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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없고 ‘사람’도 없는 국회 비교섭단체가 뭐길래

등록 2017-11-08 14:04수정 2018-03-05 17:16

정치BAR_춥고 배고픈 비교섭단체 설명서
44년째 유지되는 ‘20인 의원’ 교섭단체 기준
비교섭단체는 국고보조금, 국회 운영에서 소외
국회운영 효율성 vs 소수 정당 목소리 반영
그래픽_김지야
그래픽_김지야
소속 의원 9명의 집단탈당 선언으로 바른정당은 의원 11명의 비교섭단체가 된다. 그런데 탈당을 선언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은 8일 오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 사전환담에 참석했다. 국회는 국빈급 인사가 국회를 방문할 때 원내 교섭단체에 한해 초청하는 게 통상의 관례라며,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만 초청했는데도 말이다. 탈당 의원 9명이 8일 오후 탈당계를 제출하고 9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할 예정이라 트럼프 대통령 방문까지 ‘시간차’로 바른정당이 교섭단체를 유지하기 때문에 주호영 원내대표의 참석 자격도 유효했던 것이다. “탈당 선언을 하고도 바른정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는 비판에 대해 주호영 원내대표 쪽은 “참석자 명단을 사전에 통보했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앞서 7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한 말이 주호영 원내대표의 행보와 묘하게 겹친다. 이 대표는 라디오에 나와 비교섭단체가 된 바른정당에 “한 달만 지내면 얼마나 춥고 배고픈지 알게 된다”면서도 “용기를 가지라”고 위로했다. “유령취급을 받는다”며 이 대표는 6석을 가진 비교섭단체 정의당의 설움을 구구절절 털어놓았다. 정의당은 트럼프 대통령 환담 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를 가르는 기준은 ‘의원 20명’의 보유 여부다.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차이가 뭐길래 주호영 원내대표는 바른정당에 남은 의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 환담 자리에 참석한 것일까. 왜 이정미 대표는 비교섭단체가 “춥고 배고프다”고 했을까?

◎국회법 중 교섭단체 관련 조항

제33조(교섭단체)
① 국회에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 그러나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인 이상의 의원으로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제34조(교섭단체정책연구위원)
① 교섭단체소속의원의 입법활동을 보좌하기 위하여 교섭단체에 정책연구위원을 둔다.

제50조(간사)
① 위원회에 각 교섭단체별로 간사 1인을 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어 44년째 유지되는 기준

지금의 ‘20인 기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해 1972년 국회 해산과 유신헌법 선포를 단행한 뒤 부활했다. 국회를 대신한 비상국무회의가 1973년 2월 국회법을 개정하며 9대 국회부터 적용된 것이다. 새 정치세력, 특히 야당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려고 만든 기준이라는 비판이 따랐는데, 이게 44년째 유지되고 있다. 단 소수 정당끼리 의원 20명 이상의 일시적 단체를 만들면, 그 단체가 교섭단체 지위를 얻을 수도 있다.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노회찬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 관련 국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높은 진입장벽 탓에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이 이뤄지기도 했다. 1963년 제6대 국회에서는 민주당(13석), 자유민주당(9석), 국민의당(6석) 등 군소정당들이 ‘삼민회’를 조직해 교섭단체로 활동했다. 그로부터 38년 뒤, 디제이피(DJP) 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만든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의원 꿔주기’를 통해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총선에서 자민련 의석이 17석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자 민주당에서 소속 의원 3명의 당적을 2001년 초 자민련으로 옮기도록 한 것이다. 2008년에는 보수성향의 자유선진당(18석)과 진보성향 창조한국당(2석)은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기괴한’ 이름의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기도 했다. 물론 2009년 9월 자유선진당 심대평 전 대표가 탈퇴서를 제출하면서 1년 만에 ‘기묘한 동거’는 끝났다.

