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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징계 않는 윤리특위…‘킹핀’ 겨눠야 한다

등록 2019-01-27 12:15수정 2019-01-27 14:24


20대 국회 징계안 21건 처리 국회 윤리특위 실적 ‘0’
2개월 안에 심사 의무화 ‘오세정법’ 주목…운영위 계류
심사 안 하면 전문가 구성 자문위 징계안 본회의 표결
막말·청탁·민원 차단 3권분립 강화로 ‘킹핀’ 효과 기대
지배층 기득권 담합 구조 깨지면 국민과 나라가 수혜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49

킹핀은 볼링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 5번 핀입니다. 열 개의 핀을 모두 쓰러뜨리는 스트라이크를 치려면 가장 앞에 있는 1번 핀이 아니라 5번 핀을 겨냥해야 합니다. 연쇄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킹핀의 개념은 벌목에서 왔다고 합니다. 밀림에서 벌목한 나무를 강물에 띄워 하류로 보내는 데 강물이 굽이치는 곳에서 나무들이 엉켜 움직이지 않을 때 엉키는 원인이 된 나무를 킹핀이라고 합니다. 킹핀을 움직여주면 모든 나무가 강물을 따라 다시 흘러가게 됩니다.

킹핀은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입니다. 복잡하게 엉킨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 해결의 급소를 찾아서 움직여줘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 킹핀 개념을 자주 사용합니다. 광주에는 킹핀정책연구소(오승용 소장)가 있습니다.

갑자기 킹핀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터져 나오는 의원들의 각종 비리와 의혹 사건을 바라보며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지난해 12월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홍영표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지난해 12월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홍영표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반정치주의를 확산시키는 기득권 세력은 국회의원들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국회의원은 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그래야 국회의 신뢰가 추락하고 정치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세력의 공격이 먹혀드는 이유 중에 의원들의 ‘특권’이 있습니다. 의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무소불위의 왕권과 독재로부터 국민의 대표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장치입니다. 국회의원은 회기 중에는 좀처럼 체포되지 않습니다. 국회에서 한 발언으로 처벌을 받지도 않습니다. 정당한 특권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부당한 특권이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징계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 징계에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의결과 본회의 의결 두 단계가 필요합니다.

1991년 ‘국회 스스로의 권위를 유지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회상을 정립하기 위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설치됐습니다. 윤리특위는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국회 특별위원회입니다. 현재는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국회법은 국회의원 징계를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30일 이내 출석 정지’, ‘제명’ 등 네 가지로 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 윤리특위가 국회의원 징계안을 가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본회의에 올라가는 징계안도 거의 없습니다.

20대 국회에서 모두 21건의 국회의원 징계안이 윤리특위에 접수됐습니다. 가장 최근에 접수된 것은 손혜원 의원과 서영교 의원 징계안입니다. 윤리특위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징계안을 가결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19대 국회에서는 39건의 국회의원 징계안이 접수됐습니다. 윤리특위가 가결한 것은 2015년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던 심학봉 의원 제명안 딱 한 건이었습니다. 심학봉 의원은 본회의에서 제명안이 통과되기 직전 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18대 국회에서는 54건이 접수됐지만, 윤리특위는 2011년 성희롱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 제명안 1건만 가결했습니다. 제명안은 본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본회의는 제명 대신 ‘30일 국회 출석 정지’를 의결했습니다.

이처럼 국회 윤리특위가 웬만해서는 국회의원 징계안을 가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원들끼리 서로 봐주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2010년에 만들어진 ‘윤리심사자문위원회’라는 조직입니다. 윤리특별위원회는 의원의 징계에 관한 사항을 심사하기 전에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청취하고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교섭단체에서 추천하는 8명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자문위원들은 대개 법률가나 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입니다. 중요한 점은 윤리특위와 달리 이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을 봐줄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최장 2개월 이내에 반드시 의견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자문위원회는 18대 국회에서 14건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3건에 대해 징계 의견을, 11건에 대해 비징계 의견을 냈습니다. 19대 국회에서는 의견 제시 31건 가운데 19건에 대해 징계 의견을, 12건에 대해 비징계 의견을 냈습니다. 자문위원회의 징계 의견은 국회법 규정대로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출석 정지, 제명 등 다양합니다.

