을 회고록에 몽땅 실었습니다. 서울의 이재오 홍준표, 부산의 정의화 김무성, 경기 심재철 김문수, 전국구 이회창 이홍구 등의 이름이 눈에 띕니다.

선거 결과 신한국당은 139석으로 1당을 차지하며 승리했습니다. 수도권에서도 크게 이겼습니다. 야권 분열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집권세력의 새로운 인재 발탁을 국민이 인정한 것입니다.

둘째,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은 계파 수장이었던 김윤환 이기택 고문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이회창 회고록은 이 부분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계파 보스인 대구·경북의 김윤환 고문과 구민주당계의 이기택 고문을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했고 당내 5선 이상 의원 중에서는 김영구, 양정규, 박관용 의원 등 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배제했다.

그 밖에도 주류·비주류와 상관없이 다수의 현역의원들이 공천에서 탈락되었는데 현역의원 교체 비율이 반드시 당 개혁성을 재는 척도는 아니지만 30%를 넘었다.”

“무엇보다 나와 가깝거나 내 옆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공천에서 탈락된 것은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다.”

“이 일로 ‘이회창은 자기를 위해 헌신한 사람도 내치는 의리가 없는 냉혈한’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한겨레 자료사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한겨레 자료사진>
이회창 총재의 2000년 공천을 일부 언론은 ‘2·18 대학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순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등은 한나라당을 탈당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예상을 깨고 133석으로 1당을 차지했습니다. 이회창 총재는 이를 “개혁 공천의 결과가 총선에서 국민의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했다”고 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평가입니다.

셋째,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성공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먼저 박근혜 위원장은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등 참신한 외부 인사들을 영입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 색깔을 붉은색으로 바꿨습니다. 경제 민주화를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결과는 152석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 탄력으로 박근혜 위원장은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까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과거 사례를 분석해 보면 이른바 보수 정당의 성공적인 변화와 혁신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첫째, 유력 대선주자의 존재입니다.

1996년에는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차기 대선주자로 선거를 이끌었습니다. 2000년에는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2012년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는 바로 박근혜 위원장이었습니다.

둘째, 물갈이입니다.

물갈이의 한축은 현역의원들의 목을 치는 ‘학살’입니다. 다른 한축은 참신한 인재를 대거 내세우는 ‘발탁’입니다. 1996년은 발탁이 포인트였고, 2000년은 학살이 포인트였습니다.

셋째, 말 그대로 ‘근본적인 변화’의 추구입니다. 그 변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국민에게는 근본적 변화로 비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2012년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밀어붙인 변화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이른바 보수 집단에서는 금기인 붉은 색을 당 색깔로 채택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며 당 강령에서 보수를 아예 빼려고 시도했던 일도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물론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경제 민주화를 사실상 철회함으로써 박근혜 위원장이 내세웠던 ‘근본적인 변화’는 결과적으로 거짓이었다는 평가를 피할 길이 없게 됐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조건은 갖춘 것 같습니다. 황교안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입니다.

신상진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6월 5일 당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러한 나라를 살리는 자유한국당의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를 가로막는 그런 구설수에 오르는, 또 막말하는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그 막말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것이 좋지 않은 언론 환경에서 자꾸 보도되고 자유한국당의 지지를 깎아 먹고 우파 국민들, 또 애국 국민들의 걱정을 점점 끼쳐드리는 그러한 사태에 대해서는, 그런 분들은 공천에서의 감점과 아울러서 경우에 따라서는 공천 부적격자로까지 해서 이번에 공천룰에 그것을 넣어서 만들고자 하고 있다.”

막말 정치인은 공천에서 감점하거나 아예 공천 부적격자로 분류해 탈락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신상진 의원은 다음 날 아침 불교방송 ‘이상휘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현역의원 물갈이 폭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자당의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당했고 그리고 그의 뿌리가 되는 2016년 20대 총선 공천의 많은 후유증을 갖고 있는 당이기 때문에 저희는 현역의원들이 책임이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데서.

그래서 현역의 물갈이는 과거보다도 사실은 적지 않고 물론 실제적으로 룰에 입각한 평가나 이런 걸 다 해야 되겠습니다마는 기본적으로 그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물갈이 폭도 크게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현역의원들을 대폭 물갈이하겠다는 것입니다. 2016년 공천 후유증과 대통령 탄핵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현역의원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친박근혜계 의원들, 친박 세력입니다.

결국 신상진 의원의 주장을 종합하면 막말 정치인들과 친박 정치인들을 내년 국회의원 선거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상진 의원의 주장대로 막말 정치인과 친박 정치인들을 공천에서 배제한다면 자유한국당에서 상당한 수준의 변화와 혁신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자유한국당이 막말 정치인과 친박 정치인들을 공천에서 배제할 수 있을까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 막말 파동을 일으킨 주요 정치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김진태 김순례 최고위원, 나경원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 한선교 사무총장, 민경욱 대변인 등입니다.

이 가운데 한선교 사무총장과 민경욱 대변인은 ‘친박’입니다.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도 ‘친박’입니다. 황교안 대표를 온통 막말 정치인과 친박 세력이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가 한선교 사무총장과 민경욱 대변인을 공천에서 배제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실은 황교안 대표 본인이 바로 ‘핵심 친박’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로 발탁했고, 그 덕분에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사람을 뭐라고 분류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극단적으로 말하면 황교안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 전체가 공천배제 대상인 셈입니다. 신상진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주장은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얘깁니다.

그렇다고 참신한 정치 신인들이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에 대거 입당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동안 황교안 대표가 보인 극우 발언과 행동이 바로 큰 걸림돌이자 장벽입니다.

여성과 젊은 층에 구애하는 몇 차례의 이미지 정치, 이벤트 정치에 속아 넘어갈 순진한 정치 신인이나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결론적으로 물갈이 공천의 두 축인 ‘학살’과 ‘발탁’이 모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황교안 대표가 할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의 방식은 무엇일까요? 2012년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했던 것처럼 당명 변경이나 신당 창당으로 당의 면모를 바꾸고,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내세워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모양새를 갖추는 것뿐입니다.

당명을 바꾸거나 신당 창당을 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국민에게 한나라당은 이회창, 새누리당은 박근혜, 자유한국당은 홍준표의 이미지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바른미래당에서 이탈하는 정치인 몇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습니다. ‘황교안 정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부처님오신날인 12일 오후 경북 영천시 은해사를 찾아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부처님오신날인 12일 오후 경북 영천시 은해사를 찾아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보다 어려운 일은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내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 교단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공안 검사를 오랫동안 했던 사람입니다. ‘기독교’와 ‘공안’은 그의 정체성입니다.

그는 동성애를 포함한 차별 금지 법안에 결코 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타협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이런 한계는 그가 결국 ‘모든 종류의 차별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기득권 세력의 수호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정책을 좀처럼 내놓지 못할 것입니다. 공안 검사로서, 법조인으로서 그가 오랫동안 했던 일은 결국 경제 기득권 세력과 분단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수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자신의 정체성과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려다가는 극우 기독교인들과 태극기 부대로부터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황교안 대표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답을 찾기가 절대 쉽지 않은, 그야말로 난제들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그래도 황교안 대표가 어떻게든 자유한국당의 변화와 혁신에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규모 물갈이에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와 정의라는 보수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공약을 대거 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년 4·15 국회의원 선거가 저열한 색깔론이나 어설픈 이념 대결에 휩싸이지 않고 인물과 정책 대결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도 변화하고 혁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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