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김영철 관련 현안질의 두고 운영위원회 파행
“임종석 비서실장 출석해야 법안 처리”
민주당 “법안 볼모 삼아…운영위원장 독단”
23일 운영위원회는 정회와 개회를 반복한 끝에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산회됐다. 정유경 기자
김성태 운영위원장 (박용진 의원에게) “자리에 앉으세요. 이렇게 하면 국회 경호원 부르겠습니다.”
박용진 의원 “아이고 잘됐네요! 부르세요, 박용진 끌어내라고 부르세요! 이렇게 하는게 위원장입니까?”
(민주당 의원들 함께 입을 모아) “법안 처리! 법안 처리!”
조응천 의원 “법안처리 방해하는 사람~ 누굽니까~~”
23일 여야 의원들의 항의가 오가는 국회 운영위원회실은 흡사 도떼기 시장을 연상케 했습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방남을 두고 자유한국당이 국회 상임위를 소집하며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날 열린 운영위원회도 파행으로 치달았습니다.
오전 10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17건 처리를 목표로 열렸던 운영위는 불과 20분만에 ‘기습 정회’됐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김영철 건으로 긴급현안질의를 요구했고, 김성태 운영위원장이 운영위원장 직권으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날 4시에 출석할 것을 고지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쪽 위원들은 합의한 안건들은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그대로 정회됐습니다.
오후 4시에 속개된 운영위가 임 비서실장의 불출석을 이유로 15분만에 정회될 조짐을 보이자, 민주당 의원들은 항의했습니다. 민주당의 운영위 간사인 박홍근 원내수석은 위원장석 앞으로 가 “마음대로 개회하고 정회하느냐, 의사진행발언(기회)은 주실거냐”며 따졌습니다. 김성태 운영위원장은 “국회 운영위원장 겁박하는 겁니까? 자 때리세요!”하고 호통치며 분위기는 험악해졌습니다. 김 운영위원장은 “김영철의 방한을 어떻게 청와대가 수용했는지의 국민적 관심은 법안 처리보다도 더 우선”이라고 덧붙이며 정회를 강행했습니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앉아 “일 좀 합시다, 안건 좀 처리합시다”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김 운영위원장이 땅땅땅 의사봉을 내리친 것은 오후 4시 18분 즈음이었습니다.
정회 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박홍근 원내수석이 다가가 항의했습니다.
박홍근 원내수석 “일방적으로 이러는 게 어딨어요. 오늘 왜 모였습니까? 합의된 안건은 처리하고, 합의되지 않은 안건은 미루는 것 아닙니까? 재선의원님들, 그동안 국회에서 이런 상임위원장 보셨어요? 해도 너무하잖습니까. (김성태 위원장을 바라보며) 위원장님, 언제는 밥 먹고 하자고 하셨잖아요! 밥 먹고 할 시간은 있었으면서! 현재 합의된 안건(이 뭔지) 알고는 계십니까?”
김성태 운영위원장 “처리해야 할 합의한 안건도 처리하고, 긴급현안질의를 요청한 의원님들도 계시니까 그것도 수용하겠습니다.”
박홍근 “그렇게 억지로 하지 마시구요. 국회는 그동안 합의된 안건을 처리하고, 합의되지 않은 것은 미루지 않았습니까? 오늘 간사 3사람이 합의해서 ‘법안처리’라고 이렇게 (운영위원회의 안건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김성태 “긴급현안질의는 긴급한 사안이 있으면 가장 우선해서 긴급현안 보고를 받는 게…”
답답해진 우원식 원내대표가 나섰습니다.
우원식 원내대표 “그것이 긴급한 건지 아닌지는 합의해야 되는 겁니다. 이미 합의한 것을 합의한 대로 처리하고, (그 뒤에 합의할) 안건을 제시하면 합의해야 하는 겁니다. 합의한 것을 처리하고, 그 다음에 합의할 것을 논의하잔 말이에요.”
김성태 운영위원장의 자리에 이날 처리할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 안건 의사일정이 놓여 있다. 정유경 기자
김성태 운영위원장은 임종석 비서실장이 출석하지 않으면 기존에 3당 간사가 합의한 안건 처리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임 비서실장의 운영위 소집은 여야 3당 간사가 합의한 사안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 운영위원장은 “간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임 실장을 비롯한 간부를 부르지 못하는 것은 국회가 아니다. 언제까지 청와대는 치외법권적 권력기관으로서 군림해야 하는 것이냐”며 맞서고 있습니다. 이날 운영위 간사 협의 때 민주당 간사는 항의의 뜻으로 아예 불참했습니다.
결국 이 평행선은 답이 없는 싸움으로 치달았습니다.
우원식 “김성태 위원장님, 김성태 개인 위원회가 아니고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가 아니에요! 합의한 오늘 안건을 처리하잔 말이에요! 국민의 민생을 발목잡고! ”
김성태 “우원식 원내대표님! 왜 임종석 비서실장을 못 부르냔 말이에요! 이유를 말해보란 말이에요!”
우원식 “간사간에 합의한 내용을 처리하고, 필요한 안건이 있으면 또 논의하잔 말이에요!”
김성태 “하늘이 두렵지도 않아요? 46명의 목숨을!”
우원식 “무슨 소리 하는거야! 여기가 무슨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횐 줄 알아요?”
정회와 개회가 반복되는 동안 여야 의원들은 여기저기서 옥신각신 설전과 삿대질을 벌였습니다. “살인마가 들어 오는데 청와대가 와서 설명을 해야 할 거 아니냐” 따지는 자유한국당 의원이 있는가 하면, “국정농단도 모자라 국회농단하나” “이러려고 운영위원장 한거지” 들으라는 듯 투덜거리는 민주당 의원들도 있었습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은 준비한 공동입장문을 내고 김성태 운영위원장의 독선적인 의사진행을 비판했습니다. 당초 안건인 법안처리를 안중에 두지 않고 정치공세 차원에서 정회를 선언했고, 여야 간사 합의도 없이 현안질의 등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국정농단으로 국민의 정치적 심판을 받은 사실도 모자라 이제는 의회농단의 선두주자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이날 운영위원회는 4시40분께 산회했습니다. 김성태 운영위원장은 임종석 실장에게 다음 운영위원회 일정인 26일 월요일 3시에 출석하라고 고지했습니다. 평창겨울올림픽 폐막식 바로 다음날입니다. 운영위 산회 직후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결정된 ‘김영철 규탄 결의대회’의 날짜도 26일입니다. 다음 운영위원회 때도 똑같은 소동이 반복될 지 두고 볼 일입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