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독 영수회담이 열린 것은 4월13일 오후였습니다. 회담이 끝나고 한병도 정무수석은 회담 결과를 짤막하게 발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의 대화가 시작된 만큼 야당의 건전한 조언과 대화는 바람직하지만, 정상회담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씀하셨고,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습니다. 이에 홍준표 대표는 “대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국가운명을 좌우할 기회인 만큼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회담 뒤 국회 대표실에서 오랫동안 기자 간담회를 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확인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세 가지 건의를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여덟 번에 걸쳐 거짓말을 한 북한이 이번에 아홉 번째로 진실을 말한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것 아니냐. 정상회담을 할 때, 첫째, 북핵을 일괄 폐기할 정상회담을 해달라, 그리고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불가역적으로 폐지할 수 있게 해달라, 핵 동결 후에 폐기 절차로 가는 단계적 폐기론에 동의할 수 없다. 둘째, 이완돼가고 있는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를 대통령이 취해주기 바란다. 셋째, 완전 핵 폐기까지 제재 완화는 절대 반대한다.”
아무튼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하지 않겠다고 확실히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4·27 남북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홍준표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내놓는 최근 발언의 내용이 좀 이상합니다.
4월 21일 오후 7:28
핵 동결 발표를 한 것을 마치 핵 폐기 선언을 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은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쇼를 연상시킵니다. 이미 북한 헌법에 핵 보유가 천명되어 있고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핵 완성을 했다고 선언한 마당에 추가 핵실험을 중단하고 ICBM도 더이상 실험하지 않는다고 해본들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핵과 핵미사일을 전부 폐기하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은 지금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쇼와 무엇이 다릅니까?
또 2007.10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평화체제로 전환, 종전선언 추진이 명시되어 있었는데도 북은 이를 파기하고 핵 개발을 계속해 왔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지금 국민의 망각을 이용해 미국까지 끌어들여 또다시 남북 평화 쇼를 하고 있는 문 정권은 참으로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습니다.
수백만이 아사하여 고사 상태에 들어갔던 북을 두 번이나 살려준 것이 DJ·노무현입니다. 그 뒤를 이어 문 정권은 국제적인 제재에 또다시 고사 상태에 들어간 북을 회생시켜 주고 있습니다. 국가 운영을 도박처럼 하고 있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냉정해야 할 때입니다.
4월 23일 오전 7:14
칼 든 강도와 협상하는데 강도가 칼은 숨기고 협상하자고 하는데 상대방은 칼을 포기했다고 우기는 격입니다. 이미 두 번에 걸친 체제 붕괴위기에서 남북 위장평화 쇼로 북을 살려준 정권이 DJ·노무현 정권입니다. 또다시 국제제재로 붕괴위기에 처하자 세 번째 살려주려고 남북 위장평화 쇼를 하는 것이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입니다. 냉철해야 합니다.
어떤 비무장지대 남북 평화 쇼에도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핵 폐기 없는 남북협상은 이적행위입니다. 깨어있는 국민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킵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반대 아닌가요? 자유한국당은 4월25일 당사 6층 1회의실에서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필승 슬로건 및 로고송’을 발표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난 1년 전부터 탄핵 이후에 대선 내내 내가 외쳐온 선거 구호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자’였다. 그런데 그 슬로건이 상대방에 의해서 색깔론으로 매도되었고 그리고 지난 대선 때 그 슬로건이 묻혔다. 그러고 난 뒤에 이 좌파 정권이 탄생했다. 지난 1년 동안 이 정권에서 한 것을 한번 되돌아보라. 나라 전체를 사회주의 체제로 운영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헌법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의 경제정책 한번 면밀히 살펴봐라. 나라 전체 체제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후보 시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북 대화만 잘하면 다른 모든 것은 깽판 쳐도 된다’. 한번 검색해봐라. 나는 이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 그 말에서 이 정부의 성격을 유추한다. 이 정부는 근본적으로 노무현 정부 2기다. 다른 모든 부분은 깽판을 치더라도 남북 대화만 잘하면 된다,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배경이라고 본다.
이미 북한은 2회에 걸쳐서 붕괴위기가 있었다. 그 붕괴위기에 수백만의 북한 주민들이 아사했다. 고난의 행군 기간이 있었다. 두 번에 걸친 체제붕괴 위기를 살려 준 것이 DJ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다. 또다시 북핵 체제 위기에서 붕괴위기로 치닫고 있는 북한을 살려주려고 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이번 남북정상회담이다. 더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생은 파탄 일보 직전에 와있고 국민들은 생활이 어렵고 살기가 어려운데 주사파, 참여연대, 전교조, 민주노총 네 집단만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 국민들은 불행하든 말든 이 네 집단과 북한을 살려주기 위해 급급한 정권이다. 그래서 우리 지방선거 구호를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로 정했다. 다시 한 번 국민들의 판단을 받아보겠다. 정말 이 나라를 통째로 한번 저들에게 넘기시겠느냐. 그것이 이번 지방선거다. 이상이다.”
