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 셋째)가 지난 9월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저임금법 시행령 관련 경제단체 간담회에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겨레> 송경화 기자가 ‘정치바 송경화의 올망졸망’에 “‘4시간 의총’ 뒤 바른미래당은 결국 ‘바미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쓴 것은 10월 9일이었습니다.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를 논의한 의원총회를 전달한 기사입니다. ‘바미하다’는 일부 바른미래당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통하는 은어였습니다. 송경화 기자는 ‘바미하다’의 의미를 “총의를 모으지 못하거나 이견만 확인하거나 때론 고성이 오가거나 겨우 결론이 나도 O냐 X냐가 아닌 절충안이 ‘갑툭튀’하는 애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송경화 기자가 이런 기사를 쓴 것은 꼭 바른미래당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바미하다’ ‘바미스럽다’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퍼져 나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바른미래당을 조롱했습니다. 영어 바르미(barmy)가 “약간 제정신이 아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는 설명도 뒤따랐습니다.
바른미래당 사람들은 마음이 많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바른미래당의 주이삭 부대변인이 닷새 뒤 “우리는 더욱 ‘바미’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습니다.
“바미하다”
얼마 전, 한 기사에서 ‘바른미래당의 의사 수렴 과정에서 보여주는 지난함, 찬성·반대도 아닌 절충안을 내는 행위’를 일컬어 ‘바미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찬반 논리에 따라 어느 한 입장만을 고수하는 ‘바미하지 않음’이 옳은지 반문해본다.
이념 논리로 국민을 선동하고 양분시킨 기득권 양당 정치 속, 소외된 민생을 살피는 ‘진짜 정치’를 위해 바른미래당이 탄생했다.
실제로, 양극단의 싸움을 중재하고 파행을 막아온 세력은 언제나 바른미래당이었다.
헌정 이래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가 한자리에 모여 치열하게 논의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바미함’이 ‘국민을 위한 진짜 정치’인 셈이다.
우리는 더욱 ‘바미’할 것이다.
정쟁과 분열로 얼룩진 정치판속, 불편하고 어색한 우리의 ‘바미함’을 국민께서 응원해주시리라 확신한다.
양당 체제에서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는 바른미래당의 곤궁한 처지를 오히려 ‘대안을 찾기 위한 치열한 모색’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정치의 본질을 꿰뚫은 뛰어난 논평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대변인 논평 한 줄로 바른미래당에 대한 시선이 개선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경향신문> 이용욱 정치부장이 11월 12일치 신문에 ‘한국당과 한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바른미래당의 힘들었던 과거를 길게 설명한 뒤, 이용욱 부장은 이렇게 결론을 맺었습니다.
쓴소리가 길었지만 당을 접으라는 저주는 절대 아니다. 명분 없던 과거를 인정하고, 지질한 현재를 반성해 거듭나라는 충고쯤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당신들이 내세우는 보수개혁의 구호나 가치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 때문에라도 당신들은 이렇게 없어져서는 안된다. 한반도 평화 무드에 색깔론을 덧씌우고, 쇄신을 위해 삼고초려했다는 인사를 밥그릇 싸움 때문에 내쫓은 한국당은 탄핵 이전보다 더 뒷걸음쳤다. 음식으로 치면 불량식품이다. 바른미래당이 맛없는 음식이라지만, 불량식품처럼 배탈은 안 난다.
그러니 일단 살아남으라. 한국당과 닮아가는 게 아니라, 더 거리를 둬야 할 것이다. 한국당이 바라는 형태의 보수통합에는 콧방귀를 뀌어라. “박정희가 훌륭했다”고 떠드는 모 의원이 한국당행을 원한다면 주저 없이 놓아줄 것을 권한다. 그래야 이성 있는 보수가 될 수 있다.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한국당이라는 것은 국민들에게도 슬픈 일이다.
이용욱 부장은 바른미래당에 새로운 보수, 개혁적 보수, 합리적 보수, 이성 있는 보수를 기대한 것입니다. 저도 이용욱 부장의 생각에 공감했습니다.
문제는 바른미래당이 얼마나 합리적 정책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뒤 바로 그런 합리적 정책 대안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11월 20일 국회 본청 바른미래당 대표실에서 ‘한반도 경제공동체 실현과 남북중 역할-북한 경제개발 전략을 중심으로’라는 정책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최고위원과 한중차세대지도자포럼, 통일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였습니다.
