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지난달 28일 오전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헌법재판소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주식으로 거액을 벌었다는 의혹으로 1일 사퇴했습니다. 그리고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 투표가 곧 국회 본회의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두 가지 사안은 전혀 별개인 것 같지만 사실은 헌법재판소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유정 후보자도 사퇴 성명에서 마지막으로 “저의 사퇴로 인하여 헌법재판소의 다양화라는 과제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유정 후보자는 주식 때문에 낙마했지만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애초에 이유정 후보자를 반대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가 정치 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유정 후보자는 2002년 ‘노무현을 지지하는 변호사 모임’에 참여했고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을 했습니다. 2011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고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지난 3월 발표된 더불어민주당의 인재 영입 명단 60명에도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정치 활동을 한 사람이 헌법재판관을 하면 안 된다는 야당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요?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이유정 후보자 인사청문회 발언과 보도자료를 통해 이런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최근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후보자의 과거 이력이 헌법재판의 정치적 중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직업 정치인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선례도 있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헌법재판관을 지낸 한병채 전 재판관은 대구에서만 4선 국회의원(제8대~제11대)을 지낸 정치인으로, 1985년 민정당 후보로 제12대 총선에 출마하였다가 낙선한 지 불과 3년 뒤인 1988년 민정당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되었다.”
“헌법재판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서울대 법대·판사 출신 ‘엘리트 법조인’만 재판관에 임명되는 것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임명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한병채 재판관은 1971년 8대 총선에서 신민당 후보로 대구에 출마해 당선된 뒤 유신 시절인 9대와 10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1981년 11대 총선에서는 민정당으로 출마해 당선됐던 사람입니다. 12대 총선에도 민정당 후보로 나섰지만 야당 바람에 낙선하고 3년 뒤 1988년 민정당 추천으로 국회에서 선출돼 헌법재판관에 임명됐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조승형 재판관의 사례도 들었습니다. 조승형 재판관은 13대 평민당 전국구 의원과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을 지낸 뒤 1994년 평민당 추천으로 국회에서 선출돼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사람입니다.
노회찬 의원은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라는 책에 나오는 김문희 전 재판관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최근 재판소 구성은 잘못된 것이다. 법학자, 정치인, 외교관 한 사람 정도씩 필요하다. 법관으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은 헌법재판을 민·형사 재판처럼 하려는 경우가 있다.”
노회찬 의원의 지적은 모두 사실이고 매우 타당한 주장입니다. 저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두 차례 법조 출입기자를 하며 헌법재판소를 담당했습니다. 1988년 출범한 초기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초대 헌법재판관 중에는 민정당 국회의원 출신이 또 한 사람 있었습니다. 대법원장 지명 몫으로 임명된 이성렬 재판관입니다. 그는 1981년 대법원 판사가 됐는데 1985년 12대 총선에서 민정당 전국구 16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국회의원을 마치고 민정당 인권신장특위 위원장을 하다가 1988년 헌법재판관이 됐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언급한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라는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법조기자를 오래 한 이범준씨가 2009년에 낸 책입니다.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다양성과 정치성이 1기 재판소의 특징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치에 관여한 3명(이성렬·변정수·한병채), 검사 출신 1명(김양균), 교수 출신 1명(이시윤)이다. 나머지도 모두 변호사를 거쳤다. 판사로만 있다가 재판관이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러한 다양성은 2기부터 주춤한다. 그리고 3기와 4기에서는 정통법관들이 헌재를 장악한다. 4기 재판소는 작은 대법원이라는 말도 듣는다.”
헌법재판소가 처음에는 다양성과 정치성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법관들에 의해 장악되면서 퇴화했다는 분석입니다. 책에는 헌법재판소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전직 재판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재판관 9명 가운데 3명은 법관·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다양한 직역에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헌재는 헌법을 기반으로 법리적인 해석을 하는 기관이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켜내는 보루인 만큼 다양한 의견과 시각이 필요하다.”
김문희 전 재판관
“최근 재판소 구성은 잘못된 것이다. 법학자·정치인·외교관이 한 사람 정도씩 필요하다. 법관으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은 헌법재판을 민·형사재판처럼 하려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도 재판관 자격을 일본 최고재판소처럼 식견이 높고 법률 소양이 있는 40세 이상 사람으로만 해두고, 다만 법관 자격이 없는 사람은 3분의 1을 넘지 못한다는 식으로 하면 된다.”
조승형 전 재판관
“법관 자격 재판관 9명에 국민대표 재판관 3명을 더해 모두 12명 헌법재판관이 되도록 헌법과 헌재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사회는 법률이 따르지 못할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에게 충격을 가해 새로운 법률이론을 펼치게 해야 한다. 둘째, 법률만 공부하다 보면 자충수에 빠질 우려가 있다. 국민 재판관이 법률을 모르더라도 법률가들에게 해석의 돌파구를 열어줄 수 있다. 셋째, 국민 재판관이 3명 정도 있어도 법률 재판관만으로도 위헌 정족수를 넘으니 법률 전문성에 흠이 생기지 않는다.”
