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발의할 헌법 개정안 전문이 공개됐습니다. 헌법 개정안 전체를 혹시 읽어보셨는지요? 읽어보셨다면 어느 조항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셨는지요? 헌법은 국가의 조직, 구성 및 작용에 관한 근본법입니다. 따라서 중요하지 않은 조항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 헌법 개정안에서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명시한 44조 3항이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4조는 현행 헌법 41조를 개정한 것입니다. 현행 헌법 41조와 헌법 개정안 44조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비교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현행 헌법
제41조 ① 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
②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
③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헌법 개정안
제44조 ① 국회는 국민이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로 선출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
②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명 이상으로 한다.
③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그 밖에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되,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
내용이 달라진 것은 3항에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는 뒷 부분이 추가된 것입니다. 법제처에서 만든 자료를 보면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성 원칙 명시(안 제44조 제3항)
1) 현재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방식인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는 많은 사표를 발생시켜 국회의 국민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
2) 선거구 등 국회의원 선거에 관한 사항은 현행 헌법과 같이 법률로 정하도록 하되,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는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명시함.
좀 어렵지요? 청와대 발표를 보면 좀 쉽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o 국민의 한표 한표가 국회 구성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 현재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방식은 과다한 사표를 발생시키고, 정당 득표와 의석 비율의 불일치로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하는 문제가 있음.
- 20대 총선의 경우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합산 득표율은 65% 정도였지만, 두 당의 의석 점유율은 80%가 넘었음.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합산 득표율은 28% 정도였지만, 두 당의 의석 점유율은 15%가 채 되지 않았음.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되어야 한다”는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헌법에 명시함.
- 향후 국회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국회 구성에 온전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하여 주실 것을 희망함.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후보들이 받은 득표율은 65%입니다. 따라서 의석은 300석의 65%인 195석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245석을 차지했습니다. 유권자의 표심과 실제 국회 의석이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도 관심이 많습니다. 지난 3월 13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로부터 개헌 자문 안을 전달받은 뒤 마무리 발언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보다 정의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헌을 앞당길 필요가 있고 지금이 적기라는 이야기를 우리가 해야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선거 비례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경우, 지금 개헌을 해 둬야 다음 총선 때 적용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비례성에 보다 더 부합되는 선거제도를 만들자고 그렇게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요구들을 했는데, 그러면서 지금 시기의 개헌에 대해 소극적이라면 어느 세월에 헌법적 근거를 갖추어서 비례성에 부합되는 선거제도를 마련합니까?”
‘재현’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으로 뛰어난 정치 행위란 관련된 민의를 모사하는 게 아니라 그 열망을 정책에 얼마나 입체적으로 잘 구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사진은 1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임시국회 개회식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선거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먼저 헌법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부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선거제도를 바꾸는 데 꼭 헌법까지 개정해야 할까요? 그냥 국회에서 선거법을 바꾸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선거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법 개정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헌법에 근거 조항을 마련해야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역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0조(선거구)는 “대통령 및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전국을 단위로 하여 선거한다”입니다. 제21조(국회의 의원정수)는 “국회의 의원정수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합하여 300명으로 한다”, “하나의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에서 선출할 국회의원의 정수는 1인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전국 단위 선출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도를 합친 제도입니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숫자는 선거 때마다 조정하고 있습니다. 20대 국회 지역구 의원 정수는 253명, 비례대표 의원 정수는 47명입니다.
소선거구제를 뼈대로 하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기본 틀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졌습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겨뤘던 노태우 대통령(민주정의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 등 이른바 ‘1노 3김’의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한 지역구에서 두 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였습니다.
소선구제의 특징은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사람이 당선된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당의 후보들이 전국 모든 선거구에서 51%를 득표하면 지역구 전체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낙선자를 찍은 표는 모조리 사표(死票)가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선거구마다 집중력을 발휘하는 정당에 유리합니다.
당장 13대 총선부터 파란이 일어났습니다. 13대 총선에서는 지금처럼 비례대표 의원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를 따로 하지 않고 지역구 당선자 숫자에 따라 전국구 의석을 분배했습니다. 선거 결과는 민정당 125석, 평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이었습니다.
그런데 각 정당 후보들이 실제로 지역구에서 받은 득표율은 민정당 34.0%, 통일민주당 23.8%, 평민당 19.3%, 신민주공화당 15.8%였습니다. 득표율 2위의 통일민주당이 득표율 3위의 평민당보다 의석을 적게 가져가는 이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소선거구제를 뼈대로 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그 이후에도 계속 유지됐습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정치 지형이 크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또 정치자금법이 강화되고 상향식 공천이 시작되면서 각 정당의 주인 행세를 하던 총재가 아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1노3김 ‘시절과 같은 정치적 합의가 아예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이 13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개헌안과 한국지엠(GM) 군산공장 폐쇄와 관련한 국정조사 등을 논의하기위해 만나손을 모으고 있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동철·자유한국당 김성태·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비례대표 의원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 제도가 도입됐지만, 각 정당 득표율과 정당의 의석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전체 의석 가운데 250석 정도의 지역구 선거를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입니다.