하태경 의원은 부산 해운대갑 재선 국회의원으로, 매우 개성이 강한 정치인입니다. 하태경 의원은 토론회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제가 한-중 차세대 지도자 포럼 대표다. 중국 고위층과 정례적으로 현안에 대한 협의를 한다. 3주 전쯤 의원 열분을 모시고 중국에 갔는데 오늘 토론 주제인 ‘한반도경제공동체 실현과 남북중 역할’에 딱 맞는 논의를 했다.
중국 중앙당교(중국 공산당의 고급 간부를 양성하는 국립 교육기관)를 방문했는데 당교측과 남북중 경제공동체 포럼을 같이 추진하기로 했다. 창구를 한국 쪽은 한중차세대지도자포럼이 맡고 중국은 당교가 역할을 하고 북한 쪽은 중국 당교가 얘기를 좀 해 보겠다고 했다.
중국 당교가 한 얘기는, 북한에서 제재 완화에 대비해서 본격적인 개혁 개방을 준비하고 있고 그래서 조선개방감독국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개방감독국은 과거 박정희 정부 때 수출을 주도했던 경제기획원처럼 북한의 개혁 개방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기구다. 이 기구에서 일할 간부들을 중국 당교에서 교육을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연내에 수십명을 중국 대련에서 1차로 교육을 하기로 했고, 내년에는 더 큰 규모로 교육이 진행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이뤄지려면 비핵화가 진전되고 제재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 어쨌든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구체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도적인 개혁 개방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도 미래 대비 차원에서 이런 주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손학규 대표도 토론회에 참석해서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저도 남북관계와 북한 문제 그리고 중국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작년에 한참 전쟁 위협 속에 있었을 때 ‘꼭 전쟁이 나겠는가’ 생각하면서도 제일 걱정되는 것이 ‘남북 긴장 관계가 고조될수록 북한 경제가 남한과 단절되면 어떻게 하나’였다.
북한의 자원이 중국에 의해 독점되고, 지하자원뿐만 아니라 해양자원까지도 중국에 의해서 독점되어 있다. 우리 남북, 한반도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가,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이룩하고 북방으로 우리 경제를 연장하는 것인데, 이것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다. 작년 같으면 이러다가 자칫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지금은 언제 그런 전쟁 위협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남한의 많은 분들이 금강산에 갔다. 저는 경기도지사를 할 때 북한의 벼농사 지원 사업을 하면서, 북한 경제가 살아야 남북이 앞으로 통일의 가능성을 멀리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남의 나라같이 서로 도움이 되도록 교류를 해서 북한의 개혁 개방이 이루어져야 먼 훗날에 통일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본다.
그러한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것이 남북만 가지고 되진 않는다. 중국과 같이 해야 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러시아가 빠져 있는데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남북중이 북방경제를 이루어서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놀랍지 않습니까? 손학규 대표와 하태경 최고위원의 한반도 평화 및 경제에 대한 식견과 열정은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색깔론으로 비판하면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사실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에 제정신을 차리고 ‘합리적 보수’로 거듭났더라면, 바른미래당의 정치적 생존 공간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른미래당 의원들도 지금쯤 자유한국당이나 민주평화당에 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합리적 보수’와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갔고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그 이후 꾸려진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도 당내 친박세력을 쳐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뭘 몰라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8월 자유한국당의 김성태 원내대표가 정기국회를 앞두고 ‘우리는 야당이다’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 정치지형과 프레임
6·13 지방선거 압승을 기반으로 충분한 동력을 확보한 민주당은 정의당과 민평당을 우호적 위성정당으로 강하게 포섭하면서 정책 드라이브를 가속화할 안정적인 과반수 의석으로 ‘범진보 블록화’시도
상대적으로 ‘범진보 대 (극우)보수’ 프레임에 갖히게 된 자유한국당은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과거지향적 수구세력’으로 낙인찍힐 가능성
□ 이념적 포지셔닝
범진보 진영 내에서 ‘진보’의 이념적 좌표를 정의당이 설정하고, 기본성격상 리버럴 부르조아 정당인 민주당이 스스로의 이념적 좌표를 ‘(중도)보수’로 설정하게 될 경우
☞자유 한국당 ‘리버럴 보수정당’으로서 민주당과 경쟁하지 않을 경우 이념적으로 ‘극우’ 포지션에 내몰릴 가능성 경계해야
□ 이념적 프레임
대중의 현재적 정치적 인식지형이 기본적으로 ‘좌파 대 우파’로 설정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상대를 ‘좌파’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점점 더 ‘우파’ 프레임에 강하게 제한해 온 전략적 오류를 극복하고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편향된 경도된 사고에서 벗어나 ‘리버럴 마인드’ 갖출 필요
