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악운’ 정도로 해석됩니다. 운동선수 중에는 큰 경기를 앞두고 머리를 깎지 않거나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발을 하거나 속옷을 갈아입으면 경기에서 지는 징크스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에게도 이상한 징크스가 하나 있습니다. 축구 경기를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면 제가 응원하는 팀이 지는 것입니다. 오래된 징크스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일부러 텔레비전을 안 보려고 피해서 다녔습니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4강까지 올라갔습니다.
징크스가 깨질 때도 됐다는 생각에 지난 18일 밤 스웨덴전을 봤는데 역시나 1 대 0으로 졌습니다. 멕시코전이 열리는 23일 밤에는 아예 일찌감치 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축구에 ‘멕시코 징크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경기를 한 팀은 그다음 독일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패한다는 것입니다.
‘멕시코 징크스’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16강전에서 멕시코를 2 대 0으로 꺾은 미국은 8강전에서 독일에 1 대 0으로 졌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이 조별 예선에서 멕시코와 싸웠는데 3·4위 전에서 독일에 졌습니다. 아르헨티나는 16강전에서 2 대 1로 멕시코를 꺾었지만 8강전에서 독일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습니다.
2010년 남아공에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멕시코를 꺾었지만, 아르헨티나는 8강전에서 독일에 4 대 0으로 졌고, 우루과이는 3·4위전에서 독일에 3 대 2로 패했습니다. 2014년 브라질에서는 브라질이 A조에서 멕시코와 비겼는데 4강전에서 독일에 7 대 1로 졌습니다. 이 정도면 ‘멕시코 징크스’라고 할 만하지요?
느닷없이 징크스 얘기를 꺼낸 것은 6·13 지방선거 결과를 보며 ‘문재인 징크스’라고 이름을 붙일만한 현상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징크스’는 쉽게 말해 “문재인과 싸우면 망하는” 현상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지난해 4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왼쪽부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토론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번 지방선거에서 ‘망한’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 살펴볼까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은 2017년 5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겨뤘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겨뤘던 사람들도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미투’ 사건이 터져 정치적으로 파산했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경기지사 당선에 성공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혹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최성 고양시장은 3선에 도전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맞섰던 사람 명단에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상임선대위원장도 있습니다. 두 사람도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거치며 지금은 정치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떤가요?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경선 레이스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당내 패권주의 세력’이라고 공격했다가 강한 역풍을 맞고 대선을 아예 포기했습니다. 혹시 그때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결을 서둘러 피했기 때문에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문재인 징크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의당 대선후보였던 심상정 의원만 ‘문재인 징크스’를 피해 간 것 같네요.
아무튼 ‘멕시코 징크스’의 책임을 멕시코에 물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징크스’의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물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징크스입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번에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은 이유는 따지고 보면 그가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자숙하지 않고 전당대회에 다시 출마해서 대표가 됐기 때문입니다. 대표가 된 이후에도 평창동계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폄하했고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지방선거 참패를 자초한 것입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홍준표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국민의당 대표로 무리하게 복귀한 뒤 민주평화당과의 결별을 무릅쓰고 유승민 대표의 바른정당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바른미래당 후보로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서울시장 3등’이라는 성적표와 정계 은퇴 권유를 받고 있는 치욕적 상황의 책임을 자기 자신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떠넘길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안희정 이재명 최성 등 더불어민주당 경선 주자들, 그리고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상임선대위원장 등의 정치적 몰락과 고난도 문재인 대통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정치적 선택으로 현재 상황을 자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징크스는 언젠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멕시코와 맞붙었던 팀이 독일을 이기면 ‘멕시코 징크스’는 깨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이번에 멕시코, 독일과 차례로 경기를 치를 예정입니다. 우리나라가 먼저 멕시코를 이기고 난 뒤 독일도 꺾어 ’멕시코 징크스’를 깼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징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 정치적으로 재기한다면 ‘문재인 징크스’는 깨지는 것입니다. ‘문재인 징크스’를 과연 누가 언제쯤 깰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정가에는 유난히 예언과 도참이 많이 나돌아다닌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정치라는 영역이 워낙 역동적이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운명과 미래에 관심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 이런 영역을 기사로 다루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비과학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탄허 스님이 1970년대 중반에 했다는 ‘월악산 예언’은 몇 차례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월악산 영봉 위로 달이 뜨고 이 달빛이 물에 비치면 30년 뒤에 여자 임금이 나타나고 3~4년 뒤에 통일된다는 내용입니다.
1970년대에 월악산 주변에는 호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산 위에 뜬 달이 물에 비치기 시작했고 약 30년 뒤인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신년사에서 갑자기 “통일 대박”을 들고 나왔는데 이 때문에 탄허 스님의 예언이 주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자 탄허 스님의 예언은 또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물론 남북관계가 아무리 급진전해도 올해나 내년에 통일될 리는 없기 때문에 탄허 스님의 예언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언은 그냥 예언이고 도참은 그냥 도참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한 재미있는 예언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어떤 고승이 “대통령 선거가 12월 한겨울에 치러지는 한 문재인 후보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문재인 후보의 상이 겨울에 힘을 쓸 수 없는 어떤 동물의 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2017년 12월 대선이 앞당겨지는 것을 보고 이 고승이 “계절이 달라졌으니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얘기를 2017년 대선이 치러지기 한참 전에 문재인 캠프에 있던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그 인사는 “믿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더라”고 웃으며 이 얘기를 해줬습니다. 언젠가 그 인사를 다시 만나면 문재인 대통령의 상이 도대체 어떤 동물을 닮았다는 것인지 물어볼 생각입니다. 저도 예언이나 도참을 믿지 않지만 그래도 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