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전 때문에 고생이 많겠다.”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부터 시작했다. 홍 대표는 “마침 원전 졸속중단을 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더 많아졌고, 국민들이 불안해 하니까 정부도 졸속중단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은근히 박 회장의 ‘맞장구’를 기대했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기업의 경제활동 지원 등을 부탁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박 회장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박 회장은 탈원전 정책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인사말을 했다. “대표님 취임 하시고 당직자분들이 새로 구성되어서 인사드리고, 국회 개원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활동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십사하고 부탁 말씀드리려고 찾아왔다.” 의도적으로 주제를 돌리려는 듯 했다.
애가 탄 것일까. 홍 대표도 박 회장의 말은 받지 않은 채 다시 탈원전 얘기를 꺼내 들었다. “어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바른정당 사람들도 야당들은 전부 원전 졸속중단에 대해 안 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원래 대한상의 회장님 회사가 원전 터빈 만드는 회사 아닌가. 터빈 다 만들어놓지 않았나.” 박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대표를 맡고 있는데, 모회사인 두산중공업은 터빈 등 원전 주요기기 등을 생산한다. ‘경제적 손실이 크겠다’며 찌른 것이다. 결국 박 회장은 “(탈원전) 공론화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짧게 답했다. 말을 더 끌어내려는 의도였는지 홍 대표는 “야당들이 일제히 원전 졸속 중단은 안 된다고 결정했고, 여론도 지금 우세한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에 경제계에서 염려하는 사태는 정기국회 중에 저희들이 막도록 하겠다”고 재계의 방패막이를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돌아온 박 회장의 답변은 홍 대표의 기대에 못 미쳤을듯 싶다. “대표님께서 토크콘서트 다닌다고 들었다.” 박 회장 역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의 이해관계자로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만,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야당 대표의 말에 공개적으로 맞장구 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홍 대표는 결국 탈원전 얘기는 접어야 했다. 대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세 인상과 이에 따른 기업 해외탈출, 강성노조 문제점을 자세하게 설명한 뒤 “좌파 정부가 기업 옥죄기를 하면 어렵다. 저희가 열심히 하겠으니 사업 많이 하고 잘하시라”고 격려했다. 박 회장은 “열심히 하겠다”고만 했다. 홍 대표는 “열심히 하겠다”는 박 회장을 향해 “그리고 채용 좀 늘려 달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는 주고받는 대화의 ‘맛’이 살아났다. 추 대표는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박 회장을 만나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경제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대·중·소기업과 사용자, 노동자가 더불어 성장하는 전략으로 한국경제가 직면한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고 실업과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길에 함께 있다”며 대기업의 상생 노력을 강조했다. 이에 박 회장은 “상생 협력을 위한 노력도 대단히 많이 해야 하고, 이런 온기가 지속되려면 혁신을 통한 역량 강화가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경제가 활성화하기 위한 법안에도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박 회장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청와대 호프 미팅에 참석했었다. 추 대표가 이를 언급하며 “청와대 맥주는 맛있었나. 경청하는 민주당도 (기업인) ‘경청 맥주’ 기회를 나중에 갖겠다”라고 하자, 박 회장은 “추 대표가 잘하시는 팔짱을 한번 껴주시면”이라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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