자문위원회가 징계 의견을 내도 윤리특위가 ‘존중’하지 않고 반대로 ‘묵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국회 윤리특위는 심사위원회와 달리 처리 시한이 없습니다. 자문위원회에서 징계 의견을 내도 윤리특위에서 한없이 심사와 의결을 미루면 징계가 이뤄지지 않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반 회사원도 잘못을 저지르면 회사에서 징계를 받는 것이 상식입니다. 규율이 엄격한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웬만해서는 징계를 받지 않게 되어 있는 현재의 구조는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손혜원 의원(무소속)이 1월23일 오후 전남 목포의 한 폐공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손혜원 의원(무소속)이 1월23일 오후 전남 목포의 한 폐공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잘못된 구조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제도를 바로 잡으려고 한 국회의원들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서울대 총장 최종 후보자로 선출된 오세정 전 의원이 2017년 9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오세정·주승용·신용현·이동섭·김중로·황주홍·김삼화·김경진·김관영·김정우·채이배·원혜영·유동수·이종걸 등 국회의원 14명이 서명했습니다. 법안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윤리특별위원회가 윤리심사자문위원회로부터 징계에 관한 의견을 제출받은 이후 2개월 이내에 심사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기간 내에 제출하지 못할 경우 의장이 징계안을 본회의에 바로 부의하여 표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세정 의원이 제출한 국회법 개정안은 1년 4개월 동안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의원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의원들은 이런 법을 왜 싫어할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심사 보고서 제출 기한을 2개월로 강제하면 윤리특위가 자문위원회 징계 의견을 부결시키기 어렵습니다. 국회법이 자문위원회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윤리특위에서 본회의에 올린 징계안이나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부의한 징계안을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에서 대놓고 부결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의원직 제명안이라면 몰라도, 공개회의에서의 경고나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출석 정지 정도의 가벼운 징계안을 부결시킬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세정법’의 핵심은 국회의원 징계 권한을 사실상 외부 전문가들의 손으로 넘긴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는 국회의원 개개인으로서는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장에게 경고를 받거나 본회의장에서 사과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치명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낙선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국회의원들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징계안을 법률가나 교수 등 외부 전문가들의 손에 넘기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세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 징계 권한을 사실상 외부 인사들에게 넘겨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되면 뭐가 달라질까요?

국회의원들의 언행이 신중해질 것입니다. 동료 의원이나 기자들 앞에서 저질 발언이나 막말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법원과 검찰·경찰 등에 청탁이나 민원을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작은 것 같지만 절대로 작은 것이 아닙니다.

국회의원의 품위가 올라가면 국회의원과 국회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려 반사이익을 누리려는 기득권 세력의 반정치주의 공세를 약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청탁과 민원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사법부와 행정부에 청탁과 민원을 하지 않으면, 사법부와 행정부에서도 입법부에 청탁과 민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국회의원이 입법부 구성원으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법원이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는 장면에서 어쩌면 우리나라 지배층의 기득권 담합 구조를 깰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싹을 봤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지연, 학연 등 각종 연줄을 동원한 청탁과 민원이 공공성을 위협하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법관, 검사, 고위직 공무원, 언론인 등이 청탁과 민원의 고리를 벗어던지고 서로를 철저히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배층 기득권 담합 구조가 무너지면 그 혜택은 평범한 국민과 대한민국 전체에 돌아갈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국회의원 징계안 심사 기한을 설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징계안을 국회 본회의에 부의해 표결하도록 한 오세정 의원 대표 발의 국회법 개정안은 대한민국 의회 정치 발전의 킹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의회 정치 발전은 대한민국 공동체가 선진국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킹핀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법안을 만들어 제출한 14명 국회의원들의 안목과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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