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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열린 ‘민청학련’ 북콘서트, 객석 분위기는 왜 무거웠을까요

등록 2018-04-15 15:33수정 2018-04-15 15:44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01
<민청학련> 유신독재와 맞선 사람들의 치열했던 기록
이철 “다시는 몰상식한 권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안병욱 “유신체제라는 역사적 반동에 대한 성찰”
박근혜 탄핵과 수감으로 저물어가는 박정희 시대
정세균 국회의장 “민청학련은 촛불혁명의 출발점”
정세균 국회의장이 12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청학련> 북콘서트에서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 제공
정세균 국회의장이 12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청학련> 북콘서트에서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 제공
4월 12일 오후 4시 국회 헌정기념관 강당에서 <민청학련>(부제-유신독재를 넘어 민주주의를 외치다) 북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참석해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국회의장이 참석한 행사는 국회 사무처에서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도자료에는 정세균 의장의 간략한 인사말과 몇 장의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사진에서는 함세웅 신부, 이이화 역사학자, 한승헌 전 감사원장, 더불어민주당의 강창일·이인영 의원 등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의 분위기가 참 특이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하는데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 무겁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민청학련 사건은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을 중심으로 유신 반대운동을 하던 인사들을 ‘반정부 조직’으로 조작해 구속·기소한 사건입니다. 이 가운데 인혁당 관련자 8명은 1975년 4월9일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독재정권이 이른바 ‘사법살인’을 자행한 것입니다. 인혁당 관련자와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2000년대 이후 재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사건 자체가 조작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민청학련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산물입니다. 독재가 없었다면 반대운동도 없었을 것입니다. 민청학련 계승사업회 이철 상임대표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44년 전, 우리들이 겪은 일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부릅니다만 이는 시대와 단절된 별개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1972년 10월 17일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야만적인 유신헌법이 공포되던 순간부터 김대중 남치살해 미수 사건, 개헌 청원운동, 그 뒤로 이어진 긴급조치 1호와 유신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수많은 학생시위, 그리고 긴급조치 4호까지, 이 모든 일은 유기적으로 얽혀 일어났습니다.

온갖 폭압에도 굽히지 않는 국민들의 저항에 놀란 박정희 정권은 위기를 벗어나고자 민청학련·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였으며 결국 8명의 고귀한 목숨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서울대 김상진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의 장례식을 거행하고 긴급조치 철폐를 외친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인 일명 ‘오둘둘’ 사건이 이어졌고, 긴급조치 7호 및 9호가 잇따라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9년 부마민중항쟁과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로 유신정권은 몰락하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몰락했지만 민주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민청학련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습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웠습니다. 정치에 진출한 사람들은 개혁과 정권교체에 힘을 보탰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왜 이들이 계속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앞장선 것일까요?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해설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각계에서 거듭되는 반유신 항쟁으로 수많은 새로운 반정부 인사들이 배출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체제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감옥이 아니면 거처할 공간이 없는 처지였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날 만한 항의운동도 유신체제는 집요하게 반정부 행위로 낙인찍었다. 그렇게 축적된 운동권 인사들이 체제 말기에는 수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동지로서 전국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했으며 대단히 위협적인 반정부세력으로 결집했고 그 구심점이 곧 민청학련이었다. 이 세력이 유신 붕괴를 촉발했으며 부마민중항쟁 나아가 1980년 서울의 봄, 5·18 광주항쟁, 1987년 6월 항쟁의 역사적 기반이 되었다.

민청학련은 반유신 운동을 통해 형성된 우리 사회 민주 발전의 중요한 인적자원이었다. 학생과 평범한 시민에서부터 지식인, 성직자, 윤보선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까지 전 국민적인 인적 연계를 형성한 거국적 운동체였다. 이들은 유신체제라는 역사적 반동과 파행에 대한 성찰과 대책을 끊임없이 모색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역사 인식의 지평을 확대했다. 국민은 1970년대의 운동권 학생과 민주인사들을 정의롭게 여기면서 신뢰를 보냈다. 이를 바탕으로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이후 민주화 시기에 각 분야에서 지도적인 위상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민청학련 관련자 인명록이 가나다순으로 실려 있습니다. 인명록에서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몇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은 제외했습니다.

강신옥 : 민청학련 사건 변론 도중 구속. 13·14대 국회의원.

