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77
아홉번 모두 독재와 혁명에 의해서만 이뤄져
정파적 이해관계 대타협 경험 한 번도 없어
지방선거 방어에 집착하는 자유한국당 고집
4년 중임 대통령제-이원정부제 첨예한 대립
권한분산 대통령제로 타협하는 것이 현실적
이번 기회 놓치면 수십 년간 개헌 못 할 듯
아홉번 모두 독재와 혁명에 의해서만 이뤄져
정파적 이해관계 대타협 경험 한 번도 없어
지방선거 방어에 집착하는 자유한국당 고집
4년 중임 대통령제-이원정부제 첨예한 대립
권한분산 대통령제로 타협하는 것이 현실적
이번 기회 놓치면 수십 년간 개헌 못 할 듯
국회 개헌특위 연장 문제로 국회가 파행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대선주자들의 공약대로 내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는 주장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와 개헌을 분리해서 지방선거 이후 2018년 연말 사이에 개헌하자는 주장입니다.
국민의당은 일단 국회 개헌특위와 정치개혁특위를 통합해서 6개월 연장하고 내년 2월까지 개헌안 발의를 위해 노력하자고 중재안을 내놓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 중재안을 받아들였지만 자유한국당은 거부했습니다. 이런 조항에 합의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명분을 준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 감사원장·대법관 임명동의안과 법안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표류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표현을 어떻게 하든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하자는 것이고 자유한국당은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내년 3월까지 개헌을 둘러싸고 여야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내년 6월13일 지방선거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바로 개헌이 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개헌의 역사는 흑역사였습니다. 독재와 혁명에 의해서만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정파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대타협을 이룬 경험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1948년 제정된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했습니다. 1950년 5월30일에 실시된 2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의 참패였습니다. 그는 국회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작아지자 1951년 11월 30일 정·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부결됐습니다. 이에 고무된 야당은 1952년 4월17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했고 정부는 이미 부결된 바 있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5월14일 다시 제출했습니다. 7월4일 정부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안과 야당의 국무원불신임 개헌안을 절충한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토론도 없이 기립투표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중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밀어붙인 위헌적 개헌이 바로 1952년 1차 개헌이었습니다. 한심하지요? 1954년 2차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위한 ‘4사 5입’ 개헌이었습니다. 민의원 표결에서 개헌 의결정족수에 1표가 부족해 부결이 선포됐지만 ‘4사 5입’ 이론으로 억지를 쓴 자유당 의원들만 모여 다시 가결을 선포했습니다. 원천무효에 해당하는 엉터리 개헌이 2차 개헌이었습니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의원내각제를 뼈대로 하는 3차 개헌이 6월15일 이뤄졌습니다. 1960년 11월29일 4차 개헌은 헌법 부칙에 반민주행위자 처벌 소급입법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4·19 혁명의 여파였습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군인들은 혁명이라고 했지만 쿠데타였습니다. 1962년 12월6일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과한 헌법 개정안이 12월 17일 국민투표로 확정됐습니다. 5차 개헌이었습니다.
1969년 6차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위한 개헌이었습니다. 7차 개헌은 1972년 유신헌법입니다. 유신헌법이 얼마나 반헌법적 헌법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독재자는 하나님과 같은 권력을 쥐는 데 성공했지만 1979년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비극적 최후를 맞았습니다. 1980년 8차 개헌은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 헌법이었습니다.
1987년 9차 개헌은 1960년 4·19와 마찬가지로 6월항쟁이라는 시민혁명의 성과물이었습니다. 시민들과 야당의 대통령직선제 개헌 요구를 전두환 정권이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의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 각서를 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종필 전 총재와 디제이피 연합을 하면서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지만, 개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개헌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조정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의했으나 국회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최순실 사태를 막기 위해 개헌을 제의했고 곧바로 정략적 개헌 제의였음이 들통났습니다.
어쨌든 1987년 개헌 이후 30년이 흘렀습니다. 2016년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고 2017년 정권이 교체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제 개헌을 할 때가 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개헌은 쉽사리 이뤄질 것 같지 않습니다. 2018년 개헌은 도대체 왜 어려운 것일까요?
개헌 당위론을 펴는 사람들의 몇 가지 주장부터 살피겠습니다.
첫째, 촛불민심이 개헌이라는 주장입니다. 아닌 것 같습니다.
1987년 6월항쟁은 직선제 개헌을 성취하기 위한 시민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2016년 촛불 혁명은 오히려 헌법을 어긴 현직 대통령을 몰아내고 헌법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혁명이었습니다. 국민은 헌법을 헌신짝처럼 취급한 대통령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철저히 헌법 절차에 의한 탄핵을 선택했습니다.
둘째, 개헌 찬성 여론이 높다는 주장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사실입니다. 여론조사를 하면 개헌 찬성 여론이 높게 나옵니다.
그러나 개헌 찬성 여론에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묻지마 지지’ 여론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개헌하겠다고 하니까 개헌에 찬성하는 여론도 높은 것입니다. 여론조사 내용을 ‘어떤 개헌’이냐를 기준으로 정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만약 국회에서 이원정부제 개헌안을 마련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권력구조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히면 국민은 국회 개헌안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개헌 현실론을 살피겠습니다. 정치는 당위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개헌도 당위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과거 아홉 차례의 개헌은 철저하게 독재와 혁명이라는 현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합의’라는 당위에 의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 때문입니다. 슬프지만 사실입니다.
