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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목표 ‘대한민국 주류 교체’ 가능할까요?

등록 2018-03-02 11:41수정 2018-03-02 15:40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93
3·1절기념사 “3·1운동 정신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
2017년 책 “주류세력 교체는 역사적 당위성” 강조
“국민 손을 꼭 붙잡고 기득권 세력 연합 깨나가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형무소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형무소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3·1 운동 99주년 기념사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중근, 강우규, 박재혁, 최수봉, 김익상, 김상옥,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등 ‘건국의 아버지들’, 유관순, 동풍신, 윤희순, 곽낙원, 남자현, 박차정, 정정화 등 ‘건국의 어머니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역사책 낭독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기된 민주공화제와 국민주권의 뿌리를 3·1 운동으로 수립된 임시정부 헌법에서 찾았습니다. 3·1 운동의 만세를 지난겨울 1700만개 촛불로 연결했습니다.

“저와 우리 정부는 촛불이 다시 밝혀준 국민주권의 나라를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3·1 운동의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입니다.”

‘주류’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청와대를 담당하는 <한겨레> 기자가 어떤 의미인지 청와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한국의 주류를 바꾸는 것에 관심이 많다. 친일 세력이 아니라 독립운동 세력이 한국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는 매우 큰 이야기다.”

“3·1 운동을 시발로 촛불 혁명까지 이어져 온 우리 민족, 자주와 평화를 애호하는 세력이 한반도의 주류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새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류 교체’라는 개념을 자세히 설명한 책이 있습니다. 2017년 1월에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 문형렬 씨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책은 이번 삼일절 기념사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치 삼일절 기념사에 대한 해설서 같았습니다. 몇 대목을 인용하겠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말하자면 사회 상류층들이 그런 일들에 더 앞장서서 헌신해야 국가의 공공성이 바로 섭니다. 그런데 거꾸로 금수저는 군대에 다 빠지거나 좋은 보직으로만 가고 흙수저만 군대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 의무인 병역의 의무를 면탈한 사람은 절대 고위공직을 맡아서는 안 되는 게 맞습니다.”

“우리가 독립운동의 역사마저도 제대로 조명해주지 못하고 해외유적지마저 보존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입니다. 독립운동에 대한 무관심으로 또는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아직 묻혀 있는 역사가 많습니다. 광복 이후 친일청산이 제대로 안 됐던 게 지금까지 내려왔고요. 친일파는 독재와 관치경제, 정경유착으로 이어졌으니 친일청산, 역사 교체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그 뿌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반드시 해내야 할 역사적 운명입니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이덕일 역사학자가 <노론의 나라>라는 책을 썼지요. 조선 시대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세력이 일본 강점기에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독재세력이 되고, 그렇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기득권으로 남아 있다는 내용입니다.

좀 단순화하긴 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보수라고 자처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서양의 귀족들은 전쟁에 먼저 출정해 희생을 치렀는데, 우리는 오히려 특권층이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병역도 피하고, 국가에 대한 기본 의무조차 다하지 않고 특권만 누리는 반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상식과 정의 아니겠습니까?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국가 반역자라면 언제든 심판받는 국가의 정직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런 상식이 기초가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놓쳤다고 생각해요.

한 번이 해방 때였죠. 해방 때 친일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과 유족들에게 제대로 포상하고 그 정신을 기렸어야 사회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었죠.

친일 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겁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들이거든요.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친 건 1987년 6월항쟁 땝니다. 이후에 곧바로 민주정부가 들어섰다면 그때까지의 독재나 그에 부역했던 집단들을 제대로 심판하고 군부정권에 저항해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들에게 명예회복이나 보상을 해줬을 것이고, 상식적이고 건강한 나라가 됐을 겁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회를 또 놓쳤죠.

제가 지난번에 국민성장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부패 대청소라는 표현을 썼지 않습니까? 부패 대청소를 하고 그다음에 경제교체, 시대교체, 과거의 낡은 질서나 체제, 세력에 대한 역사 교체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법적, 제도적으로 근본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요.”

“우리가 이제껏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개혁’이라는 말을 죽 써왔는데, 지금 필요한 건 그걸 뛰어넘는 겁니다. 저는 과거부터 유력 정치인 가운데 가장 좌파라는 흑색공격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표현할 때 자기검열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당위성입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것을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가장 원한다 해도,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죠. 그래서 대청산, 대개조, 시대교체, 역사교체, 이런 식의 표현들을 합니다. 기존의 우리 주류정치 세력이 만들어왔던 구체제, 낡은 체제, 낡은 질서, 낡은 정치문화, 이런 것들에 대한 대청산, 그리고 그 이후 새로운 민주체제로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까 말했던 주류세력의 교체, 구체제의 청산,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 차별 구조를 없애야 합니다. 누구나 학벌, 학력, 성별, 집안이나 배경, 지역 또는 외모 등에 차별받지 않고, 오직 능력이나 실력으로만 경쟁할 수 있고 실패해도 다시 회복의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그런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분들로 구성하고 싶습니다. 그런 정신적 태도와 의지를 가진 분들로요.”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언급한 여성 독립운동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곽낙원 여사, 남자현 여사, 동풍신 열사, 정정화 의사, 윤희순 의사, 박차정 열사. 국가기록원, 백범기념관, 국가보훈처, <한겨레>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언급한 여성 독립운동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곽낙원 여사, 남자현 여사, 동풍신 열사, 정정화 의사, 윤희순 의사, 박차정 열사. 국가기록원, 백범기념관, 국가보훈처, <한겨레> 자료사진

1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 이상적인 면모가 있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한민국 ‘주류 교체’는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형이상학적 담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삼일절 기념사를 보면서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주류 교체를 정말로 실천해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주류 교체를 이미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우리가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통탄한 일이 있습니다. 이번 삼일절 기념사와 같은 맥락입니다.

“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 아흔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 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친일-반공-독재-관치경제-정경유착-지역주의-보수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을 대한민국의 주류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요?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 진짜 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추구했던 세력을 대한민국 주류의 자리에 세울 수 있을까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부분을 걱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권력을 갖는다면 기존 권력과 기반 자체가 다릅니다. 기득권자들의 권력은 그 세력들 간의 공고한 연합, 카르텔 같은 거지요. 실제로 그런 힘들이 권력의 기반이 되는 건데, 그에 맞서는 우리 권력의 기반은 도덕성과 역사적 소명 의식입니다.

그 힘으로 기득권 세력의 연합을 우리가 깨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요. 참여정부를 겪으면서 느낀 소회는 그렇습니다. 국민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가야 합니다. 그 손을 놓아버리면 절대로 이겨낼 수가 없죠.”

“국민이 주저하거나 반대한다면 그 속도를 늦춰서라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고, 그렇게 해나가야죠. 이번 촛불 민심은 우리 모두에게 굉장히 큰 힘입니다. 자연적인 공감대가 생겨버린 거니까요. 그 열망하는 민심을 국민의 동의라 간주하고, 우리가 힘 있게 개혁을 해도 될 듯합니다. 개혁이라든가 대청산, 이런 면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얻기 힘든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기득권 카르텔의 저항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국민의 손을 잡고 함께 갈 때 가능하다는 지혜와 신중함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질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한민국 주류 교체는 가능할까요?

1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학생, 시민들이 제99돌 3·1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독립문 앞으로 행진한 뒤 함께 만세를 외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1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학생, 시민들이 제99돌 3·1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독립문 앞으로 행진한 뒤 함께 만세를 외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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