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언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게 될까요? 그는 구속될까요? 평창 동계올림픽이 다가오는데 바로 그 올림픽을 유치한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참담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를 둘러싸고 정치보복 논란이 한창입니다. 여러분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문재인 정부의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이 존재합니다.
측근들의 구속에 몸이 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끌어들여 정치보복이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노’했습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사설을 살펴보겠습니다.
국가적 위기 속 현 대통령과 전전 대통령 정면충돌(조선일보 19일 치)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내내 '정치보복'이라고 해왔다. 자서전에 관련 부분 제목부터 '정치보복의 먹구름'이다. 실제 이 전 대통령 시절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는 정치보복이었다. 그와 똑같이 지금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와 특별세무조사도 정치보복이다. 노 전 대통령 수사 때도 640만 달러에 달하는 뇌물이라는 구체적 혐의가 있었고 이 전 대통령 수사도 국정원 특활비 등의 혐의가 있다. 두 사건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둘 다 정치보복일 뿐이다.”
‘MB 수사’, 주장보다 사실이 말하게 하라(한겨레신문 19일 치)
“문 대통령이 ‘분노’를 나타낸 건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까지 거론한 이 전 대통령의 행태는 금도를 벗어난 일임이 틀림없고, 검찰 수사와 청와대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검찰에 강경한 수사를 주문한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전 대통령 쪽의 노림수가 바로 이런 식으로 정치 쟁점화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정치권은 이제 자제하고 차분한 태도로 검찰 수사를 지켜봤으면 한다.”
어느 쪽 논지가 더 설득력이 있습니까? 이번 사건이 불거진 과정을 살펴보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검찰에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를 지시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정치보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분노가 결과적으로 검찰에 강경한 수사를 주문한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얻었습니다. 정치보복 논란은 계속될 것입니다.
정치보복 논란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정치보복 논란을 근본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방법이 있습니다.
정치보복 논란의 배경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검찰이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한손에 장악한 괴물 조직입니다. 수사를 하든 말든, 기소를 하든 말든 검찰 마음대로입니다. 선진국 어디도 이렇게 강력한 권한을 검찰에 부여한 나라는 없습니다.
둘째, 그런 막강한 검찰의 인사권을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검찰청법 34조(검사의 임명 및 보직 등) 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의 인사권을 대통령과 청와대가 쥐고 있으니 대통령이 바뀌면 정권의 청부수사 논란, 정치보복 논란이 끝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법도 두 가지입니다.
첫째,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다른 기관으로 분산시키면 됩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면 됩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입해서 독점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검찰이 무리한 수사나 무리한 기소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정권의 범죄나 비리를 검찰이 눈감아 줄 수도 없습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4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밝힌 권력기관 개혁 방안의 요체가 바로 ‘견제와 균형’입니다.
둘째, 대통령과 청와대가 장악하고 있는 검사 인사권을 분산시키면 됩니다. 지금도 검찰청법에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검찰인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만 중요한 검찰 인사는 청와대가 다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검사 인사권을 대통령에서 아예 검찰인사위원회로 넘기거나, 검사장 직선제를 도입하는 등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결국 정치보복 논란을 없애려면 검찰을 전면 개혁해야 합니다. 검찰개혁의 당위성은 누구나 찬성합니다. 그런데도 검찰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유한국당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에 반대합니다. 겉으로는 찬성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반대합니다. 왜 반대할까요?
자유한국당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당입니다. 이들 정당의 특징은 검사 출신이 많다는 것입니다. ‘검사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박희태 강재섭 안상수 홍준표 대표가 검사 출신입니다. 김기춘 김도언 의원은 검찰총장까지 지낸 뒤에 이 정당의 초선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지금도 권성동 법사위원장, 김진태 곽상도 최교일 의원 등 검사 출신 의원들이 많습니다.
검사 출신 의원들은 정치를 그만두면 대개 변호사로 돌아갑니다. 형사사건 수임을 하면 친정 식구인 검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검찰개혁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민정수석이 권력기관 개혁안을 밝힌 지난 14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자기 조직을 해체하겠다는데도 아직도 정권의 사냥개 노릇이나 하는 일부 검사들을 보노라면 밸이 있는 건지 생각이 없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야당 후보자들은 아예 탈탈 털어 씨를 말리려고 검·경 사냥개들을 동원하여 전국적으로 수사·내사하는 것을 보노라면 국민의 검·경인지 정권의 사냥개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쯤이면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내사를 자제하는데 이 정권은 아예 내놓고 검·경을 내세워 야당인사들 탄압으로 선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수가재주 역가복주라고 했습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전복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만 하십시오. 부메랑이 되어 뒤집히기 전에 그만하십시오.”
검찰이 문재인 정권의 ‘사냥개’ 노릇을 계속하면 손을 볼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반대합니다. ‘민변 수사처’가 되리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검찰개혁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 홍준표 대표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검사들이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기 때문에 홍준표 대표도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것 같습니다.
‘정권의 사냥개 노릇을 하는’ 검찰을 손보기 위해 홍준표 대표가 태도를 바꿔 공수처 설치에 찬성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검찰이 가진 수사지휘권을 빼앗아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보장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홍준표 대표는 17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다시 썼습니다.
