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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할때만 꺼내는 정치권 ‘셀프 회초리’…달라진 것 있나요

등록 2017-11-30 10:56수정 2017-11-30 11:48

정치BAR_정치권 ‘회초리’ 사용 설명서
2005년 2월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콘퍼런스홀에서 김태길(앞줄 왼쪽), 손봉호 (앞줄 오른쪽)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공동대표가 우리 사회의 윤리 붕괴에 석고대죄를 하고, 전직 장관들은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치고 있다. <한겨레>자료사진
2005년 2월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콘퍼런스홀에서 김태길(앞줄 왼쪽), 손봉호 (앞줄 오른쪽)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공동대표가 우리 사회의 윤리 붕괴에 석고대죄를 하고, 전직 장관들은 자신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치고 있다. <한겨레>자료사진
29일 국민의당이 당 대표실 벽면에 ‘회초리’ 그림을 걸었습니다. 회초리 위에는 ‘국민의 마음이 풀릴 때 까지’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바른정당과의 연대·통합 논란으로 어수선한 당의 분위기를 잡고, 좀처럼 오르지 않는 당 지지율에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국민 여러분의 애정 어린 사랑의 매를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회초리’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자주 꺼내 드는 카드입니다. 지지자들에게 “회초리를 들어달라”며 고개를 숙이곤 하죠. 그런데 ‘정치(政治)’의 ‘정(政)’을 한자로 풀어보면, “올바름을 위해 회초리를 친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바를 정(正)’에 ‘회초리를 치다, 채찍질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부수인 ‘등글월 문(攵)’이 합쳐진 글자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한자에 담긴 의미대로라면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에 회초리를 쳐야 합니다. 정부를 감시·견제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게 국회의 역할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들은 ‘회초리’를 드는 대신, 왜 매번 ‘회초리’를 맞겠다고 하는 걸까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참석 위원들 뒤 배경판에는 회초리가 그려진 새 홍보메시지가 그려져 있다. 왼쪽부터 김동철 원내대표, 안철수 대표, 장진영 최고위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참석 위원들 뒤 배경판에는 회초리가 그려진 새 홍보메시지가 그려져 있다. 왼쪽부터 김동철 원내대표, 안철수 대표, 장진영 최고위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보통 ‘회초리’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스스로 생각해도 유권자들을 볼 낯이 없을 때 꺼내 듭니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4월6일, 당시 대구·경북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최경환 의원을 비롯해 김문수, 윤재옥, 김상훈, 곽상도, 정태옥, 이인선, 추경호, 곽대훈, 양명모, 정종섭, 조원진 의원 등 대구 공천자 11명은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대구지역 후보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한 번만 봐달라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최경환 의원은 “우리 대구시민 여러분께 정말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들 회초리 때려주십시오. 회초리를 맞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고 부르짖습니다.

최경환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의원이 2016년 4월6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대구지역 후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MBN>뉴스 화면 갈무리
최경환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의원이 2016년 4월6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대구지역 후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 화면 갈무리

이는 당시 새누리당 공천과정에서 친박과 비박이 극도의 갈등을 보이며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매일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운 ‘진박’들은 공천에서 살아남고, 친유승민계 의원들은 대거 공천에서 탈락합니다. 이에 반발해 “공천장에 당 대표 도장을 안 찍겠다”는 김무성 대표의 ‘옥새 투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가뜩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민심이 돌아선 가운데 집권 여당까지 이전투구를 벌이니 유권자들은 “민생은 외면하고 밥그릇 싸움만 한다”고 싸늘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결국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회초리’를 꺼내든 것입니다. 물론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심장’인 대구마저 김부겸 민주당 의원(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뽑는 등 이전과 다른 민심을 보였죠.

회초리를 맞겠다던 최경환 의원은 현재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진박’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새정부가 들어섰지만 당의 ‘출당 요구’에 버티며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2016년 4월6일 최경환 의원등 새누리당 ‘진박’ 후보들이 대구에서 시민들에게 큰절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채널A>뉴스 화면 갈무리
2016년 4월6일 최경환 의원등 새누리당 ‘진박’ 후보들이 대구에서 시민들에게 큰절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채널A>뉴스 화면 갈무리

선거에 패배하고 난 뒤에도 ‘회초리’를 꺼내 들기도 합니다. 반성하고 앞으로는 달라지겠다는 다짐이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결과를 지켜봐야 했던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꾸려 수습에 나섭니다. 그때 전국을 돌며 당원과 지지자,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회초리 민생 투어’가 진행됐습니다. 광주 5·18 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전국을 도는 일정이었죠. 당시 문희상 비대원장은 “전국의 민생현장을 돌면서 국민들에게 회초리도 맞고 국민들의 말을 경청해 강도 높은 혁신의 밑거름으로 삼겠다”고 몸을 낮췄습니다.

2013년 1월16일, ‘회초리 민생투어’에 나선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등 지도부가 부산 중구 부산민주공원을 찾아 시민들에게 사죄와 참회의 삼배를 하고 있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3년 1월16일, ‘회초리 민생투어’에 나선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등 지도부가 부산 중구 부산민주공원을 찾아 시민들에게 사죄와 참회의 삼배를 하고 있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물론 당시 당내에선 대선패배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이벤트’나 ‘쇼’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개표 전까지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는 선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 낙승을 예상했던 민주통합당은 패배의 후유증도 오래갔습니다. 당내에서 패배의 원인을 두고 서로에게 ‘총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당시의 민생투어는 ‘이벤트’에 그친 것 같습니다. 그 뒤에도 민주당은 당내 주류-비주류 갈등으로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와신상담한 끝에 현재 집권여당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국민들을 찾아가 반성과 사과를 전하고, 그들의 쓴소리를 듣겠다고 진행된 ‘새누리당에 회초리를 들어라! -청년편’이 지난 1월 10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카페에서 열렸다. 인명진 전 비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누리집
사회 각계각층의 국민들을 찾아가 반성과 사과를 전하고, 그들의 쓴소리를 듣겠다고 진행된 ‘새누리당에 회초리를 들어라! -청년편’이 지난 1월 10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카페에서 열렸다. 인명진 전 비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누리집

지난 1월에도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은 ‘회초리’를 또 꺼냈습니다.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개입 게이트’ 파문으로 코너에 몰린 새누리당은 인명진 전 당 윤리위원장에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겼습니다. 역시 ‘새누리당에 회초리를 들어라’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각계각층 사람들의 쓴소리를 듣겠다는 것이죠. 물론 과거처럼 쓴소리만 들었나 봅니다. 새누리당의 바통을 이어받은 자유한국당은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제 1야당의 역할 대신, ‘적폐청산 물타기’와 내부 계파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MBC> ‘무한도전’ 방송 화면 갈무리
‘무한도전’ 방송 화면 갈무리

앞서 소개한 세 개의 ‘회초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 없이 무조건 “회초리를 때려달라”고 한 것이죠. 이러한 회초리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맙니다. 그리고 사실 정치인들이 자꾸 회초리를 때려달라고 하는데, 회초리를 때리는 건 유권자 마음입니다. 때려달라고 하지 않아도 유권자들은 때려야 할 때 회초리를 듭니다. 물론 정당이나 정치인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남아 있을 때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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