2018년 개헌이 안 되는 현실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때문입니다. 5·9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 대표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뒤 공약을 뒤집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뒤 22일 기자회견에서 개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곁다리 국민투표는 맞지 않는다. 국민투표 비용이 얼마 든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졸속 개헌을 하려고 하면 안 된다. 개헌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보다 중요하고 중차대한 문제다. 지방선거 이후에 연말까지 개헌되도록 하겠다. 곁다리 국민투표는 불가하다.”
개헌 안 하겠다는 얘깁니다. 자유한국당 대표로 복귀한 뒤에 홍준표 대표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대선 공약대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로 개헌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면 지방선거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자유한국당이 불리해질 수도 있지만, 홍준표 대표는 10차 개헌의 주역으로 대한민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대선 공약을 폐기하고 지방선거에서 6개 시도 광역단체장을 지켜내는 길입니다. 지방선거를 선방해야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개헌이라는 명분을 포기하고 지방선거 이후 당권 유지라는 실리를 선택하는 길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두 번째 길을 선택했습니다. 홍준표 대표가 개헌에 반대하면 개헌이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유한국당이 116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회 의석은 297석입니다. 더불어민주당 121, 자유한국당 116, 국민의당 39, 바른정당 11, 정의당 6, 민중당 1, 대한애국당 1, 무소속 2(정세균 이정현)입니다. 개헌안 발의에는 149석, 개헌안 의결에는 199석이 필요합니다. 자유한국당이 당론으로 반대하면 개헌 의결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개헌에 찬성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홍준표 대표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개헌안 의결에 찬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 60여명의 찬성으로 가결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수 있었던 것은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계개편과 반기문 카드로 재집권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2016년과 달리 지금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는 당 대표에게 맞서면서까지 개헌에 찬성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생각하는 개헌안과 자유한국당 및 국민의당 의원들이 생각하는 개헌안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개헌의 핵심이 기본권과 지방분권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권력구조는 4년 중임 대통령제로 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안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다수도 이런 의견입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 대통령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제에 대한 지지가 높은 편입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의원 다수,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는 직선 대통령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국무총리가 권한을 나눠서 행사하는 이원정부제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해야 한다는 명분입니다.
둘 중에서 어느 쪽이 좀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하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다수 의원의 방안이 현실적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경로 의존성입니다.
우리 국민은 수십년간 대통령제에 익숙해 있습니다. 이원정부제는 우리나라에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1960년 의원내각제 개헌은 이승만 독재라는 특별한 정치적 상황의 반작용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지금 다수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안에 국민의 동의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둘째, 지금이 유일한 기회입니다.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대로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 2018년 연말 사이에 개헌이 가능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등 전국선거에 따른 정치적 결산 국면이 벌어집니다. 전당대회를 해서 당 지도부를 새로 구성해야 하는데 개헌 논의를 할 여유가 없습니다. 어찌어찌 해서 지방선거 이후에 국회에서 개헌안이 의결된다고 해도 국민투표를 통과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헌법 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어느 한 정파가 개헌 보이콧 운동이라도 벌이면 과반수 투표 미달로 개헌이 무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19~2020년에는 개헌이 가능할까요? 지금과 똑같은 이유로 개헌하지 못할 것입니다. 각 정당 지도부가 2020년 총선 유불리 때문에 개헌을 섣불리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깁니다. 2021~2022년은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대통령 선거는 2022년 3월 9일로 예상됩니다. 대통령 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같이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거의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각 후보의 유불리가 엇갈리기 때문입니다.
대선 이후에는 가능할까요? 지금까지 개헌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 임기 초에 개헌 논의를 틀어막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 새로 선출되면 조기 레임덕을 우려해 개헌 논의를 못 하게 하고 임기 말에는 개헌하려고 해도 힘이 없어서 못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던 것입니다.
임기 초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진짜 지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같은 대통령을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개헌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할 때 개헌은 지금이 최적기라고 봐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보다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발의하고 의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개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 세력이 홍준표 대표 한 사람의 개헌 반대 고집을 꺾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권한을 분산시킨 4년 중임 대통령제든,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한을 나누는 이원정부제든 개헌이 이루어지면 현재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은 사라지게 됩니다. 유력한 대선 주자가 없는 보수 세력으로서도 지금 개헌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보수 성향의 여러 논객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마련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칼럼이나 사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누군가 이런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현실 정치는 어쨌든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동시에 했다가 지방선거에서 참패라도 하면 보수 논객이나 보수 언론이 대신 책임져 줄 수 있나?”
대한민국 보수 세력의 집단지성이 겨우 이 정도 수준이라는 얘기입니다. 서글펐습니다. 2018년 개헌 과연 어떻게 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4년 11월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안’에 서명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민주화 8개항을 발표하는 노태우 민정당 총재.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12월3일 저녁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자신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것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한 뒤 웃으며 대표실로 가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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