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인은 거의 무보수로 2년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인들을 달래주고 위로해줄 위안부 도입이 급선무라 생각한다. 여자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의 보수를 받으면 나쁘지 않은 딜일 것"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 올라온 ‘군내 위안부를 재창설해달라’는 청원·현재 삭제)
“저 청원은 정부에서 심각성을 느끼고 청원자 잡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님들 모독하는 행위라고밖에는 생각이 안 듭니다”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 올라온 ‘군내 위안부 재창설하라는 청원자 처벌’ 7만3470명 참여)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문을 연 청와대 누리집의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20일 오후 5시 현재 4만5889건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영어 교육(시험)을 개선해주세요”, “육아휴직 법 개정해 주세요” 같은 정책·제도적 건의부터, “이런 취업 사기는 어디에다 호소해야 하죠”, “OO 야구부를 살려주세요” 등의 민원도 올라온다. “커플들에게 데이트 비용을 지원해달라”, “히딩크 감독을 국가대표 축구 감독으로 모셔오자” 등 ‘장난’이 담긴 요구도 게시된다. 또 ‘군내 위안부 설치’같이 익명성에 기대 사회적 윤리에 어긋나거나,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청원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이에 “청원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군내 위안부 재창설하라는 청원자 처벌 해야 한다” 같이 앞선 청원에 반박하거나 ‘자정’을 주문하는 주장들도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다.
청와대 청원 상위 5개 목록(11월20일 오후5시현재). 청와대 누리집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문 대통령의 생각은
“어떤 의견이든 국민들이 의견을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였다.
20일 문 대통령은 수석·보조관 회의에서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많이 접수됐다. 참여인원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청원도 있고, 현행 법제로는 수용이 불가능해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의견이든 국민들이 의견을 표출할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청원이라도 장기적으로 법제를 개선할 때 참고가 될 것이다”며 “어떤 의견이든 참여인원이 기준을 넘은 청원들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성의 있게 답변해 주시길 바란다. 참여인원이 기준보다 적은 경우에도 관련 조치들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성실하게 상세하게 알려드리길 바란다”고 회의 참석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이는 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황당하거나, 도를 넘는 게시물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자,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직접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 대통령은 청원제도 역시 국민들과의 소통 창구로 바라보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8월20일 ‘출범 100일 대국민 보고’에서 “국민들은 간접 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정부의 정책도 직접 제안하는 직접민주주의를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청원 게시판에 역기능이 있더라도 시민들의 의사를 표현할 ‘창구’로 남겨두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9월25일 소년법 개정 청원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 유튜브 계정 갈무리
청와대는 30일간 20만 명이 서명한 청원에는 공식답변을 내기로 하고, 지난 9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여파로 40만여 명이 동참한 ‘소년법 청원 개정’에 대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청와대 청원 열풍은 다른 청원 창구인 국회 청원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과 대조되는 풍경이다. 국회 청원은 16대 765건, 17대 432건, 18대 272건, 19대 227건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19대에서 채택된 청원은 2건에 불과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20대 국회는 20일 현재 110건의 청원이 접수돼서 3건이 채택되고, 99건이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에 접수된 청원은 상임위원회 내에 구성된 청원심사소위원회(소위)에서 검토 뒤 처리하지만, 소위가 잘 열리지 않는 등 청원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게시판에 익명으로 글을 올려 청원을 할 수 있는 청와대와 달리 국회 청원은 국회의원의 청원소개의견서를 첨부해야 접수가 되는 번거로움도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