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국회의원들은 지지자와 지역구민들에게 의정보고와 함께 후원금을 호소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수상 경력’이다. 국정감사 우수의원, 대한민국 의정대상, 백봉신사상 등 일반 국민들에겐 다소 생소한 상의 목록이 메시지에 딸려온다. 성실하게 의정활동에 임하는 정치인들이 상을 받았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어떤 정치인’들의 수상에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BAR가 나섰다. 올 한해 <한겨레> 누리집과 정치BAR 페이스북 등을 뜨겁게 달구며 남다른 존재감을 보인 정치인들을 뽑아 특이한 시상식을 마련했다. 이른바 ‘2017 정치BAR 마음대로 어워드’. 탄핵과 촛불, 조기 대선, 새정부 출범 등 정치권은 뜨거운 한 해를 보냈지만 이번에 뽑힌 수상자들은 ‘돌출 행동’이나 ‘막말’ 등으로 나름의 ‘뜨거운 1년’을 보낸 분들이다. 물론 상패나 상금은 없다. 수상 소감은 2018년엔 ‘좋은 정치’를 하는 것으로 대신하시라.
“이거 실화냐?” 올해 방송과 인터넷에서 많이 사용된 말 가운데 하나다. “이게 사실이냐”는 뜻으로 무언가 믿기지 않는 일을 봤을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올해 이 말을 누구보다 많이 뱉었을 법한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자동 소멸’의 길을 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친박’ 의원들이다.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인용, 문재인 대통령 당선 등 역동적으로 출렁인 올 한 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이들은 연신 “이거 실화냐”를 되뇌었을 것이다. 게다가 같은 ‘클라스’로 취급하지 않았던 ‘홍준표 경남지사’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에 이어 당 대표에 선출되며 당을 접수했다. 박 전 대통령을 출당 조치하고, 자신들을 향해 ‘고름, 암덩어리, 바퀴벌레, 연탄가스’라고 퍼부어대는 현실 앞에 그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특히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은 “의혹이 사실이면 동대구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고 ‘스웩’을 뽐냈지만,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다. 올 한해 무사히 넘겨도, 새해 벽두부터 구속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신세다. 탄핵 당시 “그 사람들(야당)이 (탄핵을) 실천하면 제가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을 것이다”고 했던 이정현 의원(무소속)은 ‘뜨거운 촛불’에 데인 뒤 몸을 바짝 낮춘 채 ‘존재감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른 친박들은 ‘참혹한 현실’ 앞에 “친박은 없다. 계파는 없다”며 친박색을 지우고, 여의도를 서성인다.
어느 집단이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이들이 있다.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박근혜 무죄’를 목청높여 외치는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에게 ‘버스킹 상’과 ‘거리의 의원상’을 수여한다. 다만 내년에는 철지난 ‘박근혜 부활’ 단일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좀 더 다변화한 ‘버스킹’에 나서기를.
“홍준표 대표를 따라하다 보니 너무나 망가진 모습으로 제가 살았던 것 같다.”
26일 자유한국당에서 제명된 류여해 전 최고위원은 윤리위 출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울 서초갑 당협위원장 박탈과 제명 등으로 홍준표 대표와 류 전 최고위원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애초 그들은 ‘도플갱어(분신·복제)’ 처럼 닮았다. 류 전 최고위원의 별명 중 하나는 ‘여자 홍준표’다. 홍 대표가 ‘바퀴벌레’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처럼, 류 최고위원은 지난 6월 전당대회에서 연설 중 구두를 벗어던지는 ‘맨발투혼’으로 존재감을 보였고, “포항 지진은 문재인 정부에 하늘이 주는 준엄한 경고”같은 막말로 ‘트러블 메이커’가 됐다. 두 사람 모두 “‘좌빨’들이 문제다”같은 편향된 발언을 스스럼 없이 올리는 에스에엔스(SNS) 헤비유저이기도 하다.
