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국을 방문 중인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1시간가량 만났다. 미국 쪽 요청으로 이뤄진 이번 만남은 그 자체가 이례적이다. 임 실장이 남북정상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는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등 외교·안보에 관한 사안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주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국 정치는 물론 외교·안보에 관한 정책에 영향력이 큰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싶어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비건 대표는 지난 8월말 임명 직후 첫 방한 때인 9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바 있다. 이번이 네번째 방한이어서 그동안 정의용 실장은 물론, 외교부의 강경화 장관과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과도 면담했다.

청와대는 임종석 실장과 비건 대표의 면담과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그리고 2차 북미회담 진행 사안에 대해 심도깊은 대화가 오갔다. 임 실장은 비건 대표에게 북미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고 비건 대표는 한국의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날 면담 자리에는 우리 쪽에선 권희석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이 배석했다. 미국 쪽에선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케빈 킴 비건 대표 선임보좌관 등이 함께했다.

청와대 쪽은 구체적인 면담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 북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방안 등을 논의할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있는 민감한 시점이라 양쪽이 보안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다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비건 대표의 이번 방한이 “북-미 실무 접촉에 관한 것보다는 한-미간 조율 성격이 짙다”고 전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한-미간 이견 조율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뤘을 것으로 보인다. 임 실장은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연내 종전선언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 연동된 만큼 이에 관해 협조를 요청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청와대는 비건 대표가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면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