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 TV토론에 출연한 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후보. 한겨레 자료사진
8월10일 치 <한국일보> 5면에는 ‘정치 인사이트-여야 50대 리더 부재 왜?’라는 기획 기사가 실렸습니다. ‘새 가치 구현 실패-차세대 리더 부재-올드보이 귀환 악순환’이라는 제목을 달고 김진표·이해찬·김병준·손학규·정동영 다섯 사람의 얼굴 사진을 실었습니다. 보조 기사는 세대교체가 파격적으로 이뤄진 다른 나라의 사례였습니다. 제목이 이렇게 달려 있습니다.
20년 간격 뛰어넘어… 3040 리더 세운 프랑스·오스트리아·뉴질랜드
佛 역대 최연소 대통령 마크롱
장관 등 역임한 경력이 뒷받침
세계 최연소 지도자인 쿠르츠
오스트리아서 기록의 연속
‘뉴질랜드 힐러리’ 불리는 아던
4선 지낸 능력 인정받고 총리로
“한국 정치신인, 진입장벽 높아
단기간에 등장하긴 어려워”
더불어민주당의 민병두 의원이 저에게 보조 기사를 읽어보라고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삼김이 삼십년, 96 이전 국번이 20년···한국은 정치적 과두체제의 나라”
무슨 암호문 같지요? 최근 민병두 의원과 우리나라 정치에서 세대교체가 안 되는 현실에 대해 대화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에 이른바 삼김(실제로는 김영삼·김대중 양김)이 등장한 것은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전당대회였습니다. 김영삼-김대중-이철승 세 사람이 ‘40대 기수론’으로 돌풍을 일으킨 것입니다. ‘40대 기수론’에 대해 당시 65세였던 유진산 당수는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의미의 구상유취(口尙乳臭)라는 한자어로 비웃었지만, 국민은 젊은 정치인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 이후 대략 2000년까지 30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사람이 경쟁하고 협력하며 이끌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특히 양 김 씨는 박정희·전두환 독재와 맞서 민주화 투쟁을 했고, 1987년 6월 항쟁에 동참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차례차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김종필 씨는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도왔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외환위기를 맞는 바람에 1998년 퇴임과 동시에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3년 퇴임 뒤에는 특별히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출마해 10선 국회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3김씨의 뒤를 이어 많은 사람이 총재, 대표, 대선후보의 이름으로 각 정당을 이끌었습니다. 얼른 떠오르는 사람만 열거해도 한나라당 이회창·박근혜·강재섭·안상수·김무성·홍준표, 민주당 정세균·손학규·정동영·김근태·문희상·신기남·이해찬·김한길·문재인·추미애, 국민의당 안철수·박지원, 바른정당 유승민 등입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최근 당 대표로 복귀했거나 복귀가 유력한 상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후보,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후보, 민주평화당의 정동영 대표가 그들입니다. 언론에서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라는 부르는 현상입니다.
혹시 내년 초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홍준표 전 대표가 출마해서 다시 당선된다면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그야말로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민병두 의원이 ‘96 이전 국번이 20년’이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일까요? 대학 학번처럼 국회에 들어온 해를 ‘국번’이라고 표현하면, 1996년 국회에 들어온 사람은 ‘96 국번’이 됩니다. ‘96 이전 국번이 20년’이라는 뜻은 1996년 이전에 국회에 들어온 정치인들이 2000년부터 지금까지 대략 20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를 말아먹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 정치적 과두체제의 나라’라는 말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3김 이후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96 국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사람들 가운데 안상수·김무성·홍준표·정세균·정동영·김근태·신기남·김한길·추미애 등이 ‘96 국번’입니다. ‘96 이전 국번’은 강재섭·문희상·이해찬·박지원 정도겠네요. 손학규 전 의원은 1993년 경기도 광명 재보선으로 당선된 ‘93 국번’입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98년 4월 대구 달성 재보선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니 ‘98 국번’, 이회창 전 총재는 1999년 6월 서울 송파갑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됐으니 ‘99 국번’이지만, 16대 국회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니 ‘96 국번’들과 동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참고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에 국회의원이 됐고 안철수 전 대표는 2013년 4월에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아무튼 ‘96 이전 국번’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여전히 이끄는 현상은 별로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도대체 왜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세대교체가 잘 안 되는 것일까요?