이런 제도에서는 1당과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절대 유리합니다. 역대 총선에서 가끔 제 3당이 출현한 적이 있지만 그나마 ‘지역 몰표’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50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충청과 대구·경북에서의 돌풍 덕분이었습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38석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에서의 집중력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제도의 최대 피해자는 진보정당이라고 봐야 합니다.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 그동안의 진보정당들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세를 갖고 있었지만, 특정 지역에 기반이 없기 때문에 정당 지지도와 비교하면 의석을 훨씬 적게 차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잘못된 선거제도를 오랫동안 바로 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각 정당 내부의 리더십이 과거보다 현저히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선거법을 바꾸려면 모든 정파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절대다수가 찬성을 해야 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 각 정당 지도부가 지금 당장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하면 선거법을 그렇게 개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선거법을 개정하려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선거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질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최근 각 시도 의회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담합해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안한 기초의원 4인 선거구 안을 2인 선거구로 쪼개는 장면을 보셨지요? 국회의원이든 지방의원이든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특별히 악당이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스스로 자신의 팔다리를 자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7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오찬 회동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추미애 대표가 발언서 개헌문제도 논의해보자고 하자 항의하며 안보문제만 이야기하자고 발언하고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적 근거를 갖추어서 비례성에 부합되는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대로 헌법이 개정되면 어떻게 될까요? 국회의원들이 개정된 헌법에 따라 자발적으로 선거법을 개정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개헌이 이뤄진다면 누군가가 현행 선거법 조항이 헌법 44조 3항 ‘국회 의석 투표자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기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헌법재판소는 현행 선거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다음 총선 전까지 선거법을 개정하라고 할 것입니다.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수 없을 지경이 돼야 비로소 국회의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거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는 얘깁니다.
지금처럼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를 하게 된 것도 사실은 각 정파의 정치적 합의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선거법에 대해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핵심 대목만 인용하겠습니다.
“공선법은 이른바 1인1표제를 채택하여(제146조 제2항) 유권자에게 별도의 정당투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지역구 선거에서 표출된 유권자의 의사를 그대로 정당에 대한 지지 의사로 의제하여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토록 하는 바(제189조 제1항), 이러한 비례대표제 방식에 의하면,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자나 그가 속한 정당 중 어느 일방만을 지지할 경우 지역구 후보자 개인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진정한 의사는 반영시킬 수 없으며, 후보자든 정당이든 절반의 선택권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신생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어 기존의 세력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실제 지지도를 초과하여 그 세력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여 주게 되는바, 이는 선거에 있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어떻습니까? 표현은 좀 어려워도 논리가 명확하지 않습니까? 헌법재판소의 이런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을 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2004년 17대 총선부터 지역구 후보와 지지 정당에 각각 한 표씩 찍는 1인 2표 선거가 시작됐습니다. 정치인들의 선의와 협상에만 의존해서는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입증해주는 사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바람대로 이제 우리나라도 독일 등 정치 선진국처럼 정당 득표율과 국회 의석이 일치하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거법을 어떻게 바꿔야 유권자의 민심과 국회 의석을 가급적 일치시킬 수 있는지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헌법 개정안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회의원 숫자를 ‘200명 이상’으로 한 현재의 헌법 조항을 손대지 않은 것입니다. 오랫동안 국회의원 정수가 299명에 묶여 있었던 이유는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 정수를 ‘200인 이상’을 “300명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좁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반정치주의 때문이지요. 19대와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정원을 300명에 묶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정치학자들은 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을 맞추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현재의 2배 수준인 100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지역구 의원이 250명 정도니까 국회의원 정수를 350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는 계산입니다.
지역구 의원 숫자를 200명으로 줄이면 된다고요?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런 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국회의원들이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이는 그런 선거법 개정안에 찬성할 수 있을까요? 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목 50개를 날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15일 국회 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개헌 성사를 위한 정의당의 3대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실 제공
지역구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렵지만 사실은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250명 정도인 지금도 농어촌 지역은 국회의원 1명이 4~5개 시군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옳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받는 급여와 비용을 좀 줄이고 숫자를 좀 늘리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제시한 방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서 국회의원 숫자를 ‘300명 이상’이나 ‘500명 이하’로 바꿨다면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국민이 국회의원 증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지금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 난제를 풀어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