“권력기관 개혁의 본질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입니다. 그것은 국정원, 검찰, 경찰개혁의 본질도 바로 그렇습니다. 미국 CIA·FBI는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본질적 기능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치권력에 충성하는 조직이 아니라 미국 국익에 충성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신뢰받는 조직은 검찰과 경찰입니다. 그들도 정치권력에 충성하는 조직이 아니라 일본 국익에 충성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권의 권력기관 개혁도 정권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개혁의 본질로 보지 않고 좀 더 정치권력이 권력기관의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한 개혁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권력기관을 국익을 위한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려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이 개혁의 본질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검찰개혁의 요체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말입니다. 옳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가 없습니다. 검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제도개혁 방안이 빠져 있습니다. 청와대가 검찰개혁 방안으로 제시한 검찰 권력의 분산,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에 대해서도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지난 연말 여야 합의로 국회에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구성되었습니다. “법원·법조 개혁, 검찰·경찰 인사 독립성 및 중립성 강화 등 사법 전반에 걸친 개혁 방안의 마련 및 검찰청법, 경찰법,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안의 심사·처리”를 목적으로 2018년 6월 30일까지 활동하는 특별위원회입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사개특위에서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국민의당도 검찰개혁에 적극적입니다. 따라서 자유한국당만 협조하면 공수처법을 제정하고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검찰을 개혁할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어떤 태도로 나올까요?
자유한국당은 23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었습니다. 사개특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이 사개특위에 제출하기 위해 만든 자유한국당의 권력기관 개혁안 초안을 설명했습니다. 검사 출신 곽상도 의원과 논의했다고 합니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수처는 안 된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도 안 된다. 한국형 에프비아이(FBI)라고 할 수 있는 국가수사청을 만든다.”
“지금의 경찰에 수사 개시권, 종결권, 기소권을 다 주면 검찰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경찰은 행정안전부 산하 자치경찰로 전면 개편한다. 교통·경비·방범·청소년 안전 등 생활치안·민생치안을 맡는다. 경찰청장이 총경 이상 인사권을 행사한다. 총경 이하는 자치단체장에게 지휘권을 줘서 민생 경찰로 돌린다.”
“사법경찰은 국가수사청을 만들어 수사권을 주고,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가진 상황에서 검찰과 경찰이 상호 견제하는 얼개로 디자인했다. 국가수사청은 법무부 산하로 할지, 행안부나 법무부 산하가 아닌 독립 외청으로 할지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하다.
국가수사청장은 여야 동수가 추천하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콘클라베 방식으로 임명한다. 국가수사청은 국가적 영역의 경제범죄 수사, 전국단위 수사, 고위공직자비리 수사를 담당한다. 수사개시권, 수사종결권 등 독립성을 부여한다.”
“검찰은 독립성을 강화해서 인사위원회에서 콘클라베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한다. 총장은 예산과 인사를 포함한 조직운영 권한을 갖는다. 검찰 수사관들을 국가수사청으로 돌려서 검찰 조직을 좀 축소한다. 대검에 있는 포렌식 수사도 국가수사청으로 돌린다.”
어떻습니까? 자유한국당은 이러한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29일 의원 연찬회에서 정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잘 될까요? 잘 안 될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의 권력기관 개혁안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자치경찰제 전면 도입은 조국 민정수석이 지난 14일 밝힌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생각은 검찰의 권한 일부를 공수처와 경찰로 넘기고 또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대신에 경찰의 권한을 이러저리 분산시키겠다는 구상입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권력기관 개혁 방안은 검찰은 거의 손대지 않고 국가정보원도 그대로 두겠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경찰을 산산조각내겠다는 것입니다. 검찰과 국정원은 지금처럼 여전히 막강한 조직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정치권력과 결탁해 민주주의를 위협한 주범은 검찰입니다. 국정원입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검찰과 국정원은 그대로 두겠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유는 ‘검사당’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은 사법정의를 크게 훼손시켰습니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습니다.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인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피디수첩’ 제작진을 무리하게 기소했습니다. 미네르바 수사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국정원 댓글 수사를 뭉갰습니다. ‘정윤회 사건’으로 국정농단의 단서가 드러났는데도 엉뚱하게 문서유출을 문제 삼았습니다. 검사 출신 김기춘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앉아서 최순실씨 등 비선 세력의 국정농단을 감쌌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조직, 청산되어야 할 가장 큰 적폐가 바로 검찰입니다. 홍준표 대표가 22일 신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한겨레> 정유경 기자가 “홍준표 대표는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검찰개혁에 소극적인 것 같다. 공수처 설치는 반대하고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개혁을 하면 된다고 하지만, 장제원 사개특위 간사는 경찰에 수사권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검찰개혁 안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늘 하던 답변을 반복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신뢰받는 조직이 검찰과 경찰이다. 일본 검찰과 경찰은 상명하복이 아닌 상호감시 체제다. 검찰이 경찰을 감시하고 경찰이 검찰을 감시한다. 서로 부정을 저지를 수 없다. 서로 잘못된 청부수사를 할 수가 없다.”
“공수처는 ‘민변 검찰청’이다. 민변 사람들을 동원해서 새로운 검찰청, 자기들의 검찰청을 만드는 것이다. 공수처가 검찰개혁의 상징인 것처럼 말하지만, 공수처를 가진 나라는 아프리카에도 없다. 검찰개혁의 본질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개헌 시에 경찰한테 직접 영장청구권을 주는 것이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검경수사권 조정을 들먹이는 것은 검찰개혁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개헌하면 경찰에게 영장청구권을 주겠다면서 당장 6월 개헌에는 반대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은 앞으로 검찰에 계속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되지 않은 검찰은 문재인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자유한국당과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힐 것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그랬듯이 말입니다. 정치보복 논란의 고리를 끊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검찰개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