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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말 좀” “칭찬 좀”…D-13 문재인-트럼프 ‘솔직 가상회담’

등록 2017-10-25 11:33수정 2017-10-25 11:49

정치BAR_
트럼프 11월7일 방한·회담
두 정상 벌써 네번째 회동
정치색도, 성격도 다르지만
현안 둘러싼 씨름 치열할듯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7일 한국에서 정상회담을 한다. 한반도의 긴장 국면에서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성격도, 출신 배경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지금까지 세차례 만남에서 보여준 스타일과 한-미 간에 당면한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 등을 토대로 ‘가상회담’을 꾸며봤다.

문재인 한국 방문 환영합니다. 우리 취임한 지 1년이 안 됐는데도 제법 많이 본 것 같네요. 특히 당신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언론이 떠드는데도 말입니다. 벌써 네번째인가요? 6월말에 미국 방문해서 만난 걸 시작으로 7월초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랑 같이 봤잖아요. 지난달말 유엔 총회 때도 아베 총리랑 또 셋이서 만났고요.

도널드 트럼프 아 그런가요? 내가 밤낮없이 트위터로 전세계 이슈를 다 챙기다 보니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어서….

아무튼 나는 당신 만날 때마다 맺히는 게 많아요. 특히 아베 총리랑 같이 만나면, 당신과 아베 둘이서 나를 왕따시킨다는 둥 별말이 다 나오잖아요.

트럼프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지 말아요. 내가 언론 안 좋아하는 거 알죠? 가짜 언론들이 전하는 가짜 뉴스라고요. 옛날에 지미 카터가 박정희를 좋아했겠어요, 로널드 레이건이 전두환을 좋아했겠어요? 그런데도 당시엔 두 나라가 이견을 잘 극복했다고 떠들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미국 언론들이 한-미 견해차 있다고 쓰면, 당신 나라 언론들이 훨씬 호들갑 떨더라고요,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호박씨 까는 스타일 아니잖아요? 할 말 대놓고, 아니 그 이상으로 하는 스타일이니까요.

당신 이번에도 한국 오기 전에 아베 만났잖아요. 이번에도 죽이 잘 맞았다면서요? 북한 핵문제 놓고는 당신보다도 아베가 한술 더 뜨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속담에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는데, 아베 총리는 말리는 시누이 정도가 아니라 합세해서 몰매 주는 시누이 같아요. 아베는 북핵에 기대 선거에서 압승하고, 꿩 먹고 알 먹고 하면서도, 나랑 한국은 정말 배려 안 하더라고요. 박근혜 전 대통령 꼬드겨서 ‘위안부’ 피해자 합의도 날치기로 해놓았잖아요.

트럼프 쩝,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밖엔 내가 할 말이 없네요.

오케이. 아무튼 오늘 한가지는 확실히 합시다. 북한 핵 문제 말이에요, 내가 그동안 당신 비위 상당히 맞춰준 거 알죠? 박근혜가 알박기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도 인정해주고, 북한 돈줄 조르기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참가했죠. 그럼 내 체면도 좀 세워줘야 하는 거 아녜요? 나랑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우선, 당신이 트위터에서 질러대는 북한이나 김정은에 대한 강경 발언이라도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어요.

트럼프 당신은 한가지만 아는 것 같아요. 북핵만 놓고 보면 당신 입장에서는 내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비해 유리하다는 거 몰라요?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요. 오바마는 북한을 개무시했지만, 난 그래도 관심이라도 보여주잖아요. 부시·오바마를 거치며 북핵 문제가 악화된 이유가 뭐겠어요? 부시·오바마는 계속 북한 무시하든가 아니면 임기 막판에 가서야 압박하는 시늉 했잖아요. 나는 정말 북핵 문제 해결하고 싶어요. 나 취임하면서부터 국내에서 궁지에 몰린 거 알잖아요. 북핵 문제에서 성과 내서 인정받고 싶다고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현지시각)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워싱턴/김경호 기자 jija@hani.co.kr,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현지시각)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워싱턴/김경호 기자 jija@hani.co.kr,
북핵 대응
문 “사드·대북제재 박자 맞췄는데
북 자극하는 발언 자제할 순 없나”
트럼프 “그래야 협상하는 데 유리
북 목조르기 함께 확실히 하자고”

성과 내고 싶으면 일관성 있게 발언하고 대처해야죠. 당신 취임 전에는 김정은이랑 햄버거 놓고 대화할 수 있다거나, 김정은이 젊지만 제법 똑똑하다는 등 그러더니 이제 와서 ‘분노와 화염’, ‘리틀 로켓맨’이라고 들쑤셔놓으면 어떡해요? 북핵 문제에 대해 외교적 해법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참모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 대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하질 않나. 난 도통 종잡을 수 없어요.