2008년 4·9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탈당해 '친박 무소속'으로 4선에 도전해 당선된 김무성 의원은 친박 무소속 의원들과 친박연대 소속 의원들을 묶어 ‘친박 원내 교섭단체’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비치기도 했다. (실현되지 않았다.)

비교섭단체에 없는 4가지

정세균 국회의장(왼쪽 셋째)과 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22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6월 임시국회 일정 및 여·야·정 협의체 운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누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원식(더불어민주당)·김동철(국민의당) 원내대표, 정 의장, 정우택(자유한국당)·주호영(바른정당) 원내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세균 국회의장(왼쪽 셋째)과 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22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6월 임시국회 일정 및 여·야·정 협의체 운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누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원식(더불어민주당)·김동철(국민의당) 원내대표, 정 의장, 정우택(자유한국당)·주호영(바른정당) 원내대표.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교섭단체에 견줘 비교섭단체에는 없거나 부족한 게 많다.

① 원내 협상 등 주요 논의에서 배제된다.

중요한 입법이나, 예산안 등의 논의에 비교섭단체는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매주 월요일 진행하는 여야 원내대표와의 정례회동, 여·야·정 협의체에도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은 참석하지 않는다. 언론도 국회를 ‘여야 4당 체제’라고 부를 때가 많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뉴스에 바로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바른정당의 붕괴로)‘이제 국회는 3당체제가 되었습니다.’ 아니, 정당이 엄연히 다 존재하는데…”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섭단체의 여야 협상장에 들어가지 못해 주변을 배회하는 비교섭단체의 당직자들을 보는 것도 국회의 흔한 풍경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당의 입장을 정해야 하고, 논평도 내야 하는데,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이들에게는 답답한 노릇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협상장 밖에 대기하는 기자들의 ‘뻗치기’가 비교섭단체 당직자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② 본회의장 좌석 배치 부터 국회 일정, 상임위 배분 까지 발언권이 없다

교섭단체는 본회의장 좌석 배치부터 정기국회·임시국회 등 연간 국회 운영에 관한 모든 일정, 본회의·대정부 질문 순서와 발언 시간까지 정한다. 상임위원회 배분에서도 소외된다. 교섭단체 간의 협상에 따라 비교섭단체 의원들의 상임위가 정해진다. 국회법 제50조 1항은 “위원회에 각 교섭단체별로 간사 1인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즉 비교섭단체는 상임위원회 간사 자리도 가질 수 없다.

2014년 6월24일 정의당은 당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19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합의과정에서 환경노동위원회에 비교섭단체를 배제한 것에 반발해 국회 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노동 문제를 적극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배제된 것은 거대 정당의 횡포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하루 만에 이러한 결정은 철회되고, 당시 심상정 원내대표가 환경노동위원회에 배치됐다.

③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

국회법에 따라 교섭단체는 입법활동을 보좌하는 정책연구위원을 지원받지만, 비교섭단체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당에 분기별로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차별도 크다. 예를 들어 국고보조금을 100원이라고 할 때, 절반인 50원을 교섭단체가 떼어가 균등하게 나눈다. 그리고 5석 이상 20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에는 총액의 5%, 즉 5원씩 지급한다. 이제 남은 돈의 절반은 정당의 의석수 비율에 따라 나눠주고, 나머지 절반은 20대 총선 득표수 비율에 따라 배분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지난 8월 3분기에 정당에 지급된 105억2600여만원 중 더불어민주당은 30억8300만원, 자유한국당 31억4100만원, 국민의당 21억7100만 원, 바른정당은 14억7800만 원을 수령했다. 그런데 9명의 의원이 탈당이 완료되면 바른정당의 국가보조금은 큰 폭으로 삭감될 전망이다. 바른정당은 11월에 지급될 국고보조금이 8억원 안팎이 삭감돼 5~6억 원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은 3~4억원 정도 더 받을 수 있다. 이정미 대표가 “(바른정당) 나머지 11분이 안에서 한 달만 지내보면 이게 얼마나 춥고 배고픈 상황인지 바로 느끼시게 될 것이다”고 한 것은 괜히 말한 것이 아니다.