강창일 : 민청학련 10년 선고. 4·3 진상규명. 17·18·19·20대 국회의원.

김주언 : 민청학련 기소유예. 한국일보 기자. 보도지침 폭로. 기자협회장.

김지하 : 한일회담 반대 시위. 오적 필화 사건. 민청학련 사형 선고.

김학민 : 연세대 반유신 시위. 학민사.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유인태 : 민청학련 사형 선고. 14·17·19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출간. 문화재청장.

이강철 : 경북대 시위 구속. 대구·경북 민주화 운동.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이철 : 민청학련 주동자로 사형 선고. 12·13·14대 국회의원. 철도공사 사장.

이학영 : 민청학련 7년 선고. 남민전 구속. YMCA 운동. 19·20대 국회의원.

이현배 : 민청학련 배후 사주로 사형 선고.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임진택 : 마당극으로 민주화운동. 민중문화운동연합.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장기표 :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중의 소리> 제작. 민중당 창당.

장영달 : 민청학련 7년 선고. 긴급조치 9호 위반. 민청련. 14·15·16·17대 국회의원.

장준영 : 성균관대 시위. 민청련 공동의장.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정동영 : 민청학련 기소유예. 15·16·18·20대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정찬용 : 긴급조치 4호 비판 12년 선고. 농민운동. 시민운동. 청와대 인사보좌관.

최민화 : 민청학련 12년 선고. 긴급조치 9호 위반. 명동YMCA 위장결혼식 사건. 민청련.

한승헌 : 1975년 <어떤 조사> 필화 사건 9개월 수감. 한국앰네스티. 민변. 감사원장.

함세웅 :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1976년 명동 3·1민주구국선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홍성우 : 변호사. 민청학련 사건 계기로 인권 변론. 민변 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그런데 <민청학련> 북콘서트 객석 분위기는 도대체 왜 그리 무거웠을까요? <민청학련>은 출판사 메디치에서 출판했습니다. 북콘서트에 참석했던 출판사 메디치 김현종 대표에게 물어봤습니다.

김현종 대표는 현장의 실제 분위기는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나이를 많이 드셨고 주제가 진지해서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노래 연주에 맞춰 모두 박수도 치고 매우 좋았다는 것입니다. 송기인 신부, 지선 스님, 임진택 연출가, 유인태 최규성 이철 전 의원, 원혜영 의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12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청학련> 북콘서트에서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 제공
정세균 국회의장이 12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청학련> 북콘서트에서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 제공
제가 북콘서트 사진에서 무거움과 피곤함을 읽은 것은 아마도 제 스스로의 마음이 무겁고 피곤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고교 1학년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1977년 대학에 들어갔지만 세상은 암흑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교내에서 시위하다가 경찰에 붙잡혀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휴학계를 내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불의한 세상으로부터 비겁하게 도망친 것입니다.

제가 군에 있는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12·12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광주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났습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했을 때 세상은 ‘박정희 천하’에서 ‘전두환 천하’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결국 박정희 유신 독재의 광기는 저의 인생에도 흔적을 남긴 셈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박정희 정권과 맞서 싸우던 사람들과 전두환 노태우 정권과 맞서 싸우던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그 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박정희에 맞서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일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과 싸웠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반면에 전두환 정권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나 예측했습니다. 전두환 정권과 싸운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직도 가능했습니다. 투사들은 늘 표정이 밝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결국 전두환도 물러갔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독재 시대, 전두환 독재 시대는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독재는 우리 마음속에 ‘복종의 유전자’로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정희 신화’가 부활했고 2012년 그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졌으니 죽은 박정희가 33년 만에 부활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은 탄핵 당하고 감옥에 갔습니다. 사필귀정이 역사에서 구현된 것입니다. 이제 박정희 시대가 진짜로 저물고 있는 것일까요?

북콘서트에서 정세균 의장이 했던 말이 인상적입니다.

“민청학련은 가슴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의 장면이 기록되고 발표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민청학련은 5·18의 도화선이자 길게 보면 작년 촛불혁명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민청학련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제는 혁명이 없어도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마지막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혁명은 누군가의 피와 희생을 요구합니다. 민청학련 사건 관계자들을 포함해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을 끝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혁명이 없어도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꼭 만들어야 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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