트럼프 그거야, 북한이 나보고 ’노망난 늙은이’라고 하는 등 자꾸 대드니까 그런 거죠. 그리고 알다시피 내 스타일이 일단 크게 질러서 상대방의 혼쭐을 빼놓는 거잖아요. 그래 놓아야지, 협상하는 데 유리하죠.

그런데 북한이 당신의 그런 협박이나 공갈에 넘어가던가요? 당신의 트레이드마크라는 ‘미치광이’(mad man) 수법은 사실 북한 애들이 즐겨 쓰는 전통적 수법이란 거 몰라요? 당신의 협박과 공갈에 북한은 괌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한다, 북태평양 상공에서 미사일 쏴서 수소폭탄 실험한다, 북한 공역에 미군 비행기 보내면 쏘아 떨굴 권리가 있다는 등 더 세게 맞받아치잖아요. 북한도 그렇지만, 당신도 협상 입지만 줄어들었잖아요. 미국이나 북한이나 여기서 한마디 더 하면, 이제 남은 건 행동하는 것뿐이죠. 도대체 그 결과가 뭘까요?

트럼프 ….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자 독일을 찾은 두 사람은 7월6일 함부르크에 시내 미국 총영사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만찬을 가졌다. 문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가 기념촬영을 마친 뒤 만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함부르크/연합뉴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자 독일을 찾은 두 사람은 7월6일 함부르크에 시내 미국 총영사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만찬을 가졌다. 문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가 기념촬영을 마친 뒤 만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함부르크/연합뉴스

한-미자유무역협정
문 “FTA 폐기 시사는 지나친 발언
자국 이익만 챙기는 것 아닌가”
트럼프 “백인 유권자들 원성 거세
한-미동맹 손상 안 되게 협상을

나도 당신이 좀 특이한 사람이라는 거 알아요. 그래도 난 당신이 장사꾼이니 실용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려고 해요. 문제는 당신의 그 실용이란 게 오락가락하는데다, 너무 속보이게 제 잇속만 차리려고 하는 거예요. 북핵 문제로 우리가 정신없는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하겠다고 협박해서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개정하려는 건 좀 심한 거 아니에요?

트럼프 나는 기존 미국 대통령들과는 좀 다른 사람이에요. 나를 뽑아준 사람들, 미국에서 물먹고 있는 백인들, 자기들이 미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처지는 옹색해지고 있으니 분노하는 친구들이죠. 세계화·자유무역협정… 이런 것들이 자기네 일자리를 뺏고 다른 나라만 좋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미국은 자기 돈 들여서 외국에 군대 주둔하면서 지켜주고 있다고 주장하죠. 나로서는 우선 나를 뽑아준 그런 사람들 챙겨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취임하자마자 미국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보다 더 중요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도 폐기할 수 있다고 말한 거, 공갈만은 아니에요. 나 정말 수틀리면 나프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이고 뭐고 폐기해도 아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내 입장에서는 이게 북핵 문제보다도 더 중요해요.

우리나라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사람들 많아요! 우리 협상 대표가 말한 대로, 우리도 수틀리면 탈퇴할 수 있다는 각오라고요. 그 협정 폐기되면, 미국 산업계도 농업계도 가만있지 않을걸요?

트럼프 어라, 제법 세게 나오네요.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되면 당신이 더 곤혹스러울걸요? 한국 언론들이나 보수진영이 한-미 동맹이 깨진다고 난리를 칠 텐데, 그거 견딜 수 있어요? 아무튼 당신의 그런 도전적 태도는 인정할게요. 그러나 한마디 충고해줄게요. 내가 싫어하는 ‘가짜 언론’의 대표이지만, <워싱턴 포스트>가 이번 동북아 순방에 앞서 ‘어이, 외국 지도자들, 여기 트럼프에 대해 알아야 할 게 있어’라는 칼럼에서 잘 지적했더라고요. ‘트럼프는 혼란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트럼프는 위험을 아주 잘 감수한다’, ‘트럼프에게 모든 것은 개인적 문제이다. 아첨받기 좋아하는 실없는 인간이다’ 등등. 나랑 말 섞으려면, 내가 만들어내는 혼란이나 위험, 이런 거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거죠. 한마디로 세게 맞짱 떠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만 내 체면도 좀 살려줘야죠. 나 좀 칭찬해 달라고요. 나 관심과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에요. 한국에선 ‘관종’이라고 한다던데…. 애고, 내가 이거 너무 말을 많이 했네요. 아무튼, 이제 본론 얘기해요. 북핵 문제에서 최대한의 압박과 개입, 이거 확실히 하자고요. 북한 목 조르기 할 때 당신네들도 일사불란하게 참가하라고요!

