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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녹색당 약진’ 막강 서포터스는 연동형 비례제

등록 2018-12-14 08:20수정 2018-12-14 10:40

정치BAR_유럽 녹색 바람 떠받친 선거제도
독일·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연동형 비례제·완전 비례제 도입
녹색당 2년간 10~20% 득표 돌풍

기후변화·생태주의·소수자 포용…
‘휴머니즘 가진 정치’ 신뢰·지지
극우당 확대 막으려 유권자 결집

독일 바이에른주 녹색당 제2당으로
기사련 제치고 정당득표 1위
‘금융’ 헤센주 20대 3명 의원 입성

룩셈부르크 총선, 창당 뒤 최고 성적
네덜란드 녹색좌파당 14석 도약
반이민·유럽연합 탈퇴 주장 막아
독일 녹색당 남성 당대표 로베르트 하베크와 독일 바이에른주 녹색당 남성 대표 루트비히 하르트만이 지난 10월 뮌헨에서 열린 바이에른주 주의회선거 결과 파티에서 당원과 지지자들 위로 몸을 던져 이 지역 제2당이 된 결과를 자축하고 있다. 뮌헨/dpa 연합뉴스
독일 녹색당 남성 당대표 로베르트 하베크와 독일 바이에른주 녹색당 남성 대표 루트비히 하르트만이 지난 10월 뮌헨에서 열린 바이에른주 주의회선거 결과 파티에서 당원과 지지자들 위로 몸을 던져 이 지역 제2당이 된 결과를 자축하고 있다. 뮌헨/dpa 연합뉴스
유럽에 녹색 바람이 분다. 최근 2년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 치른 선거에서 녹색당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10∼20% 득표율로 거대 정당을 뛰어넘으며 약진했다. 지난 10월 독일 주의회선거(바이에른주, 헤센주)에선 녹색당이 득표율 20%에 육박했다. 독일 금융 중심지 헤센주에선 21살(1997년생), 23살(1995년생), 28살(1990년생) 등 ‘녹색당 20대 3명’이 주의원으로 동시 입성했다.

녹색당의 돌풍은 기후변화·환경파괴에 대응한 생태주의, 유럽연합(EU) 통합 노선, 소수자·난민 포용 등 인권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한 데 따른 신뢰라는 분석이 많다. 기성 정당에 대한 실망감과 극우정당 확대를 막으려는 유권자의 방어심리가 녹색당 지지로 모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여기에 녹색 바람의 가속도를 높인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선거제도다.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운용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정당 득표율로 나눈 ‘정당별 의석수’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적으면 비례대표 의석으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최근 한국에서 선거제도 개편의 주요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지역구 선출 없이 정당 득표율로만 의석을 100% 나누는 완전 비례대표제를 시행한다. 민심의 정당 지지를 의회 구성에 최대한 반영하려는 선거제도가 대안 정당을 찾으려는 유권자의 선택 폭을 넓혀준 것이다.

■ 녹색 돌풍

“사람들은 휴머니즘을 가진 정치를 원한다. 우리는 이 기본적인 것에 답했다. 환경보호, 여성주의, 유럽연합 지지는 우리가 변함없이 믿는 사실이다.”

독일 바이에른주의 녹색당 남녀 공동대표 가운데 여성인 카타리나 슐체(33)는 지난 10월 바이에른주 선거에서 ‘녹색당 약진’을 이렇게 평가했다. 녹색당은 보수색이 강한 바이에른주에서 이전 선거 득표율(8.6%)의 갑절인 17.6%(205석 중 38석)로 제2당이 됐다. 창당 이래 이 지역 선거에서 거둔 최대 성과다. 녹색당이 얻은 38석 가운데 6석(뮌헨 5석, 뷔르츠부르크 1석)은 녹색당이 이 지역에서 얻은 최초의 지역구 의석이다. 한국 녹색당원이자 독일 녹색당 당원인 교민 유재현씨는 “내가 뮌헨 지역 녹색당 모임에서 직접 지역구 후보로 뽑은 우리 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된 건 역사적”이라며 기뻐했다.

바이에른주에서만 활동하며 이 지역 패권을 누려온 기독사회연합(37.2%),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 사회민주당(9.7%)은 이전 주의회선거보다 10%포인트 이상 표를 잃었다. 특히 이 지역 주도인 뮌헨에서 녹색당이 지역정당 기사련을 제치고 정당 득표율 1위를 한 것도 ‘파란’이다.