황도연 전 재판관
“재판소에는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조화가 이뤄진다. 생활이 비슷하면 생각도 비슷하다.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른 사람, 동질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헌재소장에 대법관 출신과 재판관 출신 가운데 누가 나은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재판관으로 6년 있었지만 2년 6개월 정도 지나서 이른바 헌법감각이 들었다. 헌법감각이 금세 생기는 게 아니다. 법원에 오래 있을수록 헌법감각과 멀어지니 (대법관 출신에게 불리하다고 본다). 그리고 재판소가 대법원 일부가 되면 헌법재판은 죽는다. 절대로 안 된다. 지금과 같이 분리해둬야 한다.”
주선회 전 재판관
“헌재는 대법원 산하기관이 아니다. 재판관 출신 헌재소장이 나와야 한다. 은행장에 재정경제부 출신들만 내려오면 곤란하지 않나. 재판소 위상을 위해서도 대법관 출신은 안 된다. 헌법 해석도 재판관 출신이 대법관 출신보다 많이 안다. 그리고 재판관 가운데서도 반드시 판사 출신일 필요는 없다. (헌법재판의 핵심인) 정치적, 정책적 판단은 대사나 검사처럼 정책 시각을 가졌던 사람에게 유리하다. 재판소 구성에서도 판사가 7명씩이나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면 제2의 대법원이다. 재판관 가운데 판사가 반을 넘어서는 곤란하다. 예전처럼 정치인 출신도 있어야 한다. 다만 법률적 소양이 필요하니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좋다고 본다.”
헌법학자들도 헌법재판소의 다양성에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의 <헌법학>은 이 대목을 명확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헌법재판관의 자격을 법관의 자격을 가진 자로 한정한 헌법 규정에 대하여는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법관의 자격 요건으로 인하여 헌법재판소의 구성이 사법관 중심의 폐쇄적인 구조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에는 우리 사회의 다원적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하여 사법관뿐만 아니라 학자, 외교관, 국회의원 등의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현행 헌법은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재판관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헌법재판소를 구성하고 있는 8명의 재판관은 7명이 판사, 1명이 검사 출신입니다.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 재판관이 판사 출신이고 안창호 재판관이 검사 출신입니다. 판사 출신들은 대부분 고법부장이나 법원장 등 고위직 출신입니다. 지난 3월 임명된 이선애 재판관만 예외적인 인물입니다. 서울고법 판사와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뒤 법복을 벗고 2006년부터 변호사를 했던 사람입니다.
헌법을 바꾸기 전까지는 어쨌든 법관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재판관에 임명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헌법재판소 구성을 다양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나 진보적 성향의 법조인들을 재판관에 임명해야 합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일 오후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린 국회 본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여야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키로 합의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임명 몫의 재판관 후보자로 이유정 변호사를 지명한 것, 그리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김이수 재판관을 지명한 것이 모두 다 헌법재판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구성이 다양해져야 헌법재판소가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보호하지 않고 다수 국민과 약자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낙마한 이유정 변호사 대신 다른 사람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할 것입니다. 이번에도 고위 법관 출신의 보수 성향 남성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다양성을 확충할 수 있는 인물을 또다시 발탁할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당장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 투표가 관심입니다. 자유한국당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한 재판관이라는 이유로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도 그런 의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자유한국당의 이런 주장은 비합리적인 기득권 세력의 논리입니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에서 김이수 재판관의 반대 의견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피청구인의 지역조직인 경기도당이 주최한 2013. 5. 10. 및 5. 12. 각 모임과 그 모임들에서 이루어진 이○기 등의 발언은 단순히 언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것이나, 그와 같은 활동은 피청구인 전체의 기본노선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피청구인이 그러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그러한 활동으로부터 기본노선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이를 피청구인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 결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데 반하여 그로 인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야기되는 해악은 매우 심각하므로, 정당 해산 결정은 그러한 이익이라도 긴절하게 요구되는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한하여 최후적이고 보충적으로 선고되어야 하는데, 피청구인 소속 당원들 중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형사처벌 등을 통해 그러한 세력을 피청구인의 정책 결정 과정으로부터 배제할 수 있는 점, 정당 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공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한데 지방선거 등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 영역에서 이미 피청구인에 대한 실효적인 비판과 논박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 결정이 피청구인의 대다수 일반 당원들에게 가하게 될 사회적 낙인 효과, 그리고 현격한 국력 차를 비롯한 오늘날 남북한의 변화된 현실 등을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 결정은 비례원칙에 위배된다.”
논리가 명확하지 않습니까? 이석기 전 의원의 발언은 잘못된 것이니 형사 처벌을 하면 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 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공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너무나 당연한 상식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김이수 재판관 한 사람이라도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했기에 망정이지 9명 전원일치로 통합진보당 해산이 결정됐다면 선진국에서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북한과 다름이 없는 전체주의 국가라고 비웃지 않았을까요?
김이수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이 된다고 해서 9명 가운데 1명인 재판관으로서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에 대한 반대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해서 기를 꺾어놓자는 정치적 계산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과 김이수 후보자를 통합진보당과 한통속으로 묶어 매도함으로써 반사이익을 보려는 계산도 있을 것입니다. 색깔론이라는 얘깁니다. 도대체 세월이 얼마나 더 지나야 그 지긋지긋한 색깔론 타령이 없어질까요?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