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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이 꿈꾸던 선거제도 개편, 이번엔 이뤄질까

등록 2019-01-13 11:42수정 2019-01-13 21:30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47
정치개혁특위 연동형 비례대표제 협상 난항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제는 ‘1노 3김’의 유물
총재가 사라진 정당···자율형 정치개혁 고비
노무현의 꿈 “지역구도를 정책구도로 재편”
“다른 지역 정당·지도자 증오 선동은 안 돼”
“대화와 타협의 정치 이루려면 제도 바꿔야”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핵심 쟁점인 의원정수 확대와 지역구 선출 방식을 놓고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을 다루는 1소위원회가 지난 1월10일 처음으로 각 정당과 의원들의 의견을 꺼내놓고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의견은 너무나 제각각이었습니다. 앞으로 이견을 좁혀 절충안을 과연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회의 내용을 거칠게 간추린 회의록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 민주당에서 적극적으로 안을 제출하고 한국당에서도 상응한 입장과 안을 제출해서 정치협상 또는, 소위 논의와 정치협상이 병행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주문.

-장제원 간사, 한국당은 의원정수와 관련해서 확대는 안 된다는 입장이 명확함. 민주당의 입장이 나와야 함. 지역구를 줄이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도농복합을 제시한 것임.

-도농복합에 대해 야 3당은 연동형 도입시 소선거구제와 결합이 맞다는 입장이나 연동형 도입을 전제로 하는 경우 열어놓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임을 확인.

-민주당은 대표성의 불균형으로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반대 입장이 분명함을 확인.

-김종민 간사, 민주당은 정수를 현행으로 유지하고 지역구를 줄이는 것이 기본 방침. ‘지역구 225석 : 비례대표 75석’(3:1)로 했을 때 지역구 줄어드는 28석이 (권역별) 비례에 출마하도록 하면 지역구 수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 도농복합선거구제보다 현역 의원들에게 수용성이 있는 방안이라 생각.

-최인호 의원, 225:75, 지역구 득표를 합산한 복합연동형, 개방형 명부에 대한 각 당의 의견을 밝힐 것을 요구.

-장제원 간사, 민주당 제안은 상원·하원의 개념으로 지역 대표성을 줄이는 것이 훨씬 어려울 것임. 지역구 줄이는 방법론을 제시하면 논의가 빨라질 수 있음.

☞다음 주 화, 목 계속 논의하기로 함.

심상정 위원장 주재로 지난해 연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전체회의를 여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심상정 위원장 주재로 지난해 연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전체회의를 여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심상정 위원장은 정의당, 장제원 간사는 자유한국당, 김종민 간사와 최인호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 ‘야 3당’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의미합니다.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각 정당의 의견 차이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당시 합의문 1항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였습니다. 2항은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였습니다.

원내대표들의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여론을 명분으로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한다고 하면서도 지역구 의석 축소라는 다소 비현실적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정수 확대 없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자신들의 요구를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러는 것일까요? 거대양당이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비난하는 방식의 꼼수로 선거제도 개편을 하지 않으려고 묵시적 담합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속이 타는 것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이른바 ‘야 3당’입니다. 이대로 가면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도박장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두 정당 가운데 한 정당이 득표율보다 훨씬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야 3당은 득표율보다 훨씬 적은 의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제도 개편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저는 구시대에 만들어진 정치 질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제’인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1노 3김’이 만들었습니다.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제’는 두 가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입니다. ‘1노 3김’은 각각 강력한 지역 기반을 갖고 있었습니다. 노태우는 대구·경북, 김영삼은 부산·경남, 김대중은 호남, 김종필은 충청이 기반이었습니다. 30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를 지배한 지역 정당 구도가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둘째, ‘제왕적 총재’들이 만든 선거제도입니다. 당시 네 사람은 각 정당의 총재였습니다. 총재는 정당의 ‘오너’였습니다. 국회의원 공천권과 정치자금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총재가 사라진 뒤 각 정당은 상향식 공천제도를 도입하는 등 당내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의사결정 구조의 부실화로 모든 정당이 심각한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위 선거제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제도 개편은 우리 정치 시스템을 지역 구도에서 정책 구도로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총재가 사라진 정당에서 의원들이 자율적으로 정치개혁을 해낼 수 있는지가 달린 중대한 시험대입니다. 선거제도 개편에 성공하면 우리나라 정치가 민주주의 발전을 향해 한 걸음 성큼 내딛는 것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를 발전시키려고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정치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에 매달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물겨운 발자취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2003년 2월25일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한나라당이 과반을 장악한 여소야대였습니다.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식 동거정부 또는 책임총리제를 연구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지면 총리를 국회의 다수연합이 추천하게 하고 내각을 지휘할 실질적 권한을 주는 방안입니다.

조건이 있었습니다. 독일식 국회의원 선거제도 또는 중대선거구제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를 지역 구도가 아닌 정책 구도로 재편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었습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도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발 사건이 터졌습니다. 탄핵 역풍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152석 과반을 차지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 구상을 다시 가다듬은 것은 2005년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해 국회가 여대야소에서 여소야대로 뒤집힌 뒤였습니다. 바로 대연정 제안입니다.

