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5일 오후, 홍영표(더불어민주당)·나경원(자유한국당)·김관영(바른미래당)·장병완(민주평화당)·윤소하(정의당) 원내대표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방안 검토’ ‘의원 정수 확대 논의’ 등의 내용을 담은 선거제도 개편 관련 합의문을 발표했다.
선거제 개혁을 요구하며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이어간 지 열흘째 되던 날이다. 하지만 이후 석달 동안 자유한국당은 논의에 참여하지 않다가, 결국 지난 10일 ‘연동형 비례제 반대’와 ‘비례대표제 폐지’ 등 합의와 정반대되는 자체안을 내놓으며 ‘역주행’을 예고했다. 자유한국당까지 참여하는 거당적인 선거제 합의 기대감을 갖게 했던 ‘그때 그 합의’는 어디까지 진전됐을까. 6개 항 이행 여부를 하나하나 따져봤다.
①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이번 선거제 개혁 논의의 핵심이다.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사표 양산 △지역주의 심화 △거대양당 편향 등의 문제가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큰 틀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야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먼저 배정하고 지역구 당선자로 채워지지 않는 의석을 모두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독일식 100% 연동형’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정당 득표율의 절반만 비례대표로 채우는 ‘준연동제’, 지역구와 정당 득표를 더해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복합연동제’, 지역구 득표율보다 의석을 더 가져가거나 덜 가져갔을 때에는 비례대표 배분에서 이를 반영하는 ‘보정연동제’ 등 세가지 방식을 제안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적극 검토”를 언급했을 뿐이라고 했고,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를 최종 당론으로 정했다.
②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 비율, 의원 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의 ‘비례성’ 강화를 위해선 비례대표 의원수 확대가 불가피하다. 야 3당은 국회의원 관련 예산을 동결한 상태에서 30명을 늘리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여론의 반발을 고려해 300석을 유지하되 현행 253석의 지역구 의석을 225석으로 줄이고 47석의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리는 수정안을 내놨다. 지역구 의원은 최다 득표자 1인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의원 정수 동결-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이 위원 개인의 의견으로 제안됐으나, 최종 당론은 ‘의석 30석 감축, 비례대표제 폐지’로 정리됐다.
③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한다
석패율제는 지역구 선거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로서,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여야 4당은 석패율제 도입에 찬성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석패율제를 일부 도입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④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한다
국회 정개특위는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 뒤 매주 2차례씩 회의를 열어 집중 논의에 들어갔다. 정개특위 논의를 통해 이견을 조금씩 해소하고 각 당의 선거제 개혁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 1월 안에 최소한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목표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과 야 3당은 각각 1월21일과 23일, 최종안에 가까운 당론을 차례로 내놓았지만 자유한국당은 “여야 간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거제 개혁안을 내놓지 않았다.
⑤정개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한다
국회는 지난해 12월27일 본회의를 열어 정개특위 활동 연장 건을 통과시켰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개특위의 활동 시한은 오는 6월까지다.
⑥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
지난해 12월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 과정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요구로 막판에 들어간 조항이다. 선거제도 논의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질하는 권력구조 개편과 연계돼야 한다는 자유한국당의 문제의식이 담겼고 이를 민주당과 야 3당이 수용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지난 6일 정개특위 간사 회동에서부터 “권력구조 논의를 시작하자. 그러면 선거제도 개편 협의도 가능하다”(장제원 의원)며 개헌 논의를 선거제도 개편의 전제조건으로 들고나왔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내각제 개헌이 아니고선 연동형 비례제에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선거제 개혁→개헌 논의의 순서를 뒤집은 것이다. 그는 “(여야 4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개헌이 훨씬 복잡한 논의구조인데 선거구제(개편)만 덜렁 하면 먹튀 할 수 있다는 게 저희 주장”이라고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정치는 신뢰가 근본이 돼야 하고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여야 5당 원내대표) 합의 내용은 휴짓조각이 됐다”고 꼬집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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