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30일 오후 청와대 본관 주변 정원을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한 기간(10월28~30일) 동안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도 따로 만난 사실이 31일 뒤늦게 밝혀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어제(30일) 비건 대표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기 전에 윤건영 실장을 면담했다. 미국 쪽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윤 실장이 1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 정의용 특사가 파견될 때 대표단으로 방북해서 북쪽 인사들과 소통했던 경험도 있고, 2차 정상회담 때도 배석했다”며 “청와대 직책상 1~3차 정상회담을 포괄적으로 준비하는 곳이 국정상황실이다 보니 비건 대표 입장에서 만나야 할 청와대의 실무 책임자로 판단한 듯 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비건 대표는 서울에 머문 동안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외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물론 물론, 청와대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등을 두루 만났다. 한-미 양국은 북한 비핵화 관련 공조 강화를 위한 워킹그룹(실무단) 구성에 합의했다.
청와대는 이 워킹그룹에 대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양국이 긴밀하게 논의하기 위한 기구라고 설명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사이에 더욱 긴밀한 논의를 위한 기구로 안다. 비건 대표가 이 일을 맡은 이후 개인 차원을 넘어 좀 더 체계적으로 논의를 하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좀 더 긴밀한 소통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얘기할까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그(워킹그룹 설치)에 대해 우리 정부도 동의한 것”이라며 “어떻게 구성하고 소통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비건 대표가 비핵화 ‘공식 라인’이 아닌 임종석 비서실장과 윤건영 실장까지 면담한 배경을 놓고, ‘한-미간 이견 조율’, ‘경제협력 속도조절’ 등의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비건 대표가 그런 구체적인 주문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다만 대북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자신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소통을 강화하고 싶다는 바람을 주로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비건 대표의 이번 방한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한-미간 이견 조율보다는 대북정책을 전담하고 있는 미 국무부 내 비건 대표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성격이 짙어 보인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강경화 장관-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비건 대표-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등 두 나라 사이의 소통창구가 상시적으로 가동되고 있으나, 오히려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 내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점을 보완하기 위한 성격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3차 남북정상회담 직전 폼페이오 장관이 강경화 장관에게 남북군사합의서와 관련해 ‘항의’를 한 데에는 미국 정부 안에서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컸다고 한다. 강 장관은 당시 폼페이오 장관에게 “미 측 내부적으로 확인해보라”고 답한 바 있다.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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