이어 치러진 독일 헤센주 주의회선거에서도 녹색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당 기독민주연합(27.4%), 메르켈 정권의 연정 파트너 사민당(19.6%)은 이전 선거보다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녹색당은 3위(19.5%·137석 중 29석)로 이들을 위협했다. 녹색당은 처음으로 이곳에서 지역구 의원(5명)을 배출했다. 그중 2명은 1989년생 여성이다. 녹색당 돌풍으로 요약된 두차례 주의회선거 뒤 기민련 대표 메르켈 총리, 기사련 대표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부 장관이 각각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10월 룩셈부르크 총선에서도 녹색당(15.1%)은 전체 60석 중 9석을 얻었다. 1983년 녹색당이 룩셈부르크에서 창당한 뒤 최고 성적이다. 역시 10월 치른 벨기에 브뤼셀 지방선거에선 녹색당(16.8%)이 제2당이 됐다. 지난해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선 32살 예서 클라버르 대표가 이끈 녹색좌파당이 기존 4석에서 14석(150석 중)으로 도약했다. 특히 수도 암스테르담에선 28개 정당 가운데 득표율 1위(19.3%)를 차지했다. 이 선거에서 ‘반이슬람, 반이민, 반유럽연합’을 내세워 제1당을 노리던 극우세력 자유당(20석)의 확장을 인권·관용·통합을 주장한 녹색좌파당의 돌풍이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선거에선 무소속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전 녹색당 대표가 결선투표에서 극우성향 후보를 꺾었다. 그는 대선 이전까지 녹색당 소속이었다. 그가 속했던 오스트리아 녹색당은 2017년 분당 전 총선에서 창당 이래(1982년) 최고 득표율(12.4%)을 기록하기도 했다.

■ 왜 녹색 바람?

이런 선전은 녹색 가치를 꾸준히 지키고, 녹색 정치세력이 연대해 민심의 주목도를 높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럽의 반전·반핵·평화·환경·여성운동 세력들은 1970년대부터 각 나라에서 정치세력화하기 시작했다. 녹색당은 1980년대 벨기에(1981년), 독일(1983년), 오스트리아(1986년), 네덜란드(1989년) 차례로 연방의회에 처음 진입했다. 독일 녹색당은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보수정권을 끝내고 1998년 집권했을 때 ‘적-녹 연립정부’에도 두 번이나 참여했다.

녹색당은 유럽연합 의회에서 ‘녹색·유럽자유연맹’이란 이름으로 연대하며, 유럽연합 체제를 옹호하고 난민·이민·환경문제에 함께 대처하고 있다. 녹색당은 5년마다 세계녹색당 총회를 열어 공동 행동도 모색한다. 지난해 3월 영국에서 열린 제4차 세계녹색당 총회에선 기후변화 저지, 소수자 혐오와 차별 배제, 여성·청년의 정치참여 강화, 비례대표 확대 등을 위한 공동 노력에 의견을 같이했다.

최근 유럽에서 정치적 힘을 키우는 극우정당의 대척점에 선 녹색당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독일 바이에른주 선거 결과는 이런 현상을 비춰주는 사례다. 당시 기사련은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표를 뺏길 것을 우려해 ‘국경 지역 강화, 난민 수 제한,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등 강경 목소리를 냈다. 배타와 배제를 주장한 기사련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민주주의를 표방한 당의 가치와 충돌했다. 독일 언론은 ‘합리적 보수 가치를 추구하는 바이에른주 중산층의 기독교 유권자’들이 기사련에 등을 돌리고, 포용적 태도를 지킨 녹색당에 표를 줬다고 분석했다. 당시 한 유권자는 독일 일간지 <타츠>와 한 인터뷰에서 “보수적인 기사련 지지자였으나 (그들의 태도는) 기독교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대중을 선동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녹색당을 택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환경문제에 대한 유럽 사회의 인식이 높아진 것도 이들 분야에 실질적 대안을 꾸준히 제시한 녹색당에 긍정 요인이 됐다. 독일 헤센주 선거에서 녹색당을 찍었다는 한 유권자는 독일 언론 인터뷰에서 “‘실제적으로 세상을 구하자’는 녹색당 메시지에 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 녹색 바람을 떠받친 선거제도

의미 있게 눈여겨볼 것은 선거제도에 따라 유럽 안에서도 녹색 바람의 편차가 있다는 점이다. 영국 녹색당은 1970년대 초반부터 다른 나라 녹색운동의 흐름과 함께했지만 첫 하원의원은 2010년에야 배출했다. 하원 650명 전체를 소선거구제(한 지역구에서 최다 득표자 1명 당선) 방식으로 뽑는 장벽 때문이다. 영국 녹색운동 30여년 만에 값진 1석을 얻었지만 영국 선거제도에서 녹색당이 마주한 한계도 보여줬다.

반대로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등에서 녹색당은 전체 의석을 정당 득표율로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발판 삼아 선택 가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녹색당은 2012년 창당했다. 인간을 넘어 생명체에 대한 존중, 환경파괴와 모든 종류의 차별·혐오에 맞서는 녹색당의 가치는 한국 정치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유럽의 녹색당이 증명하고 있다. 다만 어떤 선거제도를 두느냐에 따라 녹색당 같은 다양한 정치세력의 ‘의회 진입’이 결정된다는 것도 유럽 녹색당 사례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손어진 정치학 박사과정(독일 치타우·괴를리츠대학), 한국-독일 리서치그룹 ‘소나기 랩’ 연구원

※손어진씨는 박사과정을 밟으며 ‘독일 통일 이후 신자유주의 노동개혁(하르츠 IV)이 구동독 지역 청년들의 정치적 태도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독일의 선거제도, 진보정당(녹색당·좌파당), 정당정치, 청(소)년들의 정치참여 등이다. 한국-독일 리서치 그룹 ‘소나기 랩’(https://sonagilab.com)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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