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집단 탈당 사태로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은 바른정당이 13일 당원대표자회의(전당대회)를 열어 유승민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유 의원은 지난 5·9 대선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던 데 이어, 위기에 빠진 당의 진로를 개척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바른정당은 이날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지난주 미리 진행한 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한 결과 유 의원이 새 대표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책임당원선거인단 투표(50%)와 일반당원선거인단 투표(20%), 여론조사(30%)를 종합한 결과, 유 의원은 총 56.5%(1만6450표)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2~4위를 차지한 하태경 의원(23.5%, 7132표), 정운천 의원(10.3%, 3303표), 박인숙 의원(4.7%, 1366표)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정문헌 전 의원(2.7%, 797표)과 박유근 후보(1.2%, 336표)는 탈락했다.

유승민 신임 대표는 25분간 이어진 수락연설을 통해 “지금 우리는 죽음의 계곡에 들어섰다. 원내교섭단체가 무너져 춥고 배고픈 겨울이 시작됐다. 이 겨울이 얼마나 길지 우리는 모른다”면서도 “우리가 똘똘 뭉쳐 서로의 체온을 나누면서 강철같은 의지로 이 죽음의 계곡을 건넌다면, 어느새 겨울은 끝나고 따뜻한 새봄이 와있을 것”이라며 당의 단합을 강조했다. 또 “개혁보수의 창당정신, 그 뜻과 가치를 지키겠다”며,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전쟁영화 <위 워 솔져스> 대사를 인용하며 마지막까지 바른정당을 지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 대표의 연설을 듣던 여성 당원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유 대표는 선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당내에서 12월 중순까지 중도보수통합 논의의 성과를 내자는 합의가 있었고 저도 약속했기 때문에 진지하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당과는 연대와 협력 내지 통합을 원하는 분들끼리 상당히 많은 대화를 해왔다. 저도 다 듣고 있다. 원칙있고 명분있는 통합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호남 배제’ 논란에 대해서는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 ‘지역주의 탈피’라고 말했는데, 이를 ‘호남 배제’라며 오히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구태정치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바른정당은 지난 6·27 전당대회에서 이혜훈 의원을 대표로 선출했지만, 이 대표가 금품수수 의혹으로 지난 9월 물러나면서 넉 달여 만에 다시 전당대회를 치렀다. 애초 ‘유승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유력하게 검토됐지만, 김무성 의원이 비대위 체제에 반대하며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의원 등 8명은 전당대회 1주일 전인 지난 6일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을 선언했다.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았던 주호영 의원도 전당대회 직후 탈당할 예정이다. 주 의원까지 빠져나가면 바른정당은 의석수가 딱 원내교섭단체 요건인 20석에서, 11석으로 줄어든다.

바른정당은 분당 사태 이후 “12월 중순까지 중도·보수대통합에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노력한다”고 당내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유승민 대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연대·통합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이어 바른정당에서 유승민 의원이 대표에 선출됨으로써, 5·9 대선에 후보로 나섰던 3인이 모두 야당의 대표로 나선 모습이 됐다. 아래는 유승민 의원의 대표 수락연설 전문.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