④ 교섭단체 대표는 40분, 비교섭단체 대표는 15분

정기국회와 임시국회 초반에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있다. 보통 비교섭단체에도 ‘대표 연설’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는 틀린 말이다. 국회법에서 교섭단체 대표는 ‘연설’이란 이름으로 40분의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했지만, 비교섭단체 대표는 ‘발언’이란 이름으로 15분만 사용할 수 있다. 같은 행위지만 ‘연설’을 ‘연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9월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을 하고 있다. 교섭단체 대표는 ‘연설’이지만 비교섭단체는 ‘발언’이다. 시간도 교섭단체는 40분을 받지만, 비교섭단체에는 15분만 허용된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9월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을 하고 있다. 교섭단체 대표는 ‘연설’이지만 비교섭단체는 ‘발언’이다. 시간도 교섭단체는 40분을 받지만, 비교섭단체에는 15분만 허용된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제적 기준보다 높은 20인 기준

참고로 교섭·비교섭단체를 가르는 ‘20인 기준’은 국제적 기준과 비교하면 우리 국회는 높은 편이다. 미국·영국은 교섭단체가 되는 특별한 기준이 없다. 미국·영국은 사실상의 양당제여서 민주당-공화당(미), 보수당-노동당(영) 같이 원내정당이 사실상 교섭단체다. 일본은 2명이다. 프랑스 하원의 경우 15석으로 총 의석 577석의 2.6%다. 대체로 해외의 교섭단체 기준은 총의석의 1~5% 범위라고 한다. 또 비교섭단체에게 제한적 권한을 주는 보완책을 도입한 나라들도 있다.

하지만 의원 총수가 300명인 우리나라의 교섭단체 기준 비율은 6.7%다. 외국과 비교하면 교섭단체 진입장벽이 높다는 평가가 따른다.

국회 운영의 효율성이냐, 소수의 목소리 반영이냐

자유한국당 정우택(왼쪽부터 시계방향)·더불어민주당 우원식·국민의당 김동철·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9월1일 오후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자유한국당 정우택(왼쪽부터 시계방향)·더불어민주당 우원식·국민의당 김동철·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9월1일 오후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현재 국회는 교섭단체 기준에 대해 “국회에서 일정한 정당 또는 원내단체에 속하는 의원들이 의사를 사전에 통합·조정하여 정파간 교섭의 창구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국회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려는데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비교섭단체인 소수정당 뿐만 아니라, 거대 정당에서도 교섭단체의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왔다.

2013년 6월 박기춘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등 20명의 의원이 교섭단체의 구성 기준을 ‘10인 이상’으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원내 제1야당인 당시 민주당 의원 15명과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 5명이 동참했다. 당시 박 의원은 “거대 정당에 비해 군소정당 소속이나 무소속 의원들의 교섭단체 구성이 어려워 거대 정당이 국회 운영을 독점하는 결과가 발생한다”며 “구성요건을 10인 이상으로 완화해 다양한 정치적 세력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법 개정 취지를 밝혔다. 앞서 2008년 국회 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는 정당득표율 5% 이상, 혹은 의석수 10석 이상 단일정당으로 교섭단체의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2004년 원내에 입성한 민주노동당을 시작으로 진보정당은 꾸준히 교섭단체 기준 완화를 요구해왔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7월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5인 이상으로 완화하여 소수 정당 소속 의원이나 무소속 의원들도 쉽게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정치적 세력의 형성과 사회계층의 다양한 의사를 국회 운영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고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물론 의석수가 많다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더 받았기 때문에 교섭단체 기준이 높아야 하고, 이들이 국회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현재 5당 체제의 국회가 오히려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기도 한다.

중요한건 교섭단체 진입장벽이 다양한 국민들의 의사를 국회에 반영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의원 9명의 탈당이 바른정당의 애초 창당 취지인 “개혁 보수’를 대변하겠다”는 목소리를 국회에서 위축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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