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답답했지요. 오만, 불통, 무능… 하시지 말았어야 해요. 아버지 기념사업이나 하셨어야지요.”
고건 전 국무총리가 1일 공개한 <고건 회고록 : 공인의 길>에서 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1962년 내무부 수습사무관을 시작으로 37살에 최연소 전남도지사를 맡고, 국무총리 두번, 서울시장 두번, 대통령 권한대행(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을 역임하는 등 그는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에서 장관과 총리, 서울시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아왔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고 전 총리는 회고록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보수정치권에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그 당사자가 제일 큰 책임이 있겠지만, 그 사람을 뽑고 추동하면서 진영대결에 앞장선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근혜를 검증 안 하고 대통령 후보로 뽑은 거 아니냐. 보수진영이 이기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진영대결의 논리이고 결과다. 중도실용을 안 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고 전 총리는 지난해 본격적인 촛불 정국이 벌어지기 전 박 전 대통령을 만났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2016년 10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사회원로 몇 명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충고라기보다는 비상시국에 드리는 진언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자신이 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우선 이렇게 건의 드렸습니다. 국민들의 의혹과 분노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국민을 납득시키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다른 탈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건의 드립니다. 첫째 대통령께서 ‘성역 없는 수사’를 표명하셔서 모든 의혹이 객관적으로 규명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월29일, 청와대 관계자 사무실의 검찰 압수수색을 불승인 조치를 했는데, 이런 일은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두번째 건의는) 인적 쇄신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국정 시스템을 혁신해서 새로운 국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거국내각제이든 책임총리제이든 하루라도 빨리 정치권과 진지하게 협의를 시작하기를 건의 드립니다.(중략) 이런 점을 건의 드렸어요. ”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촛불집회가 연이어 일어나고, 국회에서 탄핵안이 발의되고, 가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개헌 논의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대통령제를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전 총리는 “우리는 오랫동안 대통령중심제를 학습해왔고, 남북 대립관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각책임제니 뭐니 새로이 학습을 시작하면 오래 걸린다. 기왕에 대통령제를 학습해오면서 ‘아, 이런 점은 잘못됐구나’ 느꼈던 걸 고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이원집정부제도에 대해서도 “내치와 외교, 국방을 구분한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꼭 이원집정부제도라고 이름 붙일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학습해오면서 느꼈던 것을 고쳐 나가면 된다”며 자신의 생각을 ‘대통령 권한 분산형’이라고 표현했다. “개헌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없다. 하지만 몇십년 해오던 걸 수선해서 써야지, 새집을 짓는다고 나서면 집 짓다가 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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