국회의원을 지내고 정치평론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정두언 전 의원이 <시비에스>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진행자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올드보이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세상은 많이 바뀌었는데 10년 전 사람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정치권이 세대교체가 안 되고 있는데 저는 이걸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냐 고민해 봤는데 답은 잘 안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노령화 사회로 가는 부작용, 그늘이 아닌가 싶어요.”
-노령화 사회가 정치권에도?
“그러니까 너무 은퇴하고도 살아갈 날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굵고 짧게가 아니라 얇고 길게 살자. 이런 풍조가 만연되는 것 같고 특히 정치권이 그런 것 같아요.”
-그분들이 나오고 싶어서 나왔다기보다 내가 희생하려고 당을 위해 나왔다, 이런 거 아니에요?
“희생은 무슨 희생이에요, 당 대표하는 게. 그러니까 노후 대책이 안 돼 있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그러니까 남은 여생을 내가 이렇게 살겠다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판에서 못 벗어나는 거죠.”
-노령화의 그늘이다?
“또 그 사람들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젊은 정치인들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도전을 해야 되거든요. 과거에 이 사람들이 젊었을 때 어떻게 했냐면 계급장 떼고 싸우자. 대통령한테도 바른 소리 하고 그랬던 사람들이에요.”
-그랬던 분들이다.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그런 패기 있는 분들이 안 나타나니까 이분들이 다시 나오는 거다?
“네, 위아래가 다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정치판이 지금 분위기가 안 좋습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올드보이들의 귀환’에 대해서는 “고민해 봤는데 답은 잘 안 나온다”고 한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질문을 다시 한 번 가다듬어 보기로 하지요. 우리나라 정치에서 세대교체는 왜 잘 안 되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은 “다른 나라, 특히 정치 선진국에서는 세대교체가 잘 된다”는 전제 위에 성립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세대교체가 잘 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답은 앞에서 소개했던 <한국일보> 기사 내용에 정확히 나옵니다.
해외에서 최근 정치 전면에 등장한 리더들 가운데 연령으로 보면 바로 윗세대를 제치고 자신들의 시대를 연 인물들이 눈에 띈다. 에마뉘엘 마크롱(41) 프랑스 대통령과 제바스티안 쿠르츠(32) 오스트리아 총리, 재신더 아던(38) 뉴질랜드 총리는 모두 전임자와의 나이 차가 20년에 달한다. 기성 정치에 답답함을 느낀 30·40세대가 형님 세대를 ‘패싱’하고 직접 깃발을 든 것이다.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지난해 취임한 마크롱은 1977년생으로 1954년생인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보다 23세나 어리다. 하지만 그는 뜬금없이 등장한 ‘벼락스타’가 아니었다. 청년 마크롱은 탁월한 지적 능력과 프랑스 엘리트 사회의 전폭적 지지를 바탕으로 차츰 성장해왔다. 올랑드 대통령의 수석보좌관을 거쳐 34세에 경제수석, 36세에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고, 2016년 중도 신생정당 ‘앙마르슈’(전진) 후보로 대권에 도전장을 냈다. 좌우 기성정당의 몰락이라는 외부요인과 함께 여느 후보 못지않은 탄탄한 정치적 경력이 그를 든든히 뒷받침한 것이다.
‘세계 최연소 국가지도자’ 타이틀을 소유한 쿠르츠 총리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티안 케른 전임 총리와 20세 차이인 그는 23세이던 2009년 국민당 청년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2010년부터 2년간 빈 시의회 의원을 지냈고, 2012년 9월 총선에서 의회에 입성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기록의 연속이었다. 2013년 27세 나이로 외무장관직을 맡아 유럽 최연소 외무장관 기록을 세웠고, 2017년에는 국민당 당수로 선출돼 ‘원더키드’ (wonder kidㆍ놀라운 소년)라는 별칭을 얻었다.