대연정 제안은 실패했습니다. 정치적 환경에 대한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을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대연정을 해서라도 선거구제를 고치려고 욕심을 부렸던 이유는 자세히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후에 그의 말과 글을 토대로 노무현 재단이 엮고 유시민 작가가 정리한 자서전이 있습니다. 2010년 출판된 <운명이다>입니다. 선거구제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이 매우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어떤 문제는 적절한 시점이 되어 저절로 고쳐지기도 한다. 잠시 덮어 두었다가 적당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공론을 일으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이 있다. 선거제도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모두 1987년 6월항쟁 이후 ‘1노 3김’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금도 그때 만든 틀이 그대로다. 결선투표가 없는 단순다수제 대통령 선거, 역시 결선투표가 없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빈약한 비례대표 의석, 그리고 영호남을 축으로 하는 지역대결 구도 이 모두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개선된 것이라고는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 지지율로 나누기 위해 도입한 1인2표제 하나뿐이다. 그것도 국회가 만든 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덕분에 겨우 도입할 수 있었다. 20년 넘게 우리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 구조 속에서 경쟁하고 대립했다. 선거의 승패도, 국회에서 벌어지는 정당 간의 대립도 모두 지역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전문가와 언론과 국민이 이것을 질타하면서 정책 대결을 주문하지만 소용이 없다. 현행 제도를 고수하는 한 앞으로도 소용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가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예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이다.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는 모두 최종적으로는 정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영남에서는 모든 인재와 자원이 한나라당으로 몰린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으로 몰린다. 그 지역에서는 다른 정당을 통해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반작용으로 충청도에서도 지역당이 끈질긴 생존력을 유지했다. 수도권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신의 출신 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정책 개발보다는 다른 지역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선거운동 방법이 된다. 정책의 차이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감정싸움은 몸싸움으로 전환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발붙이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 문제였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대도시에서 한 선거구에 여러 명을 뽑고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지금처럼 하나만 뽑는 도농복합선거구제라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생각을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보다 더 자세히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사실 대통령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과 연정을 연계시킨 제안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2002년 12월26일 대통령 당선 며칠 후, 노 당선인은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에 참석해 “지역대결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무엇이든 양보할 생각이 있다”며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협상을 정치권에 제안했다. 2003년 1월18일 당선인은 TV 인터뷰에서 “어느 지역도 한 정당이 70~80% 이상 석권하지 못하도록 해 지역 구도가 극복되면 프랑스식으로 과반수 정치세력이 총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2003년 4월2일 대통령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선 기존의 발언을 더 발전시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역 구도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합니다. 지역 구도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 정치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내년 총선부터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가 합의하셔서 선거법을 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저의 제안이 내년 17대 총선에서 현실화하면 저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게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습니다. 이는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을 내놓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분권적 대통령제에 걸맞은 일이기도 합니다. 헌법에 배치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현행 제도 아래서 국무총리의 제청권을 존중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충심으로 드리는 저의 간곡한 제안입니다.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끝이 대연정 제안이었다. 대통령이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총리 결정 권한’, ‘내각구성 권한’, ‘연정’ 같은 것은 그렇게 될 경우 자신의 권한을 양보할 용의를 밝힌 것으로써,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간절함이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제도 개혁 의지는 ‘1노 3김’이 만든 지역 구도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는 지역 구도의 최대 피해자였습니다. 다 아는 얘기지만 그의 정치 역정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그는 부산 동구에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허삼수 민주정의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습니다. 1992년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민주자유당의 허삼수 후보에게 졌습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부산에서 민자당 바람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1995년에는 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장에 도전했으나 민자당의 문정수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1996년에는 지역구를 서울 종로로 옮겼습니다.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신한국당 이명박, 새정치국민회의 이종찬 후보에 밀려 3등에 그쳤습니다. 다시 국회의원이 된 것은 1998년 종로 재보선을 통해서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다시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면 아마 무난히 당선됐을 것입니다. 그는 또다시 지역대결 정치 구도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습니다.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졌습니다. 그리고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런 끈질긴 도전에 대한 보상이 바로 2002년 대통령 선거 승리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왕적 총재’와도 끊임없이 맞서 싸웠습니다. 국회의원을 하면서, 정당 생활을 하면서 당내 민주주의를 요구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당 총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왕적 총재’를 몸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덕분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배신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위 선거제도 개편 협상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서 보고 있다면 뭐라고 말할지 참 궁금합니다. “여보시오, 당신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이러고 있습니까?”라고 일갈하지 않을까요? 특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는 “내가 그렇게 쪼잔하게 정치했습니까?”라고 야단을 칠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를 가장 그리워하는 정치인이 누굴까요?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입니다. 노무현 청와대 첫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내며 ‘엽기 수석’으로 불렸던 사람입니다.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 살림을 이끄는 행정조직의 수장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힘은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타협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막후에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야당 중진들과도 대화가 가능한 그는 요즘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이 시대 최고의 개혁 과제는 선거제도 개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려면 의원정수 늘려야 한다. 권역별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절대 불리하지 않다. 심상정 위원장도 너무 욕심내면 안 된다. 선거제도는 일단 개편을 하는 게 중요하다.”

저는 유인태 총장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명분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예술입니다. 대한민국 주류 기득권 세력에 맞섰던 정치인,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정치인 ‘바보 노무현’의 꿈인 선거제도 개편이 이번 기회에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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