우리도 지금 최대한으로 압박과 개입을 하고 있어요. 우리도 확실히 할 거 있어요. 쓸데없이 긴장 고조시키지 말아요. 트위터에서 자꾸 떠들어서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 넘지 않게 하자고요. 한가지 더 바란다면, 나뿐만 아니라 북한 체면 세워주는 말을 당신이 먼저 하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그래야 나도 미국한테 더 협조할 수 있는 공간 생기니까.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이 지난 9월21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업무오찬장에 들어가고 있다. 뉴욕/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이 지난 9월21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업무오찬장에 들어가고 있다. 뉴욕/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트럼프 “미군이 지켜주는데 더 내야”
문 “미 세계패권 위한 주둔군 성격도”

트럼프 내 지지자들이 주한미군 빼자고 하고 있어요. 우리가 다른 나라 지켜주는 데다가 왜 우리 돈 쓰냐고. 그러니 주한미군 분담금도 더 내고, 미제 무기도 더 사요! 사드 뭐 이런 것들도 더 배치하고.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 일체화를 더 밀고 나가자고요.

주한미군이 우리나라만 좋으라고 있는 건가요? 미국 입장에서도 세계패권 유지하려는 거잖아요. 그리고 주한미군 빼면 당신이 좋아하는 그 군인들이 가만있겠어요?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할게요. 우리나라에서 지금 북핵 해결의 첫 수순으로 한-미 연합훈련 축소·중지 얘기 나오는데, 이거 미국 국방부나 군인들이 반대해서 잘 안되는 거 아니에요? 옛날에도 북한과의 대화 위해서 한-미 연합훈련을 한 해 중단했더니 미 국방부가 하도 설쳐서 국무부 반대도 뚫고 다시 훈련 재개했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지금 한-미 연합훈련 중단하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당신이야 파격 좋아하고, 기존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거 좋아한다면서요. 그럼 우리가 방위비 더 내고 그러면, 당신도 뭔가 파격적으로 기존의 악순환을 깨는 거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나도 사드 때문에 지지자들한테 얼마나 욕먹었는지, 중국한테 얼마나 당했는지 알아요? 중국 관광객이 반토막 나고, 중국 진출한 우리 기업 피해도 엄청나요.

트럼프 내 참모들이 그러는데, 한국 청와대 참모들은 항상 우리한테 ‘예스’라고만 하는 것 같대요. 그런데 왜 당신은 지금 딴소리하는 거예요? 참모들처럼 왜 예스라고 안 해요?

그거야 미국이 갑, 한국이 을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관리들이 주눅 들어서, 할 말 제대로 못하니까 그런 건데…. 갑질에 익숙한 당신들은 그걸 당연히 내가 예스라고 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갑을관계 청산’. 이거 내가 국정 개혁과제로 밀고 있는 거예요. 안 그래도 이거 때문에 우리나라 안에서도 말이 많아요. 한국 관리들이 미국 관리들 만나면 벌벌 긴다고. 나도 당신 만나서 이렇게 직접 떠들고 싶지 않다고요. 내 참모들이 먼저 백악관 사람들이랑 멱살이라도 잡아줘야 내가 당신 만나서 큰소리치고, 양보하는 척이라도 할 텐데, 이거야 원….

트럼프 하하하, 당신이랑 나랑 입장이 완전히 반대구먼요. 미국은 아랫사람들이 나보고 말조심하라고 하는데, 한국에선 당신이 참모들한테 좀 큰소리치라고 하다니. 아무튼 대북제재, 방위비 분담,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거는 확실히….

아이고, 알았으니 그만합시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꼭 알아둬요. 당신 그렇게 한반도 긴장 고조시키다가 잘못해서 전쟁 나면 모든 게 도루묵 된다는 거! 그리고 우리랑 북한한테만 압박하지 말고, 중국 가서도 말 좀 해봐요. 힘센 당신들이 타협할 게 많잖아요? 두 나라가 해결할 문제를 왜 우리한테 부담 지우려고 하는 겁니까?

트럼프 내일 중국 가니 시진핑 주석과 얘기 잘 해봐야죠. 중국과 잘 풀어야 한다는 당신 말은 나도 알아요. 아무튼, 내가 당신을 인정하고 싶게 해줘요. 너무 주변에 휘둘리지 말아요. 나처럼 배짱 있게 밀고 나가라고.

고양이 쥐 생각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고운 말 좀 씁시다, 그리고 내 체면도 살려줘요!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그림 권범철 kart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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