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총리를 제안하면서 ‘개혁 대통령’을 위해선 ‘안정총리’가 필요하다 했다. 완강히 고사해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던 당시의 뒷얘기를 1일 회고록을 통해 공개했다.
그는 이날 공개한 <고건 회고록: 공인의 길>에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던 시절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충돌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당시 강 전 장관은 권한대행 첫 국무회의에서 “권한대행은 소극적 권한대행이지 적극적 권한대행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에 고 전 총리는 책에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내가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할 자리는 아니다’그러고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그다음에는 내가 ‘한번 주의를 줘야겠다’ 그렇게 작심하고 있는데 언론에서 ‘국회에서 탄핵을 취소해야 된다’라는 (강 전 장관의)돌출 발언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서 그다음 국무회의 때 내가 알아듣도록 (강 전 장관에게) 주의 지시를 했다. ‘민감한 시기에 정치적 발언은 국무위원으로서 신중하게 해달라’고 주의를 줬다”며 “그런 말이 다시 한 번 나오면 경질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찍어서 임명한 사람이라 경질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시각에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 되기 전에도 내가 국무총리로서 할 얘기는 다 했다”며 실제로 강 전 장관을 경질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 전 장관이 당시 그랬던 이유에 대해 “그건 본인의 캐릭터다. 판사 출신이기도 하고, 노 전 대통령을 지켜내기 위해서였기도 했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총리를 제안한 것과 강 전 장관을 ‘찍어서’ 임명한 전후 사정도 공개했다. 고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총리를 제안하면서 '개혁 대통령'을 위해선 '안정총리'가 필요하다 했다. 완강히 고사해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며 당시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자연스레 대화는 내가 김영삼 정부 마지막 총리로 임명되던 때 얘기로 옮아갔어요. 나는 국무위원 해임제청권 행사를 전제로 김 전 대통령의 총리직 제의를 조건부 수락했던 일을 얘기했지요. 내 이야기를 듣던 노 당선인이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더군요. “해임제청권뿐만 아니라 아예 실질적인 내각 인선까지 맡아서 해주시죠.” 잠시 뜸을 들이다 한마디 더 꺼냈어요. “다만 법무장관 만은 제가 이미 생각해 둔 사람이 있는데…”라면서 누구인지 노 당선인은 말하지 않더군요. 나도 묻지 않았죠. 나중에 보니 강금실 변호사였어요.
-<고건 회고록: 공인의 길> 45쪽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시기에 대해서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63일”이라고 밝혔다. 이후 노 전 대통령과의 거리가 멀어진 배경에 대해서는 ‘인사 문제’를 꼽았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에서 복귀한 날 청와대로 들어가 ‘이제 강을 건넜으니 말을 바꾸십시오’라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런데 사흘 후 새 장관들에 대해 임명제청을 해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비서실장을 두세번 보냈고, 마지막에는 내 사표를 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완전히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12월 “고건 총리가 양쪽을 다 끌어당기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됐다. 결국 나와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왕따가 됐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인사”라고 말한 것에 대해 “완전히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고립된 거예요. 나는 총리 그만둔 지 몇 년 후 얘기에요. 시계열에 대한 착각이 있었던 게 아닌가? 내가 정부에 있을 때도 신 4당 체제라고 그랬지만 첫번째 신 4당 체제는 여당이 제3당일 때였어요. 지금은 여당이 제1당인 신신 4당 체제이지요. 그런데도 아직 여야정 협의 체제가 잘 안 돼 잖아요. 오히려 내가 총리일 땐 여야정 합의가 잘됐다고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고건 회고록: 공인의 길> 45쪽
그는 결국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싫어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임명제청 요구 거절’과 이른바 ‘친노(친노무현)’세력과의 갈등을 꼽았다. 고 전 총리는 “날 싫어하게 된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총리를 그만두기로 하고 신문에 다 났는데, 신임 장관 두 사람을 제청해 달라는 걸 내가 거부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정치적으로는 친노 세력에게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메시지’에 대해 그는 “‘고건을 밀지 마라’ 그런 얘기”라며 “나도 정치인으로서 그때 당시 정부와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일이 없을 수 없었다. 그때 바다 이야기니 뭐니 일이 있을 때는 한마디씩 해야 했었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