‘뉴질랜드의 힐러리’ 저신다 아던은 전임 총리보다 19세 어린 30대 여성 총리다. 젊은 나이지만 정치경력은 21년이나 됐다. 17세에 노동당에 입당한 아던은 2008년 청년층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젊고 신선한 이미지로 여성과 청년을 대변하며 4선을 지냈다. 37세의 나이로 노동당 당수에 취임한 아던은 당 지지율과 후원을 끌어올려 능력을 증명했고, 총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 같은 해외 사례는 기존 정치권의 후발세대가 제 역할을 못 할 경우, 이를 훨씬 뛰어넘는 아래 세대가 대중의 공감을 얻고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뉴질랜드의 사례를 남의 나라 일로만 볼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다만 한국의 정치신인은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돌파해야 한다는 점이 변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9일 “우리 정당 구조상 유럽 다른 나라처럼 정치 신인들이 차근히 단계를 밟아갈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지방의회가 하나의 등용문이 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이 같은 모델을 단시간 내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어떻습니까? 프랑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에서 파격적인 세대교체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나라와 다른 두 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정치 경험이 풍부한 젊은 정치인 집단의 존재입니다. 정치 경험이 없는 젊은 사람에게 국가나 정당의 운명을 맡기는 모험은 그 어떤 나라도 할 수 없습니다.
정치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의 정치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다릅니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유권자가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에 가입해 정치를 배우고 훈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은연중에 청소년들에게 “정치는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애들은 공부나 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민법상 성인인 18세 유권자들에게 투표권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반정치주의입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은 청소년과 젊은 세대를 정치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청소년이 정치의식을 갖고 젊은 세대가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자신들이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재벌·관료·언론 등 기득권 세력이 가세해 반정치주의를 유포시키고 반사이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풍토에서 정치 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30~40대 젊은 정치 지도자는 나올 수 없습니다.
둘째, 젊은 세대의 도전입니다. 이 부분은 정두언 전 의원이 어느 정도 설명을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력욕과 명예욕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히려 강해집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나이 든 사람이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더 젊고 유능한 사람에 의해 밀려나는 것입니다. 정치 선진국에서도 젊은 세대가 나이 든 세대를 쫓아낸 것이지 나이 든 세대가 스스로 물러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계의 올드보이들에만 “당신들은 왜 이렇게 욕심이 많으냐”고 따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민주평화당 새 당대표로 선출된 정동영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민주평화당 전당대회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우리나라 정치에서 세대교체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젊은 세대의 도전과 투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96 이전 국번’ 세대들은 3김 정치와 엄청난 싸움을 벌였습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양 김 씨의 분열로 정권교체에 실패하자 재야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양김 퇴진’ 바람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수많은 젊은 정치인들이 ‘반와이에스’ ‘반디제이’의 깃발을 들고 투쟁했습니다.
그들의 투쟁으로 양 김 씨가 물러나지는 않았지만, 그 투쟁 덕분에 그들은 3김 이후의 시대에 정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별한 뒤 한때 3김 청산을 기치로 모인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에서 활동하는 등 ‘반 3김’ 운동을 펼쳤던 정치인입니다. 정동영 의원도 김대중 전 대통령 면전에서 권노갑 고문 퇴진을 요구했던 사람입니다.
1960년대에 출생한 80년대 학번으로 이제 50대의 주축인 이른바 ‘86세대’는 그런 면에서 ‘96 이전 국번’ 세대보다 뒤떨어집니다. 더불어민주당에 수많은 ‘86세대’가 있고 송영길·이인영 등은 당권에 도전하며 세대교체를 얘기하지만 윗세대를 향해 “나가달라”고 도전장을 낸 용감한 정치인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존 권위에 편승해 정치적 실리를 챙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세대교체가 잘 안 되는 이유는 ‘86세대’의 비겁함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세대교체는 모든 나라의 영원한 과제입니다. ‘올드보이들의 귀환’은 올드보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청소년이나 젊은 시절부터 정치 경험을 쌓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반정치주의 풍토, 그리고 올드보이들을 몰아낼 용기와 실력이 없는 젊은 세대의 잘못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