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판세분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6·13 지방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여러 가지 궁금한 점 가운데 하나는 자유한국당의 성적입니다.
자유한국당이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 홍준표 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추스르고 2020년 총선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패배한다면 자유한국당은 재창당 수준의 수술이 불가피합니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퇴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전당대회 및 지도부 선출 등은 당연한 수순이고, 다선·중진 의원들의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 등 파격적 처방이 필요합니다.
선거는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패배할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여론조사와 현장 분위기입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더불어민주당 승리,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측합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여러 차례 지적한 대로 선거 여론조사는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2016년 총선의 진짜 패배자는 새누리당이 아니라 여론조사였습니다. 여론조사 폐지론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여론조사 기관, 각 언론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은 잘못된 여론조사의 폐해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14년 2월 13일 개정된 ‘공직선거법’ 8조의 8에 따라 중앙 및 시·도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독립기구인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선거여론조사 기준 공표, 선거여론조사 결과의 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등록, 선거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의 심의 등의 업무를 하는 기관입니다. 선거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입니다.
따라서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2016년보다 개선되어 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여론조사는 수치 자체보다는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한데, 시간이 지나도 자유한국당 정당 지지도나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지지도가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실제 선거 결과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현장 분위기도 자유한국당에 불리한 것 같습니다. 취재를 하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현장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이번처럼 분위기가 좋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거는 선거입니다. 개표가 끝나기 전까지 선거 결과를 단언할 수 없는 것은 물론입니다.
둘째, 자유한국당에 대한 보수층의 실망입니다.
최근 보수의 지도층이나 원로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유한국당에 대해 가진 실망감을 거칠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6월5일 치 신문에 “보수 ‘폐족’ 부활하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김 고문은 “차라리 패배의 폐허 위에서 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차라리 전멸해서 새로운 지도 체제와 인물들이 2020년 총선을 목표로 보수 야당을 재건하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대중 고문은 자유한국당에 애정이 많은 논객입니다. 지난해 8월1일 치 ‘홍준표론’이라는 칼럼을 통해 홍준표 대표에게 “차기 대선주자를 노리기보다 분열된 보수를 봉합해 내년 지방선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칼럼에 나오는 ‘독불장군’ 등의 표현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했습니다. 특히 바른정당 통합론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지금은 좌파 진영도 분열되어 있고 우파진영도 분열되어 있습니다. 정당의 통합은 인위적인 정계개편보다는 국민이 선거로 심판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우파진영 통합을 자연스레 해줄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첩이 아무리 본처라고 우겨 본들 첩은 첩일 뿐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그러면서도 “염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잘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주필님!”이라고 글을 맺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김대중 고문이 지난 5월22일 “남북만 잘되면 경제는 깽판 쳐도 괜찮은가”라는 칼럼을 쓰자, 홍준표 대표는 페이스북에 “오늘 조선일보 김대중 전 주필님의 칼럼을 보고 세상이 온통 북핵 환상에 빠져 있는데 나와 생각이 같은 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했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랬던 김대중 고문이 “차라리 전멸해서 새로운 지도 체제와 인물들이 2020년 총선을 목표로 보수 야당을 재건하자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이 글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원종 전 정무수석이 <중앙일보> 김진국 칼럼니스트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6월9일 치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한국당은 정체성 잃은 권력 패거리, 팍 망해야 정신 차려”였습니다.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홍준표 대표가 존경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정치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1년을 앞두고 퇴임한 이후 지금까지 정치를 하거나 공직을 맡은 일이 없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유한국당은 팍 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으니 홍준표 대표로서는 참 곤혹스럽게 됐습니다. 이원종 전 수석의 인터뷰에 대해서도 홍준표 대표는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김대중 고문이나 이원종 전 수석은 보수에서 꽤 명망이 있는 원로들입니다. 보수의 원로들이 자유한국당은 차라리 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뭘까요?
김대중 고문의 칼럼 내용 중에서 그 이유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일부 야권 정치인은 야당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이것은 문 정부가 현재의 강도와 속도로 좌파 혁명을 강행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저지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견제 논리에 바탕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내건 시장·도지사 6석 확보 운운과 배수진으로 쳐놓은 당대표직 사퇴는 이기겠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그냥 살아남겠다고 하는 소리나 진배없다. 이번 선거가 야당에 힘겨운 싸움이며 '박근혜 정부 궤멸' 이후 찢어지고 상처 입은 보수 우파의 재무장이 어려운 것인 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단일화 하나만이라도 해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렇게 굴욕적으로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어서 다시 사는 길'로 가자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 견해는 야당이 망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차라리 패배의 폐허 위에서 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어설프게 몇 석(席) 건져서 견제는커녕 한쪽 구석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막강한 여당의 감질(?)나는 시혜(施惠)에 의존해 들러리로 살아남느니 차라리 전멸해서 새로운 지도 체제와 인물들이 2020년 총선을 목표로 보수 야당을 재건하자는 것이다.”
“6·13 선거에서 지금의 야당이 충분한 견제 세력으로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핵심 승부처에서 완패하고 서로 책임 전가하며 살아남는 데 전전긍긍한다면 '죽어서 사는 길'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보수는 6·13을 넘어 '6·13 이후'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습니까? 김대중 고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원종 전 수석이 자유한국당이 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터뷰의 문답 몇 대목만 인용하겠습니다.
-보수가 뭡니까.
“대한민국의 가치를 인정하는 겁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자유, 민주, 평등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보수예요.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이념보다는 ‘이해관계’가 더 중요시되는 것 같아. 한국당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도 모르는 것 같아요. 보수라고 하지만 나는 권력 패거리라고 봅니다.”
-보수가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이 있어야 되겠죠. 지금은 정권을 위한 정당이지 이념이나 비전, 정체성을 위한 정당은 없다고 봅니다. 국민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러려면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요구해야 하는데, 영합만 하지 국민 역량을 규합하기 위해 쓴소리하는 정치인은 없잖아요.”
-오래 걸릴까요.
“얼마 남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를 대변한 정당이 폭삭 주저앉으면, ‘이제는 이거 가지고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선거유세 안 나가는지 못 나가는지 모르겠지만 나가나 안 나가나 변화는 없을 겁니다. 그게 정치라고 생각하면 진짜 큰일이죠. 차라리 한국당이 망하고 민주당이 둘로 갈라져서 경쟁하는 게 차라리 나은 게 아닌가.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당이 정신을 차리던가, 아니면 정신을 차린 정치인이 나오던가. 난 안철수가 좀 그럴 수 있을 거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친구도 남 비판할 줄만 알지 자기 것(비전)을 내놓을 줄 모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원종 전 정무수석의 자유한국당 비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사실 김대중 고문이나 이원종 전 정무수석 말고도 최근 여러 사람에게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싫어하는 사람, 지난 대선에서 기호 2번 홍준표 후보나 기호 3번 안철수 후보를 찍었던 사람인데도 “이번에는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이끄는 현재의 자유한국당으로는 보수를 재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어설프게 명맥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폭삭 망하게 하고 건전한 보수를 재건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민주·개혁 세력은 과거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좌절했을 때도,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500만표 차이로 참패했을 때도 “차라리 전멸해서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른바 보수의 몰락은 대한민국 정치의 균형 발전 차원에서 보면 큰 재앙입니다. 건강한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정부와 여당도 오만해지지 않고 겸손하게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6·13 지방선거에서 홍준표 대표의 바람대로 자유한국당이 재기를 위한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아니면 보수 원로들의 주문대로 팍 망한 뒤 폐허 위에서 재기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어떤 경로를 거치든 이른바 보수 세력이 환골탈태해서 건강한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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