홍 대표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류 전 최고위원에 대해 “그건 묻지 마라. 인형 갖고 노는 사람이다. 요즘 초등학생도 인형 갖고 놀지 않는다”며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 신인의 도발에 갈길 바쁜 제1야당이 쩔쩔매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체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도플갱어’의 만남은 갈등과 반목을 예고한다. 너무도 닮은 이들의 만남도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던 것일까.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은 몇마디 말로 비정규직 급식노동자, 아르바이트생 등 많은 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6월 말 학교 비정규직 파업과 파업 노동자들에 대해 <에스비에스>(SBS) 기자에게 ‘나쁜 사람들’, ‘그냥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표현하며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되어야 하는 거냐”라고 말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해명 기자회견에선 부당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급식 노동자들의 파업을 ‘어머니가 안 계신 밥상’에 비유하고, 어머니에 대해서도 “공기처럼 특별한 존재감 없이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해 분노를 키웠다. 또 7월2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결정에 대해 “저도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사장님이 망해서 월급을 떼인 적이 있다. 그런데 사장이 살아야 저도 같이 산다는 생각으로 노동청에 고발하지 않았다”고 말해 전국의 수많은 ‘알바’들을 한순간에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높은 온도, 습도, 세척제 등으로 피부질환과 화상에 시달리는 등 단시간 고강도의 노동에 신음하는 급식 노동자들의 문제가 환기됐다. 매일 먹는 흔한 ‘밥상’이 고된 노동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사실을 많은 국민들에게 알린 공로로 이 상을 수여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하고, 보수의 미래를 열겠다며 지난 1월 바른정당을 창당했던 이들의 포부는 허망했다. 국정농단 청문회의 활약으로 한때 ‘촛불 스타’였던 김성태·장제원 의원 등은 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자유한국당(새누리당)으로 복귀해 원내대표와 대변인을 맡고 있다. ‘친박이 좌지우지하는 박근혜 사당’이라며 새누리당을 뛰쳐나온 김무성 의원도 지난 11월9일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을 출당 조처 하는 등 변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국정농단의 ‘공범자’들이 남아있는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을 뛰쳐나온 의원들에게 춥고 배고픈 ‘소수정당’ 생활은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을까. 애초부터 자유한국당을 바라보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올 한해 음원차트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던 ‘볼빨간 사춘기’의 노랫말이 계속 맴돌았을지도 모른다. “난 너를 지울 수 있을까/우린 남이 될 수 있을까/난 너를 지울 수 있을까/그저 한순간에 우린/남이 될 수 있을까”
기자회견이 열리는 국회 정론관에 ‘시인’의 언어가 울려 퍼진 적이 있다. 시인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당시 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시적 감수성으로 세월호 참사를 표현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후 삭막한 정론관에 문학적 감수성이 담긴 논평의 명맥이 끊기나 했는데, 올해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이 이를 되살렸다. 지난 11일 그는 최승호 신임 <문화방송>(MBC) 사장의 인사 조치에 대해 “취임 하루 만에 보도국을 모조리 숙청했다”며 비판하는 구두논평을 냈는데, 문화방송이 “혹독한 겨울을 맞았다”며 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을 읊은 것이다. 장 대변인은 “강철같은 겨울을 이겨내고 영광의 봄이 오기까지, 부디 뜻 있는 MBC 내 언론인 여러분들께서 중지(衆智)를 모아 잘 이겨내 주시기 바란다”고 파업 당시 회사 편에 섰던 기자들을 ‘격려’했다. 물론 장 대변인의 ‘시 논평’은 도 대변인과 달리 공영방송 정상화를 염원해온 시민들로부터 “이육사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등의 차가운 반응에 직면했다. ‘빨갱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사회주의자였던 시인의 글을 인용한 것도 ‘아이러니’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핵실험 도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책을 맡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올해 발언과 행보는 ‘뜬금없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지난 달 국군 사이버사령부에 ‘댓글 공작’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석방에 대해 “참 다행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고, 9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 특임교수를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상대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탈북 병사 사건으로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한 자리에선 “미니스커트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뜬금포’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 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미국 일각에서 강도 높은 대북제재 수단으로 거론된 ‘해상봉쇄’ 조치와 관련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논의에서 정부가 해상봉쇄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처럼 답해 논란이 됐다.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해상봉쇄라는 부분이 언급된 바가 없다”는 청와대의 입장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외교안보 상황에 속이 타는 청와대와 여당은 송 장관의 행보에 더욱 심장이 쪼그라들지 모른다. 내년에는 송 장관의 뜬금포가 ‘영점조준’하길 기대하며 상을 수여한다.
<명불허전>, <고백부부> 등 올해도 타임슬립(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이어졌다. 국회에서도 타임슬립을 몸소 실천한 이가 있다. 종교인 과세 시기를 유예하자는 법안(소득세법 개정안)을 지난 8월9일 대표 발의해 논란이 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법안은 지난 2015년 기독교 등 종교계의 반대를 뚫고 ‘2년 유예’를 조건으로 가까스로 통과돼 내년 1월1일 시행을 앞둔 종교인 과세를 또 다시 미루자는 내용이다. 김 의원 등 여야 25명 의원들은 “시행을 2년 유예하여 과세당국과 종교계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철저한 사전준비를 마치고 충분히 홍보하여 처음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법이 연착륙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지만, 김 의원이 민주당 기독신우회 회장이자 교회 장로인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종교인 세무조사 금지’까지 주장했다.
종교인 과세는 50여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치열한 논란이 이어진 사안이다. 2015년 법안 통과 때도 큰 진통을 겪었다.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된 우리 사회의 논의를 자꾸 과거로 돌리려 하는 김 의원에게 ‘타임슬립’상을 수여하는 이유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