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대표 “가짜뉴스와의 전쟁 선포”
취재기자 자유한국당 당사 퇴거
소속 의원들에게 취재 거부 지시
당원 대상 MBN 시청 거부 운동
대변인 “언론개혁 차원” 브리핑에
엠비엔 기자들 국회서 항의·설전
최근 종편 시사프로그램 집중 감시
내용·화면구성·진행방식 모니터링 강화
언론중재 등 오보 대응 절차 건너뛰어
선거 앞둔 ‘홍준표식 보도통제’ 비판도
민주당 “홍, 언론 길들이기 철회해야”
정의당 “홍 대표 말부터 팩트체크하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엠비엔은 오늘부로 출입금지, 기자 철수하세요. 앞으로 당사 출입도 못해요. 이제 안 되겠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6층. 신임 조직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갑자기 취재진을 향해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 기자 ‘퇴거’ 조처를 내렸다. 당황한 엠비엔 취재진은 당사에 설치한 카메라를 빼고 전원 철수했다.
홍 대표는 이날 자신에 대한 “가짜 뉴스”를 보도했다며 엠비엔을 상대로 서울 여의도 당사 출입 무기한 금지 조처와 함께 국회의원 및 당직자에게 “엠비엔 취재 거부”를 지시했다. 당원을 대상으로 엠비엔 시청 거부 운동도 하기로 했다. 홍 대표는 페이스북에 엠비엔 취재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엠비엔에서 내가 류여해 전 최고위원을 수년간 성희롱했다고 보도했다. 류 전 최고위원을 안 것은 지난 4월 대선 때인데 어떻게 수년간 성희롱을 했다는 보도를 할 수 있느냐”며 “성희롱을 한 일도 없고 36년 공직 생활 동안 여성스캔들 한 번 없는 나를 이런 식으로 음해하는 가짜 언론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고 했다. 홍 대표는 “에스엔에스에만 가짜 뉴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종편에도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더 이상 참고 볼 수가 없어 오늘부터 자유한국당은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했다. 엠비엔은 이날 오전 8시43분 ‘류여해도 #Me Too 동참? “홍준표에게 수년간 성희롱 당해왔다”’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내보냈다. 엠비엔은 오전 9시18분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이날 오전 자유한국당 원내행정국은 소속 의원들에게 “금일 엠비엔에서 당 대표 관련 가짜 뉴스가 있었다. 가짜 뉴스와의 전쟁에 동참해 달라”며 엠비엔 당 출입 금지 및 부스 제거(본사 통보), 당 소속 의원 및 당직자 등 취재 거부, 당원 대상 시청 거부 운동 독려를 공지했다.
오후에는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이 ‘가짜 뉴스와의 전쟁 선포’ 브리핑을 위해 국회 정론관을 찾았다가 엠비엔 기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엠비엔 쪽은 “그런 식이라면 그동안 홍 대표와 자유한국당이 한 말로 피해를 본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따졌고, 장 수석대변인인은 “제1 야당 대표를 수년간 성희롱한 사람으로 몰아간 보도가 그냥 실수고, 하나의 보도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어 “앞으로 모든 언론 문제에 대해 이렇게 대응할 것이냐”(엠비엔), “애정을 가진 건전한 비판에 대해서는 달게, 뼈저리게 받아들일 것이다”(장제원), “언론을 호불호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냐”(엠비엔), “반성부터 하라”(장제원)며 설전을 벌였다. 앞서 장 수석대변인은 “엠비엔 보도는 제1 야당 대표를 떠나 한 인간에 대한 인격살인이다. 파렴치하고 악랄한 가짜 뉴스를 보도하는 엠비엔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사회정의 실현과 언론개혁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홍 대표는 최근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거듭 표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에 비교적 우호적인 보수언론도 불신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난달 29일에는 경남 밀양 화재 참사와 관련한 여야 공방을 ‘양비론’으로 쓴 <조선일보> 보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무슨 약점이 그리 많은지 정론지로 자처하는 언론조차도 저러니 세상은 좌파정권 찬양 언론시대로 가나 보다”라고 썼다. 홍 대표가 의원내각제 개헌을 주문했다는 <중앙일보> 인터넷판 기사에 대해서는 “무슨 의도로 그런 허위기사를 작성했는지 모르겠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최소한 팩트는 확인해보고 기사를 써야 한다. 허위기사를 써놓고 반박하라고 하니 어이없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도 “왜 언론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음해하고 허위보도를 하는지 참 의심스럽다. 무슨 의도로 그렇게 하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방송장악·보도통제를 주장해온 홍 대표는 최근 당 사무처에 미디어 모니터링 강화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치평론가 등 패널이 참석하는 종편·케이블TV 시사프로그램을 매일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니터링 보고서에는 ‘특정 이미지만 부각해 야당 희화화’,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검찰 수사 상황 길게 보도’, ‘자유한국당 당 대표-원내대표 격에 맞지 않는 다른 당 의원 발언 함께 소개’,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토론 진행’ 등 보도 내용뿐만 아니라 화면 구성, 진행 방식까지 꼼꼼하게 챙긴다고 한다.
이날 홍 대표의 조처를 두고 정치권 일부와 언론학계 등에선 ‘홍준표식 보도통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실과 다른 보도나 악의적 보도라고 판단될 경우 언론중재나 법적 대응 등 피해 구제 수단이 있는데도, 이를 건너뛰고 곧바로 ‘출입 통제’, ‘취재 거부’부터 실행하는 초강수 조처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이나 당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선제적으로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홍준표 대표가 무리한 언론 길들이기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부당한 언론 비판이 있으면 해당 언론사에 항의하고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청구, 반론 논평, 언론중재위 제소 등 여러 대응 방법이 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이런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가장 강력한 방법을 동원했다”며 “이는 홍 대표가 특정 언론을 표적 삼아 전략적으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속내가 담겼다”고 비판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도 ‘가짜뉴스법률대책단’을 만들어 가짜 뉴스 유포 및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가짜 뉴스로 지목한 211건을 경찰에 고소·고발한 바 있지만, 언론사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은 아직 없다.
정의당도 김동균 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홍 대표가 내뱉은 말들을 팩트체크 해보면 진실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자유한국당 구성원들이 일베에서나 떠돌던 낭설을 공공연히 떠든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가짜 뉴스 타령을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당 보도가 오보라면 절차에 따라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소속 의원이 117명인 제1야당이 종편 보도 하나에 세상이 다 뒤집힌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