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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부대 품에 안긴 자유한국당, 전략일까 본능일까

등록 2019-05-26 11:21수정 2019-05-26 19:23

태극기 부대-자유한국당 화학적 결합 완성 수준
광화문 집회 현장 당깃발-태극기-성조기 뒤섞여

태극기 부대 흡수로 당 지지도 ‘20%대’ 올라
박근혜 탄핵 직후 ‘10%대’에서 두 배로 상승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뒤 ‘우익보강’만 계속
전략적 판단보다는 공안검사 본능 때문인 듯

“투표율 낮은 총선은 우리 표 결집하면 승산”
“지나친 우경화로 중도층 흡수 한계 있을 것”
‘2020 경제 대전환 프로젝트’는 어디로 갔나
‘정책 대안’ 약속 지켜야 집권 가능성 커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6번째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6번째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스톱 국민이 심판합니다 6차 규탄대회’가 25일 저녁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렸습니다. 한겨레 정치팀에서는 저와 장나래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했습니다. 규탄대회가 어떻게 진행됐고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무슨 연설을 했는지는 장나래 기자의 기사를 읽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한 가지 궁금증을 확인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갔습니다. 지난 4월 27일 규탄대회에서 제가 목격했던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 당원들의 결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의 결합은 확실히 한 단계 더 깊숙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광화문 광장 여러 곳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태극기 집회에 단골로 등장하는 육사 동기회 깃발도 눈에 띄었습니다.

자유한국당 당협 깃발과 태극기를 같이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 당원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7시 본행사가 시작되기 전 대형 스크린에는 황교안 대표의 이른바 ‘민생대장정’ 녹화 영상이 길게 상영됐습니다. 군중들이 “황교안 황교안”을 연호했습니다. 이날 집회의 주인공은 황교안이었습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황교안 황교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자유한국당 당원들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잠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뒤로 갔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황교안 알아요? 멋있어 정말. 예쁘고…”

옆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규탄대회에서 제가 확인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의 결합은 이제 물리적 결합 단계를 지나서 화학적 결합 단계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의 화학적 결합은 황교안 대표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태극기 부대가 자유한국당을 흡수한 것일까요? 자유한국당이 태극기 부대를 흡수한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튼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의 결합으로 자유한국당은 지지도 상승이라는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자유한국당 지지도 변화를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로 살펴봤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2017년 5월 이후 2017년 연말까지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9%~12% 수준이었습니다. 2018년에는 지방선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10%~14% 박스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 11~12월에 가서야 17~19%로 올랐고, 전당대회 직전인 2019년 2월 넷째 주에 처음으로 20%를 찍었습니다.

그 뒤 지금까지 20%~2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선 직후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상승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이런 지지도는 아직 과거 새누리당의 지지도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 지지도는 30%대로 줄곧 더불어민주당을 크게 앞서 있었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갑자기 10%대로 가라앉았습니다.

어쨌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바닥을 기던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최근 크게 오른 이유는 확실합니다. 과거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보수 성향, 그중에서도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이 그동안 무응답에 머물다가 올해 2월 27일 전당대회를 계기로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큰 기여자는 황교안 대표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전당대회에 나서며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라고 비난했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 못지않게 자유한국당을 오른쪽 끝으로 몰고 갔습니다. 과거 공안검사들이 폭탄주를 마실 때의 어법으로 표현하면 ‘우익보강’만 밀어붙인 셈입니다.

진짜 궁금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앞으로 더 오를 수 있을까요? 더불어민주당을 넘어서는 역전이 가능할까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 ‘30%대 지지도’의 빛나던 시절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해답을 찾기에 앞서 먼저 풀어야 할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6번째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6번째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자유한국당의 우경화는 전략적 판단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황교안 대표의 정체성과 본능에 따른 것인가?”

자유한국당 안에는 대체로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첫째, 선거를 앞둔 전략적 판단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태극기 부대를 포함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최대한 흡수해 지지율을 높이면 2020년 4·15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고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달리 투표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우리 편’을 최대한 결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전제가 깔렸습니다.

여기에 합리적 보수와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선거를 앞두고 보수 혁신을 명분으로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설명이 추가로 붙습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승리를 예측하는 편입니다.

둘째,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대표의 정체성과 본능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정치 경험, 특히 선거 경험이 없는 황교안 대표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 전략적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시각입니다. 여기에 보수 기독교 교단 대형교회 목사들의 후원도 한몫하는 것 같다는 설명이 추가로 붙습니다.