살벌하지 않습니까? 태극기 부대 수준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좌파 정권이고 사회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도 붕괴위기의 북한을 살려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반대론입니다. 전형적인 색깔론입니다. 6·13 지방선거 구호를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고 정한 것도 색깔론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겠다는 선언으로 봐야 합니다.
홍준표 대표의 이런 말과 행동은 매우 특이한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우리나라 역대 보수 정권이나 보수 정당이 이 정도로 ‘맹목적 반북’이었던 적은 제 기억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보수 기득권 세력을 대변한 역대 정권은 반북적이었을까요?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반공을 명분으로 5·16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혁명 공약'의 첫 번째가 반공이었습니다. 포고문은 “군사 혁명 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분단 체제 강화만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평화와 긴장 완화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6·23 선언에서 “우리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한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공산 국가들에 대해서도 문호를 개방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기 시작하면서 안보 위협을 느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주국방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미국에 작전지휘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의 눈을 피해 핵 개발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자주국방과 작전지휘권 환수는 수십 년을 건너뛰어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박정희와 노무현이라는 이질적인 정권이 똑같이 자주국방과 작전지휘권 환수를 추진했다는 사실은 외교·안보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는 금언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한편 1973년 6·23 선언 당시 현역 군인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의 북방정책 구상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6·23 선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회고록에서 밝혔습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놀라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쟁을 통하지 않고 북한을 개방시킬 수만 있다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믿었습니다. ‘개방=통일’이 노태우 정부 대북 전략의 기본 개념이었습니다.
북방정책과 새로운 남북관계의 방향과 목표를 천명한 1988년 7·7 선언, ‘자주, 평화, 민주의 3원칙을 바탕으로 남북연합의 중간 과정을 거쳐 통일 민주공화국을 실현하자’는 1989년 9·11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1991년 9월17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1991년 12월13일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1992년 1월20일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이어졌습니다.
노태우 정부를 이은 김영삼 정부도 대북정책에서 전향적이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한완상 통일 부총리를 임명하고 장기수 이인모씨를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7월25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7월8일 사망하는 바람에 정상회담이 무산됐습니다. 당시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성사됐더라면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고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홍준표 대표는 전직 대통령 중에서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며 당사에 사진까지 내걸었습니다. 이 가운데 북한과 전쟁을 벌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어쩔 수 없다고 치고 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와 교류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만을 유지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 3000’이었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3000달러 수준으로 경제가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천안함 폭침 사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 악재가 잇따르며 ‘비핵·개방 3000’은 실종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훌륭한 대북정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10년 전인 2002년 북한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북한에 다녀온 이후 나는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진심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야만 발전적인 협상과 약속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2007년 자서전에서 밝혔습니다.
또 방북 결과를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전하면서 “나는 보수이다. 그러나 남북문제를 푸는 데는 보수, 진보가 없다. 화해 협력밖에는 방법이 없다. 대북정책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박정희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남북기본합의서
김영삼 남북정상회담 합의…이명박 비핵개방 3000
박근혜 방북 “진심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 쌓아야”
맹목적 반북 계속 하면 명분과 실리 다 잃을 수도
미국 주도 한반도 정세 지각변동…대세 저항 안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계승자인 홍준표 대표가 최근 극우 보수 성향의 대북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일종의 ‘자기 정체성 부정’입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물론 6·13 지방선거 때문입니다. 바른미래당의 도전을 물리치고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는 데는 색깔론만 한 무기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표를 모으기 위한 선거 전략이라고 해도 발언의 내용에는 금도가 필요합니다.
홍준표 대표의 최근 색깔론은 자신의 가치관과도 다른 것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본래 이념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극우 보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합리적 보수론자였습니다. 홍준표 대표의 2009년 자서전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정치 막전막후’에서 제가 몇 차례 소개한 일이 있지만, 워낙 흥미로운 대목이라서 다시 한 번 전달하겠습니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선 보다 전향적인 입장이 필요하다.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문제는 북핵과 체제보장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나는 본다. 북한이 북미대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북한 체제보장에 현실적인 위협이 되는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보는 것에 기인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북한을 믿지 못할 불량 국가(Rouge State)로 보기 때문에 핵 유출로 인한 미국에 대한 현실적인 위협을 없애기 위하여 종국적으로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통하여 북핵을 폐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는 북한의 체제보장이 선행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로서는 미국과 협력하여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국제적 보장을 해 주고 북핵 폐기를 유도하는 방안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습니까?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습니까?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약속한 대로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합니다. 그게 홍준표 대표 본래의 가치관에 더 부합하는 일입니다. 지금처럼 외교 안보를 선거에 이용해서 반사이익을 보려고 계속 시도하다가는 자칫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게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19일 언론사 사장단 오찬 간담회에서 “이 문제는 보수든 진보든 생각이 다를 바가 없고, 특히 남북 간의 회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어서 북미 간 회담이 이어지게 되고, 북미회담의 성공을 통해서 이것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 그 과정을 통해서 설령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더라도 다 같은 공감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개선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미국 주도로 한반도 정세가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선거 유불리를 위해 구질구질한 색깔론으로 대세에 저항하는 잘못을 국내 보수 세력과 보수 정치인들이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사마귀가 수레를 막아서려 하다)이라는 말이 유난히 자주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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