사람이든 정당이든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것과 이를 바로 잡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제언대로라면 자유한국당은 지금쯤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편향된 경도된 사고에서 벗어나 ‘리버럴 마인드’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태극기 부대’가 자유한국당에 대거 입당했습니다. 김무성 정진석 등 중진 의원들은 아무런 대안도 없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며 맹목적으로 반북 발언을 쏟아내는 등 색깔론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과거지향적 수구세력’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행동은 결국 ‘리버럴 보수 정당’의 공간을 바른미래당에 점점 더 많이 내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부대 회원들이 지난 2월28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각하를 촉구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영국의 자유당은 보수당과 함께 영국 정당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정당이었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를 거치며 몰락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노동계급의 부상, 참정권 확대, 아일랜드 독립, 상원 권한 축소, 노동운동과 생디칼리즘의 도전 등 영국 사회 내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강원택, 2013,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영국 자유당의 역사)
강원택 교수는 “고통스러운 자기혁신을 통해 시대적 변화와 유권자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언제라도 쉽사리, 그리고 급속하게 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국 자유당의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서문에 썼습니다. 강원택 교수는 책을 펴내며 민주당 사람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은 자유한국당 사람들이 강원택 교수의 말을 더 잘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자유당의 자리를 노동당이 대체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자리를 바른미래당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무려 112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거대한 정당입니다. 대구·경북에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2020년 총선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바른미래당은 겨우 30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작은 정당입니다. 그나마 몇몇 사람은 민주평화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정계개편의 소용돌이를 견뎌낼 수 있을지 위태롭기만 합니다.
그래도 저는 바른미래당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바른미래당의 바로 그 ‘바미함’ 때문입니다. 주이삭 부대변인의 표현대로 “치열하게 논의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바미함’이 ‘국민을 위한 진짜 정치’”일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cosmos 질서)는 카오스(chaos 혼돈)의 자식입니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는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에서 태어난 새로운 존재가 막강한 능력으로 우주를 구원한다는 식의 설정이 많이 등장합니다. 뱀파이어(흡혈귀)와 라이칸(늑대인간)의 혼혈이 두 종족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설정도 있습니다. 공상과학이나 허구일 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면역체계 일부는 네안데르탈인의 선물이라는 과학자들의 분석이 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에 저항력을 갖춘 돌연변이 일부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현생 인류에 전달됐다는 것입니다.
잡종강세(雜種强勢)라는 말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품종 또는 계통을 교배시키면 그 잡종 1세대가 양친보다 우수한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 현상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함, ‘바미함’이 어쩌면 새로운 보수, 대안 보수로 진화하는 진통의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미래당을 “곧 분해될 정당”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썩 좋은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바른미래당이 과연 어떤 정책 대안을 내놓는지, 그 정책 대안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보수’, ‘대안 보수’의 희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미래당은 11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아파트 특별위원회’에 장진영 변호사를 임명했습니다. 불교 특별위원회(조환기), 기독교 특별위원회(오경태), 천주교 특별위원회(김관수)를 설치했습니다. 다른 정당에는 없는 기구들입니다. 뭔가는 다른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26일과 27일에는 호남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합니다. 26일에는 농업의 미래를 위한 간담회를 하고 전북도와 예상정책협의회를 합니다. 새만금개발청 새만금사업관리본부를 방문해 간담회도 합니다. 27일에는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광주형 일자리 해법 모색을 위한 간담회를 합니다.
호남은 손학규 대표가 각별한 애정을 가진 곳입니다. 손 대표는 2014년 7·30 재보선에서 경기 수원병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 만덕산에서 몇 년 동안 묻혀 지냈습니다.
<한겨레>에서는 김미나 기자가 이번 바른미래당 호남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출장을 갑니다. 손학규 대표가 호남에서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는지, 호남은 손학규 대표와 바른미래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미나 기자가 전해드릴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