이런 분석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내년 선거 결과를 걱정하는 편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황교안 대표가 뒤늦게 ‘보수 혁신’을 내세워도 합리적 보수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 중에는 ‘전략적 판단’이라는 첫 번째 가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의 본능’이라는 두 번째 가설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공안검사로서 황교안 대표의 정체성과 본능에 의한 것이라는 두 번째 가설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황교안 대표를 검사 시절부터 지켜봤던 저의 직관입니다. 제가 아는 황교안 대표는 전략적 사고나 정치적 제스처에 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너무 성실하고 순수해서 오히려 좀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자유한국당이 보수의 품격이나 정책 대안 제시는 다 팽개치고 내년 국회의원 선거 승리를 위해 벌써 혈안이 된 이유가 뭘까요?

첫째, 국회의원 각자의 정치적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에게는 정권을 잡는 것보다 자신의 국회의원 신분이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둘째, 국회의원 선거 결과가 대통령 선거 결과와 직결된 최근 두 차례의 경험 때문입니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는 등 승부수를 띄워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그 결과 2012년 12월 대선에서 이겼습니다.

반면에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무리한 친박 공천을 강행했다가 참패했습니다. 그 결과는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로서는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겨야 2022년에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20%대 초반에 머무는 현재의 지지도로는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이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 30%대 지지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리적 보수와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추가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집권 경험이 있는 보수 세력에 걸맞은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면 된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책 대안을 가진 유력 대선 후보의 존재는 국회의원 선거 승리의 중요한 필요조건입니다. 2000년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새누리당, 2016년 문재인-김종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 그렇게 승리했습니다.

황교안 대표가 내년 선거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정책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황교안 대표도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전당대회 직후 3월 4일 최고위원회에서 황교안 대표는 “좌파 독재 정권과 싸워서 이기는 정당이 되겠다”는 정치적 수사를 앞세운 뒤 구체적인 정책 과제를 상세히 제시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대안을 가지고 일하는 하는 정당을 만들겠다. 이것을 위해서는 경제 대안, 안보 대안, 민생 대안 등으로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다.

경제 대안 정당이 되기 위한 과제로 ‘2020 경제 대전환 프로젝트’를 즉각 추진할 계획이다. 현 정권의 소득주도성장과 좌파 포퓰리즘 경제 정책에 맞서서 우리 당의 새로운 성장 정책과 또 구체적 실현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또한 성장과 민생의 균형 발전 방안도 함께 가급적 조속히 찾아내도록 하겠다.

아울러서 문재인 정권의 굴욕적 가짜 평화 정책을 대체하는 당당하고 투명한 평화 정책을 안보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완전한 북핵 폐기까지 가는 여러 길이 있다. 거기까지의 평화 로드맵을 만들고 이에 맞춰서 이 정권의 안보 무장해제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 정당 차원의 한미동맹 강화 외교에도 힘을 쏟는 우리 자유한국당이 되도록 하겠다.

국민의 힘든 삶을 해결해 드리는 민생 대안도 마련해 나가겠다. 먼저 미세먼지 대책이다. 대중국 외교 노력을 포함한 특단의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해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그런 대안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현장 중심의 ‘중산층·서민경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민생 정책을 발굴하고, 실천 방향을 제시하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 가겠다. ‘중소기업 근로자특위’ 또 ‘청년 일자리 시스템’ 등 정책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족집게 대책들도 운영해 나가도록 하겠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6번째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6번째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단하지요? 대통령이 제시하는 국정 과제를 방불케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2020 경제 대전환 프로젝트’, ‘자유한국당의 새로운 성장 정책과 구체적 실현 방안’, ‘성장과 민생의 균형발전 방안’, ‘당당하고 투명한 평화 정책’, ‘자유한국당의 평화 로드맵’, ‘대중국 외교 노력을 포함한 특단의 미세먼지 대책’, ‘현장 중심의 중산층·서민경제 특별위원회’, ‘중소기업 근로자 특별위원회’, ‘청년 일자리 시스템’, ‘정책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족집게 대책’ 중에서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것은 무엇일까요? 한두 가지라도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까?

과거 한나라당은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경제학자 출신인 한나라당의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은 야당이었는데도 여러 가지 정책 대안을 고민했고, 그런 고민의 결과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정책 공약으로 제시됐습니다. 이를테면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는 뜻의 ‘줄푸세’ 공약이 그런 것입니다.

경선에서 이긴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 공약과 자신의 ‘747’(연평균 7% 성장, 10년 뒤 1인당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공약을 합쳐서 ‘747-줄푸세’ 공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거의 평생 공안검사만 하다가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지낸 법조인입니다. 법조인은 정책을 잘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정책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정책 전문가 참모들을 대거 기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 주변에 정책 전문가는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정책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로 몰아붙이는 색깔론 하나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기고 대통령까지 하려는 것 같습니다. 걱정스럽습니다.

황교안 대표가 대안을 가지고 일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말을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제1야당 대표가 경제와 민생과 정책에 실제로 관심을 가져야 집권 세력과 함께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리적 보수와 중도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서 선거에서 이기고 집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황교안 대표 자신과 자유한국당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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