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의원은 생전에 “(정치인은) 사람들의 마음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밤 늦게 퇴근해 지하철역으로 가는 15분. 하루 중 이때가 가장 좋다. 일로 얽힌 메신저도 잠시 안녕. 머리도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이 길을 걷다 사먹는 천원 짜리 핫도그도 참 맛있다. 핫도그마저 싫증나면 어쩌나 싶어 케첩을 직선으로 쭉, 한번은 지그재그, 어떤 날은 동글동글 뿌리다가 풋, 웃음이 나왔다. ‘심장이 두 개인 듯 가슴 뛰던 때도 있었는데….’ 다른 직장인들도 더러 그럴까. 무난하지만 무료한 심장 박동이 반복된다는 느낌.
연필을 들고 내 얼굴을 그려보았다. 맘에 드는 것만 남겨둔 휴대전화 사진 모음에 없던 얼굴이 종이 위에 나타났다. 군대 시절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 것도 보였고, 그 시절 가수 권진원의 ‘살다보면’을 자주 듣던 기억도 떠올랐다.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라고 위로하던 그 가사를 되뇌다 그림의 입꼬리를 고쳐 살짝 올려보았다. 잠시나마 내 얼굴의 입꼬리도 따라 올라갔다. 어머니 얼굴도 종이에 옮겨보았다. 참 고우셨는데, 볼이 핼쑥해졌네, 이 주름들은 그 일 이후 생겼던 건가, 그때 많이 마음 아파하셨지. 얼굴 어느 부분에선 연필이 머뭇거렸다. 평소 찬찬히 어머니 얼굴을 들여다보지 못한 탓이었다.
한 화가는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는 것을 ‘연필로 그리는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그 얼굴에 쌓인 감정, 세월과 마주하며 이 사람 마음에 한두 발짝 다가가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 관련 책을 써온 김충원씨는 “그리려면 그것을 들여다봐야 하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몰랐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3년 전 <한겨레21> 근무 당시 진행한 ‘얼굴 그림 공모’에 참여한 이들의 소감도 그러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린 한 손녀는 “다 그리고 나서 왜 눈물이 나던지, 할머니 생각을 한참 했어요”란 글을 함께 보내왔다. 자기 얼굴을 그린 젊은 남성은 “내가 이렇게 생긴 줄 몰랐네요. 그리는 동안 힘든 현실을 하늘의 달 속에 맡기고 잠시 평안함을 누렸어요”라고 했다. 카페에서도 회사 자료를 뒤적여야 하는 애인을 그린 남자친구는 “다 그린 뒤 보여주니 환히 웃더군요. 그림이 따뜻해 보인다면서.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너를 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란 마음을 실어 그림을 보내왔다.
그런데 막상 그리려면 손이 얼어붙는 마법에 빠진다. 어린 시절, 큰 동그라미 안에 작은 동그라미 몇 개, 직선 몇 개를 그리고 얼굴이라 말하던 자유롭고 창의적인 내 손이 아니다. 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등은 ‘최대한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잘 그리는 것’이란 생각을 덜어내라며 몇 가지를 설명해주었다.
―준비물은 간단해요. 연필, 종이, 그리려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떠올리기.
―화가 ‘고흐’처럼 되려는 건 아니죠? 얼굴 그림은 ‘눈이 이랬구나, 어? 코는 이랬네, 뭐지? 근심이 서려있네’하며 상대와 내가 그림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죠.
―마지막 하나. 어린 시절 그 창의적 손은 어디 가지 않고 아직 내 손에 숨어있다는 점.
문득 정치인들도 자기 얼굴 그림을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은 추석 연휴 내내 지역 주민을 만나 허리를 숙일 것이고, 지역 민심이 이렇다며 언론에 공개할 것이다. 그 시간을 조금 떼내어 10~20대 시절 얼굴과 지금의 얼굴을 쓱쓱 그려보는 것이다. 나의 얼굴과 눈빛에서 사라진 것은 없는지,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에 무엇이 더 달라붙었는지, 내 얼굴에서 나는 무엇을 숨기고 있고, 지금 내 얼굴은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지 살펴보는 것이다. 고 노회찬 의원은 생전에 “(정치인은) 사람들의 마음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연필로 그리는 사랑은 어렵지 않다. 추석에 떠오를 달처럼 둥근 동그라미부터 그려보는 것이다. 그러곤 내가 그린 상대에게 이런 글을 덧붙여 건네는 것이다. 당신의 남편이, 아빠가 딸에게, 딸이 엄마에게, 오빠가 동생에게, 하늘에 계시는 아빠에게, 나를 위로하며 내가 나에게.
